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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6/22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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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부르짖는 제 소리 들어 주소서. 저를 도와주소서. 제 구원의 하느님, 저를 내쫓지 마소서, 버리지 마소서.

하느님, 하느님께 바라는 모든 이에게 힘을 주시니 자비로이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희가 거룩한 은총의 도움으로 계명을 지키며 마음과 행동으로 하느님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2024년 6월 22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6월 22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6월 2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2역대 24,17-25
오늘 제1독서

 

너희는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즈카르야를 살해하였다.

17 
여호야다가 죽은 다음, 유다의 대신들이 와서 임금에게 경배하자, 그때부터 임금은 그들의 말을 듣게 되었다. 

18 
그들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다. 

19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 예언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0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가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될 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임금의 명령에 따라 주님의 집 뜰에서 그에게 돌을 던져 죽였다. 

22 
요아스 임금은 이렇게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다. 즈카르야는 죽으면서,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해가 끝나 갈 무렵,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러 올라왔다. 그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들어와 백성 가운데에서 관리들을 모두 죽이고, 모든 전리품을 다마스쿠스 임금에게 보냈다. 

24 
아람 군대는 얼마 안 되는 수로 쳐들어왔지만, 유다 백성이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을 저버렸으므로, 주님께서는 그토록 많은 군사를 아람 군대의 손에 넘기셨다. 이렇게 그들은 요아스에게 내려진 판결을 집행하였다. 

25 
아람 군대는 요아스에게 심한 상처를 입히고 물러갔다. 그러자 요아스가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을 죽인 일 때문에, 그의 신하들이 모반을 일으켜 그를 침상에서 살해하였다. 요아스는 이렇게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를 다윗 성에 묻기는 하였지만, 임금들의 무덤에는 묻지 않았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예수 그리스도는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도 그 가난으로 부유해지게 하셨네.

 

 

마태 6,24-34
오늘 복음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6월 22일
정연진 베드로 신부

 

✚ 미사시작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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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섭리’에 대하여 분명하게 가르치십니다. ‘섭리’란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과 지혜와 힘으로 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과 사건을 믿는 이의 구원을 위하여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놀라우신 힘이 우리를 이끌고 있으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섭리는 진지한 삶의 태도를 먼저 내세웁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인간에 대하여 이해가 깊은 이들은 개인의 내적인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운명의 흐름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섭리는 믿음을 요구합니다.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두고, 하느님 나라와 거룩한 정의를 먼저 바라는 믿음으로써 주위에서 진행되는 일들이 질서를 찾게 됩니다. 사물, 인간, 상황, 운명과 같은 주변 세계는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생각과 방식에 따라 형태를 갖춥니다. 

믿음으로 질서 잡힌 삶을 살아가면,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로마 8,28)라는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을 얻게 됩니다. 

곧 믿는 이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의 구원에 도움이 됩니다.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일까지도 삶의 궁극적인 목표에 이바지하게 됩니다.

섭리에 대한 가르침은 결코 가볍지 않은 요구를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추구를 첫자리에 놓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 요구는 우리에게 위대한 약속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믿음을 가진 이에게 ‘구원으로 이끌리는 삶’을 마련하여 주실 것입니다(로마노 과르디니, 『예비 기도 학교』, 154-158면 참조).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느님도 어쩌실 수 없는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니 의식주 같은 것은 걱정하지 말라 하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진정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아시고, 우리가 걱정할 필요 없도록 청하기도 전에 다 주시는가요?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필요한 것을 다 주시는지는 의문입니다. 필요한 것을 다 주신다면 아프리카의 굶주린 이들이 없어야 하고, 우리의 경험 안에서도 안 들어주신다는 느낌이 없을 텐데 실제로는 굶주린 이들이 너무 많고 우리 기도도 안 들어주신 적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일까 주님께서는 토를 다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제 생각에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달라고만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의로움을 실천하려는 그런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하나이고, 필요한 것을 청하더라도 그것이 의로운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다른 하나입니다. 

어리면 어릴수록 받기만 하고 줄 줄 모르고, 어리면 어릴수록 자기중심적이고 할 도리를 모르며, 어리면 어릴수록 자기 좋을 대로 하고 대의를 저버립니다. 제 생각에 대의(大義) 중의 대의가 하느님의 의로움입니다. 하느님의 의로움은 한두 사람의 선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 곧 공동선을 늘 지향하고,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 좋은 것을 지향합니다. 그러니 자기밖에 모르는 미성숙한 사람은 대의를 저버리고,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대의를 찾고 공동선을 지향할 것이며, 신앙적으로 성숙하면 하느님의 의를 먼저 찾고 늘 찾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밖에 모르는 소인이나 미성숙한 사람은 기도를 하더라도 자기 좋을 것만 찾을 것이고, 자기 좋을 것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지 실은 자기에게 좋은 것이 아닌 것을 찾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술을 너무도 좋아하는 사람이 술을 달라고 청한다고 합시다. 술만 먹으면 남을 괴롭히는 사람이 술을 달라고 청하면, 간경화 환자이면서 술을 달라고 청하면 하느님께서 안 들어주시겠지요. 그의 필요를 아시지만 그의 필요가 공동선도 자기 개인을 위한 선도 아닌 필요이니 말입니다. 

이렇게 얘기해도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의 굶주림과 필요를 하느님은 외면하시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외면하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고, 외면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하느님도 어쩌실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하느님은 외면하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하느님도 어쩌실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의 집단적인 불의는 하느님도 어쩌실 수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망할 때 의인 다섯도 없었습니다. 아니 아브라함과 롯 외에 아무도 의롭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인간 모두가 회개하기 전까지 온난화로 인한 폭염은 계속될 것이고, 니네베처럼 왕에서 동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자기 배 채우기만을 일삼던 그 탐욕을 멈추지 않으면 남이 배를 곯고 집단적인 기아는 계속될 것입니다. 

집단적인 불의에 의한 집단적인 불행과 빈곤은, 하느님도 어쩌실 수 없고 우리 인간이 집단적으로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는 것밖에는 답이 없음을 성찰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어떤 야구선수가 한 기자와 인터뷰했습니다. 이 선수는 오랜 시간 야구를 한 베테랑이었는데, 기자는 관중석에서 상대 팀 팬들이 야유를 많이 보내지 않냐면서 이때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전 그런 말을 듣지 않아요.”라고 말합니다. 기자는 그렇게 크게 울려 퍼지는 소리를 어떻게 듣지 않을 수 있냐면서 다시 그 비법을 물었습니다. 그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면 지는 겁니다.” 
 
프로야구 선수에게는 승리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지는 방법이 아닌 이기는 방법만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힘든 훈련도 이기기 위한 것이고, 이기기 위해 때로는 미신과 같은 징크스를 만들어 실천하기도 합니다. 요즘 인기를 끄는 최강야구의 김성근 감독은 2만 개가 넘는 징크스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역시 이기기 위해서입니다. 야유에 흔들린다면 질 확률이 높아집니다. 따라서 그런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도 이런 야유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놀리거나 험담의 말, 부정적인 말 등…. 과연 이 말을 듣고 흔들린다면 삶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이런 말을 듣고 마음에 새기는 사람은 늘 걱정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말에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끊임없이 자신을 흔들려는 말을 들으셨습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만 집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을 기억하면서, 걱정하지 말고 하느님 뜻에 집중해야 합니다. 진정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걱정을 너무 많이 하는 우리를 향해 하시는 따뜻한 말씀이었습니다. 걱정은 참으로 다양하게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물질적인 것에 대한 걱정, 자기 명예에 대한 걱정, 무엇보다 세상에서 자기에게 주어지는 각종 말과 행동에 대한 걱정도 너무나 큽니다. 이런 걱정 안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자신 있게 살 수 없습니다. 이기는 삶이 아닌, 지는 삶입니다. 
 
이기는 삶은 세상 것에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뜻에 중심을 두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커다란 선물입니다. 주님께 중심을 두는 사람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닌,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 우리가 필요한 것을 모두 알고 계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 뜻에 중심을 두는 삶입니다. 진정한 승리의 삶입니다.

 

오늘의 명언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어느 쪽을 향해 가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일이다.

- 올리버 웬들 홈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우리를 따뜻하게 안아주시는 오늘과 내일의 하느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오늘 이 순간을 감사롭게 즐기며 걸어갑니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과 다투지 않습니다. 

내일을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오늘은 늘 오늘로 더 소중하고 더 귀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오늘이며 내일입니다. 하느님 없는 오늘과 내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소중한 목숨을 입혀주시고 먹여주시는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걱정은 버리지 못하는 의심에 더 가깝습니다. 이것저것을 모두 기웃거려 보지만 남는 것은 우리의 근심과 걱정뿐입니다. 

오늘은 이겨야 할 상대가 아니라 필요한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선물의 시간입니다. 오늘은 오늘을 살아가는 투명해지는 감사의 길이 있습니다. 

감사가 무너진 자리에 감사를 다시 쌓으시는 들풀의 하느님이시며 나리꽃의 하느님이십니다. 더 귀한 것을 알기에 먼저 찾아야 할 오늘의 하느님 나라이며 오늘의 의로움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채워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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