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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6/20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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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부르짖는 제 소리 들어 주소서. 저를 도와주소서. 제 구원의 하느님, 저를 내쫓지 마소서, 버리지 마소서.

하느님, 하느님께 바라는 모든 이에게 힘을 주시니 자비로이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희가 거룩한 은총의 도움으로 계명을 지키며 마음과 행동으로 하느님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2024년 6월 20일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6월 20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6월 2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집회 48,1-14)
    엘리야가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 오늘 복음
    (마태 6,7-15)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오늘 말씀 카드
    (마태 6,9)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마태 6,9)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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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48,1-14
오늘 제1독서

 

엘리야가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엘리야는 그들에게 굶주림을 불러들였고 자신의 열정으로 그들의 수를 감소시켰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리고 세 번씩이나 불을 내려보냈다. 


엘리야여, 당신은 놀라운 일들로 얼마나 큰 영광을 받았습니까? 누가 당신처럼 자랑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죽은 자를 죽음에서 일으키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말씀에 따라 그를 저승에서 건져 냈습니다. 


당신은 여러 임금들을 멸망으로 몰아넣고 명사들도 침상에서 멸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당신은 시나이 산에서 꾸지람을 듣고 호렙 산에서 징벌의 판결을 들었습니다. 


당신은 임금들에게 기름을 부어 복수하게 하고 예언자들에게도 기름을 부어 당신의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당신은 불 소용돌이 속에서 불 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 

10 
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1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12 
엘리야가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엘리사는 일생 동안 어떤 통치자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13 
그에게는 어떤 일도 어렵지 않았으며 잠든 후에도 그의 주검은 예언을 하였다. 

14 
살아생전에 엘리사는 기적들을 일으켰고 죽어서도 그의 업적은 놀라웠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우리는 성령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네.

 

 

마태 6,7-15
오늘 복음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6월 20일
정수용 이냐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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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그럼에도 청원기도를 드려야 하는 이유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가 하느님께 무엇을 청원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합니다. 이미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시고, 우리가 굳이 청하지 않아도 그것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한 분께 청원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청원 기도를 드릴 수 있고, 또 드려야 합니다. 청원 기도는 나와 하느님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모든 기도의 목적은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며, 청원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나의 청원에 대하여 응답을 받지 못하더라도, 그분과 나는 이 기도로써 어떤 관계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응답받지 못하는 청원 기도는 없습니다.

청원 기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돌아봅니다. 우리는 청원 기도로 하느님께 바람을 아룁니다. 그러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바람을 들으시고, 당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전하십니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청하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서 하느님께서 주시려는 다른 것들이 천천히 떠오릅니다. 그것과 함께 나의 청원이 정말 옳고 합당한지 돌아보게 되고, 내가 청하여야 할 올바른 것을 알게 됩니다. 청원 기도 안에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나의 뜻을 고집하는 기도에서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도로 서서히 바뀌게 됩니다. 나의 뜻을 포기하고 그분의 뜻을 받아들일 때 은은하게 솟아오르는 기쁨도 함께 느낍니다. 주님의 청원에 내가 응답하면서 주님 사업의 협력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이 청원 기도에 대한 하느님 응답의 한 형태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기도를 잘하려면

“너희는 기도할 때에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기도에 대한 가르침은 어제 말씀에 이어지는 것입니다. 어제 단식과 자선과 기도에 대해 가르침을 주시면서 사람 앞에서 하지 말고 하느님 앞에서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오늘은 기도에 대해서만 가르침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제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오늘은 빈말을 되풀이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기도에 있어서 빈말이란 어떤 것이고,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빈말을 할 수 있을까요? 보통 빈말이라면 마음에도 없는 말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만나고 싶은 마음 하나도 없으면서 한번 만나자고 하는. 

빈말이 이렇게 마음에도 없는 말이라면 하느님께 어떻게 빈말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느님을 아주 우습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하느님께 진심인 사람은 이럴 수 없고, 당연히 마음에도 없는 말이 아니라 진심에서 나오는 말, 또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빈말을 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관계부터 재정립해야 합니다. 아무 말이나 씨불여도 되는 그런 분이 아니라 진심으로 대하고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 기울여야 하는 분으로 재정립해야 합니다. 

그런데 재정립해야 할 관계를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그 관계는 당신과 하느님과의 관계 곧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인데 영광스럽게도 우리도 그런 관계를 맺으라고 하시는 겁니다.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시다니! 구약에서는 하느님 이름을 부르지도 못하게 했는데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다니! 

그런데 이렇게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하면서도 저는 어머니로 부를 수 있게 해주셨으면 얼마나 더 좋을까 욕심도 내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니! 

이것이 욕심이긴 하지만 제 생각에 이런 욕심은 괜찮을 것이고, 주님도 우리가 감히 이렇게 부르는 것을 허락하실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하느님이 더 따듯하고 푸근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고, 아버지 나라가 오시고, 아버지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라고 기도하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왜냐면 기도 특히 관상 기도는 말보다 만남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사랑하면 말도 중요하고 말도 많이 나누겠지만 만나는 것 자체가 중요하고 아무 말 없어도 좋고 그것이 많은 경우 더 좋습니다. 

사랑의 관계는 말하기 위해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만남 그 자체가 목적이고 그래서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서로의 사랑에 잠기기 위해서 만나는 것일 겁니다. 

그러므로 거듭 강조하지만 만나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만나야 기도가 명상이나 독백이 되지 않고, 그다음에 대화를 하든 청원을 하든 뭐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저는 기도에 대한 정의를, 하느님과의 대화에서 하느님과의 만남으로 바꾸고,오늘 강론은 이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끝을 맺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주님의 기도' :  나를 하늘로 오르게 하는 엘리야의 불마차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주님의 기도를 알려주십니다. 알려주시며 이방인들처럼 자기가 원하는 것을 계속 알릴 필요가 없다고 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다 아시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 안에서 그분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을 알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기도에 다 들어있습니다. 

오늘 독서도 기도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것은 성령을 의미하고 성령은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오십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엘리야가 성령의 불 회오리바람에 들어 올려져 불 마차를 타고 하늘로 오른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기도는 우리를 이 지상에서 하늘에 오르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땅에 붙들어 매고 심지어 지하까지 끌어내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나의 뜻입니다. 저와 함께 지내던 루카 보좌 신부가 자신이 처음 가위에 눌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가위에 눌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던 경험을 말하는데 자신은 그런 경험이 없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가위에 눌릴 수 있을까를 물었습니다. 

친구들은 잠들기 전에 가위에 눌렸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잠자면 가위에 눌린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바로 돌아와서 그날 가위에 눌렸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잤더니 진짜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숨도 쉴 수가 없었고 당연히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희미한 두 사람이 옆에서 말하는 게 들렸습니다. 

“쟤, 지금 안 자!”

두려운 나머지 발버둥을 쳤고 간신히 깨어났는데 자신이 자기 목을 조르고 있었었습니다. 

사실 가위에 눌리고 싶다는 마음은 친구들과 하나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세상 것과 하나가 되고 싶은 자아의 욕구는 정말 땅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어놓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과 하나가 되고 갚은 운명을 맞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내가 사고 나서 죽은 곳에서 자신도 뛰어내려 죽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여 같은 운명으로 간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 희망을 하늘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썩어 없어질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지하로 내려가지 않고 하늘로 오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를 이 지상에 집착하게 만드는 자기 뜻을 죽여야 합니다. 그 뜻을 죽이는 게 불입니다. 나무에 불이 붙이면 그 안의 진액이 먼저 빠져나오듯 성령이 오시면 자아의 욕구가 죽습니다.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자아를 상징하는 소를 살라버리고 그 밑의 물을 말려버린 것과 같습니다. 기도는 그렇게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합니다. 

그런데 그 불 회오리바람 가운데 불마차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주님의 기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기도의 정수입니다. 그 안에 하느님 자녀가 가져야 하는 하느님 뜻이 다 들어있습니다. 내가 이 지상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일곱 개만 원하게 될 때 우리는 천사의 도움으로 하늘에 오르게 됩니다. 엘리야가 불 회오리바람과 불 마차를 타고 하늘로 오른 방법이 이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기도의 뜻을 음미하며 바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그 뜻에 하나로 젖어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마차라고 생각하고 주님의 기도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저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고 호흡을 50번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주님의 기도 한 번 하는 데 한 시간 걸립니다. 다른 생각이 끼어들지 않게 하려고 호흡에 숫자를 세면 더 좋습니다. 숨을 끝까지 다 내쉬면 코로 저절로 공기가 배에 차게 됩니다. 이렇게 세포 하나하나에 산소가 들어가듯이 내가 가벼워지고 하늘로 올라가 천국의 평화를 느끼게 됩니다. 

몇 번 바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뜻이 나의 뜻을 불사르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나머지는 덤으로 다 받게 될 것입니다.  

왜 불마차가 불일까? 불은 태우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더 이상 태울 게 없다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태우는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신이 사랑에 의해 태워질 때 하늘로 오를 수 있다. 그런데 무엇으로 태울까? 바로 하늘로 끌어 올리려는 이의 ‘뜻’이다. 그 뜻이 나의 뜻을 죽일 때 하늘로 오를 수 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당신 뜻을 죽이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했을 때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왔음을 잊지 맙시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그때에 천사가 하늘에서 나타나 그분의 기운을 북돋아 드렸다.”(루카 22,42-43).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느 시절로 가고 싶으세요?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느 시절로 가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초등학교 이전이 좋을까요? 아니면 순수한 마음으로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던 초등학교 때가 좋을까요? 성소에 대해 갈등했던 중고등학교 때로 다시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또 사제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신학생 시절은 어떨까요? 
 
이런 식으로 나의 과거를 쪼개어 보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는 결론을 짓게 됩니다. 아니 그보다 더 나아가고 싶습니다. 예전에 비해 지금 부족한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나이가 드니 운동 능력도 떨어졌고,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책을 보기 힘들 정도로 시력도 좋지 않습니다. 부모님을 비롯해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하늘 나라에 가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과거의 시간으로 굳이 다시 돌아갈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나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사실 나이 들어 할 수 없는 것도 많아졌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여전히 참 많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할 수 없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할 수 없어.’라며 슬퍼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을 바라보며 ‘아직도 할 수 있어’라며 감사하며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너무나 많은 것을 주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이유는 참 많습니다. 감사할 것이 많아질수록 더 기쁘게 지금을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통해 주님과의 대화를 기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과의 대화가 편하십니까? 감사의 말, 인정과 지지의 말, 기쁨의 말, 긍정적인 말 등을 하는 사람과의 대화가 편하지 않습니까? 만약 계속해 무엇인가를 해달라고 부탁만 한다면, 남에 대한 험담과 갈등을 일으키는 말만 한다면, 듣기 싫은 부정적인 말만 하면 어떨까요? 이런 사람과의 만남 자체를 피하고만 싶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과는 기도를 통해 어떤 대화를 하십니까? 
 
빈말만 되풀이하면서 진정한 대화를 만들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주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이 기도는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를 통해 주님과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기도를 바치면서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참 기쁨의 시간을 할 수 있는 것들에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내 삶이 곧 나의 메시지다.

- 간디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기도로 힘을 주시고 기도로 힘을 얻습니다. 매일매일 주님의 기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삶입니다. 기도로 감사하는 마음과 낮아지는 겸손을 배웁니다. 기도는 자신을 속이지 않습니다. 아버지 하느님을 만나는 고마운 마음의 시간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내어 기도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의 삶을 반영합니다. 바라는 것만이 아닌 베푸는 용서로 우리를 바꾸어 놓습니다. 용서는 영혼의 해방이며 영혼의 일깨움이 됩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믿는 마음이며 회개이며 정성입니다. 주님의 기도로 삶을 바라보는 마음이 바뀝니다. 주님의 기도를 만드신 분께서 생명을 창조하셨습니다. 기도와 생명은 하나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매일 바치면서 기도의 정신을 닮아가는 우리들은 기도의 자녀들입니다. 기도의 힘으로 오늘도 이 시간을 살아가는 기도의 자녀가 바로 우리자신입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마태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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