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부르짖는 제 소리 들어 주소서. 저를 도와주소서. 제 구원의 하느님, 저를 내쫓지 마소서, 버리지 마소서.
하느님, 하느님께 바라는 모든 이에게 힘을 주시니 자비로이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희가 거룩한 은총의 도움으로 계명을 지키며 마음과 행동으로 하느님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2024년 6월 18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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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1열왕 21,17-29)
너는 이스라엘을 죄짓게 하였다. - 오늘 복음
(마태 5,43-48)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 오늘 말씀 카드
(마태 5,44)
원수를 사랑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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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열왕 21,17-29
오늘 제1독서
너는 이스라엘을 죄짓게 하였다.
나봇이 죽은 뒤에,
17
주님의 말씀이 티스베 사람 엘리야에게 내렸다.
18
“일어나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 임금 아합을 만나러 내려가거라. 그는 지금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그곳에 내려가 있다.
19
그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주님이 말한다. 살인을 하고 땅마저 차지하려느냐?’ 그에게 또 이렇게 전하여라. ‘주님이 말한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던 바로 그 자리에서 개들이 네 피도 핥을 것이다.’”
20
아합 임금이 엘리야에게 말하였다. “이 내 원수! 또 나를 찾아왔소?”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또 찾아왔습니다. 임금님이 자신을 팔면서까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21
‘나 이제 너에게 재앙을 내리겠다. 나는 네 후손들을 쓸어버리고, 아합에게 딸린 사내는 자유인이든 종이든 이스라엘에서 잘라 버리겠다.
22
나는 너의 집안을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의 집안처럼, 그리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안처럼 만들겠다. 너는 나의 분노를 돋우고 이스라엘을 죄짓게 하였다.’
23
주님께서는 이제벨을 두고도, ‘개들이 이즈르엘 들판에서 이제벨을 뜯어 먹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4
‘아합에게 딸린 사람으로서 성안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어 치우고, 들에서 죽은 자는 하늘의 새가 쪼아 먹을 것이다.’”
25
아합처럼 아내 이제벨의 충동질에 넘어가 자신을 팔면서까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른 자는 일찍이 없었다.
26
아합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인들이 한 그대로 우상들을 따르며 참으로 역겨운 짓을 저질렀다.
27
아합은 이 말을 듣자, 제 옷을 찢고 맨몸에 자루옷을 걸치고 단식에 들어갔다. 그는 자루옷을 입은 채 자리에 누웠고, 풀이 죽은 채 돌아다녔다.
28
그때에 티스베 사람 엘리야에게 주님의 말씀이 내렸다.
29
“너는 아합이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춘 것을 보았느냐? 그가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으니,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내가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 그러나 그의 아들 대에 가서 그 집안에 재앙을 내리겠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마태 5,43-48
오늘 복음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6월 18일
김민호 마르티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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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복음은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분이시라고 전합니다. 그런데 완전함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루카 복음서에 따르면, 주님의 완전함은 그분의 자비하심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6,36 참조).
하느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자에게나 비를 내려 주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아합 임금과 같은 악인도, 자신을 낮추고 용서를 청하기만 하면 용서하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씀처럼 우리도 하느님을 닮아 완전해져야 합니다. 완전해진다는 것은 하느님처럼 자비롭고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기는 어렵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은 원수가 용서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이 사랑과 용서는 자비하신 하느님과 당신을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신 예수님의 사랑에 바탕을 둡니다.
또한 자비와 용서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잘못한 이를 더는 미워하고 싶지 않은데도, 계속 미움과 원망 속에 휩싸인 자신에게 실망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미움은 자신에게 계속 상처를 냅니다. 그래서 다른 이에 대한 자비와 용서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첫 시작이기도 합니다. 용서는 마음이 완전히 풀렸을 때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용서하는 행위’는 ‘완전한 용서’를 향하여 첫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완전한 용서는 아니지만, 자비로운 마음에서 시도한 이 용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을 지배하던 분노를 녹이고, 연민과 사랑을 자아내며 마침내 완전한 용서로 이끌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나의 정체성은?
오늘 주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고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시는데 많은 사람이 왜 그래야 하는지 물을 것입니다.
죽이고 싶은 사람을 왜 사랑하고, 천벌을 받아 죽었으면 좋은 사람을 위해 왜 기도하냐고.
지금까지 이런 물음에 그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주로 대답해 왔습니다.
사실 원수가 있는 것보다 원수가 없는 것이 낫지요. 원수가 있다는 것은 나의 불행이고, 원수를 미워하는 것은 그의 불행이 아니라 나의 불행입니다. 그리고 원수를 미워하는 나보다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더 완전하고 성숙합니다. 그러니 나의 행복과 나의 완성을 위해 원수를 사랑하고 기도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해온 이 말이 틀린 말이 아니고 맞는 말이지만 오늘 조금 다른 각도에서 왜 원수를 사랑하고 기도해야 하는지 보렵니다.
‘하느님의 자녀라면’이라는 각도이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라면 원수도 사랑해야 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려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왕족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가지는 것과 같습니다. 왕족의 정체성이 강한 사람은 무슨 행동을 하든 그답게 하려고 하겠지요. 그런데 하물며 하느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더 그러겠습니까?
원수는 미워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세리도 하고 세리나 하는 것이라고 오늘 주님 말씀하시는데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리를 무척 경멸하는 존재였잖습니까?
이렇게 세리와 비교하면서 너희도 세리처럼 되겠냐고 오늘 주님께서는 도전하시며 너희는 하느님의 자녀라고 일깨우시고, 아직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자녀가 되라고 도전하십니다.
어떻습니까? 나는 지금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느님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선인과 악인에게 똑같이 햇빛을 주시듯 선인과 악인 가리지 않는 완전한 사랑을 하라고 오늘 주님 도전하시는데 그 도전에 응답하는 우리가 되기로 마음이라도 먹는 오늘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기도하면 저절로 원수까지 사랑하게 되는 이유
원수를 사랑하는 게 가능할까요? 기도하면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정말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안 되는 것은 기도하지 않아서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한 여인이 기도의 힘으로 무엇을 얻었는지를 말하며,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아래의 글은 이마쿨레 일리바기자의 『로사리오 기도: 나의 생명을 구한 기도』를 덴버 가톨릭(Denver Catholic)이라는 블로그에서 “감히 용서하라!”라는 제목으로 정리해서 쓴 글입니다.
임박한 죽음의 고통이 "천 개의 바늘처럼" 임마쿨레의 몸을 찔렀다. 그녀는 "어떻게 죽는 거지?" 하고 걱정스럽게 생각했다. 그녀가 다른 8명의 여성과 함께 숨어있던 3x4피트 크기의 화장실 밖에서, 그녀는 총과 마체테와 창을 든 남자들이 집을 수색하기 위해 다가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나에게 무슨 짓을 할까?"
의심과 분노, 용서할 수 없는 그녀의 치열한 내적 싸움이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 그랬다.
"나를 죽이려는 사람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만약 내게 신의 힘이 있다면, 나는 그들을 순식간에 모두 죽일 것이다."
그녀는 생각했다.
1994년 르완다 대학살의 뿌리는 르완다의 두 주요 부족인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의 오랜 정치적, 민족적 긴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박한 비극에 대한 가장 분명한 경고는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나왔는데, 성모 마리아는 1981년 키베호라는 작은 마을에서 슬픔의 성모라는 제목으로 세 소녀에게 나타나 사람들이 자신의 길을 바꾸고 하느님을 따르지 않으면 르완다에 피의 강이 흐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투치족을 몰아내기 위해 오랫동안 계획된 종족 말살 사건은 1994년에 대통령의 헬리콥터가 격추된 후에 시작되었다. 투치족을 비인간화하기 위한 수년간의 마케팅 노력 끝에, 이제 그 메시지는 라디오에서 공개적으로 방송되고 있었다:
"그들을 모두 죽여라. 바퀴벌레를 끝장내라! 아이들을 잊지 마라. 나라를 깨끗이 해야 한다!"
투치족인 이마쿨레 일리바기자는 겨우 십대였다. 독실한 신자였던 아버지는 그녀에게 묵주를 주고 이웃집으로 보내 숨게 했다. 그 이웃은 반대 부족의 일원이었지만 정직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녀는 91일 동안 피에 굶주린 남자들이 대낮에 수천 명의 투치족을 학살하는 동안 나머지 8명과 함께 작은 화장실에 숨어 지냈다.
이마쿨레의 증오와 용서의 신앙적 갈등은 그녀가 숨어든 지 불과 며칠 만에 시작되었다. 발각될 가능성에 그녀는 내면의 목소리로 "문을 열어라, 고문을 끝내라! 어쨌든, 놈들은 널 죽일 거야." 그러나 다른 목소리가 그녀에게 "문을 열지 마라. 하느님께 도움을 구하라!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것은 그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 기회가 있다."
그때 그녀는 인생을 바꾸는 약속을 한다: "하느님, 저는 당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계속해서 당신을 찾을 것입니다. 다시는 당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이 때문인지 집을 수색하던 남자들은 화장대 뒤에 잘 숨겨져 있는 화장실 문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기를 도와주는 남자에게 성서를 달라고 부탁하였다. 처음으로, 그는 하느님과 대화하면서 성서를 주의 깊이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순수한 사랑으로 자신을 창조하셨고 천국의 축복으로 부르셨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하늘나라에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곳에 가려면 예수 말씀과 계명을 따르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천국의 영원성에 비하면 그렇게 나쁘지 않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나도 할 수 있어."
그러나 이마쿨레는 예수님의 말씀을 읽었을 때 따끔한 현실에 직면했다: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을 용서하여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나는 내가 곤경에 처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하느님은 내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다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하고 계셨다."라고 이마쿨레는 회상했다.
대신 그녀는 아빠가 준 묵주로 눈을 돌렸다. 기도하면서 그녀는 새로운 것, 즉 깊은 평화를 경험했다. 그녀는 이 평화를 꽉 붙잡았다. 그녀는 매일 총 27번의 묵주기도와 14번의 하느님 자비의 기도를 바쳤다. 이것만이 그녀가 분노와 절망의 생각에 빠지지 않게 해 주었다.
그러나 며칠 후, 하느님의 온화한 손길이 다시 한번 용서로 그녀를 이끌었다. 성부께 기도할 때, "우리에게 잘못한 자를 용서하듯이"라는 구절이 너무 불안해서 아예 생략하기로 했다 — 적어도 하느님께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고, 그녀는 다른 음성이 그녀에게 말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네가 바치는 주님의 기도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를 바란다. 예수 자신도 이 기도를 바치셨고, 그분은 실수하실 수 없는 분이시다."
"그때 처음으로 항복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제게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을 내게 주어라.'라고 하실 때 '좋아, 기도는 하겠지만, 아직도 어떻게 용서해야 할지 모르겠어.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했다."
하느님의 도움이 왔다. 감당할 수 없는 분노와의 싸움은 십자가 밑에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라는 예수 말씀을 읽었을 때 끝이 났다.
이마쿨레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 순간 저는 진정으로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치 예수 예수님께서 제게 용서의 공식을 건네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나에게 말하길, '너를 죽이려는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 그들은 그들에게 닥칠 결과를 측정하지도 않는다…. 그들처럼 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게서 배워라!"
그녀는 사람들이 살아 있는 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하느님의 은혜로 증오에서 사랑으로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저는 증오의 편에 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여생을 보내야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3개월 만에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그녀는 새로운 사람이었다. 그 은총에 의해서만 그녀는 부모, 형제, 사촌, 친구들을 포함하여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끔찍한 현실을 직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의 임재는 결코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분이 나를 꽉 붙잡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느꼈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여정은 이 지상에서 끝났지만, 너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너의 삶이 얼마나 길든 간에 어떻게 살기로 선택하는가는 너 자신에게 달려있다.'"
몇 년 후 그녀는 르완다로 돌아와 자기 가족을 죽인 모든 사람을 직접 용서했다. 이마쿨레와 함께 키베호와 키갈리로 순례를 다녀온 사람들은 그녀가 기뻐하며 한 남자를 껴안고 돌아서서 "그의 오빠가 내 오빠를 죽였다."라고 말하는 모습에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용서하지 않음의 고통과 피해를 알고 있다."라고 말한 이마쿨레는 모든 이들에게 "그러니 간청하노니 감히 용서해 달라. 하느님을 붙잡고, 묵주기도를 바치고, 성경을 읽고, 미사에 가고…. 용서에는 너무나 많은 기쁨과 자유가 있습니다. 감히 도전하라!" [출처: ‘Dare to forgive: Immaculée Ilibagiza & radical reconciliation’, Denver Catholic]
기도는 성령을 받는 시간입니다. 기도하면 성령을 받아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면 점점 그것과 어긋나는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할 수 없게 됩니다. 가장 큰 것이 미움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자녀이고 사랑받는다고 믿는 이상 기도 안에서 미움은 성령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만 합니다. 결국 하느님과 있는 행복을 택하기 위해 원수를 사랑하기를 택합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그런 능력이 주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처럼, 스테파노 성인처럼, 모세처럼 하느님 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자신을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것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하느님 자녀가 되었음이 믿어지고 더 행복해집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늘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 포드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가 처음부터 자동차 사업으로 성공하겠다는 포부를 가졌을까요? 처음에 기계공으로 시작해 에디슨 회사의 기술 책임자에 올랐다가 나중에 자기 공장을 세운 것입니다. 만약 기계공으로 있을 때, ‘지겹다, 힘들다’라는 생각만 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자기 일에 흥미를 갖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세계 제일의 자동차 생산 기업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마다 자기 좋아하는 것이 다릅니다. 많은 사람이 초콜릿, 사탕 등을 좋아하지만, 저는 초콜릿이나 사탕 같은 단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제가 싫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사탕 나눠주는 것을 하지 않는다면, 아마 아이들과 친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제가 사탕을 좋아하지 않지만, “좋다, 좋다”를 외치다 보니 사탕 나눠주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일도 또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자기가 맡은 일을 “싫다, 싫다”라고만 한다면 자기 일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왜 이렇게 지루해. 신앙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어?” 등의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면 가장 쓸데없는 일을 하는 ‘어리석은 나’ 정도로만 여길 것입니다. 당연히 기쁨도 행복도 얻을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생활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장하는 나를 바라보고, 삶 안에서 피곤하지도 또 힘들지도 않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라는 율법을 먼저 이야기하십니다. 당시의 사람들도 이를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원수를 미워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내용을 확장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시는 것처럼, 우리 역시 모든 이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원수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원한이 맺힐 정도로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나 집단’을 말합니다. 그런데 자기 뜻과 맞지 않아 반대하는 사람을 원수 취급합니다. 본인의 부정적인 마음이 원수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바라보며 ‘싫다, 싫다’라는 생각만 하니 원수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이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모든 이를 사랑해야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다가설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가 존재하는 동안에는 죽음이 여기에 있지 않으며, 죽음이 여기 있을 때는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 에피쿠로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은총이 넘치는 새날입니다. 모두에게 공평하신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새로운 세상이며 가장 좋으신 사랑의 온전한 하루입니다. 완전하기에 영원하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렇듯 하느님과 우리는 언제나 함께 있습니다.
하느님과 하나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기도이며 실천입니다. 이렇듯 봉사는 아버지의 하느님의 완전함을 우리가 닮게합니다. 단 한 번이라도 봉사한 적이 없는 우리들에게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하느님과 이웃들의 봉사이며 사랑이었습니다. 완전한 것 이외에 다른 것을 주지 않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내 것이란 없습니다. 완전하신 하느님 사랑의 것입니다.
완전한 사랑은 부족함을 덮어주고 채워줍니다. 완전함은 십자가처럼 열매를 맺고 머리를 숙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봉사를 배우고 닮이가는 온전한 봉사의 새 사람이길 기도드립니다. 사랑은 사랑이신 하느님과 함께하는 온전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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