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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6/17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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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부르짖는 제 소리 들어 주소서. 저를 도와주소서. 제 구원의 하느님, 저를 내쫓지 마소서, 버리지 마소서.

하느님, 하느님께 바라는 모든 이에게 힘을 주시니 자비로이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희가 거룩한 은총의 도움으로 계명을 지키며 마음과 행동으로 하느님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2024년 6월 17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6월 17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6월 1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1열왕 21,1ㄴ-16)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 오늘 복음
    (마태 5,38-42)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 오늘 말씀 카드
    (마태 5,41)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마태 5,41)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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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1열왕 21,1ㄴ-16
오늘 제1독서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그때에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이즈르엘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포도밭은 사마리아 임금 아합의 궁 곁에 있었다.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포도밭을 나에게 넘겨주게. 그 포도밭이 나의 궁전 곁에 있으니, 그것을 내 정원으로 삼았으면 하네. 그 대신 그대에게는 더 좋은 포도밭을 주지. 그대가 원한다면 그 값을 돈으로 셈하여 줄 수도 있네.” 


그러자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제가 제 조상들에게서 받은 상속 재산을 임금님께 넘겨드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아합은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자기에게, “제 조상님들의 상속 재산을 넘겨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한 말에 속이 상하고 화가 나서 궁전으로 돌아갔다. 아합은 자리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음식을 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 이제벨이 들어와서 물었다. “무슨 일로 그렇게 속이 상하시어 음식조차 들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임금이 아내에게 말하였다. “실은 내가 이즈르엘 사람 나봇에게 ‘그대의 포도밭을 돈을 받고 주게. 원한다면 그 포도밭 대신 다른 포도밭을 줄 수도 있네.’ 하였소. 그런데 그자가 ‘저는 포도밭을 임금님께 넘겨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하는 것이오.” 


그러자 그의 아내 이제벨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에 왕권을 행사하시는 분은 바로 당신이십니다. 일어나 음식을 드시고 마음을 편히 가지십시오. 제가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밭을 당신께 넘겨드리겠습니다.” 


그 여자는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그의 인장으로 봉인하고, 그 편지를 나봇이 사는 성읍의 원로들과 귀족들에게 보냈다. 


이제벨은 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단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의 첫자리에 앉히시오. 

10 
그런 다음, 불량배 두 사람을 그 맞은쪽에 앉히고 나봇에게, ‘너는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다.’ 하며 그를 고발하게 하시오. 그러고 나서 그를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이시오.” 

11 
그 성읍 사람들, 곧 나봇이 사는 성읍의 원로들과 귀족들은 이제벨이 보낸 전갈 그대로, 그 여자가 편지에 써 보낸 그대로 하였다. 

12 
그들이 단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의 첫자리에 앉히자, 

13 
불량배 두 사람이 들어와서 그 맞은쪽에 앉았다. 불량배들은 나봇을 두고 백성에게, “나봇은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습니다.” 하고 말하며 그를 고발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나봇을 성 밖으로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인 다음, 

14 
이제벨에게 사람을 보내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고 전하였다. 

15 
이제벨은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합 임금에게 말하였다. “일어나셔서,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돈을 받고 넘겨주기를 거절하던 그 포도밭을 차지하십시오. 나봇은 살아 있지 않습니다. 죽었습니다.” 

16 
나봇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아합은 일어나,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그곳으로 내려갔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을 밝히는 빛이옵니다.

 

 

마태 5,38-42
오늘 복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6월 17일
노동준 안토니오 신부

 

✚ 미사시작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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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그리스도인의 선택은 희생적 선택이어야 한다.

오늘 독서인 나봇의 포도밭 이야기는 탐욕에 사로잡힌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잔인하고 추악해질 수 있는지 알려 줍니다. 아합은 매우 탐욕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모략을 세우거나 직접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아내 이제벨과는 달리 하느님과 율법의 가르침을 두려워하였기에, 거짓 증언으로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욕망에 매우 충실한 사람으로 욕망에 눈이 어두워져, 불의와 폭력에 내던져진 다른 사람의 고통에 눈을 감았습니다. 나봇이 무고하게 죽었지만, 아합은 안타까움과 죄책감을 조금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아내가 저지른 악행의 결과를 마음속으로 기대하며, 겉으로는 모른 척하였지만 그 결과를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무죄한 의인이 희생한 대가로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었습니다. 욕망은 아합에게 나봇의 죽음을 가리고, 포도밭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아합과 닮았습니다. 이제벨처럼 직접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지만, 그 악행의 결과가 자신에게 이익으로 돌아올 때 그것을 뿌리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빈부 격차를 가속화하며 가난한 이들을 많이 만들어 내는 악법과 불의한 구조를 직접 만들지는 않았지만, 만일 그 법으로 어떤 이득을 얻게 된다면 기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욕심은 고통받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눈을 감게 하고, 지금 곧바로 얻게 될 이익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이익보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삶에 시선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선택은 자신의 욕망을 비우고, 어려운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희생적 선택이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어라.” 

오늘 주님의 말씀들은 문제적인 말씀들입니다. 악인과 맞서지 말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악인과 맞서지 말고 그에게 복종하라는 뜻이거나 복종까지는 아니고 타협하라는 뜻이라면 아무리 주님의 말씀일지라도 옳은 말씀이라고 할 수 없고 그래서 우리가 따를 수 없는 말씀이지요. 

그러므로 이 말씀은 복종이나 타협의 뜻이 아니라 뒤에 이어지는 말씀들에 비추어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여기서 악인이란 하느님의 뜻에 거역하는 죄인이나 사회정의를 거스르고 사회악을 저지르는 사람이 아니고 나를 힘들게 하고 내게 상처와 고통을 주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 대해 주님은 맞서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뜻은 맞대응하거나 말려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제가 연예인들이 악플로 인해 불행해지거나 자살까지 하는 것을 볼 때마다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왜 그들의 악플을 보느냐, 보더라도 대응치 않으면 되는데 왜 대응하느냐 하는 점입니다. 

악플을 볼 때부터 이미 그 악인들의 악에 말려드는 것이고, 한번 대응하기 시작하면 헤어날 수 없을 정도로 점점 더 얽히게 되지요. 이는 마치 쓰레기 더미나 똥 더미에 발을 디디는 것과 같은 것이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쓰레기 더미나 똥 더미에 발을 디딜 사람은 없지요. 그런데도 악플에 말려드는 것은 왜이겠습니까? 원해서겠습니까? 원치 않는데도 말려드는 거지요. 남이 상처를 줘서 상처받았다고 하는 사람에게 제가 하는 말이 ‘준다고 다 받느냐? 좋으면 받고 싫으면 받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인데 그런데도 받는 것은, 받고 싶지 않은데도 어쩔 수 없이 받는 것이지요. 

전염병에 걸리지 않고 싶지만 몸이 약하고 면역력이 약해 받듯이 상처나 모욕 같은 것들도 받고 싶지 않지만 약하기 때문에 받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서 약하다면 무엇이 약한 것일까요? 

심리적, 정신적, 영적으로 약한 것이며 그래서 심리적으로 약하면 우울증에, 정신적으로 약하면 정신병에, 영적으로 약하면 마귀 병이 드는 것이고, 한 마디로 얘기하면 사랑이 강하지 못하거나 불완전하여 육체적, 심리적, 정신적, 영적 고통에 약한 것이지요. 

그런데 사랑은 또 왜 불완전하고 약합니까? 그것은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사랑하려고 하지 않고, 마치 온실 속의 화초처럼 좋은 것만 좋아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자란 사람은 웬만한 악플에 까딱없습니다. 연예인 같이 인기를 끌고 좋은 얘기만 듣던 사람이 계속 좋은 소리만 들으려 하기에 악플을 보게 되는 것이며 악플에 말려들고 흔들리는 겁니다. 

그러니 한 뺨 맞고 다른 뺨까지 맞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 오 리뿐 아니라 십 리까지 가 줄 사랑이 있는 사람은 악인이 하는 짓에 말려들지도, 대응하지도, 까딱하지도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경지에 도달하면 맞설 악인조차 없게 되겠지요? 내일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을 보게 될 텐데 원수까지 사랑하면 내게는 악인이 아예 없게 되는 거지요. 바라고 요구하는 딱 그만큼이 아니라 바라고 요구하는 것보다 더 사랑하려는 우리가 되라시는 오늘 주님이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악인에게 맞서지 말아야 하는 두 가지 이유

오늘 복음은 우리가 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대라고 하십니다. 악인에게 저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속옷을 가지려 하면 겉옷까지 내어주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면 세상에서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아합왕은 나봇의 포도밭을 노립니다. 나봇은 아합에게 포도밭을 팔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제벨 여왕이 나서서 일을 꾸며 나봇을 죽게 합니다. 나봇은 반항도 못 해보고 포도밭을 빼앗깁니다. 

그런데 이것을 정말 실천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에 독재자가 나타나 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 데모라도 해서 저항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러나 오늘 복음대로라면 그래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로마 지배하에 있었지만, 로마에 세금을 내라고 하시고 바오로 사도는 도망친 노예를 주인에게 돌려보냈습니다. 
 
악인에게 맞서지 말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악인에게 맞서면 같은 수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 주인공은 사이코패스를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려고 본인이 그 사이코패스보다 더 악랄한 존재가 됩니다. 같이 놀면 같은 존재가 됩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독재정권을 뒤집어엎고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나라를 만들고 싶어서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정권을 잡으니 더 악랄한 독재자가 되었습니다. 쿠데타를 해 보니까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들고일어서지 못하게 하는지 그 방법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싹부터 잘랐습니다. 그리고 무려 49년 동안 20세기 들어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독재정권을 유지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나를 사랑하고 따르는 이들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내가 악인과 맞서면 나를 따르는 이들도 그를 적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중에서 많은 이들은 마음에 미움을 가지게 될 것이고 범죄를 저지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으로 민중이 귀족과 종교에 대해 들고 일어난 운동입니다. 그런데 몇몇 선동에 일반 시민들은 수많은 사제와 귀족들의 머리를 단두대에 올려 잘라버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미움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들도 모르게 범죄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유다와 맞서지 않고 그를 감싸셨습니다. 유다가 당신을 팔아넘기기 위해 입맞춤하실 때도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끌려가서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이렇게까지 유다를 감싸신 이유가 ‘하.사.시.’에서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바치는 기도에 잘 드러납니다. 
“적어도 마지막 시간까지, ‘죄악’을 숨겨 두어, 제가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피로 그들의 몸을 더럽히지 못하게 막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저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7-224). 

만약 예수님께서 유다가 배반할 것을 드러내셨다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당신 제자들의 손에 피를 묻히게 하였을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나쁜 생각이 깃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악인에게 맞서면 안 되겠습니다. 

이 세상에 유토피아를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사라져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훈련하고 분별하는 장소입니다. 더 큰 고통과 시련이 있을수록 더 정화됩니다. 우리는 악인에게 저항하거나 맞서기보다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으셨는지 먼저 배워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어리석은 자와 논쟁하면 더 어리석어 보입니다. 꼬마 아이와 큰 소리를 지르며 다투는 어른을 보게 되면 어떻습니까? 아이가 예의 없이 행동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서로 언성을 높이는 모습에서 많은 이가 어른의 어리석음을 지적할 것입니다. 한 남자가 영적 스승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영원한 행복을 얻으려면 어떻게 하나요?” 
 
스승이 말했습니다. 
 
“바보들과 다투지 말아야 한다.” 
 
남자가 정색하면서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자기의 말에 반대하는 이 남자의 말에 스승은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그렇다. 네 말도 맞다.” 
 
어쩌면 자기를 반대하는 이 남자의 말에 기분이 안 좋아서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승은 진리를 향하는 방법인 바보들과 다투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사실 상대방이 마음을 열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자기 생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라고 주장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설득해 봐야 무의미한 논쟁이고 이를 얼른 끝내는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생명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생명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 하느님의 영역이기 때문) 동의해 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사람들과 논쟁으로 힘들어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보들과 다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오늘 말씀도 이런 측면에서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당시에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동태 복수법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이것이 가장 공정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반대하는 사람과 똑같은 방법으로 맞서게 될 때, 그 안에서 더 큰 악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조건 없이 용서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아니 그보다 큰 사랑으로 다가설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런 넓은 마음으로 적대적인 상황을 빨리 끝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난과 죽음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따른다면 그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은 본시 단순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생을 자꾸 복잡하게 만들려고 한다.

- 공자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일일이 악인에 반응하는 우리자신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오랫동안 악인에게 맞서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야말로 맞섦과 반응의 연속이었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맞서다 묶이게 되고 맞서다 더 끔찍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악인에게 맞서다 악인을 닮아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됩니다. 맞서는 방법을 버린 후에야 다른 길을 찾게됩니다. 악인이 만들어 놓은 덫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하느님께서 하시도록 이 상황을 하느님께 의탁하는 길입니다. 

의탁의 힘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골몰하고 집중해야 할 대상은 악인이 아니라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께서 하시도록 악인을 맡겨드립니다. 모였다 흩어지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악인에게 반응하는 우리의 힘이 멈춰야 평화가 옵니다. 

악인은 하느님의 빛 앞에 모두 드러날 것이며 어둠은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믿음은 의탁이며 악인에 맞서지 않는 멈춤입니다. 악인은 하느님을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맞서지 않을 때 사라지는 악인의 속성입니다. 새롭게 하느님께 나아가는 의탁의 멋진 새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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