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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6/30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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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민족들아, 손뼉을 쳐라. 기뻐 소리치며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하느님, 천상 은총으로 저희를 빛의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저희가 다시는 오류의 어둠 속을 헤매지 않고 언제나 진리의 빛 속에 살게 하소서.

2024년 6월 30일 연중 제13주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6월 30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6월 3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3주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지혜 1,13-15; 2,23-24)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

  • 제 2독서
    (2코린 8,7.9.13-15)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가 가난한 형제들의 궁핍을 채워 줄 것입니다.

  • 오늘 복음
    (마르 5,21-43)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오늘 말씀 카드
    (2코린 8,13)
    균형을 이루게 하자.

 

균형을 이루게 하자. (2코린 8,13)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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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1,13-15; 2,23-24
오늘 제1독서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

13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14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존재하라고 창조하셨으니 세상의 피조물이 다 이롭고 그 안에 파멸의 독이 없으며 저승의 지배가 지상에는 미치지 못한다. 

15 
정의는 죽지 않는다. 

2,23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24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은 그것을 맛보게 된다.

 

 

 

2코린 8,7.9.13-15
오늘 제2독서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가 가난한 형제들의 궁핍을 채워 줄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곧 믿음과 말과 지식과 온갖 열성에서, 또 우리의 사랑을 받는 일에서도 뛰어나므로, 이 은혜로운 일에서도 뛰어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13 
그렇다고 다른 이들은 편안하게 하면서 여러분은 괴롭히자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이루게 하자는 것입니다. 

14 
지금 이 시간에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가 그들의 궁핍을 채워 주어 나중에는 그들의 풍요가 여러분의 궁핍을 채워 준다면,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15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많이 거둔 이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이도 모자라지 않았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

 

 

마르 5,21-43
오늘 복음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22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23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24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25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26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27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9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30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1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3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33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3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35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37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38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39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0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42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43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6월 30일
구요비 욥 주교, 엠마누엘 다씨 주교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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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당 : 성시간(15:00) 후 미사(16:00)
    주일 16:00 / 월 16:00 / 화 16:00 / 수 16:00 / 목 16:00 / 금 16:00 / 토 16: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

오늘 제2독서는 가난한 이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를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과 같은 본성을 지니시며 누구보다도 부유한 분이셨지만,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시어 당신 자신을 비우시고 가난하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취하십니다. 그리고 그 가난을 넘어 십자가 죽음이라는 비천함까지 껴안으십니다(필리 2,6-8 참조).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께서는 사랑하시는 인간을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내놓으시고 우리 곁으로 다가오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함은 고고하게 홀로 계심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랑하시는 인간과 같아지시는 거룩함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가난함으로 우리의 가난한 삶을 살아가시고, 그 안에서 슬픔과 고통을 함께 겪으십니다. 이달 내내 우리가 기억한 그리스도의 성심은 크신 사랑으로 우리의 고통에 함께하시며 마음이 찢어지도록 슬퍼하시고 아파하시는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입니다. 인간의 고통을 나누시는 그 가난으로, 우리는 그분과 함께 부유해지고 충만해집니다.

바오로 사도는 ‘가난한 이를 위해서 가난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속성을 근거로 그리스도인에게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라는 윤리적 실천을 요구합니다. 그리스도의 이 모습은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여 줍니다.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입니다. 가난한 이와 분리되어 그들에게 작은 시혜를 베푸는 것으로 만족하는 ‘가난한 이를 도와주는 부자 교회’가 아닌 가난한 이들과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사랑으로 동화되는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입니다(프란치스코, 「복음의 기쁨」, 198항 참조).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건강하게 살려면 

영성 생활을 한다는 것은 생명을 사는 것이고 영성 생활을 잘하면 건강한 삶을 살 것입니다. 

오늘 지혜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은 그것을 맛보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생명을 창조하셨지 죽음을 창조하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실로 창세기에서 모든 생명은 생기라는 하느님 명령대로 생겨난 존재들입니다. 

한자어에서도 생명은 생기라는 명령(命令)대로 생겨났다고 해서 생명(生命)이고, 실로 생기라는 명령에 순명(順命)하지 않은 생명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명령대로 순명하는 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이것을 요한복음에 따라 얘기하면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듯이 진리의 길과 생명의 길을 따라 살면 그리고 요한복음 6장에서 얘기하듯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말씀대로 살면 우리는 진리의 길과 영원한 생명의 길을 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죽었던 소녀는 일어나라는 명령대로 살아납니다. 이렇듯 살아나는 존재는 명령에 순명하는 존재이고, 살아나게 하는 존재들은 소녀의 부모처럼 주님을 믿고 생명을 간청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런가 하면 소녀의 이웃들처럼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라는 주님 말씀을 믿지 않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소녀의 부모만큼 소녀가 살아나기를 간절히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듯이 하느님이 생명의 주님이시라는 것을 믿지 않고 비웃는 자들이 오늘 지혜서가 말하는 “죽음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애초에 죽음에 속한 자들이 어디 있습니까? 오늘 지혜서가 말하듯 하느님은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그러므로 당신이 창조한 모든 것은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렇다면 죽음에 속한 자들은 하느님 생명에서 탈출한 자들입니다. 하느님의 생명에서 탈출하면 그것이 바로 죽음에 속하는 것입니다. 

빛에서 벗어나면 그것이 바로 어둠이듯 물에서 벗어나면 그것이 바로 고기에게는 죽음이듯 하느님의 생명에서 벗어나면 그것이 우리에게는 바로 죽음입니다. 

이것을 저는 오늘 조금 다르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인간 창조를 이렇게 얘기합니다. 

“오, 사람이여, 주 하느님께서 육신으로는 사랑하시는 당신 아들의 모습대로, 그리고 영으로는 당신과 비슷하게 그대를 창조하시고 지어내셨으니 주 하느님께서 그대를 얼마나 높이셨는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이 말씀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육신만 당신 모상으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당신과 비슷하게 창조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간을 성자의 모습과 성령의 모습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반쪽만 삽니다. 육신 곧 몸뚱이만 살고 영성을 살지 않습니다. 영성이란 성령(Holy Spirit)을 사는 것이고 정신(spirit)을 사는 것인데, 프란치스칸은 프란치스칸 정신(Franciscan spirit)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창세기를 보면 명령대로 곧 말씀으로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그것으로 부족하셨는지 2장에서 다시 인간을 창조하시는데 이번에는 흙으로 당신과 비슷하게 만드신 다음 그의 코에 당신 숨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우리말의 목숨은 이렇게 한자어의 생명과 달리 목에 숨이 들락날락하는 것이고, 신앙적으로 얘기하면 하느님의 숨 곧 성령이 우리 목을 들락날락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숨 곧 성령이 우리 목에서 끊어질 때 우리 목숨은 끊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영성을 산다는 것은 성령을 사는 것이고, 성령을 살 때 우린 육신뿐 아니라 마음과 정신과 영혼 모두 생명을 살고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됩니다. 

죽음에 속한 자 될 것인가? 생명에 속한 자 될 것인가? 

그 선택이 앞에 놓인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사랑받지 못하면 죽고 싶게 진화했다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12년 동안 하혈하는 여인과 열두 살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십니다. ‘12’라는 숫자는 ‘백성’이란 뜻입니다. 열두 지파의 이스라엘 백성과 12사도 위에 세워진 하느님 나라, 곧 교회의 상징입니다. 그 안에 들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을 받아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자신들의 생명의 샘임을 믿고 부모에게서 에너지를 받습니다. 정말 큰 문제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않으면 죽고 싶은 마음이 생겨 자살 시도하면서도 창조자를 찾지 않고 자신은 진화한 존재라고 믿는 것입니다. 

장동선 뇌과학자가 ‘세바시 15분’에 나와 ‘마음의 구조신호에 귀 기울여 주세요’란 제목으로 강연하였습니다. 그는 청소년 때 두 번, 어른이 되어서 한 번, 자살 시도를 세 번이나 하였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어렸을 때 “우리 함께 죽자!”란 소리를 많이 하였던 것이 상처가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마치 독이 든 캡슐을 삼켜서 그 독이 계속 퍼져나가는 느낌이라고 합니다. 

아내도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그것도 모를 정도로 자신의 큰 아픔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강의는 모두 ‘진화론’적입니다. 뇌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진화론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진화론의 목적은 ‘생존’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고등동물로 올라올수록 ‘의존’해야 하게 태어납니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려면 적어도 20년은 부모와 함께 삽니다. 이것이 없으면 죽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힙니다. 고장이 나고 정말 죽습니다. 

해리 할로우 박사는 사랑을 증명하고 싶어서 격리 원숭이 실험을 하였습니다. 격리 원숭이는 어미를 선택할 때 젖병이 있는 차가운 철사로 만든 어미 인형이 아니라 젖병이 없어도 따듯한 감촉이 있는 수건으로 감싸인 인형을 어미로 믿었습니다. 

영장류는 생존하기 위해 먹어야 하는 젖보다 어미의 사랑을 더 그리워합니다. 반면 모기나 박테리아와 같은 것들은 부모의 사랑이 필요 없습니다. 관계 맺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독자적으로 관계 맺을 필요가 없는 동물들이 더 유리합니다. 인간은 사라져도 모기나 바퀴벌레는 남을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무언가를 창조할 때면 그 창조에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 만큼 그 창조된 것을 위해 더 큰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제가 컴퓨터가 고장 나 강론 원고를 날려버리면 조금 마음이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박사 논문이 제출 직전에 다 날아가면 죽을 지경이 됩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이라도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박테리아보다는 인간이 더 만들기 어렵습니다. 하느님은 당신 모습을 닮은 인간을 위해 목숨이라도 내어놓으십니다. 이것을 아는 게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다면 어린이처럼 자신을 창조한 이에게서 에너지를 얻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삶의 에너지를 자기 스스로 생성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렇게 진화하는 게 이치에 맞기 때문입니다. 

창조론자들은 창조자에게서 에너지를 얻습니다. 자동차나 스마트폰이 그것을 만든 인간에게서 ‘당연하게’ 에너지를 얻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야이로나 하혈병 걸렸던 여인이 예수님께 빠져나가는 생명을 청했던 이유가 이것입니다. 만든 이로부터 에너지를 청하지 않으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기도로서 그리스도의 피를 받지 않는 이들은 이미 그분을 창조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배우 최강희 씨는 낮은 자존감으로 밥도 사람들과 함께 먹을 수 없었습니다. 외적으로 보이는 천사 이미지와 저녁에는 술과 담배를 사서 먹고 마시며 자신의 처지를 잊으려 하는 이중성에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모태 신앙인이었지만, 진정으로 기도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라고 기도 드렸습니다. 이때 하느님께서 사랑하신다는 느낌을 받고는 술·담배를 끊게 되었습니다. 이 순간 비로소 참 신앙인이 된 것입니다. 하느님을 창조자로 인정함으로써. 

저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동네에 살아서 압니다. 우리에게서는 에너지가 생성되지 않습니다. 에너지는 창조된 이에게서 받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코드를 꽂아야 합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저는 매일 세 시간 정도는 성체조배를 하려고 합니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압니다. 방법은 없습니다. 애인 만날 때 방법이 중요한가요, 아니면 만나는 거 자체가 중요한가요?

오늘 복음의 두 의인처럼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라고 믿고 그분 옷자락을 쥐려고 하는 마음으로 그분 곁에 머물면 됩니다. 하느님께 의존하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고양이과에 속하는 동물인 ‘치타’를 혹시 아십니까? 이 지상에 현존하는 가장 빠른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속 100km대를 달리는 유일한 육상 동물이며, 최대 120km/h의 속력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엄청난 속도로 사냥감을 쫓아가서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 죽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치타의 사냥 성공률은 어떻게 될까요? 41%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물론 다른 동물보다는 성공률이 높기는 하지만, 때로는 계속된 사냥 실패로 인해 굶어주는 치타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끼 치타의 생존율은 어떻게 될까요? 대략 독립할 수 있는 개월 수인 17개월 동안 4.8%만 생존한다고 하더군요. 현재 인간의 기대 수명이 제일 낮은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유아는 91%가 첫 번째 생일까지 살아남고, 88%가 다섯 번째 생일까지는 살아남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치타는 상위 포식자가 아니라 아주 약한 동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하다고 해서 무조건 살아남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강함이 삶을 더 힘들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인간사회에서도 남들보다 강함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해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 하고, 이를 위해 자기 능력을 키워나갑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매번 강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랑을 위해 자기를 낮추는 것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면서 하느님께 대한 믿음도 두터워지게 됩니다.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발 앞에 엎드려 간곡하게 청합니다. 자기 딸이 죽게 되었으니, 손을 얹어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가 발 앞에 엎드린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자기 딸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이 사랑을 예수님께서 보셨기에, 그의 집으로 함께 가십니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회당장의 슬픔은 얼마나 컸을까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모두 딸의 죽음을 확신하고 비웃었지만, 딸을 사랑하고 그 사랑의 힘으로 예수님을 믿고 있었던 회당장의 모습으로 인해 실제로 딸은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딸의 죽음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주님의 뜻을 비웃고, 세상의 것만을 쫓으려는 우리의 어리석은 모습을 말입니다. 세상의 뜻에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주님 뜻만을 바라보며 굳은 믿음을 가지고 사랑을 실천하면 됩니다.

 

오늘의 명언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 속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오늘 복음은 소녀의 성장을 보여줍니다. 너무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잘 모르는 자녀들 교육입니다. 고민은 없고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질책과 훈계만 있을 뿐입니다. 부모의 틀에 우리 자녀를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성장의 여정입니다. 아프지 않고 성장하는 것은 이와 같이 없습니다. 아픔 앞에서 비로소 깨닫는 우리들 자화상입니다. 예수님의 손끝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들 일상입니다. 

소녀를 키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소녀의 시간입니다. 소녀는 소녀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합니다. 재촉하지 않는 사랑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소녀의 말을 귀기울여 들을 수 있는 부모가 소녀를 제대로 사랑하는 부모입니다. 

엄마 아빠는 그냥 되지 않습니다. 쓴맛과 단맛을 구분하며 가정의 역사는 자라납니다. 함께하는 생활 속에 성장이 있습니다. 부모의 기대에만 부응하는 자녀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자녀들이길 바라십니다. 

고마운 일상 안에 사랑스러운 우리 자녀들이 있습니다. 함께하는 식사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단순한 사랑의 진리를 놓치지 않길 기도드립니다. 

오늘 우리들은 우리 자녀들과 무엇을 나누려 하는지요. 가장 기본적인 식사를 함께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눈을 기쁘게 바라보는 오늘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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