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4/05/02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5. 2.
반응형

 

 

주님이 그를 지혜와 지식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시어, 회중 가운데에서 그의 입을 열어 주시고, 영광의 옷을 입혀 주셨네. 알렐루야.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복된 아타나시오 주교를 보내시어 성자의 신성을 힘껏 변호하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의 가르침과 보호로 기뻐하며 하느님을 더욱 깊이 깨닫고 사랑하게 하소서.

2024년 5월 2일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5월 2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5월 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15,7-21)
    내 판단으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 오늘 복음
    (요한 15,9-11)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 오늘 말씀 카드
    (요한 15,11)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다. (요한 15,11)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사도 15,7-21
오늘 제1독서

 

내 판단으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 무렵 


오랜 논란 끝에 베드로가 일어나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다른 민족들도 내 입을 통하여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나를 뽑으신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시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10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11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12 
그러자 온 회중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표징과 이적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13 
그들이 말을 마치자 야고보가 이렇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4 
하느님께서 처음에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당신의 이름을 위한 백성을 모으시려고 어떻게 배려하셨는지, 시몬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15 
이는 예언자들의 말과도 일치하는데,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6 
‘그 뒤에 나는 돌아와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다시 지으리라. 그곳의 허물어진 것들을 다시 지어 그 초막을 바로 세우리라. 

17 
그리하여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다른 모든 민족들도 주님을 찾게 되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하고 이 일들을 실행하니 

18 
예로부터 알려진 일들이다.’ 

19 
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고, 

20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상에게 바쳐 더러워진 음식과 불륜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라고 해야 합니다. 

21 
사실 예로부터 각 고을에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모세의 율법을 봉독하며 선포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요한 15,9-11
오늘 복음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5월 2일
김정현 요셉 신부

 

✚ 성 아타나시오 소개 00:06

✚ 교황님 5월 기도지향 01:04

✚ 미사시작 01:19

✚ 강론시작 08:59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생중계 성당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어제에 이어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도, 유다인들의 ‘옛 계명’과 그리스도인들의 ‘새 계명’이 대조됩니다. 독서는 ‘예루살렘 공의회’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새롭게 믿게 된 이들이 더 이상 유다인들의 외적 관습을 지킬 필요가 없음을 밝힙니다.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복음은 유다인들의 옛 전통과 율법을 완성할 새로운 계명으로 ‘사랑’을 제시합니다. 인간은 율법의 준수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으로 구원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특별히 이 말씀은 지금까지의 ‘비유’(참포도나무와 가지)와 달리 갑자기 명령형이 사용되고 직접 화법으로 강조됩니다. 그리고 이때 쓰인 동사 ‘사랑하다’(‘아가파오’)는 상대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의지적 행위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구원에 이르는 길로 제시한 사랑은 상대를 위하여 ‘죽는 것’, ‘목숨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 머문다는 것’은 그저 가만히 멈춘 상태로 있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그 사랑의 본질에 다가가는 여정을 뜻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상대를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내주고 상대를 대신해서 죽을 때, 오히려 그 사랑은 온전히 살아나고 자신도 구원됩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 준 만큼 영원한 생명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실존하는 가장 큰 힘이며 신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려 주시고, 그 이유도 말씀하여 주십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잘 익은 벼로, 잘 익은 밥을!

아시다시피 초대교회는 몇 번 위기를 맞았습니다. 

ㅡ 사도행전 6장에서 음식을 분배하며 차별 문제가 발생했을 때 

ㅡ 11장에서 베드로가 할례받은 사람들과 음식을 먹은 것 때문에 유대인들이 들고일어났을 때 

ㅡ 15장에서 유대인들이 안티오키아까지 와서 할례받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가르쳐 바오로 바르나바와 갈등이 생겼을 때입니다. 

이 세 경우 모두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유대 중심적인 차별 때문에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분열의 위기에 처했던 것인데 특히 어제와 오늘 유대인들의 그리스도교와 이방인들의 그리스도교로 갈라설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을 앞두고 초대교회는 예루살렘 회의를 개최하고 현명히 대처합니다. 

요즘 우리가 시노달리따스(Synodalitas)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예루살렘 회의가 바로 이 시노달리따스의 원형인 셈이기에 이참에 저는,오늘 우리 공동체들이 어떻게 합의와 일치를 이루어갈 것인가 성찰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합의와 일치를 이루어가는 성숙한 공동체의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겸손과 자기를 내려놓는 것’ 이것을 저는 첫째로 꼽고 싶습니다. 

어렸을 때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자주 해주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 

이 말씀을 어렸을 때는 명심하며 살았는데 한동안 잊고 살았습니다. 한동안 많이 교만했다는 반증입니다. 

요즘 합의와 일치를 잘 이루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교만 때문입니다. 교만 때문에 오래 숙고하지 않고 설익은 자기주장을 내놓기 때문입니다. 

숙고(熟考)와 성숙(成熟)은 같이 가는 것이고, 그래서 숙고를 많이 할 때 성숙한 사람이 되고, 숙고할 때 성숙하게 합의와 일치를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숙(熟)’이라는 한자가 ‘익다’라는 우리말에 해당하지요. 겸손한 사람은 자기주장을 펴기 전에 숙고를 많이 하고, 거기서 내려놓을 것과 내놓을 것을 가릴 것입니다. 자기는 내려놓고 공동선을 위한 것은 내놓을 겁니다. 

두 번째로 제가 꼽고 싶은 것은 사랑과 이웃 존중입니다. 밥은 익어야 맛있고 그러기 위해서 익을 때까지 솥뚜껑을 열지 말아야 하고 뜸을 한참 들여야 합니다. 

숙고에 숙고를 거듭한 나의 익은 의견을 겸손하게 제의한 다음 그것을 받아들일 이웃의 시간을 존중하며 한참 뜸 들이는 것입니다. 

제의하는 나에게 숙고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받아들일 그에게도 숙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줄탁동시(同時) 또는 줄탁동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줄(啐)과 탁(啄)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고, 그것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깨진다는 말이지요. 

이것은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올 때 새끼가 안에서 껍질을 톡톡 쫄 때까지 기다려야지 그 이전에 어미 닭이 성급하게 껍질을 깨버리면 새끼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경우 미숙아로 나오면 인큐베이터에서 한동안 성숙을 돕지요. 

아무튼 이때 새끼가 안에서 쪼는 것을 줄(啐)이라고 하고 밖에서 어미 닭이 쪼는 것을 탁(啄)이라고 한다고 하는데 그의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나의 제의에 대한 그의 동의를 강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함부로 날 선 공격을 하지 않음은 물론 숙고 되지 않은 말도 하지 않아야 하고, 공동선을 위한 겸손한 나의 말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이웃의 시간을 기다리며 이웃의 의견을 존중할 때 공동체의 합의와 일치는 이루어짐을 깊이 생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잘 익은 벼로 잘 익은 밥을 지어야지요. 덜 익은 벼로 설익은 밥을 짓진 맙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내가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법

우리가 무언가를 지속하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기쁨입니다. 내가 기쁘면 다른 사람이 아무리 뭐라 해도 그만입니다. 어차피 행복해지자고 사는 인생, 지금의 삶이 기쁘다고 하는데 누가 뭐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신앙도 그래야 합니다. 

신자들을 보면 ‘고해성사’가 어려워서 신앙을 포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고해성사는 저도 지금까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래도 하는 이유는 그 어려움을 감수할 만한 기쁨이 기다림을 알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부활의 희망 없이는 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의 기쁨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기쁨은 결국 주님의 계명에 순종함에 있습니다. 제가 십일조를 내는 것도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인데 그 기쁨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이어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되었을 때가 있는데 바로 인정받지 못할 때였습니다. 유학 가서 성서 석사 논문을 쓰는데 많은 질책을 하는 지도교수 신부님이 좋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인정받지 못하는 것, 여기서 끝내고 더는 공부를 이어서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모두 저의 잘못인데, 저를 인정해 줄 분에게 순종하지 않고 나의 뜻을 고집했기 때문에 공부라는 것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부님도 논문 발표 때 낮은 점수를 주어 의욕을 완전히 꺾어주었습니다. 만약 주교님께서 강요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다시 유학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공부해서는 새로운 지도교수 신부님께 인정받았습니다. 이전에 실패한 것을 생각하며 무조건 순종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나의 논문이 아니라 교수님의 논문을 써 주자’라고 생각하니 모든 것을 그분 뜻대로 썼습니다. 다른 교수님들이 하라는 것도 군말 없이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들은 모두 저에게 좋은 점수를 주었고 저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한국 와서 여러 책도 자신감 있게 쓸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저를 믿어주고 책을 내라고 하신 주교님의 인정도 있었습니다. 이런 기쁨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게 합니다. 

내가 진정 내가 하는 일에서 기쁨을 찾는지는 세 가지 정도로 측정해보면 됩니다. 내가 혹시 남을 부러워하지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 가는 길은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일반 대학교 때 이휘재 씨를 부러워하였습니다. 같은 나이인 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잘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제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그다음은 내가 하는 일이나 나의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사람들에게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들의 의견에 흔들린다면 충분히 나의 일에서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도 한국에 와서 책을 냈을 때 어떤 책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책을 낸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전혀 그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또 다른 책을 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나의 길을 가려는 사람이 있다면 기쁘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갓 세례받은 청년이 사제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가 너무 착해 보여서 몇 번 이야기 했더니 마음이 동요된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생각해 보라고는 했지만,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나의 삶을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뻐야 합니다. 그래야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기쁠 방법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분께 인정받아 그분 사랑 안에 머무는 길밖에 없습니다. 내가 진정 기쁜 신앙생활을 하는지 앞에 예시된 것들로 나 자신을 되돌아봅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본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자기보다 큰 존재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어렸을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개미집을 향해 과자 부스러기를 지고 개미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이 개미를 도와주고 싶어서, 개미와 개미가 진 과자 부스러기를 함께 개미집 앞으로 이동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개미는 자기가 짊어졌던 과자 부스러기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급하게 도망갑니다. 바로 앞에 자기 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반대로만 향합니다. 가는 길을 손으로 막으면서 개미집으로 들어가게 하려고 했지만, 나중에는 제 손을 기어 올라가서 도망갔습니다. 
 
개미가 이런 저를 제대로 봤을까요?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 ‘이게 무슨 일이야?’하면서 도망친 것이 아닐까요? 
 
어린 자녀가 부모에게 아픈 말과 행동을 계속합니다. “엄마, 아빠가 내게 해준 게 뭐 있어?”라면서 습관적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이때는 부모의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너무 작은 존재이기에 부모의 큰마음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어린 자녀가 또 한 아이의 부모가 될 때 비로소 깨닫습니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셨구나.” 
 
우리는 과연 주님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요? 나의 존재가 너무 작기에 볼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가 큰 존재가 되어야 비로소 주님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존재를 키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주님 안에 머무르면서 그 안에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성장하기 위해 영양소가 될 수 있는 것들을 먹어야 합니다. 바로 주님의 말씀을 먹으면서 그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 때 우리는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장한 사람만이 그 크신 주님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큰 기쁨을 누릴 수가 있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를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다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장하기를 바라는 주님의 뜻을 잊지 않으면서, 나의 존재가 주님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먹고 자라는 우리는 영적으로 튼튼해집니다. 어떤 순간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면서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무엇을 견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견디는가 하는 것이다.

- 세네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계명이란 다름 아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가장 좋은 생명입니다. 계명은 우리를 살리는 생명을 지향합니다. 계명을 지켜야 하느님 사랑 안에 우리가 머무를 수 있습니다.

계명은 사랑의 생활입니다. 그래서 계명을 지키는 실천은 사랑의 참된 완성입니다. 생활태도와 실행의 자세는 사랑의 기본 발동입니다. 사랑이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은 계명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계명으로 우리는 고귀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 계명입니다.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가 내외적(內外的)으로 하느님께 정직하고 진실한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삶의 기본에 충실할 때 사랑의 가치를 지키고 실현할 수 있습니다. 

계율을 지키는 사랑의 삶은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합니다. 그것은 사랑의 관계이며 사랑의 가치입니다. 지키고 머물러야 우리의 악습과 악행을 태워버리는 회개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회개의 삶은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는 원만한 인격을 갖추게 합니다. 가장 좋으신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가장 좋은 날 되십시오. 지키고 머물러야 익어가는 사랑의 참된 진리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