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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4/28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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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 드러내셨네. 알렐루야.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언제나 저희 안에 파스카 성사를 이루시어 거룩한 세례로 새로 난 저희가 하느님의 도우심과 보호로 이 세상에서 믿음의 열매를 맺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얻게 하소서.

2024년 4월 28일 부활 제5주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4월 28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4월 2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5주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요한 15,7)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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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요한 15,1-8
오늘 복음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4월 28일
곽윤식 사도요한 신부

 

✚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 소개 00:22

✚ 미사시작 01:21

✚ 강론시작 17:16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생중계 성당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오늘 복음에서도 요한 복음서의 특정 문구 “나는 -이다.”가 등장합니다. 좀 특별한 점은 “너희는 -이다.”라는 문장도 함께 등장하여 ‘나’와 ‘너희’의 ‘상보성’이 강조된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만찬 이후 ‘당신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제자들에게 “너희가” 앞으로 하여야 할 일을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이 당부의 핵심은 “내 안에 머물러라.”입니다. 이 표현은 ‘열매를 맺다.’라는 표현과 함께 연결되어 ‘머무름’의 결과가 ‘열매 맺음’이라는 것까지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독서의 본문들 또한 주님 안에 머물러서 맺게 된 열매에 대하여 묘사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불신을 감수하여야 하였던 바오로는 예수님 안에 머무름으로써 그러한 의혹과 소외의 상황을 이겨 냅니다. 그 결과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설교하고”, “교회는 …… 굳건히 세워지고, …… 그 수가 늘어나게” 되는 찬란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도대체 ‘주님 안에 머문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수도자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없기에 늘 제 마음에 담고 있던 물음입니다. 주관적 판단일 수 있지만, 오늘 본문에서 그 일차적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머문다는 것은 ‘떨어져 나가지 않는 것’, 곧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시 말하여, 주님 안에 머문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일단 ‘떠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런 확신이 들지 않고, 하느님께 버려진 듯하며, 잔인하게 느껴지는 도전들이 연이어 다가온다 하여도, 그분을 떠나거나 공동체(나무)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가 먼저 할 수 있는 ‘머물기’가 아닐까 합니다. 붙어 있는 가지는 언젠가는 열매를 맺습니다. 다만 그 때와 방법을 우리가 모를 뿐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화수분 같은 주님의 사랑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부활 제5주일 주제는 이런 것일 겁니다.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라! 

주님의 계명인 사랑을 실천하라! 

그리고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면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고, 주님 사랑 안에 머묾이 없이 사랑을 실천하려 하면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오늘 해야 할 모든 얘기를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을 좀 더 풀어서 얘기하면 이런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우리 사랑은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말도 되겠습니다. 

이것은 주님 품 안에 안겨 있는 것과도 같고, 주님 사랑 안에 푹 잠겨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렇게 안겨 잠자고 나면 옛날 엄마 품에서 잠자고 난 것처럼 다시 기운이 나고, 그렇게 사랑 안에 오래 잠겨 있다가 나오면 충전된 건전지처럼 힘이 넘치겠지요? 

그렇긴 한데 우리가 엄마 품도 아니고 주님 품도 아니고, 연인의 품에 안겨 잠자고 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도 되겠습니까? 

힘을 얻을 수도 있고 뺏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오래 가지 못할 수도 있고 아무튼 주님 품보다 불완전하고 불충분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딱 보조 배터리입니다. 주님 사랑의 보조 충전기이고 보조 배터리입니다. 그리고 그나마 주님께 충전 받아야 충전해줄 수 있는 충전기이고 배터리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영원한 사랑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주님의 보조 배터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우리가 직접 주님 사랑 안에 머물고 잠겨야만 합니다. 이것이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이고, 이래야 주님 말씀대로 열매를 많이 맺는 가지가 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주님의 계명을 지키면 주님 사랑 안에 머물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주님의 계명인 사랑 실천을 잘하고 그래서 사랑의 열매를 많이 맺는 길입니다. 

우리 사랑이 열매 맺지 못함은 우리 사랑이 주님 사랑에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얼마 안 남은 우리 사랑으로 이웃 사랑을 하려고 하니 사랑하다가 그만두게 되고 사랑한다면서 사랑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사랑하다가 미워하게도 되고 분노하게도 됩니다. 한두 번 물 준 것으로 나무가 계속 싱싱하고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없습니다. 

사랑 나무와 사랑 열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떨어지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 하느님 사랑에서 물을 길어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화수분 같다고 하는데 주님 사랑만이 화수분 사랑임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기도의 시작: 네 안의 가난을 찾았는가?

오늘 복음은 ‘기도’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당신이 나무이고 우리는 가지이니 당신께 붙어 있어야 성령의 수액이 들어와서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열매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붙어 있을 필요를 못 느끼게 만드는 우리 안의 교만입니다. 

금쪽같은 내새끼, 188회에 ‘엄마의 말을 따라야 사는 위기의 13세 영재 아들’에서 초등학생 나이에 대학생 수준의 성적을 내게 만든 어머니가 나왔습니다. 아이가 갑자기 게임만 하려고 하고 엄마에게 폭력까지 쓴다고 제보한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문제는 어머니에게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지나치게 아이에게 욕심을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엄마는 자신의 엄마에게 큰딸로서 희생을 강요받아 대학에 가지 못한 설움을 자신은 아들을 잘 키우려 영재로 만들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이용당하는 것 같아서 자존감이 떨어지고 화가 납니다. 

사랑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랑은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을 때만 열립니다. 그러나 교만은 사랑을 혼자 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2018년 6월 1일, 조선일보에 ‘내겐 짐, 아들엔 힘. 전 남편을 어떡하지?’란 제목으로 실린 사연입니다. 중학생 아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자퇴하겠다며 어머니의 속을 썩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방바닥에 누워 천장만 쳐다봅니다. 아들이 초3 때 이혼하였지만 엄마의 노력으로 아들도 잘 성장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사춘기에 접어들기까지 마음속에 엄마에 대한 원망을 키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울어도 봤지만 본척만척합니다. 

혼자만의 싸움에 지칠 때면 가끔 이혼한 남편이 생각났습니다. 무책임하고 무능력하고 무관심한 가장이었지만 그런 남편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남편에게 연락합니다. 아이의 마음이 지독한 감기에 걸렸으니 아들과 자신 사이에 잠시만 서 있어 달라고 청했습니다. 남편이 집에 들어온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아이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편안함 속에 한 번 결혼에 실패했는데, 이젠 이혼에도 실패하는 게 아닌지 궁금해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랑은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을 때 맺히는 열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라는 말씀을 새겨야 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신부가 경남 산청의 나환자촌에서 봉사활동 하며 경험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한 번은 손과 발이 뭉툭해진 한 할머니를 도와드리려고 다가서는데, 그 할머니가 “베드로, 괜찮아. 안 도와줘도 돼. 먼저 네 안에 있는 가난을 찾아봐.”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신학생은 마음속으로 ‘내 안에 있는 가난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산골에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베드로는 걷기에 불편한 그분들을 위해 열심히 눈을 치웠습니다. 무언가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에 어깨가 우쭐했습니다. 그때 뒤에서 그 할머니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베드로, 수고했어!”마치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하시는 음성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 뒤로 자신이 쓸었던 눈들이 이미 햇빛으로 다 녹아있었습니다. 해가 뜨면 저절로 녹게 되어 있는 눈인데 헛수고를 한 셈입니다. 헛수고하면서도 자신이 무언가 해 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우쭐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 또한 신학교에 입학해서 주님께 무언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제가 나무가 되고 그분이 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저에게 “다 ~ ” 주고 계셨습니다. 이 깨달음에 감사하며 제가 주님께 “주님, 제가 이제 목숨까지도 주님을 위해서 바치겠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주셨던 성경 구절이 당신이 포도나무고 나는 가지이지 당신께 붙어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오늘 복임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진정한 성체조배가 시작되었고 다른 이들을 성체조배로 이끌었습니다. 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이것이 사랑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흔들리는 버스에 서서 있으면 사람들은 잡고 있을 손잡이부터 찾습니다. 이것은 창피한 일이 아닙니다. 혼자 버틸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빈곤함을 알고 기도로 주님께 붙어 있으려는 자세입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짧게라도 하루에 50번 정도 기도했다고 합니다. 마치 자신 앞을 지나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소리소리 쳤던 소경처럼 우리는 겸손해질수록 그분께 더 붙어 있을 수밖에 없어집니다. 마음의 가난을 먼저 찾읍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2022년 6월 초, 기상청에서는 곧 올 장마를 예고했습니다. 이번 장마는 7월이 아닌 6월에 시작할 것이라면서 이른 장마로 큰 피해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예고에 농가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예정보다 이른 시기에 작물을 수확해야 했습니다. ‘혹시’라는 마음에 버티다가 정말로 비가 와 버리면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기에 가치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서둘러 수확하는 쪽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6월 장마 예고는 어긋났습니다. 비가 조금 오기는 했지만, 장마 수준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이에 수확을 미리 앞당겼던 농부들은 큰 피해를 봤다면서 항의했습니다. 기상청 예보는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이 과잉 예보가 훨씬 낫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가 온다고 했다가 오지 않으면 경제적 피해를 보는 데서 그치겠지만, 비가 오지 않는다고 했다가 퍼부으면 준비하지 않아서 재산 피해뿐 아니라 인명 피해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상청은 비가 올지 안 올지 모를 때는 비가 온다고 예고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준비는 중요합니다. 더 큰 피해를 막는 데 꼭 필요합니다. 
 
세상은 이렇게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준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들은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까요? ‘과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준비는 잘하고 있는가?’라는 준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지금 상태가 계속될 것이라는 안일한 마음을 가지고서는 큰 후회를 남기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계속해서 ‘늘 깨어 있어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라면서 포도나무의 비유 말씀을 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는 그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라고 하시지요. 이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영원한 생명이라는 결정적인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가지는 포도나무와 언제 붙어 있어야 할까요? 내가 어렵고 힘들 때만 붙어 있으면 될까요? 아니면 기분 좋을 때만 붙고, 그렇지 않으면 떨어져 있어도 될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만 살 수 있고, 붙어 있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께 붙어 있는 것은 여유가 있고 마음이 평안할 때가 아닙니다. 또 어렵고 힘들어서 부탁할 때만 붙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붙어 있어야 할까요? 
 
단 한 순간도 떨어져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확실한 준비가 됩니다. 따라서 매 순간 주님과 붙어 있으면서 주님의 뜻을 세상에 실천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바로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익혀 바로 알게 할 것이다.

- 신채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머무름의 은총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머무름의 지혜입니다. 우리를 머무름으로 끌어당기시고 머무름으로 우리의 오늘을 받쳐줍니다. 머무름의 목적은 머무름에 있습니다. 

머무름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온전한 머무름으로 온전한 열매가 맺어집니다. 열매가 열리고 열매가 자라나는 모든 시간이 머무름의 시간입니다. 머무름 안에는 말씀이 있고 십자가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머무름으로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머무름이 믿음이고 머무름이 사랑입니다. 머무름으로 다시 태어나고 머무름으로 자라납니다. 결코 떠날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 머무름입니다. 입구와 출구가 되는 머무름입니다. 머무름의 숨결이 제대로된 머무름의 본질입니다. 

참된 머무름에는 떠남과 배신이 없습니다. 사랑을 완성하는 머무름은 깊어만갑니다. 머무름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오직 머무름만 있을 뿐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관계는 열매를 맺는 머무름의 관계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가장 좋은 주일입니다. 주님께 머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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