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알렐루야.
하느님, 복된 마르코 복음사가를 뽑으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으니 저희도 그의 가르침으로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2024년 4월 25일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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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1베드 5,5ㄴ-14)
나의 아들 마르코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 오늘 복음
(마르 16,15-20ㄴ)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 오늘 말씀 카드
(1베드 5,7)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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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라.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시다.
마르 16,15-20ㄴ
오늘 복음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19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20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4월 25일
태철민 엘제아리오 신부
✚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소개 00:06
✚ 미사시작 01:13
✚ 강론시작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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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본디 마르코 복음서는 16장 8절로 끝나지만 오늘 복음이 포함된 9절에서 20절은 부활과 승천, 복음 선포의 사명을 강조하고자 후대에 덧붙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라는 사명과 함께, 이를 구현하고자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셨다.”라고 합니다.
“너희”라는 주어와 “주님”이라는 주어가 상응하면서, 복음 선포가 우리 몫이라면 그 뒤 여정은 하느님께서 몸소 완성하심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독서는 복음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과 과정을 알려 줍니다. “여러분은”이라는 표현으로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제시하고, “그분께서”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하느님께서 하시려는 일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 ……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 ……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 …… ‘그분께서’ 몸소 여러분을 …… 굳건히 세워 주실 것입니다.”
복음 선포는 말이나 설득 또는 강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의 일상을 증언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먼저 우리는 오늘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 ……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 ……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독서).
그러면 하느님께서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실 것입니다”(복음). 복음화를 완성하는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영적 성장은 멈출 수 없다.
베드로 사도는 오늘 축일로 지내는 마르코 복음사가를 ‘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선택된 바빌론 교회와 나의 아들 마르코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이것으로 봐 둘 사이는 영적 부자 관계였던 것 같은데 둘 사이에는 인간적으로도 나이 차이가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마르코가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 마르코는 어렸거나 젊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2장 12절을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베드로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
사도행전 12장은 베드로가 헤로데에 의해 감옥에 갇혔다가 신자들의 기도 덕분에 기적적으로 풀려나는 얘기이고 여기서 베드로는 풀려나자마자 곧바로 마르코의 어머니 집으로 갔던 것입니다. 마르코의 어머니 집은 신자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에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저는 이와 똑같은 경험을 한 바 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제가 아들처럼 돌봤던 중국 신학생이 신부가 되어 사목하던 곳을 제가 방문하러 갔는데 마침 그때 그 신부가 베드로처럼 공안에 잡혀갔고, 그래서 저와 신자들은 베드로가 감옥에 있을 때 마르코 어머니 집에 모여서 기도했던 사도행전의 신자들처럼 모여서 기도하였는데 그날 밤에 그 신부가 감격적으로 그리고 기적적으로 풀려나 얼싸안고 기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르코도 어렸을 때 이렇게 베드로를 만났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 때문에 같이 고초를 겪고, 하느님 덕분에 기적적으로 풀려나는 기쁨을 같이 나눕니다.
우리말에 동고동락이라는 말이 있고 누가 누구와 동고동락했다면 이는 둘 사이가 매우 깊은 관계임을 뜻하는데 베드로와 마르코는 세속적 동고동락이 아니라 영적인 동고동락을 나눈 사이이고 그래서 영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이때의 마르코는 영적으로 그리 성숙한 상태는 아니었을 겁니다. 이렇게 베드로 사도와 만났지만 베드로 사도는 홀연히 떠나고 어제도 읽은 사도행전 12장 24절을 보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바르나바와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사명을 수행 한 다음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을 데리고 돌아갔다.”
그러니까 마르코는 사울과 바르나바의 1차 선교의 동반자가 된 것이고, 그래서 우리 교회의 두 기둥인 베드로와 바오로를 모두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13장을 보면 무슨 이유인지 마르코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5장을 보면 마르코의 동반을 놓고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다투고 그래서 바오로의 2차 선교 여행부터는 둘이 갈라서는 빌미가 됩니다.
“바르나바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도 같이 데려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바오로는 자기들을 버리고 떠난 사람을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감정이 격해져서 서로 갈라졌다.”
이런 것을 보면 영적으로 성장해가는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대 성인으로 여기는 이들도 인간적으로 싸우고 갈라지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 또한 도전도 됩니다. 아무리 인간적으로 미성숙하고 그래서 싸우고 갈라질지라도 영적 성장의 여정을 멈추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느님께로 가는 나의 여정이 멈추어서는 안 되고, 복음 선포의 사명이 멈춰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마르코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주님의 복음을 기록하고 전하는 사도가 되고 복음사가가 되는데 우리도 이런 마르코에게서 위안과 도전도 받으면서 영적 성장을 해가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더 좋은 꿈을 구별하는 법
내가 살고 앞으로 살 세상을 결정하는 것은 나의 ‘꿈’입니다. 이 세상에 산다고 같은 세상에 사는 게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천국에, 어떤 사람은 감옥에 삽니다. 세 번의 올스타, 여섯 번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텍사스 레인저스의 짐 선버그가 어느 날 감옥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너는 훌륭한 메이저리거가 될 거야!”라고 하셔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한 죄수가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너는 감옥에 갈 거야!’라고 해서 그 꿈을 이뤄드렸어요.”라고 했습니다.
꿈은 나를 무생물로도, 생물이나 동물로도, 인간이나 하느님처럼 만들기도 합니다. 어떤 자해하던 군인은 자해하면 할 일이 있어 살아있음을 느끼지만, 그렇지 않으면 우주 공간에 붕 떠 있는 먼지처럼 느껴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일이 다 나를 더 높은 행복이나 생명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연예인들은 돈이나 명예만 좇다가 결국 파경에 이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요? 나를 하느님 나라로 이끄는 꿈은 하느님 나라의 지원을 받습니다.
단편 영화 ‘요나’(Jonah)가 있습니다. 움부나와는 사진기를 훔쳐 아름다운 자신들의 마을을 홍보하여 더 큰 휴양지로 만드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의 친구 주마가 음부나와를 촬영하는 그 순간 거대한 물고기가 물 위로 솟아올랐습니다. 음부나와는 이 사진으로 일약 스타가 되었고 물고기를 보러 관광객이 넘쳐났습니다.
움부나와는 돈과 향락에 물들어갔고 물고기는 그 이후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친구는 떠났고 음부나와는 노인이 되었습니다. 마을은 오염되었고 관광객이 더는 찾지 않는 곳이 되었습니다. 외롭게 바닷가를 바라보던 노인 움부나와에게 그 큰 물고기가 보였습니다. 그는 물고기를 잡아 자기를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물고기와 싸우다 이번엔 물고기에게 먹혀 생을 마감합니다.
물고기는 음부나와의 꿈을 이뤄주었습니다. 그러나 더는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그럴 능력이 없고 그렇게 할 의무도 없습니다. 어떤 아이가 늑대나 원숭이처럼 되고 싶다고 한다면 많은 지원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되고 싶다면 많은 지원이 필요합니다. 저의 대학 친구는 아이 하나인데도 유학을 보내어 매년 1억씩 보내야 한다고 합니다.
더 높은 곳에 살려면 더 높은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더 높은 지원이 옵니다. 이것이 법칙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어떤 약속을 주십니까?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며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라고 약속하빈다.
저도 사제로 살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 많은 표징들을 보며 삽니다. 그 표징들을 보며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느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뇌종양이 있는 아기의 머리에 입을 맞추었을 때 그 종양이 싹 사라졌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이러한 표징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를 끌어내리는 꿈은 그것을 준 놈이 지원해 줄 수 없습니다. 능력도 없고 사랑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 높은 꿈을 꿉시다. 더 큰 지원이 오는 꿈을 꿉시다. 그러면 더 완전하고 사랑 가득하고 영원한 능력의 나라에서 이 지상에서부터 살게 될 것입니다. 그 꿈이란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우리 삶을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었을 때, 이제 막 후반기를 맞이했거나 곧 맞이한 사람들, 그리고 이미 후반기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기를 바랄까요? 그들 대부분 이렇게 대답한다고 합니다.
첫째, 인생 후반기에는 전반기와는 다르게 살고 싶다.
둘째, 이제 나답게 살고 싶다.
셋째,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인생 전반기에는 주로 사회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 얻고 싶은 것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 후반기에는 온전히 나 자신에 집중하면서 삶을 생생하게 느끼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인생 후반기를 살고 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이제까지 많은 것을 하고 또 많은 것을 얻으려고 했다면, 이제 내려놓으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얼마 전, 작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문상을 다녀왔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친척들을 만났는데, 그 중 한 분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너도 황창연 신부님처럼 큰 신부가 되어야지.”
그 친척은 아마 유명한 신부를 큰 신부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저도 그런 신부가 되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강의 잘하고 이를 통해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데 온 힘을 쏟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또 글이 아닌 몸으로 주님을 알려야 함을 묵상합니다. 특히 나보다 주님을 드러내는 것, 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는 삶이고 가치 있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성인께서는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릅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마르코 복음서’를 기술하시지요. 2,000년 동안 읽히는 성경을 기술할 정도로 그의 지식은 뛰어났습니다. 그 뛰어남을 살려서 자기 이름을 더 알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 알려야 할 것은 주님뿐이었고, 주님의 기쁜 소식뿐이었습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 역시 생각해야 할 부분입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알리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많은 이가 자기만을 알리려고 하고, 자기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데 온 힘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통해 만족을 얻었을까요? 의미 있는 삶을 쫓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바로 주님을 드러내는 것이고 주님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함으로 인해 모두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금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디에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큰 사람인지 작은 사람인지가 결정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세상 일엔 언제나 양면이 있다. 강함과 약함은 늘 함께 붙어 다닌다.
- 송혜진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복음을 위해 내딛는 우리의 한 걸음이 바로 믿음이며 복음입니다. 헤매이는 우리를 예수님께로 바르게 안내하는 것이 기쁨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실천을 잊지않고 기억하는 것이 오늘의 복음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복음을 마르코 복음사가는 짧고 간결하게 선포합니다.
복음으로 살게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복음의 기쁨은 실천하는 기쁨이며 실천함으로써 이웃들에게 기쁨을 주는 기쁨의 환희입니다. 복음이 필요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쁨이 복음사가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우리의 슬픔이 기쁨으로 바뀝니다. 부질없는 것들을 내려놓게 하는 복음입니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귀한 만남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들여다보는 기쁨을 우리는 체험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는 복음을 살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복음은 거짓을 무너뜨리듯 보편을 지향하며 복음을 실천합니다.
한 번도 복음이 되어 본 적이 없는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우리자신이 복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실천하며 복음이 되는 복음의 여정을 오늘도 우리는 걸어갑니다. 생활이 복음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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