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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4/16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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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이든 높은 이든 하느님을 경외하는 모든 이들아, 우리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그리스도의 권세와 권능과 구원이 나타났다. 알렐루야.

하느님,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난 하느님의 종들에게 하늘 나라의 문을 열어 주셨으니 세례의 은총이 그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어 그들이 모든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2024년 4월 16일 부활 제3주간 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4월 16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4월 1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3주간 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7,51─8,1ㄱ)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 오늘 복음
    (요한 6,30-35)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 오늘 말씀 카드
    (사도 7,59)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사도 7,59)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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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으리라.

 

 

요한 6,30-35
오늘 복음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그때에 군중이 예수님께 

30
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31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33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34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4월 16일
조윤호 윤호요셉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07:27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생중계 성당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생명의 빵

오늘 복음과 독서는 어제 본문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고도 군중은 또 다시 표징을 요구합니다.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표징 요구하기’를 되풀이하는 것일까요? 이 끝나지도 않을 요구에 예수님께서 모세에게 비교되십니다. 모세가 표징을 일으켜 만나를 주었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러한 표징을 보여 주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는 군중이 아직 예수님의 신원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모세와 비교되실 분이 아닌,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자신의 관계를 다시 설명하여 주십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 내 아버지시다. …… 하느님의 빵은 ……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요한 복음서는 이 선언을 위하여 다른 공관 복음서들과 차별화된 전개를 선택합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결정적 표징으로 제시하고 마무리하는 공관 복음서들과 달리, 요한 복음서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다음으로 생명의 빵에 대한 긴 담화를 수록하고, 이를 통하여 점진적으로 주제를 심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빵을 많게 하신 표징을 보여 주시고, 다음에는 썩지 않을 양식을 찾으라고 가르쳐 주시며, 이어서 “내가 생명의 빵이다.”라고 선언하시는 것까지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결코’라는 부사가 두 번 되풀이됩니다. 결코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은 그저 막연한 위로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체험될 약속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살아 있는 체험이 있어야 우리 신앙은 비로소 “생명의 빵”으로 힘을 얻는 참생명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영의 식별

스테파노에게 분노를 터트리고 있는 적대자들에게 스테파노는 이렇게 일갈합니다.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먼저 목이 뻣뻣하다고 하는데 어떤 뜻입니까? 우리말에는 목에 힘을 준다는 말이 있는데 목이 뻣뻣해서 숙일 줄 모르고 겸손할 줄 모른다는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숙이고 들어간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숙일 줄 알아야 큰 사람인데 그러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럽니까? 한 번도 숙인 적이 없는 사람, 그러니까 숙이는 것은 지는 것이고 죽는 것인 줄로만 아는 사람, 그래서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죽는 것이 사는 것임을 모르는 사람 그래서 한 번도 숙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머리를 숙일 줄 모르는 교만의 한 측면이라면 조금 다른 측면의 머리를 숙일 줄 모름도 있습니다. 

한 번도 잘못했다고 머리를 숙인 적이 없는 것입니다. 아니 그보다 더 자신은 아예 잘못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잘못이 없기에 자기와 다른 사람은 늘 잘못이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단죄하는 데 늘 거침이 없습니다. 오늘도 천사처럼 보이는 스테파노를 거침없이 단죄합니다. 

다음으로 그들이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않았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제 생각에 할례는 구약의 세례이고, 세례는 신약의 할례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마음과 귀가 주님 자녀의 마음과 귀로 새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럴 겁니다. 새로움을 받아들일 마음과 귀가 되어있지 않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로 새 시대가 열렸는데도 여전히 새 술을 옛 부대 또는 헌 부대에 담으려는 것입니다. 

이어서 그들이 줄곧 성령을 거역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성령을 거역했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앞에서 얘기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성령께서는 불고 싶은 데로 부는 분이라고 요한복음의 주님은 말씀하셨지요. 

그렇긴 하지만 문이 닫혀 있으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지요. 이때의 거역은 그래서 성령의 강림을 거부하는 것이 되겠지요. 

다음은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끄시는 분인데 그 이끄시는 대로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왜 거부할까요? 그리고 우리가 거역한다면 왜 거역할까요? 

우리의 경우 그것이 성령의 이끄심인 줄 안다면 알면서도 거부하거나 거역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제 베드로 사도가 백성들에게 말했듯이 무지(無知), 곧 성령에 대한 무지 때문일 겁니다. 

성령 무지. 

이렇게 얘기해도 될지 모르지만 성령 무지가 우리에게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어제 저는 의식 성찰에 관해 말씀드렸는데 오늘은 성령 무지와 영의 식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인도에서 기도를 배우는 한 수련자가 스승에게 달려와 외쳤습니다. 
 
“스승님! 제가 드디어 물 위를 걸어 갠지스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온 것입니다.” 
 
그러자 스승이 “그래, 몇 년이나 수련했나?”라고 물었고, 제자는 18년이 걸렸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스승은 이상한 질문을 합니다. 
 
“갠지스 강을 건너는 뱃삯이 얼마인가?” 
 
제자는 이 질문에 18루피(한화 300원) 정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네는 18년 동안 18루피를 벌었군.” 
 
물 위를 걷게 해 달라는 기도는 과연 필요한 기도였을까요? 배를 타고 가면 그만이니 필요한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자기만족만을 위한 기도였던 것입니다. 어쩌면 자기 성취를 위한 기도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요? 그러나 많은 이가 자기 성취에 도달해야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착각합니다. 
 
자기 기도를 세상 기준에 맞춰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보다 하느님 기준에 맞출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 사랑하는 아들까지 내어주셨던 하느님의 사랑에 기준을 둘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기준에 맞추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절망도 또 좌절도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순간만 바라보면서 진리를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진짜 행복의 길이 아닐까요? 
 
군중이 예수님께서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청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기들의 성취, 자기들의 만족을 위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진정한 행복의 길로 이끌어 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청하기만 할 것입니다. 삶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뜻을 보려 하지 않고, 자기만족을 채워야 진정한 하느님이라면서 엉뚱한 곳에서만 하느님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온갖 불평과 원망 속에서 스스로 포기하고 좌절에 빠지게 됩니다. 실제로 과거 광야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하느님의 뜻을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40년이나 걸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생명의 빵이다.”라고 하시면서, 오로지 하느님께 기준을 맞추는 삶을 살 것을 명하십니다. 그래야 결코 배고프지 않고, 결코 목마르지 않습니다.

 

오늘의 명언

주거지를 선택할 때는 그 마을 사람의 따뜻한 인정이 있는지를 봐야 한다.

- 공자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다.

꽃잎을 다 떨구어도 여전히 꽃나무로 존재하는 신비입니다. 배고픔을 채워주어야 생명의 빵입니다. 받아들여야 할 생명의 빵입니다. 생명의 방향은 생명의 빵이 되는 소중한 생명의 삶입니다. 생명의 삶은 생명의 나눔으로 풍요롭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 위에 생명의 빵이 있습니다. 끊어진 길을 이어주는 생명의 빵입니다. 생명의 빵을 벗어난 삶은 하느님을 벗어나는 우리의 교만입니다. 교만의 반대방향에 생명의 빵이 있습니다. 생명의 빵을 먹으며 알게 되는 하느님의 구체적인 사랑입니다. 

생명의 빵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삶을 좌우하는 생명의 빵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생명의 빵이 되어 오시는 예수님께 방향을 틀어 아멘이라 응답합니다. 그 어떤 것도 생명의 빵을 이기지 못합니다. 생명의 빵에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생명의 빵에서 생명의 문(門)이 활짝 열립니다. 영원히 남는 것은 언제나 생명의 빵입니다. 생명의 빵으로 눈에 보이지 않던 하느님 나라를 우리가 보게됩니다. 생명의 빵은 하느님 나라와 다르지 않습니다. 생명으로 나가는 생명의 빵을 받아모시는 생명의 기쁨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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