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주님은 당신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에서 저희를 속량하시어, 하느님을 위하여 한 나라를 이루고 사제가 되게 하셨나이다. 알렐루야.
하느님, 성실한 사람들의 희망과 빛이시오니 간절히 비는 저희를 굽어보시어 맞갖은 기도와 찬미의 제사로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2024년 4월 12일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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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5,34-42)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물러 나왔다. - 오늘 복음
(요한 6,1-15)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 오늘 말씀 카드
(요한 6,11)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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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요한 6,1-15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2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4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5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7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8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9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4월 12일
최영준 베르나르디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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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하느님의 일
가말리엘은 당대 최고의 학자였습니다. 실제로 유다 라삐들의 문헌에서도 그는 당시 학파의 중심인물로 거론되고 있고, 바오로도 그에게서 공부한 것을 자랑스러워할 만큼(사도 22,3 참조) 뛰어난 학자였습니다. 그런 가말리엘이 경고합니다.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이 표현에서 그는 사람의 일과 하느님의 일을 구분합니다. 도대체 평범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이 그 답을 알려 줍니다.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는 군중이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 많은 군중이 먹을 것을 어디에서 구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등장합니다. 누가 보아도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는 안드레아의 반문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연약하고 터무니없이 작은 것들, 그래서 남들에게 쉽게 무시당하고 간과되는 것들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작은 것에서 시작하시어 거대한 결과를 이루시는 것, 그것이 하느님의 일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독서에서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라고 합니다.
모욕당하고 이해받지 못하지만 묵묵히 일하는 것이 예수님의 방식이었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비로소 자신들도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과 그 방법에 가까워졌음을 깨닫고 기뻐합니다.
무시와 경멸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리 소모적인 체험만은 아닙니다. 작고 보잘것없으며 쉽게 무시되는 것들로써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하시고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내가 아니어도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가말리엘은 사도들의 일을 그냥 내버려 두자고 합니다. 하지 말라는 데도 베드로와 사도들은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복음을 선포하고, 많은 이들이 사도들을 따르자 이를 어떻게 할지 지도자들이 골머리를 앓는 상황에서 현명하고 존경받는 율법 학자 가말리엘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버려 둔다는 것은 어떻게 되건 상관하지 않겠다는 한편으로는 방치의 의미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포기의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에 자식을 내버려 둔다면 그것은 자식을 사랑하고 존중함이 아니라 자식에 대한 사랑이 없거나 포기한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자식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라고 충고해도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내버려 두는 것이 사랑의 포기가 아닌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살짝 말을 바꿉니다.
내려놓으시라고.
이렇게 되면 자식을 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집착을 내려놓고, 나의 걱정을 내려놓고, 나의 요구를 내려놓고, 나의 고집을 내려놓고, 내 식(式) 대로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제 자식은 부모의 자식이 아닙니다. 자식의 인생은 자식이 살아가는 겁니다. 내가 어떻게 하려고 붙잡고 있지 않은 겁니다.
Let them go.
그렇게 자식은 자식의 길을 가게 하는 겁니다. 이것이 현명한 인간의 길이라면 신앙의 길도 있습니다. 하느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나의 손에서 내려놓고 하느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어떻게든 하시게 하는 겁니다. 보잘것없는 나의 사랑과 능력으로 뭘 어떻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사랑하시고 더 능력이 있는 하느님께서 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보다 더 내 자식을 사랑하시는데 왜 내가 그렇게 걱정합니까? 하느님 자식인데 왜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왜 그렇게 내어놓지 못합니까?
하느님 사랑과 능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거나 하느님의 것을 내 것으로 소유하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많은 일도 그렇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붙잡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내가 아니어도 할 사람이 많을 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계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 세례의 상징이라고?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는 대그룹 장가 아들을 참교육하다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아버지까지 죽게 된 박새로이가 3년간의 감옥생활에서 아버지의 꿈을 이룰 15년 목표를 세우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아버지의 꿈은 작은 가게 하나 갖는 것이었습니다. 박새로이는 장가 그룹을 파괴하고 자신에게 오히려 무릎 꿇게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도 마음의 문을 열어서 동료들을 받아들이고 자기를 위해 헌신한 한 사람을 사랑하게까지 됩니다.
이 드라마는 복수의 이름으로 박새로이의 성장을 그리고 있습니다. 자아를 복종시키는 가장 완전한 방법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란 결론입니다. 그리고 그 불가능에 도전하게 만드는 힘은 누군가의 죽음입니다. 아버지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박새로이는 대기업을 무너뜨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면 이전의 객기만 있던 청소년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계속 무너지는 것만으로는 자존심만 강해질 뿐입니다. 자존심은 성장하며 자존감으로 바뀝니다.
우리 인생은 이 성장의 시험대에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5천 명의 사람들이 먹지 못하고 배고파하는 것을 보시며 필립보를 시험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시험하는 것일까요?
“나는 하느님이다. 그런데 널 위해 죽을 거야. 그러면 넌 나와 함께 무엇을 할 수 있겠니?”
그러나 제자들은 시험에 통과하지 못합니다. 그들을 먹일 수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위해 돌아가셨다고 믿어도 그럴까요? 그분은 우리에게 다 주신 분이십니다. 이것을 믿으면 이제 이러한 사람이 됩니다.
켈커타의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그곳에 큰 보육원을 짓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때 많은 기자가 물었습니다.
“보육원 건축기금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습니까?”
데레사 수녀님이 대답했습니다.
“지금 준비된 기금은 3실링뿐입니다.”
그러면서 테레사 수녀님은 책상 위에 실제로 동전 세 닢을 꺼내놓았습니다. 그러자 기자들은 웃었습니다. 그러나 테레사 수녀의 표정과 말은 진지했습니다.
“이 3실링과 나로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3실링이 하느님의 것이 될 때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성녀는 3실링으로 고아원과 병원 등을 전 세계에 수백 개 지었습니다.
무언가를 이뤄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거기에서 벌어지는 나의 성장이 중요합니다. 그것 아니면 이기지 못할 자아와의 싸움이 중요합니다. 참 자유는 주님과 함께 꿈을 이뤄나가는 데서 얻어집니다.
얼마 전에 『더 높은 기도』 책 홍보 행사를 했습니다. 북콘서트라고도 하고 출판기념회라고도 합니다. 많은 분이 오셔서 그 짧은 시간에 1,300권의 책을 사 주셨습니다. 저는 행사의 모든 과정을 기획하고 홍보하고 주인공 역할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유튜브 생방송을 하는 중에 노래도 세 곡씩이나 했습니다. 그러면서 느꼈습니다.
‘많이 성장했구나!’
잘났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실 긴장도 했습니다. 아침에 고춧가루를 팍팍 넣고 끓여 먹은 라면 때문인지 속이 쓰려왔습니다. ‘내가 왜 이런 것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친구들 앞에서도 노래를 못 하던 저였습니다. 자아가 강했기에 실수하는 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봉사자분들과 함께 세 시간 동안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했습니다. 노래를 잘하지 못해도 그냥 했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은 어렸을 때는 상상도 못 할 모습입니다. 그러며 주님과 함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겠다는 꿈이 저의 자아를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감이 ‘세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세례는 삶의 의미와 목적이 있음을 인정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당신과 함께 배고픈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꿈속에서 살 것인지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례의 결단이 있은 다음의 삶은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되어가는 삶으로 완전히 바뀝니다. 주님과 함께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십시오. 진짜 성공은 그 과정에서 내가 죽고 그리스도와 닮아가는 나의 성장과 자유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1코린 12장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라고 바오로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이를 통해, 개인적으로 주어지는 모든 은사는 우선 공동체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영적 체험을 했을 때, ‘공동체를 위해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시는가?’라는 질문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어떤 자매님께서 자신의 신앙 체험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아주 신비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이고 공동체성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만나는 사람에게 모두 알리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공동체성보다는 자기를 알리려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았습니다. 즉, 자신은 이렇게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놀라운 일이고 신비로운 일이지만, 이렇게 개인적인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병이 낫고, 마귀를 쫓아내고,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나는 것 등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이미 요나의 기적보다 더 큰 표징은 없다고 말씀하셨듯이, 우리 마음의 변화 이상 큰 표징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관점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만을 믿으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교만에 빠지게 되고, 마귀의 유혹을 받는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신비는 모두 우리 공동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공동체를 깨뜨리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다면, 하느님 신비에 반대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앙의 기준을 따져야 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공동체성’입니다.
예수님께서 빵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통해서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습니다. 어떻습니까? 정말로 놀라운 기적이고 신비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이 기적만으로도 충분히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가 분명하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런 움직임에 예수님의 반응은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십니다. 그들이 당신이 보여주신 빵의 기적에서 의미하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공동체를 위해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 모두를 위해 내려질 때가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늘 공동체를 강조하셨고, 공동체 안에서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공동체보다는 나만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데 집중했던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오히려 마귀의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당신에게 있다.
- 다윈 킹슬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우리의 배고픔과 참된 만남에 허기진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이십니다. 사람들이 먹을 빵은 우리를 살리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나눔의 방식이 사랑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들이 먹을 오늘의 빵을 우리들의 나눔으로 나누어 주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나눌수록 늘어나는 나눔의 빵입니다.
나눔의 역사가 바로 구원의 역사입니다. 나눔의 빵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나눔이 아니라고 여긴 것까지 나눔이 되게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먼저 살아있는 빵 살아있는 말씀 살아있는 나눔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자리잡은 여기에서 실현되게 하시는 나눔의 기쁨입니다.
나눔과 함께 자라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빵같은 마음이며 밥같은 삶입니다. 새로운 생활은 버려지는 것 없는 나눔의 생활입니다. 나눔의 빵으로 우리모두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감사로이 오늘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빵은 우리가 잃어버린 나눔입니다.
나눔은 돈으로 사고 파는 것이 아닙니다. 나눔이 자리를 잡는 거기에 우리의 마음이 있고 우리의 사랑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요한 6, 10) 구원의 길은 다름 아닌 나눔의 빵입니다. 빵이 되어 오시는 예수님에게서 사랑을 배우고 삶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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