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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4/14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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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아,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그 이름, 그 영광을 노래하여라. 영광과 찬양을 드려라. 알렐루야.

하느님, 이 백성이 영혼의 젊음을 되찾아 끊임없이 즐거워하게 하시니 저희가 이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기쁨을 누리고 영광스러운 부활의 날을 바라며 기다리게 하소서.

2024년 4월 14일 부활 제3주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4월 14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4월 1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3주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3,13-15.17-19)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 제 2독서
    (1요한 2,1-5ㄱ)
    그리스도는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 오늘 복음
    (루카 24,35-48)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 오늘 말씀 카드
    (루카 24,32 참조)
    저희에게 말씀하실 때 저희 마음이 타오르게 하소서.

 

저희에게 말씀하실 때 저희 마음이 타오르게 하소서. (루카 24,32 참조)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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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 예수님, 저희에게 성경을 풀이해 주소서. 저희에게 말씀하실 때 저희 마음이 타오르게 하소서.

 

 

루카 24,35-48
오늘 복음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 무렵 예수님의 제자들은 

35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36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7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3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3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4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41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42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43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4월 14일
박명근 클레멘스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15:31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생중계 성당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서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승천 이야기 바로 앞에 등장합니다. 사실 오늘 복음과 제1독서의 본문은 이미 부활 팔일 축제 기간에 읽었는데, 오늘 다시 읽는 이유는 승천을 준비하며 강조되는 내용, 곧 ‘증언’이 이야기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라신 것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증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루카는 자신의 책 1부에 해당하는 복음서를 ‘증인이 될 것’에 대한 촉구로 마무리하고(48절), 2부인 사도행전은 그 증인들의 ‘증언’으로 시작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사도행전의 첫 기적 이야기로서, 베드로가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사람”(3,2)을 고쳐 준 뒤,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라고 선언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수난을 겪으시고 돌아가셨으며 부활하신(케리그마) 예수님을 선포하고 이를 증언하는 것이 사도들의 임무임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제2독서에도 그리스도에 대한 ‘앎’이 세 번 되풀이되는데, 이러한 앎이야말로 그분을 ‘우리 죄를 변호하여 주시는 분’, ‘속죄 제물이 되신 분’으로 증언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증인이 되어 주기를 당부하십니다. 그분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사람들이 알게 하는 것, 함께 나누었던 빛나는 기억을 전하는 것, 수난과 죽음마저 받아들이신 사랑을 증언하는 것, 사도들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이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촉구하시는 일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부활의 증인이 되기까지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라고 하시고, 오늘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은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신 대로 사도들이 그 증인이 된 것인데 잘 아시다시피 사도들이 증인이 될 자격이 처음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과정을 거쳐서 증인인 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은 증인이 되기엔 어림없는 겁쟁이이고 의심쟁이입니다. 증인이 되려면 두려움이 없어야 하는데 주님이 나타나셨을 때 그들은 너무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 착각을 합니다. 

자라 보고 놀란 사람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것처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어서 주님조차도 유령으로 보는 겁니다. 

증인이 되려면 또한 한 점 의혹이 없어야 하는데 주님께서는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라고 꾸짖으십니다. 

이런 그들을 위해서 주님께서는 갖은 애를 쓰십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라고 당신의 평화를 빌어주십니다. 의혹에서 벗어나라고 구운 고기를 그들 앞에서 드시고,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런데 어땠습니까? 이 노력이 즉시 사도들에게 통했을까요? 두려움에서 벗어나 사도들이 즉시 문을 열고 증언하러 나갔던가요? 일거에 모든 것을 다 깨닫고 주님 부활을 완전히 믿게 되었던가요? 

오늘 복음을 보면 주님께서 한 자리에서 그리고 말씀 한마디로 깨닫게 하신 것처럼 보이지만 무릇 모든 깨달음은 인생의 여러 과정을 거쳐 얻게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욕심에 눈이 멀어 죄를 지었음을 깨닫고, 교만 때문에 자신을 과신하고 어리석었음을 깨닫고, 그래서 지금까지 바보처럼 살았고, 잘못 살았고, 헛똑똑이로 살았음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깨닫게 하는 것은 그렇게 한 것이 실패로 끝났을 때입니다. 욕망과 욕심이 좌절되고 불행해진 뒤에 좌절감과 허무감이 덮칠 때입니다. 

교만 때문에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 다 안다고 착각하다가 큰코다친 다음입니다. 자기 한계를 모르고 내 힘으로 승리하고 성공하려다가 패배하고 실패한 다음입니다 

이런 다음에야 진리와 진실을 깨닫게 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게 되는데, 이런 다음 결정적으로 깨닫게 하는 것은 역시 성령이십니다. 

요한복음의 주님께서는 당신이 아버지께로 가신 다음 성령을 보내주실 텐데 성령께서 제자들을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모든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일리(一理)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주장을 우리가 긍정해줄 때도 ‘네 말에도 일리가 있다.’라고 얘기해주는데 이 말은 네 말은 ‘말도 안 돼’ 보다는 긍정해주는 것이지만 실은 네 진리는 모든 진리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것인데 우리는 종종 하나를 아는 것일 뿐인데 마치 모든 진리를 알고 있는 양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려면 이런 교만의 착각이 깨진 다음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모든 진리이신 주님 안으로 이끄셔야 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성령을 받고 먼저 깨달은 사도들이 이제 증인이 되어 우매한 군중에게 증언을 합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무지를 아는 것,
무지를 깨는 것,
진리를 아는 것, 
진리를 증언하는 것, 

이것이 깨달음의 과정이요 완성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물론 이것뿐 아닙니다. 하느님의 계명 곧 사랑을 실천하게 합니다. 그래서 요한의 서간은 아주 중요한 결론을 내립니다. 

“나는 그분을 안다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하느님 사랑을 완성하는 것이 깨달음의 완성이요 증언의 완성임을 깨닫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나에게 새겨진 부활의 증거 : 사명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좀처럼 당신을 믿지 못하는 사도들에게 여러 방법으로 당신의 실제 부활을 증명해내십니다. 부활을 믿는 사도들은 행복합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도록 그들을 파견하십니다. 이는 ‘사명’이란 것이 예수님의 부활과 별개가 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꿈이나 목적, 사명이 없이 살 수 있을까요? 사명이 없으면 생존이 목적이 되고 그러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결국 인생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명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빅터 프랭클도 지옥과 같은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가 자신이 연구한 것을 책으로 내겠다는 신념 하나였다고 말했습니다. 
 
찰스 두히그의 『습관의 힘』에는 리자 앨런의 사례가 소개되었습니다. 그녀는 16세부터 술과 담배를 시작했고 항상 비만에 시달렸습니다. 어떤 직장에서도 1년 이상 버틴 적이 없고 항상 빚에 쪼들려야 했습니다. 수치와 무기력감에 걸핏하면 심하게 화를 냈고 침대에 누워 눈물만 흘렸습니다. 급기야 남편도 더 이상 그녀와 살 수 없다며 이혼하자고 하여 절망에 빠졌습니다.

남편의 이혼 통보를 받고 리자는 마지막 통장을 털어 이집트 카이로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피라미드를 직접 보고 죽는 게 소원이었기 때문입니다. 호텔을 나온 리자는 택시를 타고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를 달렸습니다. 이때 광활한 사막을 보며 묘한 욕망이 솟구쳤습니다. 사막을 한번 횡단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녀는 1년 뒤 사막을 걸어서 횡단할 결심을 합니다. 

그 후 6개월 동안 리자는 담배를 끊고 조깅에 매달렸습니다. 덕분에 식습관이 바뀌었고 일을 대하는 자세와 잠을 자는 방법도 달라졌습니다. 덩달아 통장에는 돈이 쌓여갔습니다. 다시 학교에 돌아가 공부를 시작했고 집을 마련했으며 다른 남자를 만나 약혼까지 하였습니다. 

리자 앨런이 걸어서 사막을 횡단하였을까요? 아닙니다. 11개월 후 다시 돌아온 리자는 6명의 여행객과 함께 에어컨은 물론이고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잔뜩 싣고, 천막과 지도, GPS와 송수신 겸용 무전기까지 설치된 대형 자동차로 즐거운 마음으로 사막을 횡단하였습니다. 

리자 엘런을 통해 우리는 삶의 목표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자세를 결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막을 횡단하겠다는 욕구는 자기 안에서 저절로 생겨난 것일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서 생존 욕구 외에 자기를 이기고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욕구는 결코 저절로 생겨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도, 직장에 취직하고 싶은 마음도 다 나에게 사랑을 준 누군가에게서 그 욕구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들에게 감사해서 그 욕구를 대신 충족시켜주며 사는 게 인간입니다. 따라서 내가 그러한 목표나 사명을 수행함으로써 보답하고 칭찬받을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모든 노력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행위가 되고 그래서 또 의미를 잃습니다. 

김미경 강사가 그런 예입니다. 김미경 강사가 일 년에 수십억을 벌고 TV쇼까지 하며 가장 잘 나갈 때 가장 심한 우울증과 불안증에 시달렸습니다. 논문표절 의혹으로 강의가 없어져서 무작정 걷기만 할 때 자기 내면에서 “괜찮다, 사랑한다!”라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이후 그녀의 삶은 같지 않았습니다. 같은 고생을 하지만, 자기를 위한 고생이 아니라 사랑하는 목소리 주인공을 위한 고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NBA 2013~2014시즌 MVP를 차지한 케빈 듀런트의 수상소감을 들어봅시다. 

“아무도 우리가 성공하리라고 믿지 않을 때도 엄마는 끊임없이 믿음을 주셨고 길거리에 노숙자가 되지 않게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따뜻한 옷을 입혀주시고, 식탁에 음식을 차려주시고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을 때도 엄마는 배부르다며 너희들 먹으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굶주린 배로 잠이 드셨죠. 어머니는 저희를 위해 항상 희생하셨어요. 어머니가 MVP이십니다.”[출처: 포크포크, 세계를 감동시킨 어느 MVP 선수의 레전드 수상소감]

케빈 듀런트처럼, 축구선수 메시도 골을 넣은 다음에 자신을 믿어주었던 할머니에게 기도를 올립니다. 그에겐 할머니가 살아있습니다. 그의 사명이 곧 할머니의 부활을 증거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목적이 있으면 그것을 주신 분도 계십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수행할 때 그는 이미 부활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미국의 범죄학자 조지 켈링과 정치학자 제임스 윌슨이 명명한 ‘깨진 유리창 이론’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유리창이 깨진 차를 방치하면 이곳의 법과 질서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로 읽혀서 강력범죄로 확산될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을 사회학적으로만 볼 수 있지만, 어쩌면 우리 각자의 마음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마음이 깨진 유리창처럼 형편없어지면 어떨까요? 점점 더 자기 마음의 상태가 무너지고 맙니다. 자기 비하가 계속 심해지면서 자존감 하락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마음의 수리는 얼른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또한 다른 이의 말과 행동에 흔들리지 않는 의연함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배가 갑작스럽게 아프면 어머니께서 “엄마 손은 약손”이라면서 배를 문질러 주셨습니다. 배를 쓰담는 그 손이 제 배의 아픔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이렇게 나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는 손이 필요했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주님께서 우리의 아픔을 쓰다듬어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나의 ‘님’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분의 사랑을 보면서 그분 안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깨진 마음이 아닌 아주 건강한 마음이 되어 이 세상에 힘차게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제자들은 다락방에 문을 걷어 닫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들립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고, 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제자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기뻐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스승이신 예수님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서 숨어 있는 자기들 모습이 떳떳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불안한 마음, 완전히 깨어진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기 위해 나타나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첫 마디도 “평화가 너희와 함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놀람에 자기의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까지 보여주시면서 유령이 아닌 육체의 부활임을 드러내신 것이지요.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십니다. 살아있는 인간으로서의 부활임을 그들 앞에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아픔을, 또 깨진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아프고 깨진 마음을 고치기 힘들지만, 전지전능하시고 사랑 가득하신 주님께서는 충분히 정상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분이기에 우리는 주님 말씀처럼 세상에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남의 생활과 비교하지 말고 너 자신의 생활을 즐겨라.

- 콩도르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십자가의 고난에 대한 관심과 연민을 가질 때 성경은 세상을 밝히는 빛임을 뜨겁게 깨닫습니다. 다시 살아나신 주님을 통해 우리의 삶이 성숙하여 집니다. 우리의 기쁨이 되시는 주님의 부활입니다 약한 사람들의 고통을 내 아픔처럼 공감하는 손길과 나눔이 십자가의 올바른 힘입니다. 

십자가의 시간이야말로 만물을 성숙하게 하는 지혜의 원천입니다. 성숙해질려면 그만한 여정을 치러야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악을 이겼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걸인이나 가난한 이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는 놀라운 눈을 지녔습니다. 

십자가의 자리에서 부활이 이루어집니다. 성경은 십자가를 가리키며 고통의 굴곡진 마디마디의 아픔이 구원의 선물임을 알게하여 줍니다. 그 어떤 성경 귀절 하나도 버릴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을 수호하는 십자가의 고난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고난은 하느님을 닮는 사랑의 자기혁명이며 자기혁명으로 이끄는 성경은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가장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만남의 은총이 십자가로 드러나는 부활의 참된 기쁨이길 기도드립니다. 십자가의 자리에서 봄꽃이 가득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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