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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4/15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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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목자, 당신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셨네. 당신 양 떼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네. 알렐루야.

전능하신 하느님, 파스카의 영약으로 저희의 본성을 새롭게 하셨으니 저희가 옛 삶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따라 살게 하소서.

2024년 4월 15일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4월 15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4월 1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6,8-15)
    그들은 스테파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 오늘 복음
    (요한 6,22-29)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 오늘 말씀 카드
    (요한 6,27)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요한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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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요한 6,22-29
오늘 복음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22 
이튿날, 호수 건너편에 남아 있던 군중은, 그곳에 배가 한 척밖에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를 타고 가지 않으시고 제자들만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3 
그런데 티베리아스에서 배 몇 척이, 주님께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 빵을 나누어 먹이신 곳에 가까이 와 닿았다. 

24 
군중은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그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4월 15일
김준희 대건안드레아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06:38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생중계 성당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라.

오천 명이 넘는 군중을 먹이신 뒤, 호수 건너편으로 가신 예수님과 제자들은 거기까지 자신들을 찾아온 군중을 만나게 됩니다. 복음의 전반부에서 특별히 강조된 내용은 ‘찾음’입니다. 

여기저기 예수님을 찾으러 움직이는 군중의 모습이 길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내고 예수님께서도 그들이 당신을 애타게 찾았음을 인정하십니다.

그러나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자신들의 요구를 충족하려는 것이었음을,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라는 말로 지적하십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이 대조되고, ‘힘쓰지 말고’와 ‘힘써라’가 대조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여기에서도 ‘하는 것’과 ‘믿는 것’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여야 할 일을 찾는 것보다 그분을 믿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신앙생활의 매우 중요한 본질을 그 어느 때보다 명백히 알려 줍니다. 신앙은 찾음에서 시작됩니다. 복음의 군중처럼 예수님을 찾고 또 찾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 찾음의 목적이 ‘썩어 없어질 것’을 얻으려는 것이라면, 신앙은 내 뜻을 성취하려는 고상한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힘쓰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려는 것보다 그분을 믿는 것이 먼저이어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교회는 많은 일을 하며 건재함을 과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교회와 각 본당, 그리고 우리 자신은 무엇보다 앞서, 살아 계신 예수님을 믿는 일에 힘쓰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찾아야 할 진정한 신앙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의식성찰

“너희가 날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표징을 보지 못하고 빵을 보는 사람들에 대해 주님께서 나무라십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도 그런 사람이 아닌가 성찰함이 마땅합니다. 

나는 빵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인 것처럼, 나는 표징을 보는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고 성찰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이 말씀을 내게 하셨음에도 내게 하신 것이 아닌 것으로 만드는 겁니다. 그렇다면 진정 나는 표징은 보지 않고 빵만 보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전에 말씀드린 바 있듯이 저는 표징을 보는 사람입니다. 요즘 저는 일상에서 작은 기적을 많이 보고, 또 빵에서 표징을 보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도 그러하시겠지만, 매끼 식사 때마다 저는 성호경으로 식사합니다. 그것은 제가 자주 주장하듯 식사(食事)가 성사(聖事) 되게 하는, 더 풀어서 얘기하면 먹는 일을 개처럼 먹지 않고 천사처럼 먹음으로써 거룩한 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주장하게 된 것은 옛날의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옛날 제가 담배 피던 때 담배를 끊지 못하고 피는 저를 미워했고, 저를 향한 미움의 화살을 다른 형제에게 돌려 연쇄적으로 미워한 적이 있었지요. 

어느 날 한 형제를 미워하고 주님 앞에서 성찰했습니다. 담배 때문에 나를 미워하고 형제도 미워하는데 담배를 끊을 것인가? 또 끊을 수 있겠는가? 

끊을 수 없다면 담배 피는 일이 미움으로 이어지지는 않게 하자! 아니, 이것을 오히려 성사가 되게 하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이제부터 담배 필 때마다 성호경으로 담배를 피자! 그럼으로써 담배 필 때마다 주님을 만나자! 담배 피는 것이 거룩한 분향 예절이 되게 하자! 

이렇게 성호경은 제가 하는 모든 일을 성사화하는 가장 짧은 기도입니다. 관건은 이 성호경을 이런 의식을 가지고 하느냐입니다. 

저의 돌아가신 선배 백종순 안젤로 수사님은 식사는 말할 것도 없고, 물 한 잔 마실 때도 벌컥 드시지 않고, 물잔을 앞에 놓고 아주 정성껏 성호경을 하고 드셨습니다. 

그래서 물쯤이야 그냥 들이키려던 저희를 움찔하게 만드셨고, 물 한 잔에서 주님을 뵙고 만나는 성사를 거행하게 하셨지요. 

이것은 성 프란치스코가 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성사화의 명수입니다. 

무엇을 보든 거기서 주님을 뵙고 무엇을 하든 그것을 사랑으로 하는. 

그런데 관건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의식입니다. 

주님을 뵈려는 의지와 의식이 있느냐! 

성사화의 의지와 의지가 있느냐! 

이 의식 성찰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표징을 보는 사람인 것처럼 자신을 생각하고 성찰하지 않는 나는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이런 사람은 성체를 영해도 영원한 생명에 이르지 못합니다.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습니다. 뻐꾸기 새끼는 다른 새끼들을 밖으로 밀어내 떨어뜨려 죽입니다. 그리고는 어미가 물어오는 양식을 먹습니다. 그렇다고 그 뻐꾸기가 다른 새의 무리에서 살 수 있을까요? 

뻐꾸기는 또 자기처럼 하는 새끼를 남의 둥지에 낳게 됩니다. 뻐꾸기 새끼들에게 양식은 자기 어미를 찾는 데 소용되지 않습니다. 그냥 배만 불리는 데 사용됩니다. 그래서 그 양식은 그 무리에 살게 하는 힘은 발휘하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주신 빵으로 배가 부른 이들은 예수님을 찾으러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찾으려는 이유는 그분을 ‘세속적 왕’으로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충고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루마니아의 ‘요람’이라는 고아원에서는 아이들에게 질 좋은 음식이 제공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아이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양식을 먹기는 하였지만, 그들이 의도하는 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양식을 먹을 때는 그 양식을 통해 엄마를 찾기 위함입니다. 엄마를 찾아야 세상에 나아가 살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이것이 참 생명입니다.

저도 음식을 통해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는 알 수 없었지만, 언제부턴가 어머니가 의심되기 시작하면서 그분이 주시는 음식에 당신 피가 섞여 있는지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단팥빵과 흰우유를 주셨지만, 그것을 당신이 드시지 않고 주셨음을 알았을 때 조금 더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들이 이뤄지지 않으면 자신이 존귀한 존재임을 믿지 못하게 되어 사회 부적응자가 됩니다. 이것은 생명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성체를 영할 때 그분이 우리 어머니이심을 믿으려는 의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어머니처럼, 또 하느님이 아버지처럼 믿어질 때 우리는 천국에 가서 살 자존감을 얻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자격을 잃게 됩니다. 끊임없이 예수님께서 어머니의 역할을 하심을 믿으려는 의도가 있어야 조금씩 믿어지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도 자칫 뻐꾸기나 영화 에일리언에 나오는 존재처럼 하느님만 먹고 그 효과는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에일리언에서 에일리언 새끼는 사람의 몸 안에 들어가 그 영양분을 먹고 자랍니다. 

그러나 결국 그 숙주가 어미가 아니기 때문에 조금 성장하면 그 숙주를 죽여버립니다. 그런 식으로는 결코 인간 세상에서 함께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인간에 의해 멸종되거나 아니면 따로 살아야 합니다. 성체를 영해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이들이 이와 같습니다. 

만약 아이 대학이나 직장에 취직하게 해 달라거나 집이 팔리거나 남편이 승진하게 해 달라는 목적으로 성체를 영한다면, 그 잘못된 의도 때문에 성체가 생명의 양식이 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올바른 지향으로 성체를 영합시다. 그 의도가 중요한데 그 주시는 분을 믿기 위함입니다. 무엇보다 어머니로 믿기를 원해야 합니다. 자칫 우리도 성체를 영하면서 어머니를 찾는 게 아니라 숙주를 찾는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2023년 9월 24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삼종기도 훈화를 다음과 같이 하셨습니다. 
 
“하느님께 있어 결코 늦은 때란 없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를 찾으시고 또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이제까지 나름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고 노력도 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새벽 묵상 글 쓰는 것도 이제 그만 쓰고 싶었고,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멈춰서 하루 종일 잠자는 게으름도 누리고 싶었습니다. 무엇인가를 하는데 도저히 안 된다는 생각으로 좌절에 빠져 포기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들을 떠올려 보면 포기의 상황 안에서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아니 하느님을 나의 삶에 초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시간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늦은 때가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시기에 언제나 적합한 때를 이루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찾으시는 하느님과 함께한다면, 좌절이나 포기에서 벗어나 온전하게 하느님과 적합한 때를 살게 됩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아닌 세상만을 보려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그 안에서 사람들이 누리는 물리적인 것만을 바라봅니다. 여기에 집중할수록 하느님을 보기는 더 힘들어지게 됩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사람만이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함꼐하는 사람만이 최악의 순간 같아 보이는 때에도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포기, 좌절의 마음이 들 때, 무조건 하느님을 찾아야 했습니다. 나를 찾고 또 함께하자고 부르시는 하느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찾아온 군중을 향해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군중은 빵의 기적을 보고서 예수님을 쫓아왔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빵을 더 배불리 먹기만을 바라는 군중의 현실적 욕망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과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세상만을 바라보고, 물리적인 것만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은 주님을 믿는 것으로부터 가능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 믿는 것을 늘 뒤로 미룹니다. 물리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이 모두 채워진 뒤에야 믿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말이지요. 
 
이렇게 하느님을 나의 삶에 초대하지 않으면서 세상 것에만 집착하면서 살게 되면 좌절과 포기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세상 것들은 만족을 모릅니다. 채우면 채울수록 더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좌절과 포기의 삶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삶은 자그마한 것에서도 의미를 찾으면서 희망 안에 살게 됩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오늘의 명언

절망에 대한 가장 확실한 해독제는 믿음이다.

- 키르케고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사랑하는 모든 순간들이 믿음의 순간들입니다. 믿음이 영원한 생명이 됩니다. 일은 일을 따르고 뜻은 뜻을 따릅니다. 너무 많은 말과 너무 많은 일들 속에서 정작 따라야 할 하느님의 일은 놓치며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의 삶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일을 만나고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믿음과 일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믿음 대신 일만을 원하는 것은 오래갈 수 없는 믿음입니다. 제 할일을 다하는 삶이란 예수님과 함께하는 믿음의 삶입니다. 일들을 서로 연결해 보면 그 중심에는 믿음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으로 앞서 나가십니다. 생명은 하느님을 믿을 때 더욱 아름답습니다. 마음과 마음 사이를 지나가는 믿음의 일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과 함께 빵을 나눕니다. 썩어 없어지지 않을 믿음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일보다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중요하듯 많은 걱정들과 많은 일들에서 우리를 건져 주십니다. 믿음이 부실하면 일도 부실합니다. 믿음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과 사람이 한 몸이 되는 빵이 되어 오시는 믿음을 믿습니다. 믿음이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예수님이심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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