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리라. 주님은 우리 구원이요 생명이며 부활이시니,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구원과 자유를 얻었네.
하느님, 성자께서는 죽음을 앞두시고 이 거룩한 만찬으로 새롭고 영원한 제사와 사랑의 잔치를 교회에 맡기셨으니 이 놀라운 신비에 참여하는 저희에게 넘치는 사랑과 생명을 주소서.
2024년 3월 28일 평화방송 생중계 명동성당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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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8일
성목요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주님 만찬 성목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탈출 12,1-8.11-14)
파스카 만찬에 관한 규칙. - 제 2독서
(1코린 11,23-26)
여러분은 먹고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 오늘 복음
(요한 13,1-15)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 오늘 말씀 카드
(1코린 11,24)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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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3,1-15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1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2
만찬 때의 일이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3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4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6
그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베드로가,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7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8
그래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9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11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넘길 자를 알고 계셨다. 그래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13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14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가톨릭 평화방송
성목요일 미사 생중계
2024년 3월 28일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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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송 베네딕토 주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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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구원 역사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파스카 성삼일이 주님 만찬 저녁 미사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오늘 전례의 독서와 복음은 모두 ‘만찬’ 장면을 소개합니다.
제1독서는 구약의 파스카 만찬을, 제2독서는 초대 교회의 만찬을, 복음은 예수님의 파스카 만찬을 소개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권고한 만찬을 기점으로 ‘구약의 파스카’가 시작되었듯이,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을 기점으로 ‘신약의 파스카’가 시작된 것입니다.
특별히 요한 복음서가 전하는 만찬 이야기는 ‘사랑’과 ‘섬김’이라는 주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제자들과의 마지막이 가까워짐을 감지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충만한 사랑을 드러내어 표현하십니다.
사랑은 감출 수 없는 것이기에 언제나 구체적 행위를 일으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발 씻김’이라는 상징적 행위로 ‘사랑은 섬김’으로 드러나야 함을 알려 주십니다.
유다인들은 손님을 초대하면, 덥고 건조한 흙길을 오래 걸어야 하였을 손님을 배려하여 먼저 발을 씻게 하였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집안의 종이 하던 일을 당신께서 손수하시며 사랑은 섬김으로 표현되어야 함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라고 물어보시는데, 그리스 말 성경 본문에는 “깨닫겠느냐?”라는 동사가 먼저 나옵니다. ‘알겠니?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의 의미가 강조되어 있고, 그 답은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로 제시됩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한 것처럼 섬김으로 실천되는 사랑이 우리가 하여야 할 과제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 앞에 무릎을 꿇으십니다. 기득권자들의 불의한 폭력 앞에 무릎을 꿇고, 당신을 배신한 인간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랑은 이제 성삼일 내내 장엄히 기억되고 기념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기억이 끝나는 순간 사랑도 끝난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복음은 얘기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표시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십니다.
그러니까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의 첫 번째 의미는 더러운 발까지 씻어주시는 사랑이고, 그 발로 도망칠 제자들의 죄까지 용서해주시는 사랑이며, 아무리 죄를 짓고 도망쳐도 포기치 않으시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이고 그래서 성체성사를 세우신 얘기는 안 나옵니다. 대신 두 번째 독서에서 성체성사를 세우신 얘기를 바오로 사도가 전하는데 성체성사를 세우신 얘기는 요한복음엔 없지만 공관복음에는 모두 나오지요.
그러므로 끝까지 사랑하시는 또 하나의 표시가 바로 성체성사이고, 이때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함은 남김없이 다 바치는 사랑입니다.
주다 주다 더 줄 것이 없으니 목숨까지 다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목숨까지 다 내어주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성체성사는 남김없이 다 내어주는 사랑이지만 다른 한편 당신의 사랑을 남기시는 사랑입니다. 이 세상에서 목숨까지 남김없이 다 내어주시지만 당신이 돌아가신 뒤에도 남을 사랑의 표시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 우리 사랑의 표시로 유언과 유산과 유물을 자식들에게 남기지만 주님께서는 당신 사랑이 당신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재현되도록, 곧 끝까지 계속되도록 성체성사를 남기신 겁니다.
그런데 재현되도록 그리고 끝까지 계속되도록 성체성사를 남기셨는데 그것이 우리 안에서 재현되지 않고 그래서 계속되지 않는다면 주님은 끝까지 사랑하셨어도 주님 사랑은 우리 안에서 끝까지 계속되지 않겠지요.
주님께서는 성체성사를 제자들을 위해서만 남기신 것이 아닙니다. 복음에서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이라고 하셨는데 그 사랑하시는 당신의 사람들에서 우리가 제외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람들이라면 우리도 제자들처럼 그 주님의 사랑을 재현해야 할 것이고, 우리도 제자들처럼 주님 사랑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그런데 만일 우리가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주님 사랑은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이 아니고, 끝까지 남는 사랑도 아니며 그야말로 끝난 사랑입니다.
기억과 기념은 주님의 사랑을 재현케 하는 것이고, 주님 사랑이 내 안에서 계속되게 하는 것일 뿐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끝까지 사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죄를 기억하는 것은 과거 지향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은 미래 지향적인 것이고,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서 끝나지 않고 미래에도 계속되게 하는 것입니다.
기억이 끝나는 순간 사랑도 끝나는 것입니다.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도 끝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누가 말씀으로 목욕한 사람인가?
오늘은 사제들의 생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찬례를 위해 사제직을 제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성찬례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예식으로 표현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라고 하십니다.
발을 씻어주는 행위는 분명 사랑의 행위로써 구원과 직결됩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않고 온전한 어른으로 자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며 하느님 자녀가 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부모가 주는 양식으로 부모처럼 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베드로는 목욕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리고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시며 유다만이 목욕을 하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목욕을 하지 않은 채 성체를 영하는 것은 구원의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체를 영하기 전에 하는 목욕은 무엇일까요? 성찬의 전례 전에 말씀의 전례가 있습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요한 15,3)
유다는 말씀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아 성체를 영해도 구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먼저 깨끗해지는 것이 무엇인지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를 보면 말씀으로 깨끗해진 이는 예수님께서 발을 씻어줌이 아니면 구원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은 하기도 어렵지만, 받기도 어렵습니다. 사랑받으면 고마워해야 하고 또 사랑해야 하는 의무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사랑받기 더 어려운 이유는 내가 사랑받지 못한 처지를 하느님과 이웃을 원망하며 즐기고 있었는데 그 즐거움을 빼앗긴다는 데 있습니다. 지옥도 분명 하느님을 원망하며 이겨 먹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천국에도 십자가의 고통이 존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케이티 파이퍼(Katie Piper)는 영국의 장래가 촉망되는 아나운서였습니다.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을 시샘한 한 스토커에 의해 그녀는 얼굴에 염산 테러를 당합니다. 심하게 일그러진 그녀는 자기 얼굴을 보며 살 의욕을 잃습니다. 부모와 함께 지내며 자살 생각까지 합니다. 그러나 부모는 그녀가 세상에 나가도록 종용했습니다. 그렇게 자신 안에 갇히는 게 지옥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으려면 먼저 부모처럼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 자체로 지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입니다. 그녀는 용기 있게 세상 밖으로 나갔고 그 용기에 감탄한 사람과 혼인하고 아이까지 낳았습니다. 또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고쳐주는 재단을 설립하기도 합니다.
빛을 피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어둠밖에 없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거부하면 어떤 존재가 될까요?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사랑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지옥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사랑받아봐도 소용없습니다. 이것을 위해 말씀으로 깨달아 목욕한 상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니아 연대기』, 『순전한 그리스도교』로 유명한 C. S. 루이스는 사랑을 피할 곳은 지옥뿐임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안전한 투자는 어디에도 없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쉽게 상처받는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사랑해 보라. 그러면 분명 당신의 마음은 괴로움으로 찢어질 것이다.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다면 그 어떤 사람에게도, 심지어 그 어떤 동물에게도 마음을 주지 마라. 이런저런 취미와 사소한 사치들로 당신의 마음을 꽁꽁 감싸라. 이기심이라는 관 또는 장식함 속에 당신의 마음을 집어넣고 단단히 걸어 잠가라.
그러나 당신의 마음은 안전하고 깜깜하고 움직임도 없고 바람도 없는 그 장식함 속에서 변할 것이다. 그것이 다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깨뜨리거나 꿰뚫거나 또 바로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비극 또는 적어도 비극을 맞이할 위험을 피하기 위한 대안은 이런 지옥살이뿐이다. 천국을 제외하고, 당신이 사랑에 따르는 모든 위험과 동요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지옥이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발을 씻어주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체성사도 되고 세례성사는 물론이요, 고해성사도 됩니다. 이것을 거부하면 갈 곳이 지옥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말씀으로 목욕을 한 사람입니다.
먼저 말씀으로 목욕하지 않으면 성사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여 성사를 영하지 않거나 성사를 영해도 유다처럼 소용없게 됩니다. 먼저 말씀으로 왜 성사가 아니면 지옥인지 깨닫도록 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발을 씻어주시는 예수님
어렸을 때, 여름방학이 되면 제 바로 형님과 함께 시골에 가곤 했습니다. 인천에서 버스를 타고 또 배를 탄 뒤에 한참을 걸어가야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계신 시골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먼 거리였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골에 도착하고 나서는 너무 신났습니다. 개울가에 가서 놀기도 하고, 고양이, 개, 소 등의 동물 보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올챙이 잡고 개구리 잡던 것 역시 큰 즐거움 중의 하나였지요. 이렇게 즐거운 일만 있지는 않았지요. 온몸에 달라붙는 모기떼로 인해 괴로웠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상황이 뭐가 재미있을까 싶습니다. 당시 시골에는 제 또래도 없었고 그래서 유일하게 놀 수 있는 대상은 같이 간 형뿐이었습니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컴퓨터로 인터넷 서핑을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아이들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해주면, 아마 “저는 그런 곳에서 못 살아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긴 게임에 빠진 아이의 스마트폰을 빼앗아서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고 화가 나서 불을 질렀다는 아이도 있더군요.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뭐가 재미있냐?’고 하겠지만, 제 기억 속에서 시골 체험은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뭐라 하셨는지 기억나지도 않고, 이분들의 음성도 잘 생각나지 않지만 그래도 옛날의 몇 장면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 선명한 기억을 지금 흐뭇한 마음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모든 것이 자기 기억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소중한 순간이고 미래를 잘 사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더 많은 것을 가져야 생각하는 우리입니다. 화려한 것, 멋진 것보다 오랜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장면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장면에는 늘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랑이 있기에 따뜻하고 행복했습니다. 지금 내 자리도 먼 훗날 기억에 오래 간직될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을 지냅니다. 이날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바라보게 됩니다.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바로 코 앞에 두고 있음에도 제자들을 향해 또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을 나눠주시는 주님을 봅니다. 그 사랑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하느님께서 무릎을 꿇고 인간의 발을 씻겨 주시는 모습에서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전해집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전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너무나 크기에 오늘의 전례를 통해 사랑을 다시금 바라보고 또다시 그 사랑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 사랑의 힘으로 더 힘차게 살 수 있게 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의 명언
내가 이해하는 모든 것은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한다.
- 레프 톨스토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행할 것은 행해야 합니다. 식사와 발 씻김은 함께하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따뜻한 식사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식사를 살피시듯 우리를 살피십니다. 식사를 중심으로 사랑하는 법을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며 사랑의 본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십니다. 우리의 발을 씻어주시며 예수님과 우리의 이야기는 무르익어 갑니다.
씻어야 할 마음과 씻어주는 마음 사이로 하느님 나라가 있습니다.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랑을 발을 씻어줌으로 일깨워주십니다. 진실된 시각 진실한 실천의 사랑입니다. 실천이 빠져버린 사랑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으로 나아가는 식사이며 발씻김의 기본적인 실천입니다. 식사와 발 씻김은 둘이 아닙니다. 둘이 아니기에 어는 것을 강조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식사는 작아도 발 씻김은 커야 합니다.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실천의 복음입니다. 주님이며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십니다. 마음을 먹고 마음을 맞이하고 마음을 씻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삶을 압박하는 이 모든 불편함이 주님과 함께하는 사랑의 기쁨으로 성변화되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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