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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3/08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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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신들 가운데 당신 같은 이 없나이다. 당신은 위대하시며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 당신 홀로 하느님이시옵니다.

주님, 주님의 은총을 저희에게 인자로이 내려 주시어 언제나 저희가 지나친 욕망을 끊고 주님의 거룩한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2024년 3월 8일 사순 제3주간 금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3월 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3주간 금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마르코복음 12장 34절)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마르코복음 12장 34절) 성경말씀카드 마르코복음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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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복음 12장 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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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호세아서 14,2-10)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 오늘 복음
    (마르코복음 12,28ㄱㄷ-34)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3월 8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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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마르코복음
12장 28ㄱㄷ-34절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그때에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28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매일미사 평화방송

 

 

2024년 3월 8일 05:00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07:25

 

 

 

그 외 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고통에 흔들리거나 불안에 넘어지는 이유

 

“모든 계명 가운데에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궁금한 질문입니다.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 신앙생활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무엇인지 언제나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명확히 답을 주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우리 하느님만이 유일하신 ‘주님’(주인님)이심을 인식하고 그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독서 또한 비슷한 내용을 선언합니다. “아시리아는 저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고아를 가엾이 여기시는 분은 당신뿐이십니다.” 이 선언에 이어 독서는 첫째 계명을 잊어버릴 때 나오는 결과를 ‘비틀거림’이라는 주제로 묘사합니다. 

독서의 시작과 끝에 ‘비틀거림’이라는 단어가 되풀이되어 나오는데 이는 히브리 말 ‘카샬’로, ‘넘어지다’, ‘흔들리다’, ‘실족하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고통에 흔들리거나 불안에 넘어지는 이유는 ‘주님만이 하느님’이시라는 가장 중요한 계명을 잊고 다른 신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합당한 삶의 중심과 본질을 잊어버리고 본질이 아닌 것에 의지하고 매여 있으니 중심을 잡지 못하여 매번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순 시기의 정점으로 가는 이번 주에 계속 강조되고 있는 주제는 ‘회개’입니다. ‘주님만이 하느님’이심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 아시리아나 군마가 나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 고백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더 이상 우리를 흔들리며 걷게 하지 않는 지혜이며, 이를 인식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의 시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모든 덕의 완성은 사랑이다.

 

“첫째는 이것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오늘 주님께서는 사랑이 으뜸가는 계명이라고 하십니다. 사랑이 으뜸 계명이라면 이런 말이 가능하겠습니다. 

겸손한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교만하지 않은 것으로는 더더욱 충분하지 않다. 

또 죄와 관련지어 얘기하면 교만한 것은 그리 큰 죄가 아니다. 겸손하지 않은 것은 더더욱 그리 큰 죄가 아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리 겸손하고 교만하지 않아도 그것으로 충분치 않고 사랑치 않는 죄에 비하면 교만도, 겸손치 않은 것도 그리 큰 죄 아니다. 

교만이 죄인 이유도 사랑치 못하게 하기에 죄이고 겸손이 중요한 이유도 겸손해야 사랑의 기초가 놓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난과 사랑의 관계도 얘기할 수 있고, 사랑과 모든 덕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얘기할 수 있다. 

모든 덕은 사랑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고, 모든 덕의 완성은 사랑이다. 

바오로 사도는 그래서 코린토전서 13장, 사랑의 찬가에서 다른 덕들의 완성인 사랑에 대해서 칭송을 하는 거지요. 

사랑이 없으면 예언의 능력도 지식도 믿음도 소용이 없고, 반대로 사랑은 참고, 기다리고, 친절하게 한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는 그것을 알면 되고, 그것을 붙잡고 늘어지면 되는데 자주 하찮은 것에 매달리고, 하찮은 것에 걸려 넘어져 사랑하지 못함을 반성하는 오늘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성경 읽는 법 : 사랑으로 읽어라!

 

오늘 복음에서 율법 학자는 예수님께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 긴 성경 가운데서 핵심 구절 두 개를 찾아내십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그러자 율법 학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뽑은 핵심 구절에 동의하는 율법학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성경의 말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두 문장을 찾아내실 수 있었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경 말씀을 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지 알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자신이 한 말의 핵심을 말해보라고 하면 됩니다. 분명 당신을 사랑한다면 말하려고 하는 의도를 파악해 핵심적인 한두 마디를 찾아낼 것입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는지 종잡지 못한다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부싸움이 왜 끝나지 않는 것일까요? 상대가 말하려는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자기주장만 되풀이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부부 각자의 생각은 ‘나는 널 알아!’입니다. 그러니 굳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필요가 없다고 여깁니다. 성경을 대하는 자세도 그러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순종하려면 먼저 그 무언가를 말하는 대상을 사랑하게 할 누군가를 만나야 합니다. 

영화 ‘아버지와 딸’(2020)에서 성인이 된 딸은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버지와 딸’이라는 책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도 그녀의 삶은 아버지가 책을 쓰며 상상한 딸의 모습이 아닙니다. 돈을 받고 몸을 파는 것과 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여자 주인공의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도 사고 후유증에 시달립니다. 가난한 소설가이기에 돈도 없습니다. 그런데 친척 집에서 아이를 입양하려고 합니다. 이것을 막으려면 변호사비로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아버지는 자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는 딸을 위해 석 달 동안 모든 에너지를 짜 내 소설을 완성합니다. 그러나 몸이 허약해져 죽고 맙니다. 

딸은 부모의 죽음이 자기 탓인 것 같기도 하고 자기를 두고 다 떠나버린 부모가 원망스럽기도 하며 그립기도 하고 또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이 자기를 떠날까 봐 가벼운 관계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때 ‘아버지와 딸’ 책을 읽고 삶이 바뀌었다는 한 남자를 만납니다. 그 남자는 그 딸이 그런 모습인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참아냅니다. 자기와 사귀면서 다른 남자를 만나고 와도 이해합니다. 그러한 피 흘림이 결국 여자 주인공이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하게 했습니다. 아버지가 책을 쓸 때 상상했던 딸의 모습으로 살 것을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수녀님들에게 사제가 되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러기 싫었습니다. 결혼해야 행복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이 되니 그 뜻의 의미를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하.사.시.라는 책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성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님께서 나에게 해가 되는 것은 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되니 이웃의 영혼을 돌보는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사랑이 없으면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먼저 성경을 읽기 전에 하느님을 사랑하게 해 줄 무언가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러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성경 말씀을 사랑 없이 해석하려 하였습니다. 

결과는 처참하였습니다. 모든 성경의 계명들을 다 지킨다고 하면서 실제로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다 외우는 사람이지만, 이웃에게 화를 내고 싸움을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알면 보이는 게 맞지만, 알려면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보입니다. 그러기 위해 사랑을 알게 해 줄 누군가를 만나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싱크 어게인’의 저자 애덤 그랜트는 우리가 성공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다시 생각하기’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것과 이제껏 배운 것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부정당하면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지요. 이것은 정체성의 위상을 지키려는 본능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정체성을 바꾸면 안 될까요? 우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지요. 계속해서 완성되어 나갈 뿐입니다. 따라서 다시 생각하면서 ‘정체성’을 바꿀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해 봤자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이 들 때, 다시 생각할 수 없을까요? ‘전에 해봤는데 소용없었어.’라는 생각이 들 때, 또다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너무 어려워. 나는 절대 못 해.’라는 생각도 다시 생각해야 할 말이 아닐까요? 만약 당신과 가장 친한 사람이 예를 들어, 사랑하는 자녀나 친한 친구가 그런 말을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다시 생각하라고 정중하고 간곡하게 부탁할 것입니다. 다시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고, 의미도 생기게 됩니다. 
 
며칠 전에 지방으로 강의를 다녀왔습니다. 집에 들어오니 너무 늦은 시간이고 너무 피곤했습니다. 씻는 것도 귀찮고 얼른 침대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녁기도와 끝기도를 바치지 않은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생각했습니다. 피곤해서 곧바로 침대에 눕고 싶지만 그래도 기도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회를 줄이고 기쁘게 기도를 마치고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율법 학자 한 사람이 다가와서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계명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렇다면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이 사랑의 계명을 몰랐을까요? 아닙니다. 이미 신명기에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셨던 사랑의 계명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사랑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만든 세부 조항 613개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세부 조항 613개 모두 중요하다고 하니, 만약 두 개의 조항을 동시에 지켜야 할 상황이라면 어떤 조항을 지켜야 하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 정작 반드시 실천해야 할 사랑을 소홀히 하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던 이유는 다른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잊지 않고 잘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모습을 주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질서 있는 모습이 아름다움을 결정한다.

- 펄 벅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첫째는 이것이다.

 

새로운 삶의 물고를 트는 첫째는 우리가 하느님을 간절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기쁨과 넘치는 환희로 이끄는 것은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전적으로 우리를 신뢰하십니다. 사랑으로 창조하시고 신뢰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사랑은 신뢰에서 비롯됩니다. 사랑으로 들으시고 사랑으로 기다리십니다. 오염되어 있는 사랑을 정화하는 것은 하느님 사랑입니다. 사랑을 지키는 것은 오늘의 사랑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삶이 어디로 가야 할 지를 가르쳐 주시는 하느님 사랑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가까이 있습니다. 사랑을 하면서 알게 되는 하느님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온 마음을 하느님께 바칠 때 하느님 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중심의 사랑이 아닌 하느님 중심의 사랑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예수님 생애를 통하여 사랑으로 오시고 사랑으로 우리의 오늘을 새롭게 하시는 가장 좋은 사랑을 만납니다. 

시작도 마침도 사랑이며 사랑은 사랑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사랑의 놀라운 힘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따르는 은총 가득한 사랑의 오늘 되십시오. 하느님을 사랑할 때 알게 되는 삶이며 십자가이며 구원입니다. 하느님 사랑이 참된 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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