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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3/03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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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발을 그물에서 빼내 주시리니, 제 눈은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나이다. 저를 돌아보시어 자비를 베푸소서. 외롭고 가련한 몸이옵니다.

하느님, 온갖 은총과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단식과 기도와 자선으로 죄를 씻게 하셨으니 진심으로 뉘우치는 저희를 굽어보시고 죄에 짓눌려 있는 저희를 언제나 자비로이 일으켜 주소서.

 

2024년 3월 3일 사순 제3주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3월 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3주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요한복음 2장 19절)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요한복음 2장 19절) 성경말씀카드 요한복음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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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장 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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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탈출기 20,1-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다.

  • 제 2독서
    (코린토1서 1,22-25)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 오늘 복음
    (요한복음 2,13-25)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3월 3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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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복음 (Gospel)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네.

 

 

요한복음
2장 13-25절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13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14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16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17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18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20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21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23 
파스카 축제 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 많은 사람이 그분께서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고 그분의 이름을 믿었다. 

2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25 
그분께는 사람에 관하여 누가 증언해 드릴 필요가 없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것까지 알고 계셨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매일미사 평화방송

 

 

2024년 3월 3일 05:00
손경락 사도요한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12:34

 

 

 

가톨릭 스튜디오 주일미사

 

 

2024년 3월 3일 11:00
원당동성당 이병근 대건안드레아 신부

 

✚ 미사시작 02:17

✚ 강론시작 16:39

 

 

 

성필립보생태마을 주일미사

 

 

2024년 3월 3일 17:00
다볼사이버성당 김희성 그레고리오 신부

 

✚ 미사시작 07:12

✚ 강론시작 15:44

 

 

 

그 외 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성전’은 하느님의 집이고 그분을 만나는 곳입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 그의 집으로 간다는 것은 그만큼 친밀하다는 뜻이며, 서로 긴밀히 나누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고르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집’은 무엇보다도 안전하고 조용하며 개인적인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집’인 ‘성전’은 누구의 방해도 없이 조용하고 안전하게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여야 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이를 방해하는,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을 보십니다. 이것들은 ‘제사’를 드리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었고, 제사는 하느님과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절대적인 자리였지만, 예수님께서는 단호히 이르십니다.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사실 예루살렘 성전의 문제는 각종 동물과 장사꾼들로 지저분해지고 혼잡해진 외적 환경에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심각하였던 것은 구원을 사고파는 ‘내적 타락’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루살렘 성전에 오신 것처럼, 파스카를 준비하는 우리 자신의 성전(마음)에도 오십니다. 우리 마음의 성전을 보신다면 과연 예수님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요?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타락과 위선과 죄를 보시겠지만 그다지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구원을 사고파는 우리 자신, 구원으로 장사하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이러한 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순명한다면, 그분께서는 당신의 부활로 우리를 다시 세워 주실 것입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치울 것인가? 허물 것인가?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어 성전을 정화하신 얘기입니다. 성전은 하느님과 만나는 특별한 장소이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잡다한 것들이 성전 안에 가득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잡놈들이 가득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의 경우 성당에 무엇이 많은 것이 싫습니다. 성상이나 성화같은 예술품이 많은 것도 싫습니다. 그것들이 제가 하느님 만나는 것에 도움을 주면 좋겠는데 도움을 준다고 하는 것이 제게는 도움이 아니라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성당을 간 분들에게 이런 심한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거기에 예술품을 보러 간 것입니까? 주님을 만나러 간 것입니까? 주님을 만나러 꼭 거기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저의 이런 도발적인 말은 주님을 만남에 있어서 정말 성화나 성상의 도움받는 분들에게도 하는 말이 아닙니다. 

성상은 그것을 통해 주님을 만나는 사람에게는 우상이 아니라 성상이지요. 그러나 그것을 통해 주님을 만나지 못하거나 방해받는 사람에게는 그저 예술품이거나 심지어 우상일 뿐일 겁니다. 

아무튼 오늘 주님은 성전에서 잡다한 것과 잡놈들을 다 치워버리십니다. 그리고 그 방법이 아주 과격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위선자들을 말로 세게 질타하신 적이 있으셔도 이렇게 과격한 행동을 하신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셔야만 했나 봅니다. 말로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하셨는데 말로는 안 됐나 봅니다. 

그들의 돈 줄 그래서 그들이 결코 놓을 수 없고 그래서 꽉 움켜쥐고 있는 것, 그래서 치워버리라고 말로 해서 안 되는 것은 주님께서 과격하게 치워버리십니다. 

우리 인생에서 한순간에 모든 것을 폭삭 잃은 것도, 실은 내가 주님 대신 움켜쥐고 있던 것들이고 그래서 주님께서 이렇게 치워버리신 것들일 겁니다. 

아무튼 이 정화사건 때문에 주님께 죽음이 닥쳐옵니다. 저라도 그러지 않겠습니까? 내 모든 것을 뺏어 간 주님을 그냥 놔두고 싶겠습니까? 

당대 기득권자들도 이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이런 주님을 그냥 놔두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무슨 권한으로 이런 짓을 했는지 하늘의 표징을 요구하고, 이에 주님께서는“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성전을 허물다가 당신 몸이 허물어지십니다. 아니, 당신 몸을 허물어서라도 성전을 허물려고 하신 것이고, 역사적으로도 로마의 침략으로 결국 파괴되고 맙니다. 

이제 우리가 남았습니다. 우리도 허물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당신 몸인 성전을 허무셨는데, 이것은 우리 안에서 잡것들을 치우라는 명령을 실행치 않으면 우리도 우리 몸인 성전을 허물어야 한다는 주님의 표징입니다. 

이에 대해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치울 것인가? 허물 것인가?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사람이라는 집의 주인과 그에 따른 손님들

 

사람은 관계 맺는 동물입니다. 예전에 군대에서 귀신을 본다는 청년에게 전화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귀신 때문에 힘들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건 귀신 때문이 아니라 귀신을 맞아들일 만한 집을 만든 자신 때문이라 말했습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어 본성상 관계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관계는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입니다. 저의 어렸을 때 집에 이사 간 지 얼마 안 되어 가 본 적이 있는데 지붕까지 내려앉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쥐나 뱀, 벌레들이 사는 곳으로 바뀝니다. 그러면 사람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집의 주인을 누구로 삼느냐에 따라 관계 맺는 대상이 달라집니다. 관계 맺는 대상은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든 나의 집이 결정합니다. 

오늘 복음은 성전 정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을 만들어 아버지 집을 장사꾼들의 소굴로 만들어버린 사람들을 쫓아내십니다. 장사꾼이 주인이 되면 그 집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외면하는 곳이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성전은 모든 인간을 맞아들일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1970년대에 미국 뉴욕주 아미티빌 한 저택에서 무서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 집에서는 이전에 로널드 디페오 주니어가 자기 가족 여섯 명을 살해한 끔찍한 범죄가 발생했습니다. 그는 엽총으로 일가족 모두를 쏘아서 죽였지만, 각 방에 돌아다니면서 총을 쐈는데도 아무도 총소리에 깨거나 저항한 흔적이 없었습니다. 로널드는 자신이 집에 들어왔을 때 두 명이 자신에게 그러한 일을 하라고 시켰다고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조지와 캐시 루츠 가족이 싼 가격에 집을 구입하여 들어왔습니다. 루츠 가족은 이사 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이상한 현상들을 경험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집이 귀신 들린 것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사제를 불러 성수를 뿌리려고 할 때 갑자기 정전되더니 날카로운 소리로 “다 나가!”라는 비명이 들렸습니다. 

그 이후로도 물건이 움직인다던가 아이가 보이지 않는 것과 대화하고 친구라고 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노린다는 말을 듣고는 짐도 챙기지 않고 도망을 쳤습니다. 사람들이 그 아무도 없는 집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밤에도 계속 찍었습니다. 그런데 전에 죽었던 아이와 비슷한 아이의 얼굴이 찍히기도 하였습니다. 

집은 이전 죽은 이들을 주인으로 선택하였습니다. 그들은 죽은 존재들입니다. 죽은 존재는 살아있는 존재들을 시기하여 죽이거나 쫓아내려 합니다. 그러면 산 이들은 그 집에서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안에 사람을 미워하는 어떤 것이 주인이 되면 그 사람은 타인과 관계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담과 하와처럼 뱀이 아니라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성전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웃을 받아들이는 집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인도의 ‘타지마할’은 39세에 아기를 낳다가 사망한 여왕 뭄테츠 마할을 위한 무덤입니다. 왕은 여왕을 그리워하여 그녀의 집을 그녀가 살기를 원할 만하게 아름답게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은 수많은 사람이 와서 감탄해 마지않았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듭니다. 만약 뭄테즈 마할이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였다면 사람을 받아들일 만한 집이 지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반면 피라미드를 생각해 봅시다. 피라미드는 죽은 왕을 매장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죽음에 이르게 만들어놓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왕이 저승에서 살 수 있는 금은보화를 많이 저장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기만 아는 죽은 인간이 왕이 되면 그 공간에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탈리아 오르비에또나 피렌체에 가면 아름다운 두오모 성당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양이 좀 특이합니다. 이슬람식의 문양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은 터키를 점령하고 성 소피아 성당을 부수기가 아까워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대성당들을 지을 때도 당시 이슬람 세력이 강력할 때 혹시 점령당하더라도 이슬람 사원으로 쓸 수 있도록 성당을 만든 것입니다.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신 성전은 이렇듯 종교가 달라도 인종이 달라도 모두를 포함할 수 있는 집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존재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모든 존재의 창조자를 모실 성전이 되어야 모든 이를 사랑할 존재로 구원받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지난달 학생 복사단 회식이 있었습니다. 고3이 되는 학생들이 복사를 졸업하고 마지막으로 후배 복사들과 식사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날의 메뉴는 자장면과 짬뽕이었지요. 그런데 한 친구가 너무 조심스럽게 먹는 것입니다. 보통 아이들은 급하게 먹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아이에게 “왜 이렇게 조심스럽게 먹어?”라고 물으니, “흰색 티셔츠를 입었거든요.”라고 답합니다. 저는 아이에게 “어머니가 빨래해 주시잖아. 더러워지면 빨래하면 되니까, 음식이 흰색 티셔츠에 조금 묻으면 어때?”라고 하니, 아이는 곧바로 이렇게 말합니다. 
 
“보기 싫잖아요.” 
 
묵상 중에 이 아이의 말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음식 묻으면 빨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음식 묻은 옷을 입고서 돌아다닐 자기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이 보기 싫다는 것이지요. 이 말에 우리 마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깨끗해집니다. 그러나 죄를 더 짓지 않으려는 노력보다, ‘나중에 고해성사 보면 되지.’라는 안일한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을 만나곤 합니다. 이 죄를 짓는 내 모습이 과연 예쁠까요? 아닙니다. 분명히 보기 싫은 모습이고 그래서 죄를 짓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죄를 짓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한데, 너무 쉽게 죄에 무감각해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의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죄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쓸데없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정작 하느님의 뜻과는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을 보면 너무 화가 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전을 정화하시는 장면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휘두를 정도로 화가 나셨을까요? 이 성전 안에 하느님의 사랑보다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난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죄를 씻기 위해 희생 제물을 봉헌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양과 소, 비둘기 등이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이 봉헌물을 판매하면서 누군가는 자기 탐욕을 채우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가난한 사람은 그 돈을 낼 수가 없어서 죄스러운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오히려 죄인으로 고개를 들 수 없는 상황이 과연 예수님 보시기에 좋았을까요? 
 
이런 탐욕과 이기심이 난무하는 곳은 결코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사랑의 실천과 나눔을 통해서만 주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모두 웃고 있을 때 우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 외로운 사람의 손을 잡아 주는 것이 함께 사는 일일 거예요.

- 이해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많은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우리들은 불행합니다. 더 나은 삶에 대한 우리의 목마름을 물질이 채워주지 못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씨끄러우면 성전도 씨끄럽습니다. 내어주는 사랑의 마음이 곧 사랑의 성전입니다. 우리 삶에 최고의 선물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미사에 함께 참례하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있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 성전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에 동참하는 것이 성전의 삶입니다. 말씀에 귀 기울이고 묵상하는 삶이 성전의 삶입니다. 그래서 성전은 말씀이 만들고 일상이 만들어내는 복음의 자리가 성전입니다. 빛과 소금의 삶이 성전의 역할입니다. 

바람직한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가 성전의 변화입니다.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성전이길 기도드립니다. 신앙의 현장에서 뜨겁게 만나는 예수님의 가치입니다. 예수님의 성전이 세상의 소음이 되고 공해가 된다면 우리가 또 다시 예수님을 죽이는 것입니다. 성전을 어떤 모양으로 짓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사랑의 가치를 선명히 보여줄 수 있는 오늘의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믿음의 자리가 되는 것이 성전이 지향하는 성전의 삶입니다. 우리의 삶으로 성전이 아름다워지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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