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4/02/19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2. 19.
반응형

 

종들이 제 주인의 손을 눈여겨보듯, 저희는 주 하느님을 우러러보며 당신 자비만을 바라나이다.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저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 천상의 가르침으로 저희를 회개시키시어 사순 시기에 올바른 마음으로 선행을 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2024년 2월 19일 사순 제1주간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2월 1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1주간 월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마태오복음 25장 34절)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마태오복음 25장 34절) 성경말씀카드 마태오복음 성경구절이미지 다운로드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마태오복음 25장 24절

240219_오늘성경구절이미지.jpg
0.35MB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레위기 19,1-2.11-18)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 오늘 복음
    (마태오 25,31-46)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2월 19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지금이 바로 은혜로운 때이며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이네.

 

 

마태오복음
25장 31-46절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37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46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매일미사 평화방송

 

 

2024년 2월 19일 05:00
현종민 세례자요한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7:30

 

 

 

그 외 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최정훈 바오로 신부

 

최후 심판의 기준

 

오늘 복음은 최후의 심판 장면을 들려주는데,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기준을 알려 줍니다. 심판관은 심판받는 이들이 살면서 무엇을 배웠는지, 무엇을 성취하였는지, 얼마나 노력하며 살았는지는 물어보지 않습니다. 심지어 무엇을 믿었는지 그들의 신앙과 종파도 묻지 않고, 그들이 어떻게 기도와 예배를 드렸는지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심판의 기준은 바로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베푼 사랑과 자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베푼 모든 사랑과 자비가 곧 당신께 베푼 것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가장 작은 이들과 당신을 동일시하십니다.

이러한 동일시는 그리스도께서 가장 작은 이들에게 얼마나 특별한 사랑과 연민을 가지고 계셨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이 본문은 교회가 누구를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돌보아야 하는지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은 이처럼 가난한 이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바탕을 둡니다. 이에 따라 교회는 초세기부터 가난한 이들, 병자들, 감옥에 갇힌 이들과 같이 가장 비천하고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그리스도로 여기고 그들에게 애덕을 실천하였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사랑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여 드리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자비를 입지 못한 그들이 우리를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위로를 받을 때 주님께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당신께서 거저 주시는 사랑이 우리를 통하여 드러나는 것이고, 그만큼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가난한 이들과 마주칠 때, 피하지 말고 그들에게 다가가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내밀면 좋겠습니다. 이때야말로 주님께 선물을 드리고 사랑을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기회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여김에 대하여.

 

“나, 주 너의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위의 레위기와 복음의 말씀을 종합하여 생각하면 우리가 하느님처럼 거룩한 사람이 되면 하느님처럼 거룩한 사랑을 할 것이고, 하느님처럼 거룩한 사랑을 한다는 것은 우리의 주님처럼 우리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레위기는 계명을 지키라고 하면서 “나는 주님이다.”라는 말씀을 후렴구처럼 반복합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인 내가 너의 주인님인 것이 맞다면 너흰 내가 명령한 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하느님이 계명으로 실천하라고 하신 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분이 하느님이신 것은 맞지만 나의 주님은 아닌 것이겠지요. 

그리고 이것을 비유한다면 바이든이 대통령인 것은 맞지만 그가 나의 대통령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고, 나의 대통령이 아니기에 아무리 명령해도 명이 서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아무튼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나의 주인으로 여기는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나의 주인으로 여긴다면 이웃을 너 자신처럼 여기라는 하느님 말씀대로 우리 이웃을 나 자신처럼 여길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여김,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웃을 자신처럼 여기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이웃을 주님처럼 여기면 그것은 거룩함입니다. 이웃을 쓰레기처럼 여기면 그것은 교만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쓰레기처럼 여기면 쓰레기더미에서 살 것이고, 주님처럼 여기면 누구를 만나든 주님과 함께 살 것이며 자신처럼만 여겨도 이 세상 사는 동안은 행복할 것입니다. 

그리니 이웃을 아무렇게나 여기지 말고 잘 여기며 살 것입니다. 여기기를 신중히 하고 소중히 하여 행복을 살고 천국을 살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하느님께서 마지막에 심판하셔야만 하는 이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은 이들은 당신도 그렇게 대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사람이고 예수님은 예수님이라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신 선물을 생각하면 그 말씀이 맞습니다. 그 선물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타이완의 유명 인터넷 개인방송 진행자, 첸넝추안 씨는 지난 12일 캄보디아 남부 시아누크빌에서 생방송을 진행했습니다. 많은 타이완 청년이 납치 감금, 장기 적출 등의 피해를 본 국제 인신매매 조직의 본거지를 찾아 잠입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군복을 입고 총을 든 사람에게 들켰고, 붙잡히는 장면은 고스란히 생중계됐습니다. 

방송은 그대로 중단됐고 첸 씨 가족들이 급히 나서 연락이 두절 됐다며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첸 씨는 몸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모습으로 다음날 방송에 등장했습니다. 전기 고문과 심한 구타를 당한 뒤 가까스로 탈출했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건은 크게 회자 됐고, 캄보디아 경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이틀 만에 고문, 구타 사건은 자작극으로 드러났습니다. 첸 씨가 동료 한 명과 함께 군복과 가짜 총, 대본 등을 준비해 조회수를 올릴 목적으로 가짜 영상을 찍었던 겁니다. 현지 경찰 브리핑에 수갑을 차고 나온 이들은 뒤늦게 사과하고 선처를 호소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캄보디아 1심 법원은 사회불안 조장과 국가 이미지 훼손 혐의로 이들에게 각각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형이 확정되면 현지에서 형기를 채운 뒤 추방될 예정인데 타이완에선 동정론보다는 국제적 망신이란 반응이 많습니다. 왜 타국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게 자국의 국가 이미지를 훼손하는 게 될까요? 왜 대부분의 타이완 사람이 부끄럽다는 반응을 나타냈을까요? 우리도 마지막 때에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으면 이런 심판을 받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다른 나라를 존중하지 않으면 자기 나라도 존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왜냐하면 나라의 이미지는 그 사람이 살던 나라가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어른들을 무시하면 그것은 그 부모도 그런 존재임을 보여주는 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양과 염소로 나뉘는 최후 심판 이야기입니다. 양은 자신도 모르게 가난한 이들을 예수님 대하듯 살았고 염소는 자신도 모르게 가난한 이들을 무시하며 살았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요? 

사랑은 정체성에서 나옵니다.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이는 부모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이유는 자신이 부모라는 정체성 때문입니다. 부모는 당신 사랑으로 자녀에게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이 부모로부터 당연히 받아야 했던 그 존중을 받을 대상임을 압니다. 다른 사람을 볼 때 사람으로 보이게 된 것은 모두 부모의 덕분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대하는 것은 그래서 부모에게 보답하는 일이 됩니다. 

반면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으면 부모도 무시하는 것이고 모든 사람을 하느님 자녀로 대하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이웃에게 잘 대할 수 없고 이웃을 무시하는 사람이 부모를 존중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이웃을 대하는 자세는 부모에게 받은 정체성 때문이고 부모를 존중하면 그 선물을 무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씨가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성장한다.”

내가 이웃을 대하는 자세가 곧 부모의 인성을 보여줍니다.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부모는 이 정체성을 주기 위해 피와 땀을 흘렸습니다. 좋은 부모에게서 나쁜 자녀가 나올 수 없습니다. 부모는 좋은데 그 아이의 인성이 나쁘다면 그는 분명 다른 이를 부모로 선택한 것입니다. 

성장하는 동안에야 괜찮겠지만, 끝까지 부모의 수준까지 사랑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부모는 결국 그를 자녀로 인정할 수 없게 됩니다. 자기 자녀를 모기와 함께 살게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양과 염소가 나누어집니다. 먼저 우리가 하느님 자녀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 모든 만물을 바라보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본당 교우들이 제게 늘 바빠 보인다고 하십니다. 단체 모임에 강복 주러 갈 때 거의 뛰다시피 다니는 모습을 보고, 또 무슨 일이든 서두르게 하는 모습을 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지금 제 책상을 보며 충분히 공감합니다. 빈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책상을 채우고 있는 책과 노트, 그리고 필기구들은 저의 바쁨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정표를 두 달 치씩 확인하며 사는 것 역시 바쁘게 사는 모습일 것입니다. 
 
부모님의 죽음 이후 그리고 아는 지인의 부고 소식을 계속 들으면서 제 죽음에 대해 오랫동안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오십 중반을 살았으니 분명한 것은 이제 살아온 날보다 죽을 날이 더 가깝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더 바쁘게 지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열심히 하려고 늘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쁘게 살던 중에, 운동하다가 허리를 삐끗했습니다. 허리가 아프니 다 힘들어졌습니다. 걷는 것도, 눕는 것도 심지어 양말 신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앉았다 일어나는 가장 기본적인 것도 힘들어서 천천히 또 아주 조심스럽게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겸손하게 됩니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면서 살았는데, 무엇이든 다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도록 이제까지 나와 함께해 주신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살아야 했습니다. 
 
맞습니다. 저의 능력과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떠올리고 따른다는 것은 그만큼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영광스러운 심판관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심판을 받게 되는지를 보여주시지요. 즉,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가진 것 없는 이들에 대한 사랑과 정의의 실천에 따라 심판받게 된다고 하십니다. 성경이나 교리 지식, 신심 행위가 심판 기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 지금까지 믿고 고백한 신앙을 실제 이웃에게 어떻게 실행했는지가 그 기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교만함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묵묵히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능력과 힘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분의 기준을 따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어렵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하여 정성껏 기도와 희생, 봉사를 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한 우리의 사랑이 결국 나의 구원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그저 살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의미 있는 인생을 만들려고 태어난 것이다.

- 헬라스 브릿지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서 부터 준비된 나라를 보여주십니다. 사랑을 받아먹고 사는 우리들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며 결코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보살피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피와 살을 나누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빚진 목숨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삶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쓰러진 자들을 가장 먼저 일으켜 세우시며 우리를 위해 준비된 나라를 보여주십니다. 우리에게 밥을 주시고 물을 주시고 우리를 따뜻이 맞아들이시고 옷을 주시고 돌보아 주시고 감옥에 있을 때 제일 먼저 찾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가장 작은 이들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이십니다. 소외된 이들을 더 다정하게 더 따뜻히 반겨주시는 사랑의 실천이 예수님께 해 드리는 것이며 영원한 생명의 참된 길입니다. 사랑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사랑이 필요한 가장 작은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나라의 삶입니다. 

먼저 하느님 나라를 선택하는 우리들이길 기도드립니다. 우리를 위해 준비된 나라는 여기 이곳입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진심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여기가 바로 준비된 나라 구원입니다. 실천을 잃어버린 우리들에게 실천을 되찾아 주시는 사순시기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