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면 나 그에게 대답하고 그를 해방시켜 영예롭게 하리라. 오래오래 살도록 그에게 복을 내리리라.
전능하신 하느님, 해마다 거룩한 성사로 사순 시기를 지내는 저희가 그리스도의 신비를 더욱 깊이 깨달아 회개의 삶으로 그 열매를 맺게 하소서.
2024년 2월 18일 사순 제1주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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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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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창세기 9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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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9장 13절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창세기 9,8-15)
홍수에서 구원된 노아와 맺은 하느님의 계약 - 제 2독서
(베드로 1서 3,18-22)
이제는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 오늘 복음
(마르코복음 1,12-15)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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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마르코복음
1장 12-15절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그때에
12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13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매일미사 평화방송
2024년 2월 18일 05:00
박창환 가밀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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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스튜디오 주일미사
2024년 2월 18일 11:00
원당동성당 이병근 대건안드레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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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8일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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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최정훈 바오로 신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이 유혹을 이겨낸 방법 두 가지.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신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사순 제1주일에 이 유혹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는 아마도 사순 시기에 새롭게 마음을 잡고 회개의 삶을 살아 보려는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사탄의 유혹을 잘 이겨 내도록 도우려는 의도일 것입니다.
우리를 죄악에 떨어뜨리려는 사탄의 유혹은 평생 계속될 것입니다. 사라지지 않는 유혹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하여야 할 것은 유혹을 받는 것과 그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유혹을 느끼는 것은 우리 탓이 아니기에, 거기에 동조하지만 않는다면 어떠한 책임도 없습니다. 오히려 유혹을 뿌리치고 이겨 낸다면 더욱 풍성한 은총을 받고 좀 더 성숙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유혹을 이겨 내는 몇 가지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유혹을 받을 때, 곧바로 하느님께 의탁하고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떠올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큰 힘을 줍니다. 기도에 지치지 않는다면 유혹에 절대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그 유혹을 영성 지도 신부나 동반자에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입 밖으로 언급된 유혹은 이미 절반은 정복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유혹이 계속 괴롭힌다면, 마지막 남은 방법은 저항하며 버티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끝까지 끈기 있게 저항한다면, 사실 사탄은 더 이상 어찌할 방도가 없습니다. 사탄은 유혹할 뿐이지 실제로 동조하거나 죄를 짓는 것은 ‘나’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지향과 결심을 가지고 사순 시기를 시작한 우리에게 많은 유혹이 덮쳐 올 것입니다. 이때 주님의 은총과 성인이 가르쳐 주신 방법들로 슬기롭게 이겨 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회개란 지옥의 원인이 나 자신임을 확실히 아는 것
오늘 복음은 왜 복음을 믿기 위해 회개가 필요한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받으셨습니다. 여기에서 유혹은 한 순간 받는 무엇이 아니라 매 순간 이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본래 유혹은 매 순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것이 유혹이었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를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유혹을 이기셨더니 세상을 구원하는 자가 되시고 결국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 부활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우리도 이 길을 따르라고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은 나 자신을 그것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는 회개가 아니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랑은 희생의 결단이 아니면 소용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사랑에게 지옥은 나 자신입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쓴 『닫힌 문』(No Exit)이란 연극에서 왜 타인이 지옥이 되는지 설명합니다.
설정은 신비한 방으로, 주인공들이 죽음 이후 일종의 사후 지옥의 역할을 합니다. 이 방은 거울, 창문 또는 탈출 수단이 없습니다. 그리고 세 명의 캐릭터가 소개됩니다.
그들은 죄가 있어서 죽어서 이 방으로 들어왔지만, 서로 자기를 합리화하고 인정받으려 하고 사랑을 갈망하기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공간이 됩니다. 하지만 혼자 외롭게 되는 게 더 큰 고통이라 여기기에 여전히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며 삽니다. 사르트르는 이러한 세상이 지옥이라 본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지옥이 타인의 탓일까요? 타인에게 집착하는 자기 마음 탓이 아닐까요? 그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기에 스스로 자기를 지키려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사랑은 하느님이고 나는 그 사랑에 내 목숨을 투자합니다. 그러면 부활이 있습니다. 이 복음은 죽음의 보상을 줄 신의 존재를 거부할 때 의미를 잃습니다.
인도 영화 ‘삼사라’에서 사람은 누구나 물 한 방울이 주어져 있고 그것을 마르지 않게 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도를 닦는 것임을 말합니다. 결론은 물 한 방울이 마르지 않으려면 바다에 던져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 바다란 ‘사랑’입니다. 사랑은 나 자신을 사랑에 투자하는 일입니다. 사랑은 마치 사막의 펌프처럼 마중물이 필요합니다. 그 한 방울의 물을 지키려는 마음이 지옥입니다. 그것을 지키면 펌프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막 한 가운데 폐허가 된 주유소가 있고 그곳엔 물 펌프 하나가 유일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목이 말라 실신할 지경에 이른 나그네가 주유소의 물 펌프를 발견하고 달려갔습니다. 거기엔 바가지의 물과 함께 다음과 같은 내용의 팻말이 있었습니다.
“이 펌프 밑에는 엄청나게 시원한 지하수가 있어요. 누구든지 이 펌프 물로 갈증을 해소하세요. 명심하세요. 펌프 앞에 놓인 바가지의 물은 절대로 마시면 안 돼요. 이것은 ‘마중물’. 잊지 마세요. 다음 분을 위해서 ‘마중물’을 꼭 채워놓고 가세요!”
이 한 방울의 물을 바치는 게 에덴동산의 선악과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방해하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뱀입니다. 지옥은 이 뱀, 곧 나 자신에게서 시작됩니다.
탈출기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파라오에게서 탈출시키려 합니다. 모세가 오기 전까지 그들은 자신들이 파라오 때문에 지옥을 사는지도 몰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파라오가 곧 지옥이었음을 깨닫게 되지 모세를 믿게 됩니다.
가나안 땅, 곧 하느님 나라는 자기 안의 파라오를 배신함으로써 얻는 에너지를 갈아 넣을 때 도달할 수 있는 곳입니다. 사랑은 나의 생명을 내어주는 일이고 생명은 곧 피입니다. 돈도 피이고 음식도 피이며 명예도 피입니다. 이 피를 갈아 넣지 않으면 사랑이 나오지 않습니다.
회개는 지혜의 빛이 요구되고 그 지혜의 빛으로 사랑의 삶을 살겠다는 착한 뜻을 만들고 착한 뜻은 그것과 반대되는 나의 뜻을 보이게 합니다. 그래서 나의 뜻에서 휙 돌아서서 하느님의 뜻을 향하게 될 때 복음을 믿게 된 것입니다.
나를 가만히 두면 지옥에 머물게 되어 나를 사랑을 위해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마르지 않는 사랑으로 충만해진다는 복음을 믿을 수 있게 됩니다. 나 자신이 지옥의 땅이고 복음은 하늘에 오를 수 있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예전에 이스라엘 성지 순례 다녀왔을 때가 생각납니다. 순례 코스 중에서 광야 체험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광야에서 몇 시간을 보내면서 광야가 어떤 곳인지 느껴보는 것입니다. 광야는 사막처럼 아무것도 없는 곳이 아닙니다. 물론 매우 덥고 따가운 햇빛을 맞으면서 살아야 했지만, 약간의 풀도 있고 또 물도 구할 수 있기에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와 같은 풍요로움은 전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몇 시간 체험은 가능해도, 며칠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없어도 너무 없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 하느님 체험을 위해 많은 은수자가 움막을 치고 살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훨씬 더 많았다고 하니, 사람들은 하느님 체험을 위해 광야로 떠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광야에서 하느님 체험이 가능할까요? 단순히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사탄의 유혹을 받은 장소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했기 때문일까요?
세상과 동떨어진 이곳에서는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볼 것이 너무 많습니다. 즉, 정작 하느님을 보는 데는 소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광야는 볼 것이 없어서, 하느님께 집중하는데 최고의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은수자가 이곳을 찾았던 것입니다.
광야는 피해야 할 곳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찾아가는 곳이 되어야 했습니다. 반드시 이스라엘을 찾아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도 세상에 파묻혀서 광야처럼 고통과 황량함을 느끼게 될 때가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을 만나야 할 때였습니다.
예수님도 광야로 가셨습니다. 가뜩이나 불편하고 황량함이 가득한 광야인데, 여기에 사탄의 유혹까지 받게 되십니다. 그것도 자그마치 40일 동안을 말이지요. 어려운 장소에서 더 어려운 시간을 겪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일을 방해하고 싶은 사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유혹받으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도 광야에 가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 역시 유혹받을 수 있다는 것이고, 우리 역시 광야와 같은 고통과 시련의 장소로 불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도 받으신 것을 왜 나는 안 된다고 말할까요?
그 시간이 있었기에 하느님의 일인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실 수 있었습니다. 이는 하느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인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구원을 위한 기쁜 소식이지요. 그런데 정작 그 주인공인 우리는 광야와 같은 곳을 피하면서 철저하게 쉽고 편한 것만을 쫓았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는 인생은 메마른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
- 무라카미 하루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광야는 단지 공간만이 아니라 하느님을 찾는 삶의 매순간이며 하느님을 향하는 우리의 여정입니다. 사람의 광야는 사람입니다. 광야의 풍경이 우리들 풍경입니다. 광야에도 길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길을 알려주십니다. 하느님을 품고 사는 삶입니다. 들짐승의 모습도 쓰다듬어 함께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광야는 하느님을 간절하게 찾는 우리의 영혼입니다. 그래서 광야는 은총이고 선물일 수 있습니다.
감추어져 있던 우리 마음을 만나는 사순입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이끄셨기 때문입니다. 광야가 거울이 되어 우리 내면을 보여줍니다. 광야가 가리키는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우리의 신앙을 광야를 통해 반성합니다. 둘로 나누어지지 않는 광야와 은총입니다. 거기서 시작되는 믿음의 여정입니다. 광야에도 하느님이 계시고 유혹 중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은총의 사순시기가 하느님 안에서 우리자신을 만나는 회개의 시간이길 기도드립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끌고 가시는 회개이며 복음의 길입니다. 복음을 믿는 가장 따뜻한 마음의 사순 제1주일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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