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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1/20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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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온 세상이 당신 앞에 엎드려 당신을 노래하게 하소서. 지극히 높으신 분, 당신 이름을 노래하게 하소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니 저희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어 이 시대에 하느님의 평화를 주소서.

 

2024년 1월 20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월 2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주간 토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사도행전 6장 14절)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사도행전 6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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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6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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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무엘기 하권 1,1-4.11-12.19.23-27)
    어쩌다 용사들이 싸움터 한복판에 쓰러졌는가?

  • 오늘 복음
    (마르코복음 3,20-21)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월 20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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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마르코복음
3장 20-21절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20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21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매일미사 평화방송

 

 

2024년 1월 19일 05:00
김윤욱 루카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7:20

 

 

 

그 외 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김재덕 베드로 신부

 

진심을 보려는 마음

 

“사실 예수님의 형제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7,5). 

아마도 요한 복음의 이 말씀이 오늘 복음 말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가 될 것 같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친척들은 그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 커서 직장도 구하지 않고, 어느 날 집을 나가더니, 어부들과 패거리를 만들어 그들의 스승이라고 말하며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과 죄인들에게 다가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면, 사람들의 소문만 듣고 예수님을 평가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한 번만이라도 진심으로 들어 보았다면, 그분의 친척들은 예수님께서 미치셨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장 가까워 보이는 사이가 그 누구보다도 멀리 떨어진 사이가 될 수 있습니다. 잘 알고 있다는 선입견이 그 사람 안에 담겨 있는 진심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사람의 진짜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며, 들으려는 마음까지도 없애 버립니다. 

가깝다고 생각되는 관계일수록, 또 소중한 관계일수록, 잘 안다는 선입견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누군가에 대하여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이 그를 가장 모르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잘 들어주고 진심을 보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미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집으로 가셨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오늘 주님께서는 집으로 가셨다고 복음은 말합니다. 

예수님의 집이라! 

그런데 바로 이어서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붙잡으러 옵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의 집은 고향 집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저기 복음을 선포하러 다니셨으니 당신의 집이 따로 있을 리 없고 우리네 집을 당신 집으로 삼으셨을 겁니다. 

즉시 프란치스코가 떠오릅니다. 그는 자신과 형제들의 가난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형제들은 집이나 거처 그 어떤 것도 자기 소유로 하지 말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순례자와 나그네처럼 동냥하러 다닐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스스로 가난해지셨으니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자기 소유로 하지 말라고 하면 그만인 것을 프란치스코는 굳이 집과 거처의 가난을 꼭 집어서 얘기하는데 그것은 집과 거처의 가난을 특히 더 강조하기 위함이겠습니다. 

집도 없고 정처도 없는 것이 주님과 프란치스코의 공통점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이 가난을 가난 중에서도 최고의 가난이라고 하고, 이 가난이야말로 물질 면에서도 가난하게 하고, 덕행 면에서도 가난하게 하며, 하늘나라의 왕과 상속자가 되게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가난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의 행복 선언의 말씀처럼 이 세상에서 가난할 때 하느님 나라를 소유하고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소유하기 때문이지요. 

가난이 이러한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 살며 저세상 행복을 위해 소유를 포기하기 쉽지 않고, 저세상을 향해 떠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습니다. 

삶이 안정되면 될수록 더 떠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안정은 우리 인간이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고, 반대로 안정이 깨질까 또는 잃을까 두려워하는 불안은 우리 인간이 두려움과 함께 제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정되면 될수록 안주하게 되고 떠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집과 거처를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집과 거처를 포기할 때 우리는 가장 확실하게 가난할 수 있고, 나만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도 천국에 가자고 초대하는 복음 선포의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하기에 우리도 주님과 프라치스코처럼 집과 거처를 포기하는 복음적 불안정을 일부러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정된 집과 거처를 포기하고 여기저기 떠도는 주님과 프란치스코를 사람들은 미쳤다고 하고 가족들은 그런 선택에 더더욱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미쳤다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거나 정신이 나간 것을 의미하지요. 세속의 눈으로 보면 주님과 프란치스코의 선택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압니다. 정신이 나간 것이 맞는데 그것은 세속의 정신이 나간 것이고, 세속의 정신이 나간 대신 기도와 헌신의 정신을 차린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사실 주님과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께 미친 분들입니다. 하느님께 미친 분들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미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개의치 않으시는 분들이 바로 주님과 프란치스코이고 우리는 그분들의 정신을 따르려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프란치스코의 권고대로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내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삶이 행복하여지려면 묵상을 해야 하는 이유

 

오늘 복음 말씀은 매우 짧습니다. 짧지만 아주 대조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나오죠. 예수님을 좋아하는 군중들과 예수님을 싫어하고 미쳤다고 여기는 예수님의 친척들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께서 유다 지도자들에게 미움을 받기 때문에 자기들에게도 그 영향을 받을 것 같아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좋은 일을 하시는 것들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보면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나의 선택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 사람의 부정적인 면보다는 좋은 면을 더 많이 보면 됩니다. 어쩌면 이 과정이 묵상 기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데나리온 씩 받기로 약속하고 착한 포도밭 주인에 의해 고용된 일꾼들은 내가 일한 시간보다 한 데나리온의 가치를 더 묵상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일과 주인이 감사하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우리 뇌는 잘 속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아주 신 레몬 반을 잘라서 한 입을 딱 깨물어서 레몬즙이 여러분의 입에 가득히 차는 그런 상상을 해 보십시오. 내가 직접 지금 레몬을 먹은 게 아닌데, 상상만 했는데도 뇌는 진짜 먹는 건 줄 알고 침이 나오게 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어떤 상상을 많이 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사람이나 어떤 사건의 좋은 이미지가 쌓이기도 하고, 나쁜 이미지가 쌓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게 된 것은 그 사람에 대해 내가 안 좋은 생각으로 자꾸 씌워서 그렇지, 뇌를 속여서 그런 사건을 좋은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마담 프로스트의 비밀 정원’이라고 하는 영화가 있어요. 아기는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기억과 두 분이 돌아가신 기억으로 말을 못 하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두 이모의 집에서 피아노를 쳐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옆집에 마담 프로스트라고 하는 분이 있는데, 이분이 약간은 좀 마술적인 행위를 합니다. 약을 타서 어렸을 때의 음악을 들려주면 그때의 기억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처음은 엄마가 아빠에게 폭행당하는 기억이 있었지만, 사실 두 분은 레슬링으로 돈을 버는 분들이었습니다. 집에서 연습하고 있었던 것이고 실제로 두 분은 매우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부모님은 사고로 한 번에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기억은 어쩌면 우리가 조작한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영화 ‘기억의 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잊기 위해 자기 스스로 기억을 지워버리기도 합니다. 인간은 그렇게 자기를 속이며 사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 주셨다면 그것을 좋은 목적으로 쓸 수도 있어야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오프라 윈프리입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자기의 삶이 너무 부정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살기가 싫었는데 감사 일기를 쓰다가 보면 보니까, 삶에 감사한 것들이 더 많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을 보는 시각이 바뀐 것이고 하루하루 ‘오늘은 어떤 좋은 일이 생길까?’의 기대감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기 위해 담배에 안 좋은 이미지를 덮어씌웠습니다. 담배 때문에 군대에서 고생한 생각, 담배를 피우며 멋지게 보이려다 기침해서 창피당한 기억들. 담배를 굳이 피워서 그런 기억을 되새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니 담배를 안 피우게 되었습니다. 

어떤 것을 좋게 보거나 나쁘게 보거나는 우리 선택입니다. 틱 장애 아이 엄마의 감사 일기: “아이의 틱이 시작된 후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뭐가 힘들었는지 어떨 때 행복한지 아이의 마음에 관심을 두고 들어주려고 하게 되니 감사합니다.” 감사 일기를 안 썼으면 아이가 틱이 생긴 순간은 인생에서 아주 짜증 나고 화가 나는 순간이 됩니다. EBS, ‘엄마가 울었다’에서 아이들은 한 달간 부모님을 칭찬하라는 숙제를 받습니다. 그렇게 하니 집이 천국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선택입니다. 그분의 무엇을 더 기억해야 그분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분께서 나를 위해 하신 희생입니다. 십자가를 묵상하면 그만큼 그분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기억은 바뀔 수 있습니다. 아니 바꿀 수 있습니다. 좋은 많은 면 중에 안 좋은 것 하나만 가지고 예수님을 미워했던 그분의 친척들처럼 되면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읍시다. 그러면 좋은 면이 많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했다.

 

30년 동안 심리 실험을 통해 공감 정확도를 연구해 온 사회심리학자 윌리엄 이케스에 따르면, 사람들의 평균적인 공감 정확도는 100점 만점에 22점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즉, 잘 모르는 사람의 마음을 단 22%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친한 친구의 마음은 얼마나 알 수 있을까요? 40점을 넘지 못했습니다. 가족 안에서도 50점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갈등과 분쟁이 생깁니다. 어떻게 내 마음을 몰라주냐는 것이지요.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산 부부들도 공감 정확도는 그렇게 높지 않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 읽기가 부정확하다는 인정해야 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나를 보고서는 인상을 씁니다. 이때 ‘내게 기분 나쁜 일이 있음이 분명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것도 나를 보기 싫어서 피했기 때문일 거야.’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 친구는 급하게 화장실을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시간을 두고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여러 가능성을 보지 않고 부정적인 마음에 갇히면 마음 읽기는 더 불가능해집니다. 그리고 이 부정적인 마음이 쌓이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삐딱한 마음이 되고 맙니다. 
 
주님의 이끄심도 이렇습니다. 주님과의 공감 정확도가 낮아질수록, 주님의 사랑보다 불평불만의 이유만 늘어놓게 됩니다. 주님과 더 멀어지고, 주님의 은총과 사랑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서 더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과의 공감 정확도가 높은 사람은 힘든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주님의 뜻을 찾으며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전교 여행 중이었습니다. 군중이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글쎄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찾아옵니다. 예수님께서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붙잡으러 나선 것입니다. 아마도 죄인들과 먹고 마신다는 소문,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소문, 마귀 두목 베엘제벨의 힘을 빌려서 마귀를 쫓아낸다는 소문 등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예수님의 활약상에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예수님을 보는 것이 아닌, 미친 사람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단정 지었던 것입니다. 
 
주님과의 공감 정확도는 얼마나 될까요? 주님의 뜻을 보지 않고, 세상의 관점으로만 바라봤기에 공감 정확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잘 아는 친척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을 가장 모르는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과의 공감 정확도를 높이는데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과의 마음에 함께하면 할수록 기쁨과 행복의 마음도 커질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중요한 건 일정표에 적힌 우선순위가 아니라 당신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 스티븐 코비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따라 어지러운 소문도 빠르게 퍼져나갑니다. 소문의 풍경들이 실은 우리마음의 현주소입니다. 예수님과 상관없는 것에 무성한 소문만 있을 뿐입니다. 소문을 소문으로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픕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있는 복음을 선포하시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소문에 공명합니다. 어리석음에 우리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살과 피가 없는 소문의 시작과 끝은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는 무책임한 농담으로 전락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미쳤다는 소문에도 상관없이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소문은 언제나 소문을 퍼뜨린 본인 당사자인 자기자신을 빗대어 전개되는 자기고백과 연결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듯 소문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 마저 모욕하는 어리석은 우리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하시며 사람의 마음을 구원하십니다. 이와 같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것은 사람을 깎아내리는 소문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따뜻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소문의 정글을 지나면 제대로 보게되는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소문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어리석고 부정적인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무언지를 다시금 묻고 찾는 기도의 시간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호기심이 아닌 진정한 사랑을 의심이 아닌 진정한 믿음을 찌라시가 아닌 진정한 희망을 나누는 소중한 사람의 오늘이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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