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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1/16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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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온 세상이 당신 앞에 엎드려 당신을 노래하게 하소서. 지극히 높으신 분, 당신 이름을 노래하게 하소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니 저희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어 이 시대에 하느님의 평화를 주소서.

 

2024년 1월 16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월 1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주간 화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사무엘기 상권 16장 7절)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사무엘기 상권 16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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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기 상권 16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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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무엘기 상권 16,1-13)
    사무엘이 형들 한가운데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붓자 주님의 영이 그에게 들이닥쳤다.

  • 오늘 복음
    (마르코복음 2,23-28)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월 16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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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

 

 

마르코복음
2장 23-28절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23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26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28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매일미사 평화방송

 

 

2024년 1월 16일 05:00
양두승 미카엘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9:27

 

 

 

그 외 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김재덕 베드로 신부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바리사이들은 배가 고파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한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합니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그런데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은 것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규정은 없습니다. 바리사이들이 정하여 놓은 규정입니다. 그들은 마치 “안식일의 주인”이 되어, 그들이 정하여 놓은 규정으로 하느님을 자비가 전혀 없으신 분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을수록, 교회 안에서 중요한 직분을 받을수록 꼭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자신이 결코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들처럼 하느님과 이웃을 더욱 사랑하도록 주어진 법으로 이웃들을 죄인으로, 그리고 하느님을 자비가 전혀 없으신 분으로 전락시키게 됩니다.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을 때까지 모든 과정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바로 이 아이다. 일어나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

교회에서 받은 모든 직분과 규정, 그리고 교회의 모든 일의 주인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맡겨 주신 일을 성실하게 한 다음에,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라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자신이 주인이 되려는 이들에게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며 오늘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주인이 되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우리에게는 세 가지 날이 있습니다. 

일요일,
안식일,
주일. 

신자인데도 주일이라고 하지 않고 일요일이라고 하고, 그래서 이들은 주일을 일요일로 지내는 사람들입니다. 이 정도만 말씀드려도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아시겠지요? 

그런데 ‘신자인데 주일을 지내지 않고 안식일로 지내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얘기하면 그 말이 뭔지, 그 차이가 뭔지 모를 분 있겠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사람’과 ‘신약의 사람’ 차이를 말하는 것이지요. 구약의 사람 곧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안식일을 지냈지만 신약의 사람 곧 주님을 믿는 사람은 주일을 지냈잖습니까? 

사실 주일인데도 일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들에겐 주일이 그저 일요일일 뿐입니다. 

이 말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먹고 살 만한데도 욕심 때문에 일하는 사람이나 더 나아가 주일이 주님의 날이라는 의식이 없어 일하는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주일에 일을 쉬는 사람도 많습니다. 요즘 들어 삶의 질을 따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합니다. 이런 추세를 드러내듯 많은 사람이 주일이면 캠핑카를 끌고 놀러 다닙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에게 주일은 그저 일을 쉬는 것이요, 자기 삶을 넉넉하게하기 위해 그저 일을 쉬는 것이지 하느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정도는 못 됩니다. 이에 비해 하루를 주님 안에서 안식을 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정도만 돼도 신앙적으로 꽤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 말씀은 이것 이상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루를 일하지 않는 날로 지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주님 안에서 쉬며 하루를 거룩히 지내는 것도 뛰어넘는 말입니다. 

의식 혁명입니다. 의식을 완전히 바꾸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씀은 어떤 것도 인간의 주인일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 주인 의식을 가지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일의 노예가 되지 말고 창조적으로 살고, 욕망의 노예가 되지 말고 사랑하며 살고, 관습이나 습관의 노예가 되지 말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의 정신으로 살고, 주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나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정신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이 되어 오심은 사람이 하느님의 아들이 되게 하기 위함이고, 그래서 그 무엇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어 살게 하기 위함임을, 다시 한번 깨닫고 감사드리고 그렇게 살기로 결심하는 오늘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부부임을 자주 잊을 때 더 부부가 된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에 밀이삭을 뜯어먹는 제자들을 두고 예수님께 따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을 두둔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유대인들에게 안식일 법은 상당히 엄격합니다. 하루 동안 걸을 수 있는 발걸음 숫자가 정해져 있고 엘리베이터 층수도 누를 수 없으며 에어컨이 꺼져도 다시 켤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집중하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백성이 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집중할수록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법에 집중할수록 법을 지키지 못하게 되고 결혼에 집중할수록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힘들어집니다. 경계에 집중할수록 차는 경계선 밖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만약 물고기가 자기를 바라보는 고양이가 무서워 어항 유리가 튼튼한지만 집중하고 있다면 그 안에서 다른 물고기나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까요? 법은 이 어항과 같습니다. 그냥 그 안에 머물면 되지 그것에 신경 쓰면 정작 법을 주신 분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왓챠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의 줄거리입니다. 창욱은 40대입니다. 그는 번역가와 인문학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출판사 사장이고 남편은 아내의 글솜씨가 맘에 안 들고 남편은 아내가 가정에 소홀한 것 같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습니다. 

둘은 얼마간의 별거를 하게 되었고 남자가 아내 없이 사는 것이 너무 편했는지 먼저 이혼장을 들고 왔습니다. 아내도 도장을 찍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때 아내는 말기 대장암 판정을 받습니다. 소화기 문제로 먹는 것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녀는 창욱에게 매일 요리를 해달라고 부탁하는데, 창욱은 라면밖에 할 줄 모릅니다. 

창욱은 의리 때문인지 당분간 아내를 위해 요리를 배워가며 하기로 합니다. 창욱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요리해보지 않았지만, 오직 아내의 소중한 한 끼를 위해 좋은 식재료와 건강한 레시피를 개발하는 데 온 힘을 쓰며, 서투르지만 조금씩 가족의 소중한 의미를 깨달아가기 시작합니다. 

물론 아내는 죽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사랑해주는 남편과 아들을 바라보며 슬프지만, 괜찮게 죽습니다. 이 모든 것은 부부임을 잊고 사랑에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부부라면 여자가 음식을 하고 남자가 돈을 버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평소 삶은 이 반대였습니다. 남편이 가정일을 열심히 한 것은 아니지만, 바깥일에만 열중하는 아내에게 불만을 품었었습니다. 아내도 자신보다 돈을 못 버는 남편에게 불만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는 ‘부부는 이래야 한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부부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선일 뿐입니다. 차의 양쪽 차선에 집중하면 차가 뒤뚱거리다 결국엔 차선을 넘습니다. 

운전을 잘하려면 차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중앙을 봐야 합니다. 그러면 차선을 넘는 일이 없습니다. 부부가 되었다면 더는 부부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만 생각하면 됩니다. 상대를 어떻게 행복하게 해줄까만을. 

결혼은 왜 하는 것일까요? 더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식으면 어떨까요? 사람은 결혼이란 틀에 맞추기 위해 살아갑니다. 이것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모든 것은 사랑을 지향합니다. 이 지향을 잊으면 안식일 법을 위해 사람이 희생하다 결국엔 지쳐 그것마저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모든 율법은 금붕어에게는 어항과 같고 운전자에게는 차선과 같습니다. 그 안에 들어와 있다면 그것을 만들어준 이유, 곧 사랑만을 생각하며 행복하게 살면 됩니다. 그러면 선을 넘지 않습니다. 율법주의자가 되지 맙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자기 SNS 계정에 사람들은 많은 사진을 올립니다. 맛집을 찾아가 음식 사진을 찍고, 예쁜 카페에 가서 인증사진을 찍는 것도 필수라고 합니다. 멋진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역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사진을 SNS 계정에 올려서 ‘좋아요’ 버튼이 눌러지면 기뻐합니다. 결국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사진을 올리는 것이 아닐까요? 즉, “나 이렇게 재미있게 살고 있다.”, “나 잘살고 있다.”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저 역시 2,000년 초반부터 인터넷 안에서 활동하며 많은 사진을 올렸습니다. 정보 제공이라는 목적이었지만, 요즘 사람들처럼 잘살고 있음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비밀 없는 삶이 사제에게 필요하다면서, 사실은 저를 드러낼 수 있는 것만을 인터넷에 올리곤 했습니다. 
 
지금은 제 사진을 잘 올리지 않습니다. 비밀 없는 삶은 사진을 올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냥 마음에 담는 사진이 더 중요함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를 내려놓으니 훨씬 편안한 마음입니다. 새벽 묵상 글을 올린 뒤에도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하지 않습니다. 오탈자가 있다고, 문장이 이상하다며 사람들이 메일이나 쪽지 등을 보내시고 댓글에 글도 남겨주시지만, ‘뭐 어때?’라는 생각으로 잘 확인하지 않습니다. 
 
편하게 사는 삶은 나를 드러내는 삶이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면서 내면의 나를 성숙시키는 삶이 가장 편안한 삶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겸손을 강조하시고 또 직접 모범을 보여주신 이유도 우리가 이 세상을 편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신 것이 아닐까요? 따라서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과감하게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드러내기보다 주님을 드러내는 데 더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어 먹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서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라고 항의합니다.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즉, 자기들은 이렇게 열심히 안식일 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고, 그에 반해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형편없는 사람인 것처럼 취급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람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임을 강조하십니다. 그런데 안식일에서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열심’만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우리도 남은 틀렸고 나만 옳다는 식의 생각을 갖곤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편하게 살지 못합니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의 삶을 살 때, 주님과 함께하면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소통 방식을 바꾸면 사회가 바뀐다.

- 클레이 셔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안식일을 말하기 전 우리의 사랑을 먼저 반성합니다. 안식일이 나누어야 할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 안식일도 있습니다. 사람을 모르면 안식일도 모르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받아들이면 안식일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람을 잃으면 안식일도 잃습니다. 

사람이 되는 것이 안식일의 기본정신입니다. 사람을 보는 것이 안식일을 만드신 하느님을 뵙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완성하시는 분은 사람의 아들이십니다. 사람의 아들 예수님께서도 안식일을 소유하거나 독점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잃어버린 한 사람을 찾아 길을 나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안식일입니다. 안식일 규정에 사람이 갇혀있을 수 없음을 다시 일깨워주십니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자꾸 잊고 삽니다. 마음을 키우는 것이 안식일의 마음입니다. 모두가 살아내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 진 우리들에게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의 아들과 함께하는 휴식이며 나눔이며 행복입니다. 사람이 행복하면 안식일도 행복합니다. 사람을 위한 사람을 통한 사람의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을 만나는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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