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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10/05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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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짓고 당신 계명을 따르지 않았기에, 당신은 진실한 판결에 따라 저희에게 그 모든 것을 하셨나이다. 당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저희에게 크신 자비를 베푸소서.

전능하신 하느님, 크신 자비와 용서를 베푸시고 끊임없이 은총을 내려 주시어 약속하신 그곳으로 저희가 달려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2023년 10월 5일 (목)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0월 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6주간 목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주님의 가르침은 참되어 어리석음 깨우치네. (시편 19,8)

 

주님의 가르침은 참되어 어리석음 깨우치네. (시편 19,8) 성경말씀카드 시편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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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9장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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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느헤미야기 8,1-4ㄱ.5-6.7ㄴ-12)
    에즈라가 율법서를 펴고 주님을 찬양하자 온 백성은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였다.

  • 오늘 복음
    (루카 10,1-12)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를 것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10월 5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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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루카복음
10장 1-12절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를 것이다.

 

그때에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10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길에 나가 말하여라. 

11 
‘여러분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 버리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0월 5일 (목)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송정섭 시몬 신부

 

📌 교황님 10월 기도지향 00:22

📌 미사시작 00:37

📌 강론시작 08:13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0월 5일 (목)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 미사시작 00:26

📌 강론시작 07:42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0월 5일 (목)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진만 안젤로 신부

 

가거라...

 

어제 복음에서 ‘따름’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다면, 오늘 복음의 중심 주제는 ‘파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서 제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다음 제자들을 파견하시어 당신께서 걸어가실 길을 준비하게 하십니다.

제자들이 파견되어야 하는 이유는 ‘수확할 것이 많은데 일꾼이 적기’ 때문입니다(10,2-3 참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하느님께 청할 것을 요청하시며,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제자들은 파견됩니다. 선교의 결과를 농작물의 추수 개념을 빌려 설명하는 방식은 다른 복음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마태 9,37-38; 요한 4,36-38 참조).

예수님께서는 이미 앞서 9장 1-6절에서 열두 제자들을 보내시며 복음 선포의 사명을 부여하셨고, 추가로 일흔두 명의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유일하게 루카 복음서에서 제자들의 파견에 대한 이야기를 두 번에 걸쳐 다루고 있습니다. 

이로써 복음서 저자는 제자들의 파견과 복음 선포 임무가 열두 제자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을 증언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일흔두 명의 제자 파견과 더불어 제자들이 파견되는 장소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은 루카 복음서 저자가 여기에서 유다를 넘어 모든 민족들을 향한 선교를 준비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우리도 복음 선포의 사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요청합니다. 복음 선포는 예수님 시대의 과제일 뿐 아니라, 오늘날 교회에게 주어진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를 파견하십니다. 

“가거라.”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평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미국 신용 정보 회사 ‘던 앤드 브래드스트리트’에는 실패의 벽이 있습니다. 그곳의 안내문에는 이러한 글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실패한 순간을 자세히 기록하세요.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쓰세요.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적고 사인하세요.” 
 
이 방식을 따른 사람은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 실패에 대해 고백하지 않은 사람은 큰 좌절과 절망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구나 자기 삶에 실패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실패는 있을 수밖에 없으며 실제로 태어나면서 계속 실패를 경험했던 우리입니다. 아기가 처음 걸음마를 시작할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얼마나 많이 넘어졌습니까?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따라서 실패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보다는, 이 순간을 한 단계 자기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도 인간 세상의 눈으로는 실패로 보였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었습니다. 이 순간 사람들 모두가 예수님이 실패했다고 단정했습니다. 악에 패해서 이제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패로 보이는 수난과 죽음이 그냥 단순한 끝이 아니었습니다. 영광스러운 부활로 이어져 우리에게 구원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실패를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실패를 정면으로 마주 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실패로 보이는 삶 안에서도 예수님 사랑 안에서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다른 일흔두 제자도 파견하십니다. 그들은 복음을 선포하고 위로와 평화를 전하라고 세상에 파견됩니다. 분명 중요한 파견입니다. 또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라고 하시면서 걱정도 가득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에게 가난과 검소한 삶을 강조하십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세상의 것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께서 주신 평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아서 이 전교 여행이 실패로 끝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평화를 간직한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실패할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의 외침처럼, 하느님 나라가 우리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그 나라는 세상의 것으로는 도저히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주님의 평화를 간직한 사람만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인간은 자신이 행복하면 차츰 그 행복을 크게 생각하여 남에게 나누어주고 싶어한다.

- 벤담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가라는 명령 앞에서 우리는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오늘 복음은 일흔두 제자가 파견되는 내용으로서 루카 복음에만 있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왜 루카 복음은 열두 사도 파견 얘기 말고도 일흔두 제자 파견 얘기를 굳이 덧붙이는 것일까요? 

실제로 일흔두 제자를 주님께서 더 파견하신 걸까요? 아니면 루카 복음사가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지어낸 얘기일까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사실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사실을 따질 것이 아니라 의미를 따져야 할 것입니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은 이방인 선교를 특별히 염두에 두지 않았고, 마태오복음은 특히 더 유대인 선교만 생각했기에 열두 사도 파견 얘기만 전하면서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만을 찾아가라는 얘기까지 하지요. 

이에 비해 루카 복음은 이방인을 대상으로 쓴 복음이기에 열두 사도 말고도 이방인을 위한 더 많은 선교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추수할 것이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일꾼을 더 보내달라고 청하라는 말씀을 다른 두 복음과 달리 일흔두 제자 파견 얘기에 집어넣습니다. 

그러니까 루카 복음은 열두 사도는 유대인을 위한 선교사로, 일흔두 제자는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로 생각한 것일 겁니다. 

그렇지요. 유대인만 생각해서는 안 되지요. 유대인들이 먼저 복음화되고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복음화하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유대인들만 복음화하는 것은 실제 주님 뜻이 아니라는 것이 루카의 생각일 겁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 “가거라”라고 하신 것은 가까이서부터 멀리까지, 내 가정부터 가까이는 이웃에게 멀리는 세상 끝까지 가라는 명령이고, 일흔두 제자에게뿐 아니라 지금 이곳의 우리에게도 하시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명령이 우리에게 명령입니까? 주님께서 명령하시는데 그 명령이 우리에게 명령이긴 합니까? 

명령이고 우리에게 하시는 명령이라면 우리가 따라야 하는데, 명령이긴 하지만 우리에게 하시는 명령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아무리 주님 명령일지라도 나는 명령에 따를 수 없다고 버티지는 않습니까? 

어쨌거나 가라는 명령 앞에서 나는 어떤 나인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언제나 수확의 때를 정확하게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늘길이 열립니다. 서로를 돕는 사랑의 농사법을 예수님께서 선택하십니다. 일꾼들을 부르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밥상은 그냥 차려지지 않습니다. 일꾼의 삶을 안고 가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구원의 밥상이 차려집니다. 

익어가야 할 것은 가을걷이의 수확물만이 아니라 주님의 일꾼들도 익어가야 합니다. 수확하실 여기에서 하느님 나라를 만드십니다. 씨앗을 뿌리시고 땅을 일구시고 끝까지 보살피신 분도 주님이십니다. 하늘의 일이 땅의 일이 되고 땅의 일이 하늘의 일이 됩니다. 일꾼다움이 필요한 때입니다. 

껍질을 벗고 나오는 햅쌀같이 첫마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첫마음도 주님을 향하는 것이며 이 모든 또한 주님의 것임을 고백합니다. 부러지고 문드러진 일꾼의 첫마음을 되살려 놓으시는 주님과 함께 우직하게 이 길을 걸어갑니다. 한없는 감사의 사랑만 있을 뿐입니다. 오늘이 그날이며 마지막 사랑처럼 추수할 수확물들이 먼저 주님을 찬미합니다. 감사와 기쁨의 새날입니다. 일꾼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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