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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9/27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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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이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고쳐 주게 하셨다.

하느님, 가난한 이의 복지와 성직자 양성을 위하여 복된 빈첸시오 사제에게 사도의 열정을 부어 주셨으니 저희도 같은 정신으로 그가 사랑한 것을 사랑하고 그가 가르친 것을 실천하게 하소서.

 

2023년 9월 27일 (수)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9월 2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루카 9,3)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루카 9,3) 루카복음 성경말씀카드 성경구절이미지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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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9장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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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에즈라기 9,5-9)
    하느님께서는 종살이하는 저희를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9,1-6)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제자들을 보내셨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9월 27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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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루카복음
9장 1-6절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제자들을 보내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9월 27일 (수)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한장호 베네딕토 신부

 

📌 성 빈첸시오 드 폴 소개 00:05

📌 미사시작 01:45

📌 강론시작 08:58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9월 27일 (수)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 미사시작 05:02

📌 강론시작 14:46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9월 27일 (수)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장화기 바오로 신부

 

📌 미사시작 00:19

📌 강론시작 09:56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9월 27일 (수)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 성체조배 0:02:17

📌 미사시작 1:01:20

📌 강론시작 1:08:54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하느님에 대한 신뢰

 

오늘 복음이 전하는 열두 제자 파견 이야기는, 그에 앞선 이야기들과 연관 지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나라의 신비를 비유로 가르쳐 주셨습니다(8,1-18 참조). 게라사인들의 지방에 가셔서는 어떤 이에게 들린 마귀 떼를 쫓아내셨고(8,26-39 참조), 다시 갈릴래아로 돌아오셔서는 하혈하는 부인과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8,40-56 참조). 

하느님 나라 선포와 구마, 그리고 치유,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이 세 가지 활동은 오늘 복음에서 고스란히 열두 제자가 펼치게 될 활동으로 제시됩니다. 그들이 파견되는 목적은 다름 아니라 예수님처럼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쳐 주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라고 일을 떠넘기듯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파견하시기 전에 그에 맞는 능력과 권한을 주십니다. 그러나 여행에 필요한 물품은 일체 지니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그 무엇도 지니지 말라는 것은 파견 여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에서, 심지어 입고 먹고 자는 의식주마저도, 온전히 주님께 의존하여 해결하라는 뜻입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이 말씀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처음 머물게 된 곳보다 더 좋고 쾌적한 장소를 찾아다니지 말아야 함은 그 또한 하느님께서 마련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대접과 환대에 충분히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승께서 하신 일을 그대로 하라고 파견된 제자들은, 그분께서 일하신 방식대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선교 여정을 온전히 아버지께 의지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의 제자들도 선교에 필요한 능력은 물론이고, 그 일을 하기 위한 제반 사항 모두를 하느님께 받는다는 마음으로, 그분께 전적인 신뢰를 드리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그렇게 투신하여 살 자신이 없는 나에게, 하느님에 대한 신뢰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는 오늘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유일하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평화뿐

 

지금이야 식복사 자매님이 계셔서 요리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식사를 위해 직접 요리를 해야만 했습니다. 처음 요리를 했을 때,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습니다. 요리책을 따라 했을 뿐인데도 맛이 훌륭했고, 또 남이 해주는 밥만 먹다가 제가 하는 밥도 커다란 만족감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식사 후의 설거지가 귀찮기는 했지만, 이 역시 깔끔하게 정리 정돈을 한 뒤에는 기분이 좋아져서 괜찮았습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요리에 취미를 붙이고 있을 때, 어떤 분이 요리할 때 쓰라면서 미국제 채칼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새로운 도구를 얼른 사용해보고 싶은 마음에 감자볶음을 만들기 위해 감자를 이 채칼로 썰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사고가 생겼습니다. 저의 실수로 감자를 잡고 있던 엄지손가락이 이 채칼에 썰린 것입니다. 곧바로 헝겊으로 손을 움켜잡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솔직히 이때까지 부엌은 재미와 만족감을 주는 곳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저를 다치게 할 수 있는 위험한 곳도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지요. 
 
우리는 이 세상이 자기에게 좋은 것, 편안한 것만을 주는 곳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좋은 것, 편안한 것이 자기에게 어려움과 힘듦을 줄 수 있는 것도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도 그렇습니다. 주님을 따르면 무조건 기쁨과 행복만 주어질까요?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도 고통과 시련으로 다가올 수 있으며, 우리는 그 안에서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좀 더 현명해지면서 평화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고는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신 다음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무엇인가가 부족하다고 느껴집니다. 아니, 전교 여행을 하면서 꼭 필요해 보이는 것들은 전혀 주시지 않습니다. 그 부족한 것을 주시지 않음을 당신이 먼저 이야기하십니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하느님 나라의 선포라는 가장 중요한 임무를 주시면서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세상의 것들은 모두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철저한 가난 속에서 유일하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평화’ 뿐이었습니다. 이 선포는 지금을 사는 우리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실천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돈도 아니고, 세상의 지위도 아니고, 나의 특별한 능력과 재주도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것은 모두 내려놓고 평화를 들고서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 좋고 편안한 것만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딱 한 가지, 평화만 있으면 충분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군가는 실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차이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타인과 함께, 타인을 통해서 협력할 때에야 비로소 위대한 것이 탄생한다.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 사장님은 단골손님의 것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당연히 은총과 진리를 주시며 파견하십니다. 은총은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이고 진리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지혜의 말씀입니다. 

이때 가난을 강조하십니다. 가난이란 은총과 진리만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돈에 대한 욕심과 육체적 욕망, 그리고 교만이 끼어들면 망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어느 집이든 사도들을 받아들이는 집에만 계속 머물라고 하십니다. 또 받아들이는 이들이 없다면 먼지를 털어버리고 가차 없이 떠나라고 하십니다. 

이는 마치 음식점의 사장님이 ‘단골손님’을 잡으려고 노력하되 오지 않는 사람에게는 집착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어떤 장사든 충성심 높은 단골손님을 얼마나 잡느냐에 따라 그 승패가 달립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위대한 쇼맨’(2017)은 특이한 사람들을 모아서 서커스단을 만들었던 P.T. 바넘의 이야기를 기초로 만들어졌습니다. 바넘은 아버지와 함께 부유한 고객의 집으로 가서 고객의 딸인 채리티를 만납니다. 바넘은 자신의 딸과 가까이 지내지 말라는 채리티의 아버지에게 따귀를 맞으면서도 채리티와 긴밀한 유대감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어른이 된 바넘은 사회적 장벽에도 불구하고 채리티와 결혼하여 두 딸을 낳습니다.

바넘은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사무직을 잃고 은행을 속여 대출받아 박물관 사업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박물관에 오지 않습니다. 바넘은 가족을 위해서라도 성공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수염이 나는 여자, 어린이처럼 보이는 어른 난장이, 다른 사람의 두 배가 되는 키가 큰 사람 등을 섭외해 기상천외한 공연을 시작합니다. 반응은 폭발적입니다. 사회에서 숨어 살던 이들도 세상에서 자신들의 역할이 있다는 것에 기뻐하며 바넘을 돕습니다. 

그런데 바넘은 가난한 첫 마음을 잃습니다. 단골손님들은 여전히 중하류 층이었고 좋은 가문의 여인과 결혼하였지만, 여전히 자신은 돈 많은 하류층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상류층이 좋아할 만한 가수를 만납니다. 영국 여왕에게 초대받았다가 유럽의 유명 오페라 가수 제니 린드를 섭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녀를 데리고 미국 투어를 시작합니다. 상류층들은 환호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는 중에 그는 단골들을 잃게 되고 심지어 극장에 불이 납니다. 이용당하고 버려졌다고 느끼는 단원들은 화가 많이 나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제니 린드와 바넘은 스캔들이 나고 그 소식은 아내와 자녀들에게까지 전해집니다. 

재정적 파탄과 가족 및 공연자들로부터의 소외에 직면한 바넘은 그제야 자신의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는 한때 당연하게 여겼던 서커스 가족의 진정한 가치를 인식하고, 그들의 승인과 존경이 상류사회의 공허한 찬사보다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천막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 단골을 모읍니다. 

마음이 가난하지 못한 사장은 단골손님을 잃습니다. 도움도 마다합니다. 백종원 대표가 예산에 국밥 거리 조성을 도와줄 때 지나치게 위생 관념에 초점을 맞춰 상인들을 괴롭혔습니다. 위생관리가 첫째이고 그다음은 진심과 솔직함입니다. 그러나 상인들은 오랜 장사 습관을 바꿀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백 대표는 자신의 이름과 사진을 그곳에서 떼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단골이 아닌 한 번 와서 음식을 먹고 가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많이 파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어제 쓰던 음식을 오늘 내오고 국밥의 양을 늘리기 위해 물을 타기도 하였습니다. 장사꾼이 단골손님에 집중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산시장을 살렸습니다. 예산이 고향이기 때문에 큰 노력을 기울였고 덕분에 엄청난 성공을 거둡니다. 그러자 백 대표는 가게를 일제히 닫게 합니다. 한 달 동안 고쳐야 할 것들을 고치는 것입니다. 당장 이익이 아닌 미래를 내다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재개점하니 더 많은 사람이 몰립니다. 

그러자 건물주들과 상인들의 마음이 해이해집니다.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높이고 상인들은 가격을 인상하며 늦게 문을 열기도 하며 불친절하다는 말이 나옵니다. 또 단기 이익에 취해버린 것입니다. 백 대표는 말합니다. 지금 반짝하는 것에 만족하지 말라고. 지금 사람이 많이 올 때 단골을 잡아놓지 않으면 결국 망하고 만다고. 자신이 다른 곳에 이와 같은 일을 하게 될 때 분명 예산시장은 다시 내려앉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저는 복음을 전하는 사제나 수도자, 선교사들이 장사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당이라는 가게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입니다. 불러 모으는 방법도 고안해야 하고 사람들이 많이 올 때 그들을 단골손님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사제의 인기로 사람들을 많이 나오게 하는 것은 소용없습니다. 그 사제가 떠나면 원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누가 오던 그 가게는 단골손님으로 유지되게 해야 합니다. 단골손님을 만들려고 하는데 강론 때 신자들을 야단치는 사장이 어디 있겠으며 고해소에서 소리 지르는 사장이 어찌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신자들이 올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받아들이는 집에 계속 머물라고 하십니다. 이는 어쩌면 단골손님과 계속 가야 한다는 말씀이기도 할 것입니다. 

복음은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복음을 파는 세일즈맨일 뿐입니다. 물론 안 사겠다면 그 사람은 억지로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살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단골손님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코로나와 같은 위기를 다시 맞아도 크게 흔들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인적이고 통합적으로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주라고 보내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공관복음 공통으로 주님께서는 중간에 열두 사도를 파견하십니다. 말씀으로도 가르치시고, 마귀 쫓아내고 질병을 고쳐주시는 모범을 보여주신 다음 이제 가르침 받은 대로 그리고 본대로 가서 하라고 당신 없이 파견하시는 겁니다. 

당신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어차피 주님 없이 복음을 선포해야 하니 예행연습 삼아 또는 선교 체험 삼아 파견하시는 것인데 오늘 파견에서 주님의 선교 방식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악령 퇴치와 질병 치유입니다. 악령 퇴치와 질병 치유를 나눠서 볼 수도 있지만 같이 보는 것이 주님의 통합적인 치유와 선교 방식을 이해하는 데 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구원과 선교 방식은 전인적이고 통합적입니다. 우선 주님께서는 복음 선포만 하고 질병 치유에는 무관심하지 않으신다는 면에서 그렇습니다. 

한때 저는 성령 쇄신 운동하는 분들이 그 기도회에서 치유행위를 하고 그것을 자랑하는 것에 부정적이었습니다. 

물론 하느님 찬미보다 치유에 더 마음이 가 있고 그것을 자랑까지 한다면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니 그것은 문제겠지요.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라면 질병의 치유는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의 통합적인 차원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부정적으로만 볼 이유가 없고 할 수만 있다면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는 치유의 능력이 없기에 제 주변의 아픈 분들을 위해 기도만 해드리고 있는데 치유하지 못하는 것은 오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셨고 제게도 주셨음에 틀림이 없는 그 능력을 제 믿음이 부족하여 받지 못한 것 같아서 부끄러울 뿐입니다. 

오늘 복음은 분명 이렇게 얘기하잖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아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그리고 질병 치유도 통합적이고 전인적입니다. 육신의 병만 치유하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악령 퇴치는 병으로 치면 마귀 병의 치유입니다. 요즘 제게는 질병과 관련하여 확신이 있고 이것을 몇 번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질병에는 

육신의 병,
마음의 병,
정신의 병,
영혼의 병이 있는데 

이 영혼의 병이 가장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병이고, 그러니 할 수만 있다면 이 병부터 치유해야 한다고.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육신의 병 치유에만 관심이 있고, 요즘은 그래도 마음의 병이나 정신의 병까지 관심을 두는 분들이 있는데 자신과 관련해서든 다른 사람과 관련해서든 영적인 상태까지 관심을 둬야 하는데, 악령 퇴치의 권한과 힘을 오늘 주님께서 주신 것은 이런 뜻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악령 퇴치를 할 수 없더라도 누구를 진정 사랑한다면 그의 영혼 상태까지 살피며 그를 위해 전인적이고 통합적으로 사랑하고 기도해줘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복음으로 살게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자기소외와 자기상실이라는 우리시대의 중병을 치유하는 복음입니다. 우리를 기쁨으로 다시 살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고생 끝에 얻는 치유의 기쁨이 있습니다. 어디에서나 소외되고 병든 약자를 찾아 정성껏 고쳐 주시는 주님의 복음을 만납니다. 주님을 통하여 우리의 고통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됩니다. 우리의 고통은 새로운 기쁨을 체험하게 하는 깨달음의 은총입니다. 우리의 고통은 더 중요한 것을 더 본질적인 것을 깨닫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고통의 자리가 구원의 자리가 됩니다. 복음이 필요한 우리들에게 고귀한 사랑을 베푸십니다. 치유의 시간은 직접적인 주님과의 만남이 됩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우리들에게 비복음적인 것을 직시할 용기를 주십니다. 복음은 어떤 상황 안에서도 자유를 누리게 합니다. 

복음은 공감이며 복음은 연민입니다.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고통을 내 아픔처럼 여겼던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의 삶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 이웃들이 바로 우리의 예수님이심을 가르쳐주십니다. 그 예수님께 사랑을 나누고 관심을 나누는 치유의 날입니다. 

복음을 회복하는 사랑이며 공감입니다. 함께 나누면 더욱 커지는 복음이며 함께 나누면 더욱 줄어드는 고통입니다. 고통이 있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복음을 실천하는 새로운 시각의 새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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