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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9/25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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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백성의 구원이다. 어떠한 환난 속에서도 부르짖으면 내가 들어 주고, 영원토록 그들의 주님이 되어 주리라.

하느님,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셨으니 저희가 그 사랑의 정신으로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2023년 9월 25일 (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9월 2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마태 5,16)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마태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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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복음 5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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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에즈라기 1,1-6)
    주님의 백성에 속한 이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주님의 집을 짓게 하여라.

  • 오늘 복음
    (루카 8,16-18)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9월 25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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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루카복음
8장 16-18절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17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18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9월 25일 (월)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김병규 대건 안드레아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7:17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9월 25일 (월)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조성풍 아우구스티노 신부

 

📌 미사시작 08:05

📌 강론시작 15:51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9월 25일 (월)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 미사시작 04:45

📌 강론시작 12:49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우리는 말씀을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지난 토요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시고 그 비유를 직접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씨가 뿌려진 땅에 비유되던 네 부류의 사람들. 그들 모두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결국 마지막 부류의 사람들(좋은 땅)만이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8,15) 열매를 맺습니다. 

이 비유의 설명에 바로 이어지는 오늘 복음도 ‘말씀을 듣는’ 주제와 깊이 연관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말씀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곧 그저 듣기만 할 것인지 아니면 들은 말씀에 기꺼이 응답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 잘 헤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등불은 하느님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행동으로 열매 맺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빛을 내며 집 안을 환히 밝히는 사람들입니다. ‘들어오는 이들이 그 빛은 보게 한다.’는 것은 아직 말씀에 맛 들이지 못한 사람들이 그들에게서 발하는 빛을 보게 됨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으로 열매 맺은 사람들이 아직 어둠 속에서 헤매는 이들의 길을 비추며, 그들을 참된 신앙으로 인도하는 구실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빛을 밝히는 등불은 그릇 속이나 침상 밑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여 세상을 비출 수 있고, 그렇게 하느님의 말씀은 점점 많은 사람에게 퍼져나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가 모두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하느님 나라가 실현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비록 지금은 숨겨져 있고 감추어진 듯 보이지만, 때가 되면 반드시 그 모습을 훤히 드러낼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랑의 실천으로 결실을 거두는 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등경 위에 놓인 등불처럼, 우리에게서 나오는 빛으로 감추어진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이들을 당신의 어머니요 형제들, 곧 당신의 참가족으로 받아들이십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8,21).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님께서 원하시는 등불같은 지혜로운 사람

 

25년째 사제로 살면서, 사제가 되는 것과 사제로 사는 것에는 간격이 크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제가 되는 것만으로는 예수님과 일치할 수 없으며, 예수님의 뜻을 되새기며 실천하는 사제로 살아야 예수님과 진정으로 일치하면서 제대로 따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실 신학생 때는 사제가 되는 것으로 저절로 예수님과 일치할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25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전혀 그렇지 않음을 비로소 느낍니다. 
 
묵상해 보면 솔직히 아직도 멀었습니다. 즉, 아직도 사제로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함을 반성합니다. 단지 주님의 사랑과 자비에 힘입어 조금씩 나아지려 노력할 뿐입니다. 그래서 사제로 사는 것에 더 집중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신앙인이 되는 것과 신앙인으로 사는 것의 간격도 마찬가지임을 깨닫습니다. 당연히 신앙인으로 사는 것이 중요한데, 신앙인 그 자체에만 머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안일한 마음만을 가지고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안일한 마음을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적극적으로 신앙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하느님의 영광을 이 세상 안에서 드러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신앙인 자체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대신 신앙인으로 사는 것에 집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세상 것에 집중할수록 신앙인으로 사는 것에 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만 집중하며 세상 것만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럴수록 주님의 뜻을 제대로 따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서 들어오는 이들이 이 빛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등불이 바로 우리가 믿고 따르는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는 것처럼 감춰지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에 환하게 당신을 드러내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역할은 주님께서 세상에 잘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모습이 바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주님을 세상에 잘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단순히 신앙인 자체에만 머물면 주님을 오히려 세상 안에서 가리는 모습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 살아가면 모든 이가 환한 빛이신 주님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이 당연한 진리를 너무나 쉽게 잊어버렸던 것이 아닐까요? 그 당연한 진리를 따라야만, 즉 신앙인으로 적극적으로 살아가야만 가진 것을 주님으로부터 더 충만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영광에 좀 더 가까워지게 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어리석은 짓을 삼가는 것이 지혜의 입문이다.

- 퀸투스 호라티우스 플라쿠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사람을 가려서 비추는 등불은 없다.

 

오늘 복음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다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얼핏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보일 수 있으나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야 올바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게 마련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누구나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이는 어디에나 해당하는 법칙이지만, 말씀의 씨가 좋은 땅에 뿌려진다는 것을 가정할 때 말씀을 전하려는 이들이 더 가진 이들이고 그들에게 더 많은 말씀의 열매가 맺히게 된다는 뜻으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하느님의 말씀과 은총도 더 받으려면 더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무언가를 주는 이의 뜻에 맞게 쓴다면 주는 이는 더 주게 될 것이 당연합니다. 

예전에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승재라는 아이가 민속촌 같은 곳에 갔는데 품바를 하는 거지 옷을 입은 두 삼촌이 장난으로 배고픈 표정을 짓자 승재는 자신이 낙서하고 있던 입장권을 그 품바들에게 줍니다. 아빠는 그것이 돈이 아니기 때문에 승재에게 1,000원 권을 주자 승재는 그것을 품바 바가지에 넣어줍니다. 아빠는 승재가 더 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착한 일을 하려고 할 때 더 줍니다. 하느님이야 그보다 못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웃을 도우려는 사람은 더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받은 것을 전해주는 방식은 ‘등불’과 같아야 합니다. 말씀과 은총을 한마디로 하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칫 주님께 그러한 은총을 몇몇만을 위해 사용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참 빛이 아닙니다. 나는 말씀이든 은총이든 사랑이든 모든 이에게 전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은 영화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의 줄거리입니다. 냉소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피츠버그 TV 일기예보 진행자인 필 코너스는 연례 성촉절 축제를 취재하라는 지시를 받고 펜실베이니아주 푼수토니의 작은 마을로 파견됩니다. 그는 자신이 그런 하찮은 일을 해야 하는 것에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일을 끝내고 그 마을을 떠나려는 데 눈이 많이 내려서 갈 수가 없었고 어쩔 수 없이 하룻밤을 더 잤는데 또 성촉절입니다. 하루가 무한 반복됩니다. 그는 처음엔 그러한 상황을 즐겨보려 합니다. 감옥에 가도 원상태로 돌아오기에 은행도 털고 쾌락적인 삶을 즐길 대로 즐깁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도 신물이 납니다. 

이 지옥과 같은 의미 없는 삶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자 그는 자살을 택합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과 같이 파견 나온 프로듀서 리타를 꼬시기로 마음먹습니다. 여러 번 실패하며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모조리 알아내고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항상 거부합니다. 무언가 자신에게만 잘해주는 게 의심스러웠던 것입니다. 

결국 필은 자신이 리타에게 하려고 했던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잘해주기로 합니다. 그랬더니 그러한 보답이 돌아옵니다. 리타는 주위 사람들이 다 필을 좋아하게 된 것을 보고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 거짓이 아님을 확신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함께 잠을 자고 일어납니다. 그런데 ‘내일’이 된 것입니다. 드디어 하루가 지난 것입니다. 

영화는 타임 루프 개념을 사용하여 무한한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자신의 결점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탐구합니다. 영화는 의미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조로움과 절망 속에서 어떻게 목적과 행복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결국 우리의 하루는 이웃 사랑으로 채워져야 하는데 그 사랑은 한 사람만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등불처럼 모든 사람을 비추는 것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한 인간만 비추는 태양은 없습니다. 비도 그렇고 바람도 그렇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원리입니다. 내가 이러한 참 사랑으로 나아갔을 때 내가 사는 하루가 진정한 하루가 됩니다. 

가끔 어떤 젊은 사람이 한 여인을 사랑하고 나서 둘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참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들에게 사랑을 주지 않으십니다. 그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주위 사람들에게 번져가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사랑을 부어주셔서 둘의 사랑이 더 깊어지게 합니다. 사랑도 받아야 할 수 있는데,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짓 것마저 빼앗길 것입니다. 가진 사람은 마치 등불처럼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은 우리 본성을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랑이 되고 빛이 되게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환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등불을 켠다는 것은.
어둡기 때문이다.
밝히기 위해서다. 

그러니 주님 말씀대로 등불을 켠 사람은 그것을 덮을 이유가 없다. 만일 덮는다면 어리석음이고 바보짓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등불을 켜서 덮는 것이 아니라 아예 등불을 켜지 않는다. 어둡다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어두워도 그 어둠을 내가 밝힐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실로 많은 사람이 어둠을 어둠이라고 생각지 않고 산다. 어둠에 적응된 사람이거나 어둠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둡다면서도 불을 밝히지 않는 사람도 제법 많다. 투덜거리기만 할 뿐 자기가 불을 밝히려고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밝히기를 바라고, 다른 사람이 밝혀야 한다고 하고, 다른 사람이 밝히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기만 한다. 

그래서 네가 밝히면 되지 않냐고 하면 자기는 등불이 없다고 겸손을 핑계로 대거나 등불을 드는 그 귀찮고 힘든 일을 왜 자기에게 하라고 하냐고 오히려 성을 낸다. 

의지가 없다고 하지 않고 등불이 없다고 하고, 사랑이 없다고 하지 않고 능력이 없다고 한다. 

또 소시민 정체성에 안주한다. ‘나 같은 소시민이 뭘!’이라는 안주다. 그런데 빛이 되는 일에는 아무도 소시민이라 예외가 아니고 아니어야 한다. 

큰 등불이 없다면 작은 등불이라도 있으면 된다. 역시 의지 없고 사랑 없음을 소시민 정체성으로 합리화하는 것뿐이다. 

어쭙잖은 겸손과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주님 말씀을 엉뚱하게 이해하여 그럴 수도 있다. 

그제는 기후 정의 미사와 행진이 서울역에서 있었는데 그 미사를 봉헌하면서 그리고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의 생각이 짧았고 노력도 부족했음을 알게 됐습니다. 

주례하신 주교님께서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이 기후 위기의 급박한 문제에 관해 관심이 없고 그래서 대책을 서두르지 않는데 이 자리에 천만 명이 모였다면 그들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그리고 사제들이 정치 사회 문제와 관련해서는 촛불을 드는데 더 큰 위기인 기후 문제와 관련해서는 촛불을 드는 사람도 사제도 많지 않습니다. 

저도 평소 할 수 있는 한 실천하고 주위에도 얘기하였지만 그제 주교님 말씀을 듣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면피 수준이었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운동을 펼쳤어야 하는데 나의 실천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나의 실천을 떠버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극적으로 사람들에게 권유하고, 그제 모임도 이 말씀 나눔을 통해 여러분에게 홍보할 수 있었는데도 여러분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지도 초대하지도 않아서 반성했습니다. 

나의 선행이 자랑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사랑이 되고 빛이 되게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등불은 등불의 소명에 충실합니다. 빛이 시작되는 곳에서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말씀도 빛이며 나눔도 사랑도 빛입니다. 빛으로 빛을 베푸시는 주님이십니다.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등불입니다. 그토록 환하게 밝히고자 하는 삶의 기쁨입니다. 등불 같은 신앙은 가장 좋은 사랑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빛 안에서 만나고 살아가는 우리들 삶입니다. 

하늘의 시간은 빛의 시간입니다. 빛을 잊고 살았습니다. 마음을 주님의 빛 위에 올려놓지 못 했습니다. 마음도 서로 이끌고 밀어주어야 절망을 이기는 빛이 됩니다. 

간절한 사랑은 어둠을 이기는 소명이 됩니다. 신앙의 본분이며 사람의 최소한의 도리가 말씀을 읽고 사랑을 실천하는 등불같은 삶임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말씀의 빛으로 살아나고 나눔의 빛으로 피어나는 우리들 삶입니다. 등불이 되시어 우리를 찾으시고 우리를 맞이하시는 주님의 사랑처럼 사랑의 빛이 필요합니다. 

아직도 우리가 누군지를 모르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등불이 되어 우리 한가운데에 서십니다. 보이기 시작하는 주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새롭게 보게되는 빛의 신비입니다. 빛으로 빛을 사랑하는 오늘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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