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3/09/22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9. 22.
반응형

 

주님,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소서. 당신 예언자들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시고,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하느님,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니 저희를 굽어보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고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게 하소서.

 

2023년 9월 22일 (금)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9월 2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티모테오1서 6,7)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티모테오1서 6,7)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티모테오1서 6장 7절

오늘성경구절이미지_230922.jpg
0.31MB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티모테오1서 6,2ㄹ-12)
    하느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의로움을 추구하십시오.

  • 오늘 복음
    (루카 8,1-3)
    예수님과 함께 있던 여자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9월 22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루카복음
8장 1-3절

 

예수님과 함께 있던 여자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9월 22일 (금)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이현철 베드로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8:43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9월 22일 (금)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전두병 요아킴 신부

 

📌 미사시작 06:04

📌 강론시작 14:12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9월 22일 (금)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 미사시작 05:16

📌 강론시작 14:02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9월 22일 (금)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야렉 카미엔스키 신부

 

📌 성체조배 0:03:01

📌 미사시작 1:03:07

📌 강론시작 1:11:47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그들이 그토록 헌신적일 수 있었던 이유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 일행 가운데 여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특별히 강조합니다. 루카 복음서 저자는 이 여인들의 이름을 일일이 나열하고 그들의 역할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여 예수님의 선교 여정에서 그들의 공헌이 컸다는 점을 부각시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여기서 ‘시중들다’는 뜻의 그리스 말 동사 ‘디아코네오’는 좁은 의미로는 식탁에서 시중드는 행위를 가리키지만, 그 밖의 다른 봉사나 물질적인 지원 등의 넓은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구원 활동을 위하여 기꺼이 ‘자기들의 재산’을 봉헌할 뿐만 아니라 그 여정에 몸소 함께하면서 일행에게 필요한 여러 도움을 주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헌신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에 대한 강렬한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이 여인들이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사람들이었다고 전합니다. 특히 마리아 막달레나는 일곱 마귀에 시달리던 여자였는데, 일곱이라는 숫자는 마귀 들린 상태가 매우 심각하였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강력한 속박에서 마리아를 벗어나게 하여 주셨고, 구원을 경험한 마리아는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며 누구보다 그분을 사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은 그분께서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시고 묻히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늘 그분 곁에 있었습니다(23,49.55-56 참조). 그리고 빈 무덤에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가장 먼저 듣고(24,1-12 참조), 부활하신 그분을 가장 먼저 뵙는 영광을 얻습니다(마태 28,9-10 참조).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동행에 과연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예수님을 제대로 체험하지 못하여서 소극적인 것은 아닌지 생각하여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의 인격적인 만남에 우리를 초대하시고, 그 만남 안에서 우리가 직접 맛보고 경험하기를 바라십니다. 기도 안에서 얻게 되는 강렬한 체험을 바탕으로 예수님과 함께하는 여정에 우리가 더욱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님을 온전하게 따르고 있습니까?

 

자녀들이 집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을 때, 부모는 자녀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가 전화나 SNS, 문자로라도 연락하기를 바랍니다. 물론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그 어떤 연락도 오지 않으면 잘살고 있는지, 혹시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해서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먼저 조심스럽게 연락해 보았음에도 연락되지 않는다면 걱정은 더 커지고 맙니다. 하지만 자녀와 부모가 서로 연락을 자주 한다면 어떨까요? 부모의 걱정은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과 연락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입니다. 즉, 기도는 하느님께 연락해서 잘 지낼 수 있게 합니다. 성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을 가까이하시오. 그러면 그분이 여러분을 가까이하실 것입니다.” (야고 4,8)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져서는 안 됩니다. 무엇이든 다 알고 계신 하느님이시지만,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연락을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자주 연락하면서 훨씬 더 가까워지고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더 충만히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십니다. 따라서 당신의 그 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분입니다. 하지만 당신 혼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복음을 전하지 않으십니다. 제자들과 함께하셨고, 제자들만이 아니라 오늘 복음에도 등장하듯 많은 여자들도 함께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 가운데 여자가 있었다는 것은 당시 시대에는 커다란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는 오직 남자에게만 종속되어 있었고, 율법을 지킬 의무도 없었으며 그 어떤 권리도 누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함께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는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다는 것을, 또 죄인이든 의인이든 상관없다는 것을, 즉 모든 이는 주님을 따라야 함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온전하게 따르고 있습니까? 부족함이 없으신 분께서는 우리와 함께하기를 계속해서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지금 어렵고 힘들다는 이유로 주님과의 연락을 스스로 끊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오늘 독서의 사도 바오로 말씀처럼 세상의 사람이 아닌, 하느님의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면서 영원한 생명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패배자는 머뭇거리고 망설이느라 에너지를 허비하지만, 이기는 사람은 우왕좌왕하지 않고 자신있게 뛰어든다.

- 카를 크라우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감사가 거짓이 되지 않게 하려면!

 

이미 세상을 떠난 분을 다시 소환해서 매우 조심스럽고 죄송한 마음이지만,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고인이 된 최성봉 씨 삶을 되돌아봅니다. 

세 살 때 부모에게 버려져 보육원에 맡겨지고 형들의 구타에 이기지 못하고 탈출하여 껌과 박카스 등을 팔며 10년 이상을 살았습니다. 그 10년 동안 산에 산 채로 묻히는 등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처음으로 좋아했던 게 음악이라 성악을 하기를 원했고 다행히 그를 무료로 가르쳐 준 스승이 있어서 예고에 들어가고 대학에도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대학을 다닐 돈이 없어 학교를 자퇴하고 일용직을 전전하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습니다. 그때 그의 스승에게서 전화 한 통화가 왔고 2011년 tvN ‘코리안 갓 탤런트’ 준우승을 차지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휴대폰 판매원에서 세계적 스타가 된 영국의 폴 포츠와 합동 공연을 하며 희망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2021년 코로나로 상황이 어려워졌고 다시 대장암 3기와 전립선암, 갑상선 저하증 및 갑상샘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라 밝혔습니다. 암이 다른 곳으로의 전이가 일어났지만, 3억 대의 수술비 때문에 치료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한강 다리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했습니다. 다행히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뛰어내리는 일은 막았습니다. 

이때 10억 원을 목표로 후원금 모금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다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를 만났던 모든 사람은 그가 암 투병 중인지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입고 찍었던 환자복도 인터넷으로 구매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흡연과 음주, 폭식을 일삼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또한 2천만 원 정도 모인 후원금은 유흥비와 여자친구와의 사치로 탕진했다는 의혹이 일었습니다. 그는 이런 글을 올리고 생을 마감합니다. 

“나의 어리석은 잘못과 피해를 본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고 거듭 사과드립니다. 지난 2년여 동안 후원금 반환 문의해 주신 모든 분에게 반환했습니다. 이제는 죗값을 치르려 합니다.”

그도 처음에는 나름대로 자선하려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후원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왜 점차 희망이 아닌 불행을 팔기 시작했을까요? 불행을 파는 이유는 ‘피해의식’ 때문입니다. 나의 불행은 내가 덜 받았다는 불만에서 나옵니다. 

고 최성봉 씨는 그래도 당연해 보입니다. 부모에게 두 번, 세 번이나 버려지고 그가 말하듯이 자신에게 부모가 되어주겠다던 사람 중 하나도 자기 곁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더 절망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자기를 보호해 줄 부모의 대체자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몸은 컸지만, 어린이로서 보호받고 싶었는데 세상은 그를 이용하고 쓸모가 없어졌을 땐 잊었던 것입니다. 

그는 더는 버려지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모든 여자 팬에게 사귀자고 할 정도였고 연인 사이로 발전한 사람에게는 폭력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무시하고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사랑은 나의 불행을 파는 사람이 아닌 감사하여 보답하는 삶으로 이끕니다. 성당에서 성체를 영할 때 솟아나야 하는 감사가 이 전환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를 하지만, 진정한 감사가 아닐 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최성봉 씨의 마지막 글의 앞 부분입니다. 

“제 삶의 마지막으로 팬분들께 보내는 글이면서 이 글이 보인다면 저는 이미 죽어있을 것입니다. 2011년부터 정말 많은 분들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살아왔습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마지막 글이라 이 분통함을 알리고 싶지만, 여러분께 받은 사랑이 더 커 마음속에 묻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나름 노력하여 반환해 달라고 한 후원금을 반환하고 마지막 죗값은 안타까운 선택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나름 감사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감사는 내가 가진 돈이 어디에 쓰이느냐로 결정됩니다. 최성봉 씨는 그 돈을 자기를 위해 썼습니다. 감사한다면 그것을 감사한 대상을 위해 썼어야 할 것입니다. 

돈이 별 게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이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결국 감사하는지, 아닌지가 결정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주님께 돌려야 하는 감사의 선악과를 자신들이 먹어버렸습니다. 그렇게 감사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감사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여러 여성의 이름이 언급됩니다. 그들이 구원받은 이유는 이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감사가 거짓으로 드러나는 순간은 돈을 자기가 더 가지고, 더 즐기고, 더 높아지기 위해 쓸 때입니다. 삼구를 위해 돈을 쓴다는 말은 아직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직 부모의 사랑만으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참 부모는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분을 위해 보답하기 위해 돈을 사용합니다. 이를 봉헌이라고 합니다. 이것 없이 하는 감사는 아무리 찬미를 드려도 거짓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교만의 결과들

 

“그는 교만해져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논쟁과 설전에 병적인 열정을 쏟습니다. 이러한 것에서부터 시기와 분쟁과 중상과 못된 의심과 끊임없는 알력이 나와, 정신이 썩고 진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사이에 번져갑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은 주님의 건전한 말씀과 신심에 부합하지 않으면 교만해지고 교만으로 인해 각가지 안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만의 첫 번째 결과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함입니다.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 많습니다. 

ㅡ 우선 진리를 깨달아야 하고, 

ㅡ 그런데 진리를 깨달아야 할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달아야 하며, 

ㅡ 어리석기에 자기가 대단한 줄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줄 착각하고, 

반면에 자기가 얼마나 유한한지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의 어리석음과 한계를 깨달아 겸손해지고 지혜롭게 되면 

ㅡ 우리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란 것을 깨닫게 되고,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무엇이 불행하게 하는지 곧 사랑과 가난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교만과 욕심이 불행케 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교만은 이 모든 것을 다 깨닫지 못하게 하고, 그래서 어리석게도 잘난 척하고 남을 무시하며 그래서 싸움닭처럼 누구하고든 싸우려고 덤벼들게 하는데 이것이 교만의 두 번째 결과이며 바오로 사도는 이것을 병적인 열정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가히 병적이라고 할만합니다. 싸우지 않고 평화로이 사는 것이 정상이고 행복인데 나보다 잘난 놈 있으면 나와 봐 하는 식으로 싸우려 들고 싸우지 않으면 심심하고 싸우는 데서 자기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런 병적인 열정에서 시기와 분쟁과 중상과 못된 의심과 끊임없는 알력이 나온다고 하는데 당연하지요. 

교만의 세 번째 결과는 정신의 타락입니다. 그런데 병적인 열정과 정신의 타락이 실은 같은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얼마간 교만하다고 할 수 있는데 교만이 어느 정도를 넘으면 누구도 그것을 고쳐줄 수 없을 정도가 되고, 정신마저 제정신이 아니게 하거나 썩어빠진 정신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열정이나 정신 모두 어딘가에 힘을 쏟게 하고 어딘가로 치닫게 하는 힘인데 진리에 바탕을 둔 건강하고 건전한 가르침과 관계에 힘을 쏟거나 향하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병적인 열정이고 썩어빠진 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는 요즘 우리 사회가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라는 악마가 그렇게 몰고 가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자유를 아무런 통제 없이 각자에게 맡기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는 자유롭게 무한 경쟁하게 하자는 것이 아닙니까? 이 무한 경쟁의 삶이 요즘 젊은이들을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고 병들게 하며, 경쟁에 적응치 못하거나 패배한 사람을 자폐하게 하거나 칼을 들게 하는 겁니다. 

요즘 우리 대통령이 말끝마다 자유를 외치고 실로 자유가 좋은 것이긴 한데 자유는 위험한 칼과도 같고 요즘 칼부림을 자주 보듯 참으로 위험한 겁니다. 

정신병자에게 칼이 들려있다고 있다고 한번 생각해보시면 알 수 있겠지요. 옳게 쓸 줄 알면 다시 말해서 사랑하는 쪽으로 쓰면 너도나도 모두 행복케 하지만 잘못 쓰면 다시 말해서 이기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경쟁적으로 쓰면 앞서 봤듯이 사회 전체가 정신적으로 병들게 하여 모두 불행하게 만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사랑과 봉사를 통하여 하느님 나라를 찾아가는 우리들 삶입니다. 소리 없는 기도와 소리 없는 봉사가 참된 기쁨이며 참된 행복입니다. 믿는 만큼 행하고 믿는 만큼 사랑하게 됩니다. 

가장 존귀한 일이란 사람의 아들을 위한 일을 우리가 행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위한 일이란 우리가 서로를 보살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보살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온 삶으로 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압니다. 하느님 사랑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압니다. 사랑의 삶을 긍정하는 삶이 봉사의 삶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삶이 마음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는 삶입니다. 봉사는 만남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가장 아름다운 봉헌입니다. 참된 진리는 봉사를 통한 기쁨과 행복으로 채워집니다. 

봉사하면서 알게 되고 봉사하면서 깨닫게 되는 봉사의 하늘과 땅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서로를 섬기고 서로를 보살피는 봉사의 나라입니다. 우리의 빛과 그림자를 돌보고 우리의 삶을 예수님과 함께 돌보는 축복의 날 되십시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