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무한히 자비로우신 하느님, 세리 마태오를 복된 사도로 뽑으셨으니 저희가 그의 모범과 전구로 도움을 받아 언제나 하느님을 따르며 섬기게 하소서.
2023년 9월 21일 (목)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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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2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에페소서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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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서 4장 1절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에페소서 4,1-7.11-13)
그리스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 오늘 복음
(마태오 9,9-13)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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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하나이다, 주 하느님. 주님이신 하느님을 찬양하나이다. 영광에 빛나는 사도들의 모임이 주님을 기리나이다.
마태오복음
9장 9-13절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
그때에
9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9월 21일 (목)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박민웅 요셉 신부
📌 성 마태오 사도 소개 00:05
📌 미사시작 01:11
📌 강론시작 08:55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9월 21일 (목)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진슬기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미사시작 06:36
📌 강론시작 14:48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9월 21일 (목)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 미사시작 00:07
📌 강론시작 07:30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9월 21일 (목)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 성체조배 0:03:59
📌 미사시작 1:03:07
📌 강론시작 1:11:20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부르심과 응답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부르심이 응답에 앞선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이는 관계의 주도권이 우리가 아닌 하느님께 있다는 뜻입니다.
그분께서 불러 주시지 않는데, 우리가 어떻게 응답하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부르심은 그 자체로 은총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은 특별히 죄인들을 위하여 마련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시대에 죄인으로 취급받던 세리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시고,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시며 식사하십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불편하게 여기는 바리사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이는 자칫 예수님께서 의인들을 부르시지 않겠다는 말씀으로 오해될 수 있으나,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기에 부르심에서 제외되는 이는 사실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사를 찾지 않듯이, 자기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사람은 예수님을 찾지 않고 그분의 부르심에도 응답하지 않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죄인인 우리가 은총의 부르심을 받아 하느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는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삶으로 그 본보기가 되어 주셨습니다. 제자는 스승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스승께서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분이셨듯이(11,29 참조), 우리도 겸손과 온유를 다하여야 하고, 스승께서 당신 사랑으로 끝까지 제자들을 인내하시고 참아 주셨듯이(17,17 참조), 우리도 형제들의 부족함을 인내하고 참아 주어야 하며, 스승께서 아버지와 하나이셨듯이, 우리도 성령 안에서 서로 일치하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요한 17,11.20-24 참조).
마태오 사도는 비록 세리였지만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도가 되어 죽기까지 스승을 닮고자 노력하였던 참된 제자였습니다. 오늘 축일을 기리는 성 마태오 사도를 본받아 우리도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자기 삶 안에민 머물러서는 안 된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얼마 동안은 꿈에서 계속 뵐 수 있었습니다. 비록 어떤 대화도 나눌 수는 없었지만 꿈에서라도 뵙고 나면 그날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서 이제는 도통 꿈에서 뵐 수 없었습니다. 보고 싶다는 마음은 간절하나 전처럼 꿈에 뵐 수 없으니, 밤늦게 모임을 마치고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오면 허전한 마음이 밀려오곤 했습니다.
이런 허전한 마음이 밀려올 때, 우연히 인터넷에서 어느 방송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떠난 가족의 목소리와 모습을 가상 현실 VR로 구현해서 유가족과 만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인공지능 AI의 능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이렇게까지 만나야 할까 싶었습니다. 진짜 사람이 아닌데, 그렇다고 그 영혼이 찾아온 것도 아닌데 이를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또 다짐까지 한다는 것이 과연 진짜 의미가 있을까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과학이 죽음의 영역까지 점령하려는구나 싶었습니다.
진짜 같지만, 또 과학 기술의 발달로 앞으로는 더 진짜 같겠지만, 이런 식의 만남은 크게 의미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는 인간이 만든 하나의 영상일 뿐이니까요. 이를 영상으로 보지 않고 진짜 살아 있는 실체로 여기면서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한다면, 계속해서 가상의 현실에만 머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세상에만 머물려고 합니다. 편하고 쉬운 길, 아무런 문제가 없는 길, 고통과 시련은 전혀 없는 길, 스스로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만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길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런 세상이 있을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은 주님께서 가신 길을 함께 걸어가는 것뿐입니다.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내려놓고 대신 주님의 뜻이 가득 담긴 사랑의 삶을 걸어가는 것이 가장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을 지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카파르나움에서 로마제국을 위해 세금을 걷는 세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오를 향해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모두를 버리는 삶이었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까지 모으고 있었던 재산을 버리는 것이고, 편하게 앉아 세관을 지키는 삶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 끝까지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멈추지 않고 걸어가야 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마태오 사도는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일어나 주님을 따릅니다.
지금 자기 삶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특히 세상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 머물고 주님과 함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위로받는 것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주님께 참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사람들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생각에 의해서 고통 받는다.
- 에픽테토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어울리지 않는 사람과 어울리는 사랑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오늘 주님께서는 죄인들과 어울린다고 바리사이들에게 비난을 받습니다. 그래서 어울린다는 말을 가지고 오늘 축일의 의미를 성찰코자 합니다.
어울린다는 말에는 당신에게는 감색 또는 감색 옷이 잘 어울린다는 말처럼 무엇이 서로 조화롭고 좋게 보인다는 뜻입니다.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할 때도 격에 차이가 있지 않고 조화로움을 말합니다. 생김새나 신분이나 부 등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 때 우리는 그들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잖습니까?
아무튼 주님께서 세관원을 제자로 부르시고 죄인들과 어울린다고 오늘 바리사이들이 비판하는데 주님께서는 그렇게 생각지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이 보기에 그런 것이고 주님께서는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전혀 생각지 않으시고 그래서 같이 어울리고 한데 어우러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만과 사랑의 차이입니다.
우리의 시조에 서로 다른 두 시가 있습니다.
“까마귀 싸우는 골짜기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가 흰빛을 샘낼세라. 맑은 물에 기껏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쏘냐. 겉 희고 속 검은 것 너뿐인가 하노라.”
이 두 시에서 바리사이는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가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고, 주님께서는 그런 바리사이의 위선을 지적하시면서 오히려 가서 어울리십니다.
교만은 차이를 얘기하지만 사랑은 필요를 얘기합니다. 교만은 차이가 나는 사람에게 가지 말라고 하지만 사랑은 사랑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만은 죄인과 어울리면 자기도 죄로 더럽힌다고 겁내는 것이고, 사랑은 자기가 더러워지는 것을 겁내지 않고 씻어주겠다는 것이며, 설사 내가 더러워진다고 해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깨끗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이 우리에게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이에 대해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 하느님과 똑같음을 고집하지 않으시고, 우리와 똑같은 죄인이 되어 오셨다고, 그렇게 당신을 낮추셨다는 취지로 필리피서 2장에서 노래하지요.
교만은 영적인 고고함에 집착하지만 실은 죄를 두려워 피하는 약함이고, 사랑은 사랑하지 않는 죄만을 두려워하고 다른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어울리지 않는 사람과 어울리는 사랑을, 오늘 마태오 사도의 부르심을 통해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무엇이 성 마태오 사도를 복음의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를 묻게됩니다. 복음에 순명하는 삶이 참된 행복입니다.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닙니다.
자기를 버리는 길이 주님을 따르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이 곧 자기를 살리는 길임을 알게됩니다. 따르면서 사람이 되고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삶의 기쁨을 더하고 삶에 대한 이해와 시각의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유한성을 극복하고 영원성을 얻는 복음의 길입니다. 복음을 통하여 주님을 따르는 고귀한 소명을 만납니다.
새로운 삶의 지평이 열립니다. 창조적인 삶의 길이 열립니다.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삶의 의미 복음을 만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하느님께로 가는 은총의 길이 복음입니다. 우리의 삶을 대변하듯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는 예수님을 따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함께 기쁨을 맞이하는 기쁜 오늘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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