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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9/03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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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 온종일 부르짖사오니,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당신은 어질고 용서하시는 분,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자애가 넘치시나이다.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 저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으시어 생생한 믿음으로 은총의 씨앗이 자라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소서.

 

2023년 9월 3일 (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9월 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2주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로마서 12,2)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로마서 12,2) 로마서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로마서 12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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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예레미야서 20,7-9)
    주님의 말씀이 저에게 치욕만 되었습니다.

  • 제2독서
    (로마서 12,1-2)
    여러분의 몸을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 오늘 복음
    (마태오 16,21-27)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려야 한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9월 3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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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

 

 

마태오 복음
16장 21-27절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려야 한다.

 

그때에 

21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9월 3일 (일)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조학문 바오로 신부

 

📌 서울 성모병원 소개 00:21

📌 미사시작 00:53

📌 강론시작 16:10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9월 3일 (일)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조학문 바오로 신부

 

📌 미사시작 08:49

📌 강론시작 18:47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9월 3일 (일)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 미사시작 04:22

📌 강론시작 12:54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역설적인 구원의 신비

 

지난 주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을 메시아로 고백한 베드로 사도를 두고 다음과 같이 칭찬하셨습니다.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16,17-18). 

그런데 곧바로 이어지는 단락인 오늘 복음에서는 베드로를 심하게 나무라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두 단락의 연속성을 고려할 때, 베드로에게 내려진 두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저승의 세력도 이겨 낼 교회의 반석으로 뽑힌 베드로였지만, 곧바로 사탄이요 예수님의 걸림돌이라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또 하느님의 계시로 예수님의 본모습을 알아보게 된 베드로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느님의 일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자로 취급을 받습니다.

도대체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문제의 발단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당신 수난을 예고하시는 장면에 있습니다. 

베드로는 메시아께서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셔야 한다는 운명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사도가 기대하였던 메시아는 임금으로 위풍당당하게 오시며 큰 권능과 강한 힘으로 원수들을 제압하시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예고처럼 아무런 힘도 써 보지 못하고 무력하게 쓰러져야만 하는 메시아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런 나약한 분이 어떻게 당신 백성을 구하실 수 있겠는가?’ 예수님의 메시아 상이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당황한 베드로는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것이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구원 계획이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메시아의 수난을 거부한다면 결국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거부하는 것이며, 이는 하느님의 가장 큰 적대자 ‘사탄’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메시아는 사람들의 기대와 다르게 정복당하심으로써, 그리고 그 십자가 운명에 순종하심으로써 당신 백성을 구하는 방법을 선택하셨습니다. 

명예와 권력, 영광과 승리를 좇는 데 익숙한 세상에서 우리는 이 역설적인 구원의 신비를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보여 주듯이 사탄의 하수인이 되는 것은 그야말로 한순간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성공하면 행복해질까요?

 

성공하면 행복해질까요? 대부분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꿈이 이룰 수만 있다면, 나는 행복할 텐데….’, ‘이 목표에 달성하면 행복할 텐데….’, ‘로또 1등에 당첨되면 행복할 텐데….’ 반면, 큰 실패를 겪으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꿈은 이제 끝났어. 모든 걸 망쳤어. 목표에 이르지 못했으니 나는 불행해질 거야.’ 
 
하지만 성공해야 행복해진다는 것은 커다란 착각입니다. 실제로 거액 복권에 당첨된 사람의 행복은 얼마 뒤에 다시 예전과 같아졌다는 결과만을 봐도 그렇습니다.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사람의 행복도 얼마 뒤에 다시 예전과 같아집니다. 그렇다면 성공과 행복은 관계가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성공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주지 않을 뿐, 대신 행복이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어줍니다. 
 
행복 수준이 오르면 더 친절해지고 너그러워집니다. 또 긍정적인 마음으로 긍정적 효과를 주변 사람에게 전달합니다. 이런 사람이 좋을까요? 싫을까요? 당연히 좋습니다. 또 함께하고 싶을 것입니다. 감정이 전달된다는 말도 있듯이, 행복한 사람의 곁에는 그 사람의 행복이 전달되기에 행복한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 좋고, 더 건강하고, 더 윤리적인 세상을 함께 만들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많은 이가 성공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행복을 바라보고 행복을 살아야 하는데, 성공만을 바라보니 힘든 시간의 연속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속적인 기준을 내세우는 사람을 향해 일침을 날리시면서, 하늘 나라의 진리를 쫓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나는 과연 행복을 보는가? 아니면 성공만을 바라보는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지요.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인간이나 겪어야 할 고난과 죽음을 겪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고통과 시련의 시간은 하느님께 있어서는 안 되고, 오로지 영광의 시간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극도로 화를 내십니다. 예수님 신원에 대해 정확한 답을 이야기했다고 베드로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까지 맡기셨는데, 그 베드로에게 ‘사탄’이라는 표현을 쓰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세상의 성공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함께 사는 행복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일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느님의 일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을 또 하나의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진정한 행복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성공을 획득하게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나는 젊었을 때 10번 시도하면 9번 실패했다. 그래서 10번씩 시도했다.

- 조지 버나드 쇼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죽음이 삶이 되지 않을 때, 삶이 죽음이 된다

 

세상 사람들이 죽음을 대하는 자세는 크게 세 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은 죽지 않을 것처럼 죽음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경우입니다. 김범석 교수의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에 나온 사례 중에 어떤 사람이 죽기 직전 유일한 혈육인 동생이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을 때 숨넘어가는 소리로 “내 돈 2억 갚아, 임마!”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면 그것에 사로잡혀 더 가지려 하고 더 즐기려 하고 더 강해지려 합니다. 소유욕, 식욕과 성욕, 그리고 지배욕이 강해지며 집착에 대한 고통과 이웃과의 단절에서 오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합니다. 돈 좋아하고 절제 없는 삶을 살고 자기만 아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반면 어떤 사람은 죽음을 삶과 별개가 아닌 것으로 여깁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라이언을 구하러 왔던 주인공은 죽어가면서 라이언에게 “잘 살아야 해!”라고 말해줍니다. 그리고 라이언은 평생 자신을 위해 죽은 사람들 때문에 못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이들이 죽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죽음을 받아들인 척하며 실제로는 그 결정을 죽음 직전까지 미룹니다. 그러면서도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는 죽음의 실체를 적극적으로 접해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튜브에 보면 불교 신자였던 이지은 씨가 말기암으로 투병하는 남편을 보살피며 신앙을 가지게 된 간증이 있습니다. 

자기 남편과 함께 입원하고 있던 한 환자는 자신만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고 신도 두렵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눈의 실핏줄이 다 터져서 눈에서 피눈물이 나오고 있었고 몸은 고무풍선처럼 부풀어 있어서 천만 하나 덮어놓은 상태였으며 온몸의 땀구멍에서 소변이 빠져나와 주위에서 소변 냄새가 진동하였다고 합니다. 

하루는 그분의 아내와 밖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말도 못 하던 그 사람이 “정자야, 정자야! 무서워, 정자야!”라며 큰 소리로 아내를 불렀습니다. 무언가를 본 것이 분명했습니다. 아내의 목을 팔로 두르더니 “나 무서워서 혼자 못 가, 함께 가자!”라고 하며 놓아주지 않더랍니다. 계속 그런 두려움의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자기 남편의 귀를 막아주어야 했습니다. 보통 심박수가 30 이하로 떨어지면 사망하는데 그분은 억지로 숨을 몰아쉬며 사흘이나 버텼다고 합니다. 

이것에 충격을 받은 사람은 이지은 씨의 남편이었습니다. 남편도 도박과 외도 등으로 빚을 잔뜩 지고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 환자처럼 남편도 지은 씨를 발로 차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주위에 무서운 사람들이 둘러섰다는 것입니다. 세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는데 남편의 눈은 처음 보는 공포에 질린 눈이었습니다. 

이지은 씨는 불교 신자였음에도 ‘이 사람 지옥이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병원이기에 무조건 사람들을 불러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언니에게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는 소리를 듣고 돌아가시기 2주 전에 그분을 하느님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 반을 굶어 뼈만 남았고 온몸이 돌처럼 굳어있었는데도 맥박 30이 되었을 때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돌아가셨습니다. 

[출처: ‘말기암 임종 환자들의 죽음을 보며 겪은 충격적인 사실’, 유튜브 채널, ‘아빠 품 안에’]

이태석 신부님은 암 선고를 받고 먼저 돌보던 사람들을 돌볼 수 없게 된 것에 너무 마음 아파하였습니다. 죽음 뒤에 당연히 부활이 있으니 죽음은 그분의 사랑의 에너지를 빼앗지 못했습니다. 금문교를 지을 때 인부들이 두려움 때문에 물에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물을 쳤더니 아무도 떨어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죽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은 ‘부활’에 대한 확신입니다. 내일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이것을 주기 위해 예수님께서 죽으셔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처럼 죽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남에게 도움이 되는 죽음으로 살 때 그 사랑의 실천으로 부활에 이르게 됩니다. 죽음을 거부하던,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던 선택은 우리 것입니다. 그 선택으로 지금의 삶이 바뀔 것입니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금의 삶이 죽음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나도 가야할 길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오늘 복음을 보면 베드로 사도에게 대단한 반전이 일어납니다. 오늘 복음에 앞서 베드로 사도는 칭찬받는데,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식을 가진 자라는 거의 극찬을 받습니다. 

그런 그가 오늘 복음에서는 사탄이라는 욕을 바가지로 먹습니다. 그리고 주님 교회의 반석이라는 영예를 받았는데 걸림돌로 추락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베드로 사도가 느닷없이 사탄과 걸림돌이 되었는지, 사탄과 걸림돌의 기준이 무엇인지 생각게 됩니다. 

우선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걸림돌은 흔히 출세의 걸림돌이나 성공의 걸림돌이라고 하듯 세상사적입니다. 

그러나 주님에게 사탄이나 걸림돌은 이런 것이 아닐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왕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왕 노릇 못하니 이 세상에서 왕 노릇 하러 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사탄은 광야에서 유혹받으실 때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주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광야에 가시고 악령과 대결하시게 되었는데 그때 악령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렇게 하라는 식으로 유혹하고, 높은 산으로 주님을 데리고 가서는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주며 자기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그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하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제의들을 다 물리치시고 유혹을 이겨 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길은 출세 가도가 아니라 십자가의 길이며, 부활의 길이요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인 것이 분명하며, 그러므로 주님께는 이 길을 막는 것이 걸림돌이고 사탄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주님의 길은 

십자가의 길,
부활의 길, 

아버지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고, 그리고 이 길은 우리도 가야 할 길입니다. 이것을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구나!

 

하느님의 일은 하느님을 드러내며 하느님의 뜻을 따릅니다. 예수님의 여정은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는 하느님의 여정입니다. 십자가는 사람의 뜻 사람의 일을 내려놓는 하느님의 가장 큰 계획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걸림돌이 아니고 십자가를 지지 않는 우리자신이 걸림돌입니다. 

자신을 버려야 돌아갈 곳이 하느님임을 알게 됩니다. 신앙인의 정체성은 십자가를 지는 구원에 있습니다. 자신의 뜻을 버려야 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십자가를 떼어낼 수 없듯이 우리 또한 하느님의 구원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늘 나라는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모든 삶이 하늘 나라의 삶입니다. 목숨을 버리고 자유를 얻는 구원은 진정 삶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 줍니다. 모두 다 비우고 모두 다 버리고 떠날 우리들 여정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수난 받으시며 십자가를 지셨듯이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섭니다. 우직하게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갈 일입니다. 

십자가의 마음이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십자가로 모두를 살리는 구원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는 은총의 주일 아침입니다. 하느님의 뜻인 걸림돌을 십자가로 빼어 버립니다. 삶의 우선순위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십자가를 지는 하느님을 향한 신뢰입니다. 십자가로 다스리시고 십자가로 목숨을 구하시는 하느님을 신뢰합니다. 가장 중요한 일을 실천하는 오늘의 십자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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