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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9/01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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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귀를 기울이소서. 제게 응답하소서. 당신 종을 구해 주소서. 당신은 저의 하느님,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당신께 온종일 부르짖사오니,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 신자들을 한마음 한뜻이 되게 하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가르침을 사랑하고 그 약속을 갈망하며 모든 것이 변하는 이 세상에서도 참기쁨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게 하소서.

 

2023년 9월 1일 (금)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9월 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마태 25,6)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마태오복음 25,6) 마태 복음 성경구절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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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25장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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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9월 1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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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너희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마태오 복음
25장 1-13절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9월 1일 (금)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김명겸 사도 요한 신부

 

📌 교황님 8월 기도지향 00:22

📌 미사시작 00:37

📌 강론시작 07:22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9월 1일 (금)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전두병 요아킴 신부

 

📌 미사시작 09:42

📌 강론시작 18:29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9월 1일 (금)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 미사시작 03:40

📌 강론시작 11:40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9월 1일 (금)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 성체조배 0:03:15

📌 미사시작 1:02:55

📌 강론시작 1:10:25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열 처녀를 슬기롭거나 어리석은 인물로 구분 짓는 기준은 바로 준비성입니다. 날이 어두워질 때를 대비하여 등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신랑을 맞이할 준비는 열 처녀가 모두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관건은 얼마나 철저히 준비하고 있는가입니다. 
그 시대 유다인들의 혼인 풍습을 고려하여 볼 때, 여분의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는 현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혼인 잔치를 앞둔 신랑은 아마도 신부 아버지가 될 사람과 혼인 계약서를 쓰러 길을 떠난 것으로 보이는데, 장인과 세부 사항들을 하나하나 조율하다 보면 예상 시간보다 오래 걸려서 늦게 돌아올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고려한 다섯 처녀는 신랑을 기다리는 동안 밝힐 등기름을 넉넉하게 마련하였지만, 나머지 다섯은 그러한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기름을 따로 더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는 나름대로 마지막 때를 잘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비유에서처럼 등을 마련하고도 그 등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는다면 어떠할까요? 신앙을 가지게 되었으나 그 믿음을 유지할 연료, 곧 사랑을 실천하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그러한 신앙은 기름 없는 등과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주님!’ 한다고 다 구원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닫혀 버린 문 앞에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는 처녀들의 절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종말을 슬기롭고 철저하게 준비하기를 바라십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7,21).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모두 좋은 것이 될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해

 

나를 기분 좋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을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나에게 최고로 기분 좋은 것이 다른 이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나에게도 좋은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저는 야구를 좋아합니다. 열심히 응원하는 팀이 있어서 이 팀이 이기길 간절하게 원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팀이 이기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반대 팀을 응원하고 있었던 사람들의 기분은 최악일 것입니다. 이렇게 제가 응원하는 팀의 승리가 모두에게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따라 기분 나빠진 상대 팀 응원자와 말다툼할 수도 있고, 다른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결국 저에게도 좋은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자기만족은 이렇게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모두 좋은 것이 될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만 좋으면 그만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나만 바라보니 이웃을 볼 수도 없고 그들과 함께하는 예수님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보지도 못하고 함께하지 못하니 자기에게 좋은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을 늘 기억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주님께서는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늘 나라에 대한 비유를 말씀해주십니다.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가 있는데, 이 중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고 하지요. 어리석은 처녀는 등만 준비하고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고, 슬기로운 처녀는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신랑이 왔습니다. 문제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어리석은 처녀의 행동입니다. 그들은 슬기로운 처녀에게 기름을 나누어 달라고 합니다.

누구는 슬기로운 처녀가 기름을 나눠줬으면 모두에게 좋지 않겠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에 신부 측 들러리가 가지고 있는 등의 기름은 약 15분 정도만 태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즉, 나눠줬다가 이 결혼식 자체가 엉망이 될 수 있으므로 상인에게 가서 사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기름을 나눠줬다가 모두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어리석은 처녀는 슬기로운 처녀가 나눠주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결혼식에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등을 들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을 기억하고 가장 좋은 것을 실천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자기 만족만을 위한 삶이 아닌, 모두를 위한 삶 그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어리석은 처녀의 모습처럼 아무런 준비 없이 살아서는 안 됩니다. 계속해서 깨어 준비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너와 나는 오직 온 존재를 기울여서만 만날 수 있다. 온 존재에로 모아지고 녹아지는 것은 결코 나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나'는 '너'로 인해 '나'가 된다. '나'가 되면서 나는 '너'라고 말한다.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다.

- 마르틴 부버 '나와 너' 중에서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현명한 처녀들이 기름을 나누어 줄 수 없는 이유

 

오늘 복음은 현명한 처녀 다섯과 미련한 처녀 다섯의 이야기입니다. ‘다섯’은 보통 육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을 상징합니다. 그러한 인간에게 기름이 주어지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됩니다. 곧 성령과 성자가 합하여 ‘일곱’이 되는 것입니다. ‘7’은 하느님 자녀를 상징합니다. 

하느님은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명한 처녀들은 왜 기름을 나누지 않았을까요? 그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하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름은 ‘도움의 은총’을 상징합니다. 도움의 은총은 생명의 은총을 얻기 위해 필요한 은총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은총이 가득하다고 하셨을 때 그 은총은 다른 이와 나눌 수 없습니다. 그 은총으로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있을 따름입니다. 동방 박사들도 별을 보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오직 동방 박사들만이 별의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은총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도움의 은총은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나의 노력으로 챙겨야 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한 준비물입니다. 

현명한 처녀들은 그것들을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서 얼마든 원하면 얻을 수 있는 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지 못하는 지혜는 언제나 나누기에 부족한 지혜입니다. 참 지혜는 좋은 감정이 꺼지지 않게 합니다. 

아이유와 이선균 주연의 ‘나의 아저씨’에는 현명한 처녀와 미련한 처녀가 등장합니다. 동훈은 학교와 회사 모두 입사 후배에게 밀려 말단 과장인 불쌍한 남자이고, 지안은 빚을 갚기 위해 위장 취업한 불쌍한 아이입니다. 정당방위이기는 하지만, 아이유는 어렸을 때 자기 가족을 괴롭히는 이를 죽인 살인자입니다. 지안에게 아버지가 죽임을 당한 아이에게 지안은 끊임없이 돈을 갚아야만 합니다. 

동훈의 아내는 동훈을 몰아내려는 후배와 바람을 피웁니다. 동훈은 그것을 알면서도 가족을 지키고 회사에서 버티기 위해서 참아냅니다. 가족까지 무너지면 더는 살 의미가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동훈의 후배 대표이사에게 지안은 이용당합니다. 자신을 믿고 써 준 과장이었지만, 당장 돈이 더 급했기 때문입니다. 동훈의 모든 것을 녹취하고 심지어 동훈을 꼬시기까지 하라는 것입니다. 대표이사에게 받은 돈으로 지안은 빚을 갚아나갑니다. 

시간이 지나며 동훈은 자신이 뽑아준 지안이 살인을 저질렀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동훈은 자신과 같은 불쌍한 처지인 지안을 오히려 지지해줍니다. 자기를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의 등에 칼을 꽂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지안은 점점 동훈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게 됩니다. 

만약 지안이 동훈을 도청하지 않았다면 동훈의 마음을 몰랐을 것입니다. 지안은 동훈의 아내에게 가서 동훈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해주고 동훈의 아내까지 용서를 빌게 합니다. 동훈의 마음을 알면서도 바람을 피운 동훈의 아내와 자신을 희생하여 동훈을 구하려는 지안의 모습에서 우리는 미련한 처녀와 현명한 처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동훈의 아내에게는 감정이 없었습니다. 비로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랑을 맞을 준비가 안 된 미련한 처녀였습니다. 반면 지안은 미안함과 감사, 그리고 사랑의 마음을 키워갔습니다. 이는 더 알아감을 통해 생겨나는 감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동훈에게 더 가까운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감정은 나누어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감정 없이 바치는 제물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동훈의 아내가 동훈에게 밥을 차려줘도 그것은 올바른 제사가 아닙니다. 구약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제사는 번제, 곡식제, 친교제, 보상제, 속죄제 등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하느님께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의 마음이 들어있는 제사입니다. 이 제사를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미안함과 감사함, 그리고 나아가서 사랑의 마음까지 성장시키기를 원하십니다. 그 감정이 별이 되어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합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그리스도를 알아보게 만드는 세상의 지혜에도 관심이 없었던 이들이었습니다. 창조자를 알거나 왜 그분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했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니 미안함과 감사, 사랑이 줄어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알아보게 만드는 지혜를 얻기 위해 스스로 노력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미련한 처녀들처럼 “나도 너희를 모른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제가 『하.사.시.』를 읽을 때 그러한 새로운 지식들을 나누려고 해 보았습니다. 누구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수녀님은 화를 내셨고 형들은 다 아니까 너나 잘하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신학교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책을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도움의 은총은 자기 노력으로 얻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상인에게 가서 미안함과 감사함, 그리고 사랑이 증가할 수 있는 지식이 떨어지지 않게 꾸준히 살 수 있도록 합시다.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감정입니다. 감정은 나누어줄 수 없으니 우리가 키워가야 합니다. 감정 없는 전례가 되지 않게 합시다. 부모가 차려준 음식을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사랑의 감정을 키우며 먹읍시다. 이것이 우리 기름을 꺼지지 않게 하는 방법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등잔의 기름

 

“하늘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마태오 복음은 어제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의 비유에 이어 오늘 열 처녀의 비유를 왜 또 드는 것일까? 

두 비유 모두 언제가 될지 모르는 종말에 주님의 오심을 깨어있다가 맞이해야 한다는 가르침 면에서는 같은데, 그래서 다른 복음에는 이 비유가 없는데 왜 굳이 이 비유를 또 드는가? 불필요한 중복이 아닌가? 아니라면 무엇을 더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차이점이 있다면 기다리는 사람이 종과 처녀라는 점이고, 오실 주님이 주인과 신랑이라는 점인데 이 차이점을 굳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차이점을 얘기하고 싶었던 거라면 기다리는 우리는 주인의 종이나 일꾼이 아니라 신랑의 연인이라는 관점에서 오늘 비유를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종이나 일꾼이 주인과의 수직관계라면 연인은 위아래가 없이 동등한 수평관계라는 점도 보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열 처녀의 비유에서 기다리는 대상이 신랑인 것은 분명한데 열 처녀가 신랑의 신부인지 아니면 혼이 잔치의 들러리인지 분명치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열 처녀가 신랑의 연인 또는 신붓감이라고 생각해봤습니다. 아직 신부가 아닌 신붓감이고 신랑을 사모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언제 신랑이 오든 잘 준비하고 깨어 기다리다 맞이하면 신랑의 신부가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신부가 되지 못함은 물론 아예 혼인 잔치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나 출발점은 똑같고 공평합니다. 다 처녀이고 신랑을 사랑한다는 면에서 똑같고, 신랑은 열 처녀에게 신부가 될 수 있는 똑같은 기회를 줬습니다. 

그런데 목적지인 신방에는 들어갈 수도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신랑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처녀들에게 달린 것입니다. 

제 생각에 등잔의 기름은 신랑에 대한 사랑이고 갈망이고 열망입니다. 열 처녀 모두 신랑을 사랑하고 신부가 되고 싶은 처녀들이지만 그 사랑과 신부가 되고 싶은 갈망과 열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사랑이라는 기름은 한 번에 왕창 준비하고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그리고 매 순간 채우는 것이고 조금씩 끊임없이 채우는 것입니다. 

성가를 부를 때는 성가를 사랑과 열망과 갈망을 가지고 부르고, 기도할 때도 분심잡념 가운데 하지 않고 정신을 가다듬어 바치고, 일할 때도 종이나 일꾼처럼 일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연인에게 줄 목도리를 뜨고 손수건에 수를 놓는 연인처럼 사랑으로 함으로써 사랑을 자신 안에 조금씩 계속 채워가는 것이고 마침내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불이 뜨겁게 타오른 적이 한 번도 없는 미적지근한 사랑도 안 되겠지만 한때 불같이 사랑하고 이내 사그러드는 그런 사랑도 안 됩니다. 

아무튼, 매일, 매 순간을 사랑으로 채우는 것이 등잔에 기름을 채우는 것이며 사랑이라는 기름은 일생에 걸쳐 마련해야 하는 것임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빛나는 초가을 햇살이 넘실대는 9월의 첫날 순교자 성월의 첫시작입니다. 모였다 흩어지고 합쳐졌다 쪼개지는 우리들 여정입니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시는 분은 언제나 신랑이신 주님이십니다. 오시는 신랑을 맞으러 방향을 틉니다. 등(燈)과 기름도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필요한 사랑과 지혜입니다. 

신랑을 맞이하고 만나는 것이 신앙의 목적입니다. 오시는 신랑을 뒤로 하고 기름을 사러 돌아서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은 아닙니다. 서로를 온전히 밝히고 서로를 담아내는 것이 등과 기름의 역할입니다. 목적을 놓치면 방향도 잃게 됩니다. 기다림을 부정하는 것은 만남도 부정하는 것입니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면서 깨닫게 되는 하늘 나라의 기쁨입니다.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의 비유 이야기로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 지를 깨닫게 됩니다. 삶의 방향을 놓치지 않는 삶의 지혜가 중요합니다. 함께 어울려 사는 지혜가 공동체의 지혜이며 만남의 잔치입니다. 닫히고 열리는 것이 문(門)이며 한밤중에서 새벽으로 바뀌는 것이 모든 날들의 흐름입니다. 등과 기름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축하하고 축하받는 축복의 관계입니다. 하늘 나라의 주소와 위치는 신랑이신 주님 자체입니다. 잔치 하객이 가져야 할 자세를 배웁니다. 삶의 전부를 거시는 신랑이신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밀어주고 당겨주는 공동체입니다. 아낌없이 주시는 잔치의 초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랑과 함께 하는 기쁨이지 기름이 떨어졌기에 기름을 사러 가는 어리석음이 아닙니다. 삶의 목적과 삶의 방향을 잔치의 기쁨이게 하는 것은 사랑의 지혜입니다. 가장 좋은 사랑의 지혜는 가장 좋은 오늘을 놓치지 않는 가장 좋은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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