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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8/31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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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귀를 기울이소서. 제게 응답하소서. 당신 종을 구해 주소서. 당신은 저의 하느님,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당신께 온종일 부르짖사오니,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 신자들을 한마음 한뜻이 되게 하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가르침을 사랑하고 그 약속을 갈망하며 모든 것이 변하는 이 세상에서도 참기쁨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게 하소서.

 

2023년 8월 31일 (목)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8월 3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깨어있어라 마태오복음 성경 말씀 카드

깨어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마태 24,42)

 

깨어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마태 24,42) 마태오복음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테살로니카1서 3,7-13)
    여러분이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과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을 주님께서 더욱 자라게 하시기를 빕니다.

  • 오늘 복음
    (마태오 24,42-51)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8월 31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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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오리라.

 

 

마태오 복음
24장 42-51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2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4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45 
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46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8 
그러나 만일 그가 못된 종이어서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49 
동료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또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 

50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51 
그를 처단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8월 31일 (목)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장대건 대건 안드레아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7:22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8월 31일 (목)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 미사시작 06:36

📌 강론시작 14:42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31일 (목)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9:12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8월 31일 (목)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 성체조배 0:03:41

📌 미사시작 1:04:19

📌 강론시작 1:12:01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용진 요셉 신부

 

기도는 깨어 있으려고 마음의 등불을 켜 두는 일이다.

 

많은 성당 제의실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주님, 오늘 제가 드리는 이 미사가 저의 첫 미사이고 마지막 미사인 것처럼 봉헌하게 하여 주소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은 자신에게 맡겨진 주인의 집안 식솔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는 종입니다(45-46절 참조). 오늘 복음이 말하는 충실한 그 종은 바로 우리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정성을 다하여 돌보고 섬길 주님의 “집안 식솔”(45절)을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본분을 망각하고 우리에게 그들을 맡겨 주신 하느님마저 잊고 살아갑니다. 하느님을 공경하고, 우리에게 맡기신 식솔들을 돌보는 대신 자신의 명예와 영광을 얻으려고 세상의 우상들을 좇아 살고 싶은 유혹을 겪습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교회는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으로 ‘깨어 있음’을 꼽습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우리 마음이 게을러져 일상의 평범함 속에 우리 자신의 영성이 매몰되고 사라지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 것”(프란치스코, 성녀 마르타의 집 아침 미사 강론, 2022년 8월 25일 자)입니다. 

기도는 깨어 있으려고 우리 마음의 등불을 켜 두는 일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이웃과 형제들을 돌보려는 마음이 식어 갈 때마다 기도는 차가워진 그 열정을 다시 데워 줍니다. 

이처럼 기도는 언제나 우리를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다시 데려가 줍니다.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으로 살고자, 그리고 언제나 깨어 있고자 오늘도 기도합시다. 사랑으로 형제들을 돌보며 기쁨으로 만나 뵐 주님을 기다립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누구 탓을 해야 할까요?

 

사제 서품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떤 분으로부터 화초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제까지 어떤 식물도 키워본 적이 없어서 여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지요. 더군다나 당시에는 인터넷도 활성화되어 있지 않을 때였기에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친한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잘 모르지만 물 잘 주고, 햇빛 볼 수 있게 해주고, 여기에 사랑하는 마음까지 있으면 잘 자라지 않겠냐고 조언합니다. 
 
매일 분무기로 물을 뿌려 잎과 줄기를 닦으며 사랑을 주었습니다. 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물을 주었고, 햇빛도 볼 수 있도록 햇볕이 좋은 곳에 놓았습니다. 하지만 이 식물은 점점 시들어갔습니다. 화초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 보더니 분갈이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씀하십니다. 화원에서 처음 가져온 화분이 작아서 뿌리가 더 이상 자라지 못해 죽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이제까지 식물에 이 정도 관심과 사랑을 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기울였음에도 죽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누구 탓을 해야 할까요? 사랑을 주었어도 죽어버린 이 식물을 탓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사랑했다고 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한 제 탓이었습니다. 
 
사랑의 주님이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화내는 분이 있습니다. 그만큼 정성을 기울였는데 왜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되었냐며 불평하는 분도 있습니다. 주님께 대한 원망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주님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알려고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얼마나 주님을 알고 있습니까? 정성을 다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단순히 정성을 다했다고 사랑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잘 알려고 노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도록, 일상의 쉬운 예화를 통해서 설명해주십니다. 특히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이시기에, 잘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시지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주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주인에 대해서 잘 아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인 것처럼, 주님에 대해 잘 아는 우리가 되어야 충실하고 슬기로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오신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아직도 멀었다면서 자기 욕심과 이기심 채우는 데에 온 기울여야 할까요? 아닙니다. 주님을 잘 아는 사람은 주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사랑의 실천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위선자들처럼 하늘 나라 앞에서 울며 이를 가는 모습이 아니라, 환하게 웃으면서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내 힘으로 이룩한 업적이나 소유는 저세상에 가져갈 수 없지만, 사랑의 기억만은 가져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죽음조차 두렵지 않아진다.

- 박완서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사랑하라? 먼저 먹고 기도하라!

 

오늘 예수님은 깨어있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종은 주인이 몇 시에 올지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깨어 주인이 맡긴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일하지 않는다면 깨어있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주인이 우리에게 맡긴 일은 무엇일까요? 양식을 제공하는 일입니다. 주인이 하인들에게 제때 양식을 주라는 소명을 주고 떠났다면 주인이 돌아왔을 때 양식을 주고 있는 이들은 깨어있는 종들입니다. 

우리가 내어주어야 할 양식은 무엇입니까? 단순히 배만 불리는 음식일까요? 양식은 사랑이 담긴 음식입니다. 양식을 먹으면 그것을 주는 이의 자존감을 받습니다. 아이가 부모처럼 되는 것입니다. 양식을 내어주라는 말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도 마치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준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에게 하느님 자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주라는 뜻입니다. 이 일을 하고 있지 않다면 잠을 자는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도 일곱 마귀가 들려 동물처럼 살다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고 결국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마리아야!”란 이름을 듣습니다. 그때 막달레나는 지금까지의 모든 잘못된 삶을 버리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그리스도 예수님께 합당한 사람이 되기를 결심합니다. 그렇게 자신도 예수님에게 “랍뿌니!”, 즉 ‘선생님’이라고 응답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배워가야 하는 처지기 때문입니다. 

김춘수의 ‘꽃’에서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앉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이 일을 함이 깨어있음입니다.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내가 먹을 양식도 없는데 누군가에게 양식을 줄 수 있을까요? 이와 같은 일이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벌어집니다. 최광현 작가의 『가족의 두 얼굴』에 나오는 사례입니다. 

진혁 씨는 상담하며 자신은 30년 동안 한 번도 자신의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진혁 씨의 아버지는 돈이 없어 공부하지 못했지만 사업 수완을 발휘하여 자수성가한 분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는 공부에 대한 한이 있었습니다. 행정고시에 합격하는 것이 꿈이었고, 주위에서도 공부만 했었다면 분명 합격했을 것이란 말을 합니다.

진혁 씨는 셋째였는데, 아버지는 진혁 씨를 임신했을 때 왕관을 받는 태몽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진혁 씨가 자신의 꿈을 이루어줄 아들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다른 형제들보다 특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진혁 씨도 아버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지만, 번번이 떨어졌습니다. 

고시 공부에 지친 진혁 씨는 회사에 취직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다시 시도하라고 윽박지릅니다. 진혁 씨는 자기 인생을 살지 못하게 만든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또 그 꿈을 이뤄주지 못한 죄책감에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진혁 씨는 그저 맛있는 물고기에 불과합니다. 지금 깨어나지 못한다면 하느님 앞에 가서 자신은 셋째를 가장 사랑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깨어나야 합니다. 사랑은 양식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양식으로 삼았습니다. 자신이 배가 고팠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배가 고픈데 어떻게 양식을 나누어줄 수 있을까요?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그전에 먹고 기도해야 합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2010)는 유명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회고록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엘리자베스는 8년 차 결혼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남은 것이 없다는 공허감에 빠집니다. 이혼을 결심하고 자신의 대본으로 연극을 하는 주인공과 새로운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그것도 금방 시들어버립니다. 사랑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항상 메마르게 끝나는 것 때문에 길을 잃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하느님께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해답은 오지 않습니다. 그녀는 1년 동안 이탈리아와 인도, 그리고 발리를 여행하기로 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좋은 친구들을 만나 실컷 맛있는 것을 먹습니다. 너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녀는 결혼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먹는 것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음을 발견합니다. 

인도에서는 기도를 배웁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집착하는 자기 자신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용서하기로 합니다. 자기 자신까지도. 

 마지막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새로운 사랑을 만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사랑은 텅텅 비어가는 자신을 메마르게 만드는 사랑이었습니다. 두려워서 망설입니다. 그러나 먹는 즐거움을 찾고 내면의 악마를 이기는 기도를 할 줄 안다면 더 큰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사랑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내가 먹어야 할 양식을 내어주는 일입니다. 내어주면서 메말라진다면 그 사랑에는 언제나 한계가 옵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깨어있으십시오. 먼저 먹고 기도하십시오. 그래야 내어줄 수 있습니다. 기도 안에서 먼저 자신이 꽃이 되지 않으면 어떤 풀도 꽃으로 불러줄 수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믿음은 있지만 사랑은 없는

 

오늘 복음은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 얘기이고, 독서는 어제에 이어 바오로 사도와 신자들 관계 얘기로 오늘 나눔은 독서와 복음을 연결하여 묵상한 것을 나누겠습니다. 

한 마디로 얘기하면 바오로 사도는 복음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로 그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였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충실한 종은 일차적으로 주인 곁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재산과 식솔들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주인을 떠나지 않고 주인 곁에 충실히 머물며 지키는 것이 인격적인 충실함이라면 주인의 재산과 식솔들을 잘 관리하는 것은 사명적인 충실함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인격적인 충실성은 주님을 만유 위에 사랑하는 것이고 오늘 복음의 말씀대로 주인에게 늘 깨어있는 것이며, 달리 말하면 늘 기도하고 언제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깨어 기도하며 언제나 기도하는 것은, 제 생각에 성사적인 기도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성사적인 기도란 무엇을 하든 그 일 가운데서도 주님께 깨어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차를 마시더라도 그냥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음악을 듣거나 하느님을 묵상하면서 마시면 차 한 잔의 성사가 되지요. 

저의 경우 옛날에 담배 필 때 한동안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러다 어떤 일을 계기로 흡연을 성사화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담배 필 때마다 십자성호를 긋고 담배 피기 시작했고, 흡연이 니코틴 중독이 아니라 주님께 올리는 분향 예절이 되게 했지요. 

다음으로 사명적인 충실성은 이웃을 향한 사랑이고 열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웃이란 내게는 이웃이지만 주 하느님께는 자녀이고 식솔이며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종인 나에게 돌보라고 맡긴 존재들이지요. 

이는 마치 자식이 내게는 자식이지만 실은 하느님께서 돌보라고 내게 맡긴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내 자녀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라고 받아들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 자녀이니 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더 나아가 하느님의 자녀답게 자라도록 영적으로 세심하게 돌볼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도 신자들이 하느님의 자녀답게 자라도록 영적으로 어떻게 세심하게 돌봤는지 얘기하는데 먼저 신자들을 믿음의 자녀로 키우는 것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믿음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게 되기를 밤낮으로 아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의 믿음이 확고함을 칭찬하면서도 그래도 부족함이 있다면 그 부족한 부분을 자기가 채워줘야 한다고, 그러니까 믿음이 자라도록 도와주고 기도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하나는 신자들의 사랑을 자라게 하는 역할인데 바오로 사도는 이에 대해 이렇게 또 얘기합니다. 

“여러분이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과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도,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처럼 주님께서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길 빕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에 이어 이웃에 대한 사랑이 자라길 바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충만하면 이제 이웃 사랑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거지요. 

사실 악마를 믿는다면 모를까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내게 믿음은 있지만 사랑을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그러므로 하느님을 믿는 대다수 사람은 하느님을 믿는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쯤은 머리로 아는 사람들입니다. 

알지만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생각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주님 말씀하셨고, 프란치스코는 여기에 더해 애를 다하고, 감각까지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는 거지요. 

아무튼 하느님 믿음은 있지만 이웃 사랑이 없는 나는 아닌지, 사랑을 한다지만 머리 사랑으로 그치는 나는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준비된 벼이삭이 들판에서 영글어가며 열매를 맺습니다. 모두가 시간만 흘려보낸다고 익어가진 않습니다. 뿌리가 땅에 하느님께 닿아야 익어가고 영글어 갑니다. 이들과 달리 우리는 하느님께 너무 불충실한 삶을 살아갑니다. 

충실하고 슬기로운 관계가 행복한 관계입니다. 행복하지 않는 우리의 불성실과 위선을 먼저 아프게 꾸짖으십니다. 사랑이 없으면 기다림도 깨어있음도 준비도 있을 수 없습니다.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관계는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불성실과 무책임의 아픈 관계를 반성합니다. 준비한다는 것은 충실하고 슬기로운 삶으로 우리가 삶의 좌표를 이동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늦어지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엉뚱한 일을 하기에 늘 우리 쪽에서 늦는 것입니다.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우리는 하느님을 만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준비이며 하느님을 위한 깨어있는 사랑입니다. 

잇속은 빠르고 회개는 더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충실한 사랑입니다. 충실한 관계 충실한 열매입니다. 행복은 충실함이 빚어내는 준비의 잔치 깨어있음의 기쁨입니다. 내어맡김의 기쁜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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