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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7/16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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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옵고, 당신 영광 드러날 때 흡족하리이다.

하느님, 길 잃은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시어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시니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이가 그 믿음에 어긋나는 것을 버리고 올바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3년 7월 16일 (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7월 1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5주일

 

 

마태오복음 성경 말씀 카드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마태 13,16)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마태 13,16) 마태오복음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이사야서 55,10-11)
    비는 땅에서 싹이 돋아나게 한다.

  • 제2독서
    (로마서 8,18-23)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 오늘 복음
    (마태오 13,1-23)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7월 16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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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씨앗은 하느님의 말씀, 씨 뿌리는 이는 그리스도이시니 그분을 찾는 사람은 모두 영원히 살리라.

 

 

마태오 복음
13장 1-23절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1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12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13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14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15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6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18 
그러니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19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20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21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22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3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7월 16일 (일)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이승현 베드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06

📌 강론시작 15:23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7월 16일 (일)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진슬기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8:01

📌 강론시작 18:29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7월 16일 (일)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5:22

📌 강론시작 13:17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씨 뿌리는 사람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독특하게 해설이 달려 있습니다. 

씨는 말씀을, 씨가 뿌려진 땅은 말씀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를 나타냅니다. 땅은 네 종류로 나누입니다. 길, 돌밭, 가시덤불 그리고 좋은 땅입니다. 같은 씨, 곧 같은 말씀이지만 그 말씀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받아들여지거나 영향을 주고 열매 맺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하느님의 말씀과 ‘나’를 생각하게 합니다. 가장 먼저 던질 수 있는 질문은 ‘나는 어떤 땅인가?’입니다. 나는 어떻게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찾아오고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비유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신비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주로 쓰시는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나 듣는 것에 둔한 사람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말씀에 귀 기울이고 기꺼이 받아들여 말씀을 이해하고자 애쓰는 사람은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말씀에 따라 살아가며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신비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막연하게 아는 경험과 실제로 경험해서는 아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몇 년 전에 대림 특강을 위해 호주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북반구에 살고 있었던 제가 적도 이남인 남반구에는 처음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차이가 있을까 싶어서 별 준비 없이 호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도착과 동시에 새롭고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한국과 전혀 다른 계절 체험이었습니다. 한국은 12월이라 추운 겨울인데, 호주는 너무 더운 한 여름이었습니다. 남반구와 북반구 날씨가 정반대라고는 들었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보냈습니다. 
 
막연하게 아는 경험과 실제로 경험해서는 아는 것은 분명히 달랐습니다. 그런데 주님에 대해서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막연하게만 사랑의 주님, 평화의 주님, 일치의 주님이라고 말할 뿐, 이런 주님을 체험하는 곳에는 가려 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니 주님과 대화를 나눌 수 없고, 성경을 읽지 않으니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주님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세상의 것만을 쫓으며 사니 일상 안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는 주님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실제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학창 시절 수학 문제 풀던 것이 기억납니다. 선생님께서 수업 중에 문제를 직접 풀어주십니다. 그러면 그 뒤에 이 문제가 시험에 나오면 저절로 풀게 될까요? 배운 문제를 자기가 직접 풀어봐야 시험 문제의 답을 맞힐 수 있게 됩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이지만 우리 역할에 따라 주님을 더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주님 말씀, 주님 뜻을 직접 실천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늘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냥 온갖 부정적인 마음으로 불평불만만 하면서 주님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이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기쁜 소식이지요.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꾸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땅의 마음을 갖추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길에 뿌려지고, 돌밭에 뿌려지고, 가시덤불에 덜어진 마음과 같았습니다. 좋은 씨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그냥 버려집니다. 
 
주님의 말씀은 그냥 듣기만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직접 몸으로 따라야만 실제로 구원의 은총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농부는 좋은 땅에 씨를 뿌리지, 나쁜 땅에 씨를 뿌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 가득하신 주님께서는 나쁜 땅의 모습을 갖춘 우리의 마음에도 당신 말씀의 좋은 씨앗을 뿌려주십니다. 
 
주님의 사랑을 직접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회개하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여러 가지 언어로 말합니다. 이 여러 가지 언어란 그리스도를 증거해 주는 겸손, 가난, 인내 그리고 순종입니다. 우리가 생활에서 이들을 실천할 때 그 실천을 통하여 여러 가지 언어를 말하게 됩니다.

-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오늘 복음은 씨뿌리는 농부의 비유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의 깊게 보고자 하시는 말씀은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 군중들에게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라고 하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는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귀’가 당신의 비유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모두 하나의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마태 13,34 참조). 예수님은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십니다. 이해하기 쉬워지라고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마태 13,13 참조). 예를 들어 꿀이 없는 세상에 꿀을 맛본 사람이 있다면 그 꿀맛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어…. 꿀은…. 마치 꽃처럼 향기롭고, 태양처럼 따사롭고, 사탕처럼 달곰하며, 엄마 품처럼 포근한 맛이 납니다.”

비유는 이렇듯 이미 다른 차원의 것을 경험한 사람이 자신의 체험까지 오게 만들기 위한 수단입니다. 마치 원시인처럼 살아가는 어떤 섬에 그들이 문명의 세계로 나아올 수 있도록 놓아주는 다리와 같습니다. 이것이 말씀이고 비유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들을 귀가 필요합니다. 자신들의 세상보다 그 다리를 건너는 것이 더 유익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다리를 건너게 됩니다. 

그렇다면 다리를 건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말씀을 해석하려 들지 말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한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가진 재산을 다 팔아 아무 쓸모 없는 황무지와 같은 땅을 샀습니다. 그리고 게으른 두 아들에게 엄청난 크기의 땅을 반씩 나누어 주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받은 땅속엔 내가 공평하게 나누어 묻어 둔 나의 모든 유산이 있단다. 그것을 찾아내어 행복하게 살아라.”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두 아들은 보물을 찾기 위해 각자의 땅을 열심히 팠습니다. 하지만 보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첫째는 고된 노동 끝에 아버지에게 속았다며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그는 땅을 헐값에 팔아 방탕하게 소진하였습니다. 결국 병에 걸려 외롭게 죽어갔습니다. 둘째는 달랐습니다. 역시 보물을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땅을 파다가 밭의 돌을 다 걷어 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다 씨앗을 뿌리니 엄청난 수확을 거둬들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비록 황무지이지만 비옥한 땅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는 돈도 많이 벌었고 행복한 가정도 꾸렸습니다. 

왜 아버지의 말에 대한 두 아들의 생각이 달랐을까요? 첫째는 비유 말씀을 해석하려 들었고 둘째는 비유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어떤 말씀을 해석하거나 분석하려는 시도는 내가 그 말씀을 한 분 위에 선다는 뜻입니다. 더 똑똑한 사람이 덜 똑똑한 사람의 말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들을 귀가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말씀을 분석하고 해석하려는 이들은 자아를 긍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아는 뱀입니다. 뱀을 긍정하는 사람들은 뱀이 요구하는 ‘가져라’, ‘먹어라’, ‘높아져라’라는 명령이 행복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그것과 반대되는 하느님의 요구는 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마치 무덤에 묻힌 라자로에게 “이리 나와라!”(요한 11,43)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문밖에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길과 같은 사람은 자아를 긍정하기 때문에 그 말씀을 아예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돌밭과 같은 사람은 들었다가도 금방 잊어버립니다. 가시밭과 같은 사람은 돈 걱정 때문에 결국엔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어린이와 같은 사람만이 부모님 말씀에 순종할 줄 압니다. 그 말씀만이 자신을 어른으로 성장시켜 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믿기 때문에 부모의 말을 분석하기보다는 순종합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주님 말씀에 순종할 준비가 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십일조 봉헌’이 신앙인으로서 들을 귀가 있다는 첫 번째 증거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에덴동산에서부터 명령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봉헌하면 가시밭과 같이 될 일은 없습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주님의 가시밭이었기 때문에 멸망하였습니다. 

나무토막에 계속 불을 지피면 그 안에 있든 물이 빠져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 내면의 안 좋은 욕구들을 솎아내기를 원치 않으면 아무리 성령의 불이 내리더라도 그 사람 안에서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려는 마음을 갖읍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나의 말씀 밭은?

 

연중 제15주일 독서와 복음은 하느님 말씀과 그 말씀을 듣는 사람의 관계에 관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서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데, 복음에서는 그 하느님 말씀이 땅에 따라 풍성히 열매 맺기도 하지만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음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이사야서 말씀과 복음 말씀은 서로 모순되는 셈입니다. 하느님 말씀은 당신 뜻을 다 이루신다는 말씀과 아무리 하느님 말이어도 우리 마음 밭이 나쁘면 열매 맺지 못한다는 말씀이 서로 모순을 이루는 셈인데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모순을 느끼기보다 사랑을 느낌이 좋을 것입니다. ‘반드시’라는 말에서는 사랑의 의지를 느끼고ㅈ길이나 돌밭이나 가시덤불에도 떨어졌다는 비유에서는 인간을 가리지 않고 아낌없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저라면 내 말이 헛된 말이 되지 않게 하려고 내 말을 알아들을 사람과 듣고는 내 말대로 실천할 사람에게만 말을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입만 아플 것이기에 그런 사람에게는 아예 입을 다물 것입니다. 

그런데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에게 똑같이 비를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말씀을 건네심으로써 당신 사랑에서 아무도 배제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인간의 경우 말을 건네지 않는다는 것은 상종조차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런 인간에 비해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이 말을 건네기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도 말씀을 건네시는 것이니 아무 데나 씨를 뿌리시는 하느님의 행위는 어리석음이 아니라 아낌없이 주심이고 가리지 않고 주심의 표시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당신 뜻을 이루시고야 만다는 말씀의 뜻 또한 사랑의 의지입니다. 우리 인간이 들을 때까지 기다려주시겠다는 것이요, 인간이 듣지 않아도 당신 말씀을 거둬들이거나 포기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이러한데도 우리 인간의 마음 밭은 길이거나 돌밭이거나 가시덤불일 수도 있지요. 길이란 하느님 말씀이 씨도 먹히지 않는 경우입니다. 말씀을 냉대하는 경우요 전혀 이해치 못하는 경우요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는 경우입니다. 

돌밭이란 돌이 섞여 있는 땅이란 뜻이니 받아들이긴 하지만,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비유에서 씨란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이라고 했는데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이 솔깃하긴 했지만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사는 데 있어 어려움이 생기면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을 포기해버리는 경우입니다. 

가시덤불이란 근심과 걱정이 가시덤불처럼 많은 땅입니다. 그리고 근심과 걱정이란 말할 것도 없이 이 세상 근심 걱정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미사나 기도 때 듣지만 이내 이 세상 살아가는 근심 걱정에 뒤덮이는 경우입니다. 

하느님께 기도하면 되는데 걱정하는 경우지요. 걱정이 기도를 뒤덮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분심으로 나타납니다. 어쨌거나 한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느님 말씀이 우리 인간에게서 좌절되는 세 가지 경우를 오늘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는데 나의 마음 밭은 어떤 상태인지 또 어쩔 것인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농부는 씨앗으로 농사를 시작합니다. 작은 씨앗이 싹을 틔우며 많은 열매로 자라납니다. 씨앗을 통해 드러나는 무한한 사랑과 뜨거운 하느님의 생명력입니다. 풍성한 식탁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연을 대하는 마음이 곧 하느님을 대하는 농부의 참된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 밭에 무엇을 뿌려야 할지를 뜨겁게 성찰합니다. 

땅을 일구듯 마음을 일굽니다. 이미 가장 좋은 씨가 우리 마음의 밭에 뿌려졌습니다. 말씀의 씨는 마음과 함께 자라납니다. 마음이 있는 자리가 말씀이 자라나는 씨앗의 자리입니다 마음이 죽으면 씨앗도 죽습니다. 좋은 씨앗은 마음을 속이지 않습니다. 씨앗의 시간은 씨앗을 뿌린 농부의 시간이 됩니다. 신앙의 씨앗 또한 이와같습니다. 

믿음으로 오늘을 써 내려가는 우리들 삶입니다. 씨앗의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씨앗은 목숨을 내걸고 우리에게 왔습니다. 씨앗과 함께 한 농부의 시간에 감사드립니다. 농민들이 땅을 일구듯 우리 또한 마음의 밭을 일구는 참된 신앙이길 기도드립니다. 농부이신 하느님께서 씨앗을 안고 마음을 안고 가십니다. 말씀의 씨앗을 읽고 마음을 익히는 은총가득한 주일 아침입니다. 어떤 씨앗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야 할지를 이제야 압니다. 그것은 말씀의 좋은 씨앗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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