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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6/29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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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도들은 세상에 사는 동안 자신의 피로 교회를 세웠으며, 주님의 잔을 마시고 하느님의 벗이 되었네.

하느님,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축제로 오늘 교회가 거룩한 기쁨을 누리게 하셨으니 교회의 기초를 놓아 준 그들의 가르침을 저희가 모든 일에서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2023년 6월 29일 (목)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6월 2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마태오복음 성경 말씀 카드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마태 16,18)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마태 16,18)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사도 12,1-11)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헤로데의 손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 제2독서
    (2티모 4,6-8.17-1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 오늘 복음
    (마태 16,13-19)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6월 29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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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저승의 세력도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

 

 

마태오복음
16장 13-19절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6월 29일 (목)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문재현 바오로 신부 집전

 

📌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소개 00:05

📌 미사시작 01:58

📌 강론시작 12:58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6월 29일 (목)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조학문 바오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7:09

📌 강론시작 19:50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6월 29일 (목)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6월 29일 (목)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달려야 할 길을 달려갑시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28,19-20).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는 이 사명을 수행하며 참으로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하였습니다. 감옥살이도 하였고, 매질도 당하였으며, 동족들에게서 모욕과 멸시를 받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명령에 뒤따르는 약속처럼 —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28,20). — 두 사도의 고된 여정에는 늘 주님의 손길이 머물고 있음을 오늘의 독서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감옥에 갇혔다가 기적적으로 풀려난 일련의 사건이 주님의 구원 행위였음을 깨닫고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헤로데의 손에서, 유다 백성이 바라던 그 모든 것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도 복음을 선포하며 겪은 여러 위기의 순간에 늘 주님의 도우심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대축일을 지내며 복음 선포에 대한 두 성인의 열정과 헌신을 기억합니다. 그들이라고 왜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주님께서 온갖 두려움에서 구하시는 분이시며(시편 34[33],5 참조), 늘 당신의 일꾼과 함께 계시며 힘을 주시는 임마누엘이심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유다인들, 이방인들, 그리고 임금과 총독 앞에서 당당하게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선교 활동을 벌여 온 그동안의 소회를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의 여정을 마칠 때 바오로 사도처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하도록 달려야 할 길을 달려갑시다.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하고 약속하신 임마누엘 예수님께서 우리가 달릴 그 길에 필요한 도움을 주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거북이의 용기

 

만약 육상 국가대표가 당신에게 달리기 시합을 제안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것도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꽤 큰 액수의 돈 내기를 하자고 합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국가대표와 달리기 한 번 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면서 응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처럼 달리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내기에 응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분명히 지는 경기이기 때문입니다. 출발선에 같이 서서 ‘출발 총성’을 기다리는 상상조차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기는 비슷하거나 내가 이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어야지만 응할 것입니다. 만약 전혀 가능성이 없는데도 더군다나 달리기에는 전혀 재능이 없는 사람이 내기에 응한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내용의 이상한 동화가 하나 있지요. 바로 이솝 우화에 있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입니다. 결말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요. 쉬지 않고 묵묵히 달려간 거북이가 이긴다는 것입니다. 즉, 능력보다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전해줍니다. 그러나 저는 노력보다 거북이의 용기를 말하고 싶습니다. 
 
자신만만해서 중간에 잠들어 버린 토끼의 어리석음을 떠나서, 솔직히 거북이의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질 수밖에 없는 조건인데도 출발선에 설 수 있는 용기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존감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우리는 이런 용기를 간직하지 않습니다. 이것저것 재면서 아예 출발선에 서지 못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하지만 삶은 분명 많은 변수를 가져옵니다. 따라서 용기를 내어 출발선에 서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꼭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과 함께함으로 그 안에서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토끼와 거북이 경주처럼 우리의 용기 하나가 위대한 성공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용기로 위대한 성공을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입니다. 
 
솔직히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는 두렵지 않았을까요? 복음을 선포한다고 한들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변할까요? 더군다나 너무나도 두려운 죽음의 공포는 그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모든 열정을 쏟고 주님을 향해 헌신합니다. 분명히 죽을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에서 도망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한 명이라도 주님의 기쁜 소식을 통해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있도록 용기를 쏟아부어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주님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안 되는 이유만을 내놓습니다. 출발선에 아예 서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모습을 주님께서는 어떻게 보실까요? .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나는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다.

- 빈센트 반 고흐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사람이 두렵지 않음이 복음 선포의 시작

 

오늘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축일입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다 순교하였습니다. 성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아볼 수 있었기에 하늘 나라 열쇠를 가지게 되었고 성 바오로는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오늘은 복음 선포와 두려움의 관계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장래가 유망한 어떤 여자 피아니스트가 세계 최고의 스승이 개인 제자를 뽑는다는 말에 콩쿠르에 참여하였습니다. 그의 차례가 되어 안으로 들어가 떨리는 마음으로 연주했는데 거장의 평가는 박했습니다. 그녀는 실망하여 그날부로 피아노를 접었습니다. 결혼하여 가정주부로 살아가던 중 그때의 그 거장이 자신의 도시에서 연주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거장은 그녀를 대번에 그날 연주를 가장 잘했던 학생으로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녀는 더욱 화가 나, 그러면 그때 왜 그렇게 박한 평가를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거장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말을 합니다. 그 말을 견뎌내지 못하면 언젠가 다른 어려움이 와도 견뎌내지 못합니다. 당신이 피아노를 포기한 건 내 탓이 아닙니다. 그러한 시련을 이겨낼 준비가 없었던 당신의 탓입니다.”

천재는 수많은 시련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시련을 끊임없이 이겨낼 에너지를 지니는 일입니다. 이 이야기의 여자 피아니스트는 그 에너지를 위대한 스승에게서 얻으려 하였습니다. 공갈 젖꼭지에서 어떤 에너지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공갈 젖꼭지’를 잃을까 두려워합니다. 엄마의 젖이 부족할 때 그러한 집착과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말로 가르침을 시작하십니다. 내가 사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에너지를 사람들로부터 얻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28)고 하십니다.

우리는 마치 ‘마차’와 같습니다. 다만 이 마차가 저절로 생겨났는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만약 저절로 생겨났다고 믿으면 그 마차에 누구를 태울 것인지는 내가 결정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 손님을 잃을까 두려워하게 됩니다. 내가 태운 사람에 차비를 낼지, 안 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반면 내가 만들어졌다고 믿으면 나를 만든 이나 그가 원하는 사람을 태우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어느 날 프로이센의 왕 프레데릭은 신하들과 같이 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비웃는 농담을 하였습니다. 그때 본진랜드 장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왕 폐하! 대왕께서는 제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전쟁에서 대왕을 위하여 서른여덟 번 싸워서 이긴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제 저는 나이가 들어 머지않아 대왕이 비웃으시는 저의 구세주 그리스도를 만나 뵈러 가게 됩니다. 저는 대왕보다 예수 그리스도께 의지해야 함을 압니다. 폐하, 소신은 이제 물러가려 합니다.” 

다들 장군을 즉시 처형하라는 왕의 명령이 떨어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왕이 일어나 떨리는 목소리로 본질랜드에게 사과하였습니다. 

나를 만드신 분이 주님이시기에 주님을 내 마차에 태운다면 다른 이들은 두렵지 않습니다. 그들이 나의 생명을 좌지우지하지 못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그들에게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두려움 없음은 주님께서 계심을 드러내는 가장 큰 증언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마태 10,32)라고 하십니다. 

바오로와 실라스가 선교할 당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지진이 일어나 쇠사슬이 풀리고 감옥 문이 열린 일이 있었습니다(사도 16,16-40 참조). 그런데 그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도망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간수가 문이 열려 있는 감옥을 보고 사람들이 도망쳤을 것으로 생각하여 자결하려고 합니다. 그때 바오로는 자신들이 안에 있으니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간수는 도망갈 기회가 있었는데도 여전히 감옥에 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크게 감동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자기 가족들이 신앙을 받아들여 세례를 받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2티모 4,17)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음이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참 복음이었습니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나의 마차에 나를 만드신 주님을 모시고 있기만 하면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부담은 적게 사랑은 크게.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없으면 안 되는가? 두 분 없으면 교회가 유지될 수 없다는 건가? 

그럴 리 없습니다. 

베드로와 바오로가 없어도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 다른 사도를 쓰실 겁니다. 

오늘 주님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당신 교회는 당신이 세우신다고. 그러나 당신 교회를 세우실 때 베드로를 반석 삼으시겠다고. 

그렇긴 하지만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역할을 할 사람은 꼭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할 사람은 꼭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아닌 우리도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역할이란 어떤 것입니까? 제 생각에 그것은 기초 역할, 교회의 기초 역할입니다. 

오늘 본기도는 두 사도에 대해 “교회의 기초를 놓아준 그들”이라고 하고, 오늘 감사송은 “신앙 고백의 모범이 된 베드로와 신앙의 내용을 밝히 깨우쳐 준 바오로”라고 하며 그 역할에 대해 칭송합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주님 친히 당신 교회의 반석이라고 하신 바 있으며 그것은 그가 모든 사도를 대표하여 주님의 신원 곧 주님이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아시다시피 그 반대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극구 반대하여 박해에 앞장서던 분입니다. 그러나 주님 친히 그를 반대자에서 복음의 선포자로 바꿔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바꿔주셨습니까? 그것은 베드로와 달리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에 대해 오늘 감사송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의 남은 후손들로 첫 교회를 세우 바오로는 이민족들의 스승이 되었나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렇게 하고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거듭 말하지만, 주님 친히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아니어도 주님께서는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일꾼 삼으실 수 있고 기초 삼으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얼마든지 그들처럼 될 수 있고, 지금 우리 교회에 소 베드로와 소 바오로가 필요한데, 관건은 주님이 우리를 당신 교회의 기초 삼으시려 할 때 우리가 응답하느냐입니다. 

요즘 본당 단체장이나 재속프란치스코회 평의원 선출 때 수락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이 교회의 기초 삼으시려는 주님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교회의 기초 되는 것이 싫고, 그래서 싫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고쳐먹으면 됩니다.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도 한때는 싫었고 그래서 배신자와 반대자였지만 그러나 그들은 또한 돌아서는 자였고 회개자였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축일을 지내며 주님 교회의 기초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을  우리는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처럼 큰 교회의 기초가 되라는 것이 아니니 작은 교회의 소 베드로와 소 바오로가 되겠다는 겸손한 마음이면 됩니다. 

이렇게 겸손한 마음을 먹는 우리는 오늘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격려를 받습니다. 

화이팅!
부담은 적게,
사랑은 크게!.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들판의 벼가 마음같이 푸르게 자라납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의 여정을 따라갑니다. 그 여정이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듭니다. 뜨겁게 사랑하지 못한 제 사랑을 반성합니다. 두려움과 떨림을 주님께 봉헌합니다. 타들어가는 열정과 솟구치는 회개의 은총이 바로 사랑의 힘임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사랑밖에 없음을 다시 깨닫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두 분 사도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순명으로 만나고 회개로 닮아갑니다. 징금돌이 되시어 예수님께로 안내합니다. 십자가가 무거울수록 은총도 더욱 큽니다. 십자가에서 더 깊어지는 사랑입니다. 넘치는 은총 빛나는 십자가의 상처입니다. 빛날수록 아프고 아플수록 아름다운 신앙의 여정입니다. 

신앙은 자아를 태우는 여정입니다. 내어주는 여정이 사랑입니다. 삶이 뜨거워 지는 여정이 그리스도인의 여정입니다. 무엇이 사랑이며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십니다. 가장 아름다운 여행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여행입니다. 사랑하고 봉사하며 하늘과 땅 위의 복음을 선포합니다. 떠났기에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무너지고 깨어진 자리를 하느님 사랑이 가득 채웁니다. 사라질 것이 아닌 참된 사랑을 위해 노 저어 나아가는 뜨거운 봉헌을 사랑합니다. 사람이 되는 복음의 길이며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사랑! 가야 할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길입니다. 그 길을 충실히 끝까지 걸어가신 두 분 사도의 눈물과 땀 기도와 십자가를 진심으로 만납니다. 사랑은 자아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나누는 것입니다. 사랑의 기쁜 대축일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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