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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6/24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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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보내신 사람이 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그는 빛을 증언하러 왔다.

하느님, 복된 세례자 요한을 보내시어 하느님 백성이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맞이하도록 준비하게 하셨으니 저희에게 영신의 기쁨을 주시고 모든 신자의 마음을 구원과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2023년 6월 24일 (토)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6월 2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루카복음 성경 말씀 카드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루카 1,66)()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루카 1,66) 루카복음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이사야서 49,1-6)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 제2독서
    (사도행전 13,22-26)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57-66.80)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6월 24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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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 되어 주님에 앞서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라.

 

 

루카복음
1장 57-66절. 80절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80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6월 24일 (토)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김학배 안젤로 신부 집전

 

📌 성 요한 세례자 소개 00:05

📌 미사시작 01:16

📌 강론시작 11:19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6월 24일 (토)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7시)
이철규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1:40

📌 강론시작 14:10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6월 24일 (토)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8

📌 강론시작 10:19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6월 24일 (토)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세례자 요한의 임무는 자신의 뒤에 오시는 분을 증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요한 1,7-8).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의 설교와 세례를 보고서 그가 세상에 오기로 한 메시아가 아닐까 기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선과 기대는 그 자신에게 커다란 유혹으로 다가왔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럴수록 증언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이 자신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뒤에 오시는 분께 향하도록 증언합니다.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루카 7,24-28). 

예수님께서는 그가 이스라엘에 파견된 선대의 그 어떤 예언자보다도 훨씬 위대한 예언자일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가장 훌륭하고 뛰어난 인물이라는 찬사를 보내신 것입니다. 이러한 칭송의 배경에는 자신이 메시아의 선구자로 파견된 존재임을 잊지 않고 늘 자신을 낮추며 메시아를 들어 높이는 임무에만 묵묵히 힘썼던 세례자 요한의 겸손한 삶이 자리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에 앞서 파견된 인물이라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 뒤에 파견된 이들입니다. 세례자 요한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분을 증언하는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들도 세례자 요한이 겪은 유혹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증언하며 얻게 되는 사람들의 존경과 애정 어린 시선들이 마치 자신에게 향하는 것으로 여기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 

세례자 요한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증언은 우리를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분을 크게 만드는 데에 목적이 있음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어느 형제님께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좋은 아이템이었고,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자기의 전 재산을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확신과 달리 사업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실패를 경험 삼아 방향을 바꿔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성공한 그는 과거의 실패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지우고 싶은 과거라면서 그때의 일에 대해 후회하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그 실패에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그 실패로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면서 말이지요. 
 
종종 과거의 일 때문에 지금 힘들다는 분을 만납니다. 과거 있었던 부모의 학대가 떠올려서 괴롭다고 말하고, 친구의 배신으로 지금 자신이 이렇다면서 도저히 못 살겠다고 하십니다. 과거의 실패라고 할 수 있는 그 일이 지우고 싶은 시간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지금을 잘 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을 잘 사는 사람은 과거 탓, 남 탓을 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일과 사람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줬다면서 감사해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각자는 부정적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수도 있고 또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결정을 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수렁에 빠졌어도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는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과거의 일과 사람에 집착합니까? 지금 부정적 감정 안에 빠져들겠다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고, 부정적 감정 속에 빠져나가지 않겠다는 결정입니다. 
 
자신의 힘을 믿어야 합니다. 불신이 생긴다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에 온 힘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부정적 마음보다 긍정적인 마음을, 미움과 질투보다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면서 하느님의 뜻에 함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을 기념합니다. 요한 세례자의 아버지는 천사가 전해준 잉태 소식을 믿지 않았지요. 그 결과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한 세례자의 명명식에서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면서, 하느님의 뜻을 따랐기에 혀가 풀려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분명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평불만보다 하느님께서 최고의 것을 주신다는 믿음으로 그 뜻을 따랐기에 다시 입으로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요한 세례자은 광야에서 지내며 철저히 하느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특히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면서 겸손의 마음으로 주님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불평불만을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위대한 예언자로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얻게 됩니다. 
 
과거 탓, 남 탓하는 모습은 모두 버려야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을 잘 따르고 있는가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내가 갈 길은 내가 찾아 얻어야 한다.

- 나혜석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이 아이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축일입니다. 성인 중에 어쩌면 유일하게 탄생일을 축일로 지내는 분입니다. 이분의 탄생은 그 자체부터 기적이었습니다. 천사가 일러준 대로 ‘요한’이란 이름을 짓게 하자 묶여있던 즈카르야의 혀가 풀렸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일에 사람들은 모두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라며 신기해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분명 주님을 찬미하며 주님의 길을 닦는 예언자가 될 것임을 노래하였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주님을 드러내게 될 것인지는 신비에 싸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녀를 키울 때 가끔 부모의 뜻대로 자녀가 따라주지 않는다고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영화 ‘블랙스완’(2010)은 어머니의 기대가 딸의 인생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잘 보여줍니다. 어머니는 발레의 여왕이 될 수 있었음에도 아기를 갖게 되어 꿈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딸을 통해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니나는 어머니의 인생을 망친 딸로서 죄책감에 시달리며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환상에 시달리며 결국 그 대상을 죽이게 되는데 그것이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엄마의 꿈은 이뤄주었지만, 자신은 자기를 죽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신앙이 없는 사람들 안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자녀를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자녀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마음 때문에 한 인생이 망가집니다. 

인생을 빼앗는 것만큼 큰 도둑질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오늘 세례자 요한의 탄생은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줍니다. 

세례자 요한이 탄생했을 때 부모는 세례자 요한의 권리를 포기하였습니다. 이것이 이름을 주님 뜻대로 정해주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세례 때 경험합니다. 세례 때 세례명은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세례받은 이는 부모의 것이 아닌 하느님의 것입니다. 부모는 그저 “이 아이가 장차 무엇이 될 것인가?”를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저도 책을 몇 권 써 보았지만, 책을 쓰는 것도 아이를 키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책은 나의 피를 쏟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그 책을 내가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책이 자라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것이라 생각하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저는 책 네 권을 교구 출판사에서 출판하였습니다. 사실 제가 쓴 내용을 출판사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출판한 책들은 또한 내가 마음대로 절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이 쓴 책을 몇 년 지나서 보고 창피한 것이 너무 많아서 다 절판시켰습니다. 

지금도 책을 쓰고 있습니다. 기도에 관한 책인데 벌써 다 써놓고도 몇 년째 수정만 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출판사에 투고해보고는 있지만, 출판을 해 주겠다는 곳은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습니다. 저의 것이라는 생각을 어느 정도는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조금씩 수정할 뿐입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어떤 책이 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것일까?”

분명 지금 쓰는 책이 어느 곳에서 출판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책은 주님을 알리는데, 이전까지 내가 쓴 책들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미칠 것입니다. 김승호 회장은 어렸을 때 자신이 수천 명 가운데서 마이크를 들고 연설하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일곱 번의 지독한 실패에도 ‘이번은 아니구나!’라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5천억이 넘는 재산을 가진 부자가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단순히 어렸을 때 그렸던 자기 모습이 실현된 것을 보고는 놀랍니다. 

우리 자녀들도 이렇게 대해야 합니다. 

“너는 분명히 어떤 식으로든 그리스도를 전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 될 거야. 어떤 식으로 될지는 나는 모르겠다. 나는 그저 너를 응원하며 지켜보겠다!”

오늘 복음에서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라고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즈카르야나 엘리사벳이 상상하지 못했던 삶입니다. 그저 그들은 하느님께서 자기 아들을 어떻게 이끄시는지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생각은 하느님께 자녀를 봉헌한 부모가 자녀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그처럼 되어라.

 

저는 외국을 많이 나갔지만 다 일 때문에 나갔고, 그래서 저 혼자 여행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공항에 도착해서 공항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 저를 안내해주는 사람 없이 여행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제가 그런 안내자 없이 여행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얘기를 왜 했냐 하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고, 사람들에게 당신을 처음 드러내실 때도 저처럼 도움이 없으면 안 되기에 선구자요 증언자인 요한을 필요로 하셨던 것인지 얘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주님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고, 우리의 필요 때문에 세례자 요한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성인들도 마찬가지지요. 하느님께는 성인이 필요치 않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성인이 필요하지요. 

그렇다면 세례자 요한은 왜 우리에게 필요합니까? 

첫째는 모범으로서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겸손의 모범으로서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세례자 요한 정도면 자기 분수를 모르고 충분히 나댈 수도 있었는데 세례자 요한은 자기 분수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명성이 자자하고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자기에게 몰려와도 그는 사람들 앞에 있지 않고 주님 앞에 있습니다. 

물론 그도 사람들 앞에 있었지만 사람들 앞에 있지 않았다고 함은 사람들에게 자기를 보이고 명성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단식과 기도와 자선을 한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을 위선자라고 비판하셨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는 주님 앞에 있어야 할 사람으로 자신을 늘 생각했고 그래서 사람들이 아무리 그를 높이 생각해도 주님과의 관계에서만 자기를 자리매김했지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맬 자격조차 없다. 그분은 갈수록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이는 프란치스코가 겸손에 관해 얘기하면서 “사람은 하느님 앞에 있는 그대로지 그 이상이 아니”라고 한 말 대로이고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주님을 지속적으로 가리키는 자 곧 주님의 증언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은 이것이 우리 인간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겸손한 모범도 우리에게 필요하지만, 주님을 가리킴으로써 제자들이 주님을 따라가게 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주님을 가리키고 따르게 하는 그 역할이 더 필요합니다. 

제자들을 자기에게 붙잡아 두지 않고 떠나가게 하고 그럼으로써 주님을 따라가게 하고 주님의 제자들이 되게 한 세례자 요한은, 그랬기에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는 주님의 칭찬을 받기에 합당하고, 우리에게는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례자 요한을 칭송만 하면 주님께서 나무라실 겁니다. 그를 바라보기만 하지 말고, 그가 가리키는 것을 보고 따라가고, 그를 칭송만 하지 말고, 너희도 그처럼 되어라! 하실 겁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약속을 어기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만납니다. 아름다운 역사는 아름다운 탄생으로 시작됩니다. 견딤의 시간이 은총의 시간이 됩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탄생으로 드러납니다. 우리는 하느님 구원계획에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일기(日記)는 하느님께서 함께하신 우리의 소중한 기록입니다. 

모든 일의 시작은 사랑과 약속입니다. 약속이 많아도 지켜야 할 약속은 단 한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가장 소중한 약속입니다. 우리에게 건네준 생명은 가장 아름다운 약속입니다. 은총의 날들이 펼쳐집니다. 

다른 곳을 바라 보지 않는 하느님과 우리의 약속입니다. 가장 뜨겁고 아름다운 약속이 탄생으로 드러났습니다. 성 요한 세례자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느님의 약속은 가장 좋으신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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