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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6/19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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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부르짖는 제 소리 들어 주소서. 저를 도와주소서. 제 구원의 하느님, 저를 내쫓지 마소서, 버리지 마소서.

하느님, 하느님께 바라는 모든 이에게 힘을 주시니 자비로이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희가 거룩한 은총의 도움으로 계명을 지키며 마음과 행동으로 하느님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2023년 6월 19일 (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6월 1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코린토2서 성경 말씀 카드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2코린 6,1)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2코린 6,1)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코린토2서 6,1-10)
    우리를 하느님의 일꾼으로 내세웁니다.

  • 오늘 복음
    (마태오 5,38-42)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6월 19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을 밝히는 빛이옵니다.

 

 

마태오 복음
5장 38-42절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6월 19일 (월)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유재걸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7:59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6월 19일 (월)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7시)
조학문 바오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7:55

📌 강론시작 16:37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6월 19일 (월)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4:41

📌 강론시작 13:17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6월 19일 (월)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 성체조배 0:02:13

📌 미사시작 1:01:48

📌 강론시작 1:10:54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여야 할까요?

 

여섯 가지 대당 명제(지난주 목요일 묵상 참조) 가운데 다섯 번째 가르침에 해당하는 오늘 복음 말씀은 복수에 관한 규정을 다룹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탈출기의 전체 구절은 이렇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21,24-25). 

동태 복수법이라 일컫는 이 규정은 잔인한 보복을 강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법의 취지는 지나친 보복 행위를 제한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상해를 입은 사람이 복수심에 불타서 자신이 입은 피해 이상의 보복을 벌일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합당한 보복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규정임에도,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지닌 폭력성을 지적하시며 아예 복수를 포기하라고 주문하십니다. 오히려 자신의 오른뺨을 친 사람에게 다른 뺨마저 내주라고 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오른손잡이임을 감안하면, 누군가의 오른뺨을 때리는 것은 손바닥이 아니라 손등을 사용한다는 것인데, 이는 대단히 모욕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런 참기 힘든 모욕을 당하고도 그 사람에게 왼뺨마저 내밀라는 것은 상대방의 의사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속옷을 달라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주고, 천 걸음을 함께 가자고 강요하는 자에게 이천 걸음을 가 주라고 하십니다.

달라는 대로 주고 바라는 만큼 꾸어 주라시니, 아니 그보다 더 얹어 주라고 하시니,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여야 할까요?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에게 바라시는 모습이고, 그러한 마음을 지닌 이들이 바로 하늘 나라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 주문의 밑바탕에는 어제 우리가 함께 묵상한 말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10,8). 

거저 얻었기에 남에게 주는 것을 아깝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저 주는 사람이 세상에서는 호구 취급을 받을지언정, 하늘 나라에서는 큰사람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님의 말씀을 무조건 따라야 할 이유.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났다는 기사를 심심찮게 보게 됩니다. ‘묻지 마’ 범행처럼 세상에 대한 혐오로 그런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인종차별 때문인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아시안, 유다인, 흑인 혐오로 인해 총기 난사라는 잘못된 선택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나는 정의롭다”라고 말합니다. 백인우월주의를 가지고서 다른 인종은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극우파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빨갱이를 다 없애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세상은 나 혼자만 살 수 없으며, 전 세계가 인종에 상관없이 하나로 뭉쳐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깨닫지 못하고 끔찍한 범행을 저지릅니다. 왜 그럴까요?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이런 행동을 어느 학자는 ‘이야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타인의 잘못된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가짜 뉴스가 난무합니다. 이 역시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기억하면, 자기 입으로 쏟아내는 이야기는 진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나약함과 부족함으로 인해 진실보다는 거짓을 담을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거짓을 말하고 있음도 깨닫지 못하고 온 힘을 다해 외치고 상대를 폭력으로 설득하려고 합니다. 그럴수록 죄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참 진리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 말씀에 따라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만큼 진리에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진리는 ‘사랑’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에는 사랑보다는 거짓된 이야기에 더 휩쓸리곤 했습니다. 
 
앙갚음할 때, 받은 것 이상의 복수를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이 복수 행위가 민족 집단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면 그것은 전쟁이 됩니다. 그래서 복수의 복수를 당하지 않기 위해 적국을 완전히 말살했습니다. 이런 복수의 열기는 개인 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지요. 이런 마구잡이 복수를 막고 공평한 정의의 사회의 필요성에서 나온 것이 바로 인류 최고의 법전인 함무라비 법전입니다. 그중에서 탈리온법(동태복수법)은 아주 유명한데, ‘목숨은 목숨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상처는 상처로, 타박상은 타박상으로 갚아라.’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법을 도입해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 5,39)라고 하십니다. 악을 악으로 갚으려고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선으로 갚으라고 하십니다. 악을 없애는 것은 그와 맞서는 악이 아니고, 사랑으로 참아 주는 선이 악을 없애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예로,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고,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주라고 하십니다. 또 천 걸음을 가지고 강요하면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라고 하시지요. 
 
바보스러운 행동이지만, 세상의 악을 없애는 길은 이것뿐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보스러운 사랑의 실천자가 세상의 악을 없애고 대신 사랑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참 진리이신 주님의 말씀을 무조건 따라야 할 이유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감사하는 마음은 고결한 영혼의 증거다.

- 토마스 제퍼슨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두려움을 넘어 자유로, 자유를 넘어 사랑으로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어라.” 


지금까지 피했다면 이제 맞서라. 

지금까지 맞섰다면 이제 넘어서라. 

악과 악인이 두려워 피했다면 이제 맞서라. 

악과 악인을 맞서게 되었다면 이제 넘어서라. 

악과 악인을 넘어서게 되었다면 이제 사랑하라. 


그러므로 오늘 복음 말씀을 나름대로 풀이하면 한 바퀴를 뛰었다면 이제 두 바퀴에 도전하고, 두 바퀴를 뛰었다면 이제 세 바퀴에 도전하라는 것이요, 두려움에 도전하였다면 이제 자유에 도전하고, 자유에 도전하였다면 이제 사랑에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두려움을 넘어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게 되면 어떤 경우에도 자유롭게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런 경지를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매질과 옥살이와 폭동을 겪으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영광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중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우리는 늘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행복 선언처럼 역설적인 행복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어서 얘기합니다.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인정을 받습니다. 죽어 가는 자같이 보이지만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벌을 받는 자같이 보이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슬퍼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늘 기뻐합니다. 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은 악인에게 맞서는 반응의 연속이었습니다. 악과의 반응은 어김없이 참패로 이어졌습니다. 거리 두기가 필요한 무반응이 더 중요합니다. 악과 싸워 이기시는 분은 오직 우리를 부둥켜 안고 가시는 빛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가 가로막아서는 안 됩니다. 앙갚음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빛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뒤엉켜 버린 이 감정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앙갚음의 자녀가 아니라 하느님 은총의 자녀들입니다. 

살아가는 것이 은총이고 살아 있는 이 순간이 은총입니다. 우리 삶에서 덮어 버릴 수 없는 하느님의 빛입니다. 악과 싸워 얻은 상처의 시간까지 어루만져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내어놓기 싫은 미움과 증오 보복과 앙갚음까지 용기를 내어 하느님께 내어놓습니다. 우리에게 보여주신 십자가의 상처로 우리의 악을 이기셨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실 수 있도록 싸움의 반복을 양보합니다. 잔인한 악의 방법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수동적인 우리의 기도로 악을 맡겨드리는 평화의 오늘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이 마음을 양보하면 더 좋은 마음을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 미움의 자리를 양보하는 복음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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