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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6/17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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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하느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마음속에 성령의 거처를 마련하셨으니 동정 마리아의 전구를 자비로이 들으시어 저희도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전이 되게 하소서.

 

2023년 6월 17일 (토) 성모 성심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6월 1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이사야서 성경 말씀 카드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라. (이사야서 61,10)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라. (이사야서 61,10)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6월 17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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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당신은 하느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셨나이다.

 

 

루카 복음
2장 41-51절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4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42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43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45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46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49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5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51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6월 17일 (토)
가톨릭 평화방송 CPBC 매일미사
임재혁 스테파노 신부 집전

 

📌 성모 성심 기념일 소개 00:05

📌 미사시작 01:18

📌 강론시작 08:00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6월 17일 (토)
서울 명동성당
매일미사 (7시)
이철규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6:36

📌 강론시작 15:38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6월 17일 (토)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4:04

📌 강론시작 12:45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6월 17일 (토)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야렉 카미엔스키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성심은 받아들임에서 출발한다.

 

어제 우리가 예수님의 성심을 기억하였다면, 오늘은 그분의 어머니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기억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성심에 당신의 마음을 동화시키시려고 일생을 노력하신 분이십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전한 잉태 소식! 이해하기도 믿기도 어려운 소식이었지만, 성모님께서는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1,38). 

오늘 복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열두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성전에 남아 율법 학자들과 토론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들을 찾은 어머니는 속상함을 토로합니다.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성모님께서는 아마도 “잘못하였습니다.” 하는 아들의 대답을 기대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에 어리둥절해하십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이처럼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탄생과 유년 시절의 사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합니다. 이해하지 못하셨던 것은 성모님께서도 마찬가지셨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이 모든 신비를 마음속 깊이 간직하십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성모님께서 보여 주신 모습은 예수 성심에 동화되고 성화되기를 열망하는 모든 신앙인에게 요구되는 자세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마음 바깥으로 밀쳐 내기보다 성모님처럼 마음속에 간직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 마음도 예수님의 성심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여 봅니다. 

성모님의 성심이 받아들임에서 시작되었듯이, 우리 마음의 성화도 받아들임에서 출발합니다.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우리 주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좋고 쉬운 것만 있지 않고, 싫고 어려운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인간 관계가 그러합니다. ‘저 사람만큼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겨지는 이웃이 어쩌면 우리를 성화로 이끄는 신비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마음이 사랑의 꽃을 피우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퍼뜨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사랑한다’라는 말을 해보셨습니까?

 

사랑이란 구체적인 행위로 드러나야 합니다. 생각만 해서는 사랑이 드러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종종 자신의 사랑을 몰라주냐면서 화를 내는 분을 만나게 됩니다. 어느 아버지가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충격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아들을 위해 해줄 만큼 해주었다고 생각했고 항상 아들이 잘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아버지가 제게 해준 것이 뭐 있는데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요즘 일이 잘 안 풀려서 그 화풀이를 아버지에게 한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이 말에 아버지는 너무 서운했고 슬펐습니다.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힘든 상태에서 정신 상담을 받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상담 선생님께서 이렇게 질문하시는 것입니다. 
 
“아드님께 ‘사랑한다’라는 말을 해보셨습니까?” 
 
이 형제님께서는 “꼭 사랑한다고 말해야 사랑을 압니까?”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사랑을 알아주지 못하는 아들에 대한 원망만 늘어놓았습니다. 왜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몰랐을까요? 혹시 모른 척하는 것일까요? 어쩌면 사랑이 아닌 당연한 부모의 의무 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사랑을 알 수 없었습니다. 사랑은 구체적인 말과 행위가 드러나야 상대방이 알 수 있습니다. 
 
루카 복음 15장에 나오는 방탕한 아들에 대한 복음 말씀을 아실 것입니다. 그는 깊이 뉘우친 뒤에 아버지께 갑니다. 이를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간다.”(루카 15,20)라고 루카 복음은 전해줍니다. 일어나는 것은 하나의 행위입니다. ‘돼지 치는 일’을 그만두는 것도 하나의 행위였습니다. “이제 아버지께 돌아가야겠다.”(루카 15,18)라는 생각을 행위로 드러냈을 때, 아버지와 아들이 기쁘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행위로 사랑이신 아버지를 만나고 사랑을 더 뜨겁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지만, 우리의 진지한 결단이 담긴 말과 행위가 꼭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그래야 그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고 그 안에서 참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범을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모님께서 보여 주십니다. 
 
성모님께는 세상의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예수님 잉태 소식부터 시작해서 오늘 복음에 나오듯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는 장면 역시 이해하기 힘든 장면입니다. 그런데 우리처럼 불평불만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십니다(루카 2,51 참조).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님의 마음에 담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모범을 보여 주신 성모님의 모습을 따라야 합니다. 자기 뜻보다 하느님의 뜻을, 불평불만보다 사랑의 마음으로 하느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진정한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싸움이란 질 때도 있는 거지, 그걸 극복해야 챔피언이 돼.

-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마음을 먹는 우리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어제는 예수 성심, 오늘은 성모 성심 축일 지냅니다. 아들 가는 데 어머니 가시니 우리의 전례도 아드님의 마음에 이어 어머니의 마음도 같이 기리는 거지요. 

그리고 그 마음들을 기리며 우리는 마음을 먹습니다. 그러니 어제와 오늘은 우리가 마음을 먹는 날입니다. 예수님과 똑같은 마음을 먹기로 마음을 먹고, 성모님과 똑같은 마음을 먹기로 마음을 먹는 날입니다. 

여기서 저는 왜 마음을 먹는다고 할까 생각해봤습니다. 음식을 먹듯이 마음도 먹는 것인가요? 왜 마음을 먹는다는 표현을 썼을까요? 그러고 보니 우리는 먹는다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겁을 먹고,
나이를 먹고,
뇌물을 먹고. 

내뱉지 않고 속으로 집어넣거나 삼킨다는 뜻입니다. 밖으로 내치지 않고 안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오늘 성모님께서는 아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 말과 있었던 일들을 마음속에 간직하십니다. 말도 안 소리라고 바로 내치지 않으시고, 일단 마음속에 간직하십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말을 귓전으로 흘리고, 이쪽 귀로 듣고는 저쪽 귀로 내보냅니까? 그런데 성모님은 아들의 말을 마음속에 간직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성모님의 마음속이 잉태의 장소입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마음속에 간직하심으로써 아드님을 잉태하셨잖습니까? 이것이 바로 성령으로 잉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성령의 정배가 되는 길입니다. 

다른 잡것들은 마음먹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만 간직하기로 마음먹을 때 바로 그때 우리는 성령으로 잉태하고, 성령의 정배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봉쇄 수녀들을 ‘Sponsa Christi’, 그리스도의 정배라고 보통 부르는데 프란치스코는 특이하게도 클라라 수녀들에게 성령의 정배가 되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정배가 되어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라는 말이지요. 우리는 동정녀였다가 그리스도의 정배가 되는 것도 좋지만 성령의 정배로서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는 것도 좋습니다. 성령으로 말씀을 잉태하고, 간직하고, 출산하는 어머니들이. 

그래서 오늘 본기도는 마음에 새길만 합니다. 

“하느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마음속에 성령의 거처를 마련하셨으니 마리아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전이 되게 하소서.” 

아무튼, 겁이나 나이나 뇌물을 먹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마음을 먹는, 그것도 주님과 성모님의 마음을 닮기로 마음먹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무엇을 애타게 찾는지요. 간직하고 되새겨야 할 우리의 깨끗한 본마음을 찾습니다. 깨끗한 마음은 언제나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믿음은 사람의 길입니다. 사람의 길은 이 모든 것을 끌어안는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삶이란 사랑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건너가는 삶입니다. 사랑은 제 마음을 깎는 아픔을 동반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이와 같이 마음을 필요로 합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어머니도 계십니다. 마음 속을 비추는 믿음의 빛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을 애타게 다시 부릅니다. 잃어버린 것을 너무나 기쁘게 찾게 됩니다. 

애절하게 부를 한 사람이 바로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람입니다. 마음 속에 애절한 그 이름을 품고 사는 사람은 아프지만 행복합니다. 담아야 할 마음과 놓아야 할 마음이 분명 있습니다.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을 통해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은총의 시간 되십시오. 마음과 마음이 만나야 마음의 꽃밭이 되고 믿음의 꽃밭이 됩니다. 

찾지 않고서는 만날 수 없는 마음의 신비입니다. 그 무엇에 앞서 하느님을 찾는 이 마음이 우리 마음밭을 향기롭게 합니다. 우리 깨달음의 전부는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 어디에서 우리의 하느님을 찾아야 할지를 성모 성심은 잘 보여주십니다. 

절실한 마음 애절한 마음 간절한 마음 우리의 마음입니다. 일상의 단순한 것에서 마음을 나누는 성모 성심의 기도와 실천입니다. 성모 성심이여 우리 마음을 환하게 비추어 예수님을 모실 마음의 빈자리를 마련하게 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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