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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6/09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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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를 돌아보시어 자비를 베푸소서. 외롭고 가련한 몸이옵니다. 하느님, 비참한 저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저의 죄악 낱낱이 없애 주소서.

하느님, 구원 계획에 따라 세상 모든 일을 섭리하시니 저희에게 해로운 것은 모두 물리치시고 이로운 것은 아낌없이 베풀어 주소서.

 

2023년 6월 9일 (금)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6월 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9주간 금요일

 

 

토빗기 성경 말씀 카드

빛을 보게 될 것이오. (토빗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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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6월 9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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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도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가서 그와 함께 살리라.

 

 

마르코 복음
12장 35-37절

 

어찌하여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그때에 

35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36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37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6월 9일 (금)
정용호 대건안드레아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9:53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6월 9일 (금)
전두병 요아킴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8:42

📌 강론시작 18:34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6월 9일 (금)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오후 3시
김지학 요셉 신부 공동 집전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9:35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하느님 앞에 반드시 다다르는 기도.

 

우리는 지난 월요일부터 제1독서에서 토빗기를 읽고 있습니다. 토빗기는 유배로 흩어진 유다인들이 이국땅에 살면서도 자기들의 정체성을 지켜 나가며 여전히 하느님의 보살핌을 받는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 이야기는 먼저 친족 관계에 있는 두 유다인 집안이 겪게 되는 불행을 차례대로 서술합니다. 

니네베에 살던 토빗은 많은 자선과 선행을 베풀던 신실한 유다인이었지만, 살해된 동포를 몰래 묻어 준 일이 드러나서 결국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나중에는 뜨거운 참새 똥이 눈에 떨어져 시력까지 잃어버리는 처량한 신세가 됩니다. 

엑바타나에 살던 라구엘의 딸 사라는 혼인만 하면 신랑과 한 몸이 되기도 전에 악령이 나타나 그 신랑을 죽이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는데, 그런 일이 무려 일곱 차례나 되풀이되면서 여종에게까지 모욕을 당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토빗과 사라가 저마다 탄식하며 드린 기도는 하느님 앞에 다다르게 되고, 하느님께서는 두 사람을 낫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라파엘 천사를 보내십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구원은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이루어집니다. 

지인에게 맡겨 둔 아버지의 돈을 찾으러 메디아로 떠나는 아들 토비야와 그 여행길의 안내자로 나서게 된 라파엘이 우연히 큰 물고기를 잡고 그 간과 염통과 쓸개를 얻게 된 사건, 메디아의 엑바타나에 사는 친족의 집에 머물며 그곳에서 사라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 사건 등이 벌어집니다. 

물고기에서 얻은 간과 염통은 사라의 악령을 쫓아내는 도구가 되고, 쓸개는 나중에 아버지 토빗의 시력을 되찾는 약으로 사용되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토빗과 사라에게 베푸시는 구원은 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들,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일들이 어우러져 실현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겪는 곤경과 어려움을 못 본 척하지 않으십니다. 당신 자녀들이 바치는 탄식의 기도는 하느님 앞에 반드시 다다릅니다. 그러나 그분의 도움과 보살핌은 우리가 기대하거나 예상하는 대로 전개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이 얽히고설켜 뜻밖의 위로와 치유로 작용하는 체험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사춘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방법

 

사춘기인 자녀 때문에 힘들다는 부모가 많습니다. 그렇게 착했던 아이가 갑자기 반항적으로 변하고 툭하면 짜증만 낸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달라진 아이의 모습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사춘기는 청소년들이 아동기를 벗어나면서 큰 변화를 겪는 시기라고 말합니다. 갑작스러운 호르몬 변화로 합리적 판단과 대인관계능력, 실행 능력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이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만 날뛰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표현도 합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감성적으로 만취 상태.’ 
 
편도체의 안정화가 중요한 시기라고 합니다. 특히 부모의 폭력성이 그대로 전이되는 시기이기에, 따뜻한 말로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마음의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신앙생활도 좋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문제는 이 시기에 부모와의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신앙생활에도 부정적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대신 비슷한 또래들과만 어울리려고 합니다. 때로는 탈선해서 삐뚤어 나가는 것도 바로 이때입니다. 전문가들은 사춘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방법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참과 거짓을 나누기보다는 자신의 가치관과 적성에 맞는 일들인지 질문하여 스스로를 잘 알아가야 한다. 
 
둘째, 본인이 생활해왔던 일상의 패턴을 잃지 말고 유지해야 무기력함을 극복하고, 자신이 잘하는 것과 관심 있는 것들을 이끌고 나갈 자신이 있는지를 생각한다. 
 
셋째, 지금 하기 싫고 아주 하찮은 것이라도 추후 중요한 일에 도움이 될 수 있으니 새로운 경험이나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모두 겪은 사춘기인데도 참 어려운 시기입니다. 그만큼 어른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람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전지전능하신 주님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특히 세속적으로 판단하면 할수록 주님은 더 알 수 없게 됩니다. 오늘 복음도 주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볼 수 있습니다.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신념은 구약성경에 뿌리를 두고서 율법학자들이 강조하던 믿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했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에 대해 새롭고 올바른 생각을 갖게 해주십니다. 다윗의 자손을 메시아로 생각하는 이유는 다윗과 같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위대한 왕, 지상에서 위풍을 떨칠 세속적인 왕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세속적인 왕이 메시아가 아님을 밝히십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기대하는 세속의 임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세속적인 기준으로 알 수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깊은 기도와 묵상을 통해서만 주님을 알아가고 또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문제들을 잘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살기 위해 먹어라. 먹기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

- 소크라테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선생은 학생에게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는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사제들, 바리사이, 사두가이, 율법학자들과의 논쟁에서 승리한 다음, 내친김에 이스라엘 전체의 믿음을 흔들어놓습니다. 바로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일 수 없다는 논리로 말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이 맞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다윗의 후손께 호산나를 외쳐도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육체적으로는 구약의 예언대로 다윗의 후손일지라도 내적으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란 것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너희들에게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을 거야!”란 뜻이 들어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람을 심리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자신들이 조종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놔야 합니다. 며칠 전에 축구선수 박주호 선수가 은퇴하였습니다. 그는 축구선수이기도 하지만 세 아이를 둔 가장입니다. 일정에 따라 한두 달 집을 비우는 일도 있어서 가족에게 계속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기자가 장녀 나은이와 남동생 건우의 반응을 물었습니다. 나은이는 아빠가 은퇴한다고 하였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빠는 돈을 어떻게 벌거야?”

저도 아버지가 일을 가지 않으면 불안해져서 아버지에게 일 가라고 종용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도 아버지를 가스라이팅합니다. 만약 아버지가 아이들 아버지의 정체성만 가지고 있다면 분명 가스라이팅 당합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건우는 남자답게 요즘 축구에 많이 빠져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은퇴한다고 말했을 때 “왜 축구를 그만둬?” 하며 울려고 했습니다. 이때 아버지는 “앞으로 너와 축구를 더 많이 할게”라며 건우를 달랬고, 나은이는 “앞으로는 다른 일 해볼게”라고 말했더니 안심하더랍니다. 

요즘 식당에 가보면 아이들이 상전인 경우가 많습니다. 옆 식탁에 어른들이 식사하고 있는데도 아이들은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고 난리를 피웁니다. 하지만 부모는 제재할 줄 모르고 오히려 아이들에게 애걸하며 부탁합니다. 그런 식으로 교육이 될까요? 부모는 부모이기도 하면서 더 높은 수준의 누군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교육할 수 있습니다. 

안드레아 보첼리는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테너이고 얼굴도 잘생겼습니다. 1958년 9월 22일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의 작은 마을 라자티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시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선천성 녹내장을 가지고 태어났고, 12살 때 축구 사고로 조금이나마 볼 수 있던 시력도 잃습니다. 

그의 부모는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아이를 지우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에디 보첼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아이라며 아이를 낳기로 했습니다. 그녀의 믿음과 사랑에 따른 이러한 결정은 다양한 인터뷰에서 보첼리에 의해 인정되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음성은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음성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심각한 선천성 녹내장을 안고 태어났던 보첼리. 다행히 한쪽 눈에는 약간의 시력이 살아 있었습니다. 부모는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청각이 예민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음악을 시키기로 합니다. 그래서 일찍부터 피아노와 플루트, 색소폰을 배우게 했습니다. 목소리가 아름다웠던 보첼리는 ‘노래 잘하는 소년’이 되어 학교와 성당에서 인정받으며 성가대 독창자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축구 경기를 하던 도중 골키퍼를 맡고 있던 보첼리에게 날아온 공이 그만 눈에 맞는 바람에 그나마 남아 있던 한쪽 시력마저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 오래전부터 갈망하고 꿈꿔왔던 오페라 가수의 꿈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눈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움직임이 있는 공연은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부모는 그의 재능을 더 키워주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12세에 시력을 잃었음에도 전혀 그의 장애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강한 자신감을 심어주고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규칙적인 활동에 참여하도록 격려했습니다. 그들은 그가 평범한 삶을 살고 꿈을 향해 일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이러한 끊임없는 격려는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테너가 되는 길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보첼리의 부모, 알레산드로와 에디는 모두 이탈리아 문화와 전통에 깊숙이 박힌 로마 가톨릭의 강한 신앙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들에게 신앙이 없었다면 시력이 보이지 않는 아들에게 심한 죄책감을 느껴 그에게 가스라이팅 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첼리의 부모는 반은 자녀에게 속해있고 반은 하느님께 속해있었습니다. 하느님께 속해있는 사람은 그래서 심리적으로 자녀들에게 조종당하지 않으며 당당한 교육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반신이 없는 아이, 제니퍼 브리커를 입양한 샤론과 제랄드 브리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제니퍼에게 지나친 연민을 느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딸로 여기고 “할 수 없다”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제니퍼는 자서전에서 “모든 것은 가능합니다: 당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믿음과 용기를 찾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장애를 지는 아이에게 잔인할 수도 있지만, 하느님을 믿는 부모는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자녀를 교육합니다. 자녀가 울고 원망하더라도 휘둘리지 않습니다. 연민에 빠지지 않고 빠지게 허락하지도 않습니다. 훌륭한 교육자는 반은 학생에게 반은 자신의 스승에게 속해있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당연히 다윗의 후손이기는 하지만 또한 하느님께도 속해있음을 잊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우리의 행복한 말로는

 

오늘 저는 토빗기를 읽고 묵상하면서 이런 의문을 가져봤습니다. 오늘 토빗기와 다른 결론 곧 Happy Ending이 아니라 Sad Ending으로 끝내기를 하면 사람들이 그 토빗기를 좋아할까? 또 이런 성찰도 해봤습니다. 토빗기의 이런 얘기와 이런 결말은 그리스도교적인가? 

먼저 슬픈 얘기로 끝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악인들의 말로가 불쌍하고 불행한 것은 당연지사라고 생각하지만, 착한 사람의 말로는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지상정은 그리 그리스도교적이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선 선인과 마찬가지로 악인에게도 빛을 주신다고 주님께서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 

또 그리스도의 얘기는 토빗과 달리 Sad Ending이 아닙니까? 그리스도야말로 토빗보다 더 큰 사랑을 하셨고, 인간을 위해 온갖 좋은 일을 하셨건만, 제자들의 배반까지 당하시며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물론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른 제자들이 박해도 받겠지만, 현세에서 백 배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긴 하셨지요. 

그러니 이것이 완전히 비 그리스도교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럴지라도 그리스도교의 종말은 이 세상에서 Happy Ending이 아니라 부활과 영원한 생명의 Happy Ending이지요. 

어제는 제가 오랫동안 알고 지내 온 분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90을 넘기셨고 치매도 점점 심해지셔서 더 늦기 전에 만나려고 지인들과 함께 만남의 자리를 마련한 것인데 그분이 기억은 헝클어지셨어도 도리나 예의나 관점은 또렷하셨습니다. 

그런데 얘기 중에 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죽어서 천당 가는 문제에 관한 얘기가 나왔을 때 천당 가는 사람은 아주 드물고 당신도 천당 갈 자격이 없다고 하시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천당 가고픈 마음이 없으시냐고, 천당 가고 싶으시면 지금부터 그렇게 기도하고 청하면 된다고 하니 가고 싶으신지에 대한 답은 않고 자격이 없다고만 말씀하시는 거였습니다. 

이것이 겸손의 말씀인지 포기의 말씀인지 몰라 순간 당황하였고, 겸손의 말씀이 아니라 천당 포기의 말씀이라면 이 세상에서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그만인, 그런 신앙인과 신앙생활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되었습니다. 

진정 Sad Ending보다 Happy Ending이 좋긴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행복한 말로가 무엇인지 생각해야겠습니다. 

토빗처럼 되는 것 곧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다가 끝나는 것인지,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 곧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행복을 얻는 것인지 오늘 토빗기를 통해 깊이 생각게 되는 오늘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어찌하여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우리의 마음과 믿음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우리의 마음은 늘 다른 곳에 가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만을 안고 살아갑니다. 멈춰버린 단정은 또 다른 고정관념으로 이어집니다. 자아가 커질수록 편견 또한 커져버립니다. 감사하는 법을 잊었기에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법도 잊었습니다 감사를 모르는 마음의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모든 구원의 이야기는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느님의 생명을 살고 있으면서도 하느님이 아닌 다윗만을 찾고 있습니다. 어리석고 불안한 우리 마음을 붙들어 주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주님을 모르기 때문에 어리석은 짓들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빚고 마음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마음입니다. 다윗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더 묻게 됩니다. 

건강한 믿음은 올바른 믿음은 한 사람을 찬양하지 않습니다. 자아에 갇힌 편견에 갇힌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만나는 오늘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어리석음에서 깨어나는 삶이 행복이며 자유입니다. 참된 자유를 가르쳐 주시는 주님께 어리석은 이 마음을 봉헌합니다.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다윗의 하느님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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