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니, 이제는 죽음이 그분을 누르지 못하리라. 알렐루야.
완전한 빛이신 하느님, 저희가 이 세상에서 파스카 신비를 경축하게 하셨으니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으로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2023년 5월 1일 (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5월 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요한복음 성경 말씀 카드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요한 10,16)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사도행전 11,1-18)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 오늘 복음
(요한 10,11-18)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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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복음
요한 10장 11-18절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14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18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5월 1일 (월)
노동자 성 요셉 미사
원동일 프레드릭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1:05
📌 강론시작 08:25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5월 1일 (월)
노동자 성 요셉 미사
전두병 요아킴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9:43
📌 강론시작 18:22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5월 1일 (월)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오후 3시
장화기 바오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52
📌 강론시작 12:02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강수원 베드로 신부
아는 만큼 믿게 되고, 아는 만큼 더 사랑할 수 있다.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은, 백성을 착취하고 제 잇속만 챙길 뿐 그들을 돌보지 않는 임금과 사제들을 ‘거짓 목자’라며 꾸짖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느님께서는 몸소 당신 양 떼를 찾아 돌보시겠다고, ‘착한 목자’를 세우시어 당신 백성을 구원하겠노라 약속하셨습니다(예레 23,1-8; 에제 34; 즈카 10 참조). 예수님께서는 그 약속된 ‘착한 목자’가 바로 당신이심을 밝히십니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우리의 진실한 관계가 참된 ‘앎’에서 시작되며, 그 앎은 성부와 성자 사이 일치의 관계만큼이나 구체적이고 생생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분을 사랑한다고, 그분께 온 생을 걸어 희망한다고 말하는 믿음은 공허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의 목자들은 복음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살아 계신 하느님을 힘 있게 선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목자들을 신뢰하며, 미사 참례에서 나아가 성경과 교리를 공부하고 함께 나누면서 참목자이신 주님을 더 알려고 노력하여야 합니다. 아는 만큼 믿게 되고, 아는 만큼 더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종한 이방인들과 상종하지 않던 사도들과 유다계 신자들이 ‘한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모아들이시는 주님의 뜻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주님의 말씀을 알아들은 목자 베드로가 있었고 또 그 목자의 말에 양들이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었습니다(제1독서 참조).
목자와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하며 주님을 더 알아 갑시다. 그럴 때 우리는 일상의 수많은 삯꾼과 도둑의 소리를 걸러 내고,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착한 목자의 목소리를 참으로 알아들으며, 영원한 천상 목장으로 향하는 그분의 사랑받는 양 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겸손을 묵상해야 하는 이유
국가의 한 연구소에서 일하던 공학도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수도원에 입회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수사의 능력을 수도회에서 잘 살려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수사가 수도회에서는 하는 일은 소위 ‘막노가다’였습니다. 힘쓰는 일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사람이 자기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막노가다 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수사의 부모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잘하는 일을 시키지 않고,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소임으로 아들의 훌륭한 재능을 수도회에서 썩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원장 수사님께 이점을 항의했습니다. 이에 원장 수사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이성과 상식으로 이해되기 힘든 일들이 있습니다. 신앙만이 이를 깨닫게 해줍니다. 예수님께서 왜 자신이 가난한 이가 되기를 바라셨을까요? 왜 신성과 권능을 감추고 우리 가운데 그것도 가장 끝자리를 차지하며 살고 싶어 하셨을까요? 생명 자체이신 그분에게 십자가행, 골고타의 수난, 죽음의 치욕이 뭔 말입니까? 교회에서 필요한 사람은 공학도가 아니라, 있는 자리에서 썩을 수 있는 밀알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큰 공감이 가는 말씀이었습니다. 세상의 능력이 아닌 하느님의 능력으로 하느님의 일을 해야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 능력을 살려서 일하는 것을 주님께서 과연 원하실까요? 오히려 자기 능력을 감추고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모습을 더 원하실 것입니다. 이런 겸손만이 주님을 제대로 닮고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나는 착한 목자다’(요한 10,11)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 복음에서는 ‘나는 문이다.’, ‘나는 착한 목자다’라는 식으로 ‘나는 ~이다.’라는 표현이 모두 7번 등장합니다. 이는 주님의 신성을 사람들의 생명과 관련지어 말씀하시는 표현입니다. 즉,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는 분, 특별히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착한 목자’로 말씀하시면서,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고 하십니다. 이는 실제로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확인되었지요. 그리고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요한 10,14)라고 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지적인 인지를 넘어 서로 마음이 통하여 마음의 일치를 이루는 친교를 말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무엇이든 바치는 사랑의 희생을 하는 상호 관계를 말합니다. 목자이신 주님의 겸손한 사랑을 알게 된 사람은 마찬가지로 주님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사랑을 겸손한 마음으로 봉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려고 합니다. 생명을 주시는 주님과 함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겸손을 묵상해야 합니다. 자기 영광이 아닌, 주님 영광을 드러내는 삶, 주님과 진정으로 하나되는 삶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건 새로운 일을 전혀 시도하고 있지 않다는 신호다.
- 우디 앨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식별할 줄 아는
제가 북한 선교를 하며 그것을 후원하는 후원회 이름을 <한우리 후원회>라고 지은 것은,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북한과 우리는 ‘한 우리 안의 우리’라는 의미가 있는 이름이지요. 그러므로 이것은 한 민족의 우리라는 뜻도 있지만 주님의 한 우리 안에 같이 있는 우리라는 뜻이 더 중요한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공동체도 잘 알아야 하고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같아서 한 우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는 다르지만, 그런데도 주님의 우리 안에 함께 있고, 주님의 한 우리 안에 있기에 같은 양 떼이고 하나라는 점입니다.
주님의 양 떼가 아니라면 우리는 다른 우리 안에 있을 것이고, 만약 도둑의 양 떼라면 도둑의 우리 안에 얼마간 있다가 팔려 나갈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도둑의 우리 안에 있지 않고 주님의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우리는 죽으러 팔려나가지 않고 푸른 풀밭으로 불려 나가는데 주님께서는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데려나가신답니다.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도매가 아니라 소매입니다. 집단이 아니라 개인입니다. 하나하나를 사랑하신다는 뜻이고, 아흔아홉 마리 양을 놔두고 한 마리 잃은 양을 찾아가시는 것처럼 하나하나 이름을 다 아시고 각별하게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당신 양들을 잘 아는 착한 목자라고 하십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그렇지요.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사랑하는 사람을 잘 알기에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우리가 뭘 필요로 하고 원하는지 다 아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분 우리 안에 있는 양들인 우리 몫은 무엇입니까? 목자의 양들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목자가 자기 양들을 아는 것처럼 양들도 자기 목자를 알아야 합니다. 이는 펭귄이나 괭이갈매기가 그 많은 새끼 중에서 자기 새끼를 알고, 그 많은 어미 중에서 자기 어미를 아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앎은 대단한 사랑과 친밀감의 앎이기도 하지만 자기 목자를 모르고 도둑이나 삯꾼을 자기 목자로 알고 따라갔다가는 죽을 수도 있기에 친밀 이상의 생명의 앎입니다.
그런데 현대인 중의 많은 이가 어리석게도 주님이 아닌 사이비 교주를 자기 목자인 줄 알고 따라가거나 SNS로만 알 수 있을 뿐 잘 알지 못하는 인간을 마치 목자인 양 따릅니다.
이럴 때 모름은 어리석음이고 치명적입니다. 참 목자를 따르는 양 떼이어야 하는데 떼로 다니기는 하지만 그저 떼로 몰려다닐 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양들입니다.
그러므로 양들이 목자를 안다는 것은 식별할 줄 안다는 뜻이겠습니다. 그래서 아무에게나 휘둘리거나 휩쓸리지 않게 되고, 천상 목자를 따라 주님의 영원한 우리 안에 안전하게 들게 될 겁니다.
그러니 양들이 목자를 아는 것은 의사와 돌팔이를 식별할 줄 아는 것, 그 이상으로 양들에게 참으로 중요하고 목자에 대한 사랑 못잖게 양들이 꼭 갖춰야 할 능력임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달력 한 장을 넘기니 성모님의 달 5월을 맞이합니다. 삶을 지탱해온 것은 말씀과 노동이었습니다. 우리의 노동으로 말씀의 깊이를 만납니다. 삶을 해석하는 노동입니다.
노동으로 지친 우리를 위로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할지를 노동자 성 요셉에게서 다시 배웁니다. 가장 깊은 사랑을 배웁니다.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더 아름다워지는 우리의 삶입니다.
가난한 마음을 봉헌합니다. 가난한 마음은 노동자의 손끝에서 시작되어 기도가 되고 희망이 됩니다. 모든 질서는 노동을 통한 사랑이며 구원입니다. 길을 닦듯 제 마음을 닦습니다.
삶의 무게는 노동의 무게입니다. 우리의 노동으로 주님의 만찬 미사는 더욱 소중한 잔치가 됩니다. 먹여 살리시는 예수님의 사랑도 지켜야 할 말씀을 끝까지 지켜낸 성 요셉의 사랑도 무엇이든지 주님께 이 모든 것을 맡기셨던 성모님의 사랑도 모두 땀 흘리시는 노동의 사랑이었습니다.
노동이 삶의 기본이며 기초입니다. 단단한 사랑 뜨거운 수고가 하나의 공동체를 만듭니다. 기도를 지나고 노동을 지나야 비로소 만나게 되는 말씀의 참된 탄생입니다. 말씀은 수고로운 노동의 풍경이 우리의 애틋한 삶임을 잘 가르쳐줍니다.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이 행복하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노동 안에서 사랑을 배우고 사랑으로 머무르셨던 예수님을 다시 뵙는 오월의 첫날입니다. 말씀과 노동 사람과 수고로움은 사랑과 존중으로 더욱 깊어지는 우리의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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