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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5/02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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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그를 지혜와 지식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시어, 회중 가운데에서 그의 입을 열어 주시고, 영광의 옷을 입혀 주셨네. 알렐루야.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복된 아타나시오 주교를 보내시어 성자의 신성을 힘껏 변호하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의 가르침과 보호로 기뻐하며 하느님을 더욱 깊이 깨닫고 사랑하게 하소서.

 

2023년 5월 2일 (화)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5월 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요한복음 성경 말씀 카드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요한 10,27)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요한 10,27)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사도행전 11,19-26)
    그들은 그리스계 사람들에게도 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

  • 오늘 복음
    (요한 10,22-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5월 2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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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복음
요한 10장 22-30절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22 
그때에 예루살렘에서는 성전 봉헌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때는 겨울이었다. 

23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 있는 솔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셨는데, 

24 
유다인들이 그분을 둘러싸고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26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5월 2일 (화)
김민회 시몬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1:17

📌 강론시작 08:00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5월 2일 (화)
김영우 스테파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8:08

📌 강론시작 15:39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5월 2일 (화)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오후 3시
장화기 바오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1:20

📌 강론시작 11:58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5월 2일 (화)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오후 3시
매일미사 오후 4시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 성체조배 0:01:00

📌 미사시작 0:58:49

📌 강론시작 1:06:19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강수원 베드로 신부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분을 따르는 사랑받는 양으로 살아갑시다. 

 

성전 봉헌 축제(하누카)는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4세가 우상 숭배로 더럽힌 예루살렘 성전을, 기원전 164년 유다 마카베오가 다시 정화하여 하느님께 봉헌한 일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자신을 ‘에피파네스’(신의 현현)라 일컫던 안티오코스 4세가 저지른 신성 모독을 모든 이가 뼈저리게 되새기던 그날 그 성전에서,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고 선언하신 것은 목숨을 건 정면 승부였습니다. 이러한 ‘도발’을 서슴지 않으신 것은 유다인들과 나누는 마지막 대화이며, 그들이 진리와 생명으로 돌아서기를 간절히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목숨을 앗아갈 셈이오?(직역)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그 대답은 이미 예수님께서 지금껏 거듭 밝혀 오셨습니다. 유다인들이 그분의 대답을 듣고 난 뒤 돌로 치려고 한 것을 보면(10,31 참조) 그들은 처음부터 불신과 완고함을 거둘 뜻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불신앙을 주님 탓으로 돌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을 ‘내 숨통을 조이시는 분’으로 여기며, 그분의 말씀과 행적을 듣거나 보면서도 자신을 더 설득해 보라며 멀찍이 서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도 실천 없이 기대만으로 미온적인 신앙생활을 하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주님의 양들은 당신 곁에서 귀 막고 있는 유다인들이 아닌, 용기와 결단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지난날의 삶을 돌이켜 응답한 이방인들이었습니다(제1독서 참조).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분을 따르는 사랑받는 양으로 살아갑시다.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시편 95[94],7-8).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시선을 바꿔야 알아볼 수 있다.

 

예전에 어떤 자매님과 이야기 나눴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 자매님은 자기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어렸을 때 가난으로 인해 잘 먹지 못했다는 이야기, 공부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공장이 들어가서 돈을 벌어야 했던 이야기,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고 이제 행복해지나 싶었는데 사고로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던 이야기, 사는 게 바빠서 아이에게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해서 매우 미안하다는 이야기…. 
 
‘와~~ 정말 힘든 삶을 사셨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힘드셨겠어요.”라면서 공감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제 아픔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람들 모두 나름의 아픔을 가지고 사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나만 아픔이 있고 또 불행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두 가지고 있는 아픔이고 불행이었어요. 그러다가 성당에 우연히 다니게 되었는데, 그 뒤에 모든 것이 달라 보였어요. 행복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둘러보니 행복은 널려 있더라고요. 
 
예수님 덕분이에요. 예수님 만나면서 행복이 보였거든요. 그리고 제 삶도 예쁘게 볼 수 있었어요. 안쓰럽고 불쌍한 삶이 아닌, 나름 멋진 삶인 것 같아요.” 
 
여러분은 자기 삶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불행만 있고 그래서 안쓰럽고 불쌍한 삶일까요? 시선을 바꾸어 자기 마음을 주님께 둔다면 다른 것이 보이게 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간직하며 자기 삶이 멋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 대한 믿음이 참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만이 자기 삶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이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요한 10,24)라고 질문합니다. 메시아는 ‘기름 바른 자’라는 뜻으로, 이 메시아가 나타나면 주위의 적들을 물리치고 시온에 영광스러운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고 선악을 가리어 하느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부풀어 있었지요. 

그런데 이 메시아는 누가 분별할까요? 사실 이 일은 랍비들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메시아가 아니라고 선포하기도 힘들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이스라엘 사람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라고 말합니다. 메시아로 믿고 따르려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확증을 잡아서 로마 당국에 고발하려는 심보였던 것입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요한 10,27)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말씀을 들어도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믿어야 할 대상이 아닌,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시선을 바꾸지 못하니 바로 앞에 계신 메시아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자기 삶도 불행의 삶으로 만들 뿐입니다. 
 
지금 나의 시선도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그곳을 빠져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곳을 거쳐 가는 것이다.

- 로버트 프로스트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랑하는 이의 소리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오늘 유다인들은 안달이 났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입니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신지 이미 말씀하셨고 당신이 하신 일이 당신의 정체를 증언하는데도 유다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믿지 않기 때문이고, 믿지 못함은 그들이 주님의 양들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에 비춰볼 때 유다인들이 믿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함은 그들과 예수님 사이에 인격적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격적 신뢰 관계? 

예, 목자와 양의 인격적 신뢰 관계 같은 것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인격적 관계이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인격적 관계이어야만 믿을 수 있고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인격적 관계가 아닌 이해관계일 경우 정말 순수하게 예수님을 알고픈 게 아니라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고 싶은 거고, 잇속으로 예수님을 견주어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빼먹을 것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이렇게 잇속에 따라 알려고 해서는 어떤 사람의 전모를 알 수 없고 진면목은 더욱 알 수 없으며, 예수님은 더더욱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이해관계는 그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런 바라봄은 전체를 사랑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의 어떤 것만을 노려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노리고 바라는 것이 없을 때 보려고도 하지 않고 마치 필요 없다고 버리듯 아예 존재를 버려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인격적인 관계는 양과 목자의 관계와 같이 주님의 말씀을 즉시 알아듣고 주님을 따릅니다. 사랑과 믿음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워싱턴 디시에 인접한 메릴랜드에서 살았는데 한 달에 한 번 뉴욕에 가서 강의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뉴욕에 가려면 필라델피아라는 곳을 지나야 하기에 그날도 필라델피아에서 새로운 사람을 태우고 출발하였는데 저 앞에서 한국말 하는 소리가 뒤에 있는 제제까지 들리는 거였습니다. 

옆에서 하는 미국말은 들리지 않고 저 멀리에서 하는 한국말이 들리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오랫동안 듣지 못한 한국말, 먹고 싶은 한국 음식과 마찬가지로 듣고 싶었던 한국말이 들리니 옆에서 하는 수없는 말들을 가운데서도 한국말이 들리는 거였습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이의 소리를 즉시 알아들을 수 있고 사랑하는 이의 소리가 귀에 꽂히는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주님의 목소리를 즉시 알아채고 주님의 사랑을 받던 제자가 주님을 즉시 알아보는 것은 그러므로 너무도 당연한 것이고 놀랄 일이 아닙니다. 

인격적 사랑은 우리의 귀와 눈을 열고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보게 하고, 더 나아가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님을 믿게 하고 따르게 합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주님의 알아 뵙고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아버지의 나는 하나다.

 

초록의 오월 속에 믿음의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믿음은 우리 인격의 구현입니다.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며 믿음은 일치를 향해 나아갑니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믿음이 사람들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새로운 발견이 됩니다. 

믿음에서 사랑을 이끌어내시는 일치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을 믿기에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됩니다. 오늘이 바로 그 믿음의 시간입니다. 믿음은 믿음 때문에 더욱 깊어집니다. 하느님과 사람이 한 몸이 될 수 있는 것은 우리 사이에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마시며 살아갑니다. 믿음을 부르며 살아갑니다. 믿음에 속한 사람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공동체입니다. 공동체의 믿음이 세상을 바꿉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믿음으로 사람이 됩니다. 믿음은 가짜를 버리고 진짜가 되는 삶입니다. 믿는 사람들 사이에 한 마음이 되시는 하느님의 힘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을 믿고 또 믿는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공동체의 믿음을 위해 기도드리는 새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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