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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4/26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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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입은 당신 찬양으로 가득 찼나이다. 온종일 당신 영광을 찬미하나이다. 당신께 노래할 때, 제 입술에 기쁨이 넘치리이다. 알렐루야.

주님, 주님의 이 가족들을 인자로이 굽어보시어 믿음의 은총을 주셨으니 저희가 성자 그리스도의 부활로 영원한 유산을 얻게 하소서.

 

2023년 4월 26일 (수)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4월 2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오늘 성경 말씀 카드

바다를 바꾸어 마른땅 만드시니, 사람들은 맨발로 건너갔네. (시편 66,6)

 

바다를 바꾸어 마른땅 만드시니, 사람들은 맨발로 건너갔네. (시편 66,6) 시편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사도행전 8,1ㄴ-8)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 오늘 복음
    (요한 6,35-40)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4월 26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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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리리라.

 

 

복음
요한 6장 35-40절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35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36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4월 26일 (수)
최남식 베드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6:40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4월 26일 (수)
리백진 파비아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8:48

📌 강론시작 17:07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4월 26일 (수)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오후 3시
장화기 바오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1:05

📌 강론시작 11:03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4월 26일 (수)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오후 3시
매일미사 오후 4시
야렉 카미엔스키 신부 집전

 

📌 성체조배 0:01:11

📌 미사시작 1:00:55

📌 강론시작 1:07:45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진만 안젤로 신부

 

나는 생명의 빵이다.

 

오늘 복음은 생명의 빵에 관한 이야기의 본론입니다. 군중은 빵의 기적을 목격하였지만 아직 완전한 믿음에 이르지 못한 듯합니다(6,30-34 참조). 그들은 자기 조상들이 체험한 만나 사건에서 모세를 보았지만, 하느님은 발견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6,31-33 참조). 예수님께서는 가시적 현상에 빠져 썩어 없어질 양식을 찾는 군중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달라고 청하는 군중에게 다음과 같이 응답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는 -이다.’는 요한 복음서 저자가 예수님의 신원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 양식입니다. 그리고 ‘빵’ 말고도 ‘세상의 빛’(8,12; 9,5), ‘문’(10,7), ‘착한 목자’(10,11.14), ‘부활과 생명’(11,25), ‘길’(14,6), ‘참포도나무’(15,1)와 같은 상징적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나는 -이다.’라는 표현 양식은 요한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본질 자체를 규명하기보다 예수님과 인간 사이 관계를 설명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요한 복음서 저자는 생명은 빵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주어지며,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믿음은 영원한 생명, 곧 구원받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라는 자기 계시는 예수님께서 절대적 믿음의 대상이심을 알려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생명의 빵’으로 계시하시면서 우리를 당신과 맺는 친교로 초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는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의 초대에 대한 응답으로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는 완성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믿는다는 것

 

공원을 산책하다가 영산홍이 활짝 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활짝 핀 꽃이 너무 예뻐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고 싶어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많은 꽃송이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떨어져 있었을 때는 모두 똑같아 보였는데, 완전히 똑같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하긴 사람도 모두 다르지 않습니까? 겉모습이 똑같아 보이는 쌍둥이도 부모와 가족의 눈에는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라고 하는 기도를 생각해 봅니다. 모든 기도가 똑같을까요? 사람이 모두 다르듯,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 역시 모두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어조와 음색을 가진 목소리로 같은 기도문을 수없이 반복해서 바치는 것은 어떨까요? 이 기도 역시 늘 새롭게 됩니다. 주님의 영이 늘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오시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기도만 해서 지루하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언어이고 똑같은 내용이라도 전혀 다를 수 있음을 베르나데트 수비루 성녀를 통해서 깨닫습니다. 성녀는 ‘성모송’ 이외의 다른 기도를 바칠 줄 몰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모님의 발현을 18번이나 목격하실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은 기도 같지만, 그 안에 자기의 마음을 정성껏 담았기에 그리고 주님께서도 매 순간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시기에 매번 다른 기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기도는 하느님의 뜻을 찾을 때 시작된다는 어느 신비가의 말씀이 와닿습니다. 성호경 한 번 긋는 것도 어떤 마음을 담느냐에 따라 어떤 기도보다도 가장 훌륭한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똑같은 기도만 외워도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 안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야 합니다. 이 마음에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 주님의 뜻을 찾고 실천하려는 의지 등을 담을 때, 주님의 참 자녀가 되어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생명의 빵이다.”(요한 6,35)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밥’을 주식으로 먹지만, 이스라엘 사람은 주식으로 ‘빵’을 먹습니다. 아무튼 우리 인간은 빵이나 밥으로 대표되는 음식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바로 우리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분이 하신 일을 그대로 인정하는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의 기도는 달라도 뭐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똑같이 성호경을 그어도 주님 앞에서는 다른 내용이 되고 맙니다. 
 
믿음은 단순히 ‘믿는다’라고 말하는 알맹이 없는 믿음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처럼, 우리 역시 하느님의 뜻인 사랑을 실천하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때 나의 기도가 진정한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심지를 굳게 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따라 묵묵히 나아갈 것이다.

- 마크 주커버그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법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생명의 빵”이라고 하시고 당신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빵은 우리에게 힘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 빵을 보고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는데 그렇다면 생명의 빵을 보고 믿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오래전에 개신교 신자에게 “당신을 구원받았습니까?”라는 질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잘 모르겠다고 머뭇거렸더니 그러면 구원받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셔서 우리가 완전히 죄에서 해방되었음을 믿는 순간이 있고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면 아직은 주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세례 때 이것을 믿습니다. 그럼, 그때 구원받은 것일까요? 

이는 한 번에 구원받고 그 구원이 영속된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나오는 생각입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바로 인간이 될까요? 아이는 태어나서 인간이 되려면 20년 정도는 부모와 사회에서 교육받아야 합니다. 세 살 때부터 여덟 살까지 개와 함께 살았던 옥사나 말라야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을 개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인간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인간이 되어가는 것처럼 하느님의 자녀도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견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견진을 제대로 살고 있다면 구원을 확신해도 됩니다. 고토홀드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81)은 독일의 시인, 극작가, 문학 비평가입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현자 나탄' (Nathan der Weise)은 1779년에 발표된 5막의 희곡입니다. 

현자 나탄에서 나오는 반지 이야기는 작품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야기로, 종교 간의 이해와 화합을 상징하며, 진리의 상대성에 대해 고찰하게 합니다. 이 이야기는 나탄이 자기 아들로 생각하는 기사 템플러에게 말하는 우화입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옛날 어느 왕족은 전통으로 소중한 반지를 물려주어 왕위와 가문의 통치자가 되게 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 반지를 착용하고 살면 신과 백성들로부터 사랑과 명예, 부를 모두 받을 수 있다고 전해집니다. 왕은 그 반지를 끼고 그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왕은 세 명의 아들이 있었으며, 모두 그의 사랑을 동등하게 받았기에 누구에게 반지를 물려줄지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왕은 반지를 복제하여 세 개의 완전히 같은 반지를 만들어 세 명의 아들에게 각각 하나씩 주었습니다. 

그 후 왕이 죽자, 아들들은 각자가 진짜 반지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벌였습니다. 재판이 진행되어 판사는 아무도 진짜 반지를 가진 사람을 알 수 없다고 판결하며, 세 명의 아들에게 각자의 반지가 진짜라고 믿고 선하게 살아가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하려고 하는 것은 반지도 중요한 반지를 낀 이의 자세입니다. 내가 진짜 반지를 끼고 있다면 하느님과 이웃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것 자체가 반지가 진짜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반지는 그 사람의 착한 뜻을 완전하게 해 주는 도구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의 동행도 그런 효과를 냅니다. 그리스도를 본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당위성을 안고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엄마와 함께 있는 아이가 엄마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아기도 엄마처럼 언젠가는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엄마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새로 태어남은 줄탁동시입니다. 그분과 나의 협력으로 이루어지고 그분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그분에게 협력하고 있습니다. 착해지기 위해 계속 고해성사를 멈추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분명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분과 동행하며 나 자신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면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여전히 그리스도처럼 될 수 없다고 믿고 걸음마나 옹알이를 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면 믿음을 잃었으니 그 상태로는 다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또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고해성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구원의 확신을 두고 살아갑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어떤 상황에서도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오늘 사도행전이 얘기하는 초대교회 상황은 그야말로 ‘격동’, ‘격변’입니다. 그리고 격동과 격변으로, 교회 상황은 바람 앞의 불과도 같은 상황입니다. 

이렇게 계속 가면 교회는 망할 것 같습니다. 모두 흩어졌다고 하는데, 모두 흩어지면 교회는 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두 가지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는 사도들은 흩어지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아있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흩어진 사람들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사도들이 흩어지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은 것을 보겠습니다. 사도들도 나중에는 로마로 가고 곳곳으로도 가겠지만 당분간은 예루살렘을 딱 지키고 있습니다. 

동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어떻게 이렇게 동요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느님을 믿고 주님의 사랑을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것이 변해도 변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고통과 죽음이 닥칠지라도 변함없는 주님 사랑을 믿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주님이 돌아가신 최악을 이미 경험했고,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하느님 부활 능력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격동의 상황에서는 동요하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우리에게 있어야 하고, 그 동요 없음이 하느님께 대한 믿음 때문임을 구성원들이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것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흩어진 신자들이 오히려 하느님 말씀을 전한 것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습니까? 그것은 단순합니다. 흩어졌어도 그들이 하느님 말씀을 간직했기 때문입니다. 뒤집어보면 급박한 상황에서도 하느님 말씀을 놓치거나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 때 피난 가는 그 급박한 상황에서 모든 짐을 다 놓고 떠나도 가장 소중한 것 하나만은 갖고 떠나듯 신자들은 말씀을 간직하고 떠난 겁니다. 

이렇게 신자들이 흩어지니 하느님 말씀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갑니다. 싸우고 결별하고 절망하고 흩어졌다면 교회는 망하고 말았을 텐데 박해 때문에 흩어지고 말씀을 안고 떠나니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는 우리는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를 봅니다.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퍼지는 놀라운 섭리 말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도 처음에는 흩어지는 것이 퍼지는 것인 줄 몰랐을 겁니다. 자기들이 흩어지는 것이 복음이 선포되는 것인 줄 정녕코 몰랐을 겁니다. 

처음에는 흩어져 자기들 신앙이나 간직하고 살려는 마음뿐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말씀을 간직하고 있으니 땅속의 씨가 한참 뒤 싹을 틔우듯이 말씀이 싹이 돋고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나간 것입니다. 

우리나라 박해 때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박해 때문에 피신한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루었고, 우리 신앙이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을 간직하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 사랑을 믿는 것,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파하는 것, 이것이 신앙 공동체요 부활의 공동체임을 오늘 초대교회에서 배우는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비 맞은 봄빛이 우리의 생명을 비추어 줍니다. 생명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삶입니다. 사람으로 사는 진정한 삶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시고 다시 살리시는 생명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지극하신 하느님 사랑을 만납니다. 

가장 위대하신 사랑이 오늘도 우리를 감쌉니다. 알몸으로 태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생명의 빵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는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와 같이 사랑은 다시 생명을 얻는 예수님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오늘의 생명이 있기에 내일이 있고 마지막이 있고 다시 살아나는 영원함도 있는 것입니다. 생명을 지키시는 마지막 생명이신 우리의 주님이 하늘의 뜻을 실천하십니다. 생명의 빵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끌고 예수님께서는 친히 우리의 생명의 길이 되십니다. 

오늘을 마지막같이 살라고 우리의 생명이 유한한 것입니다. 빵이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생명이 새롭게 펼쳐집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또한 생명의 빵으로 오늘을 살길 간절히 바라십니다. 

사랑의 배고픔과 사랑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생명의 오늘이길 기도드립니다. 오늘이 살아나야 마지막 날도 다시 살아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생명이 생활이 되어 우리의 오늘을 보게합니다. 오늘이 모두 사랑인 오늘이 되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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