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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4/25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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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알렐루야.

하느님, 복된 마르코 복음사가를 뽑으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으니 저희도 그의 가르침으로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2023년 4월 25일 (화)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4월 2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은총 안에 굳건히 서 있도록 하십시오. (1베드 5,12)

 

은총 안에 굳건히 서 있도록 하십시오. (1베드 5,12) 베드로1서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베드로 1서 5,5ㄴ-14)
    나의 아들 마르코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 오늘 복음
    (마르코 16,15-20ㄴ)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4월 25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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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라.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시다.

 

 

복음
마르코 16장 15-20ㄴ절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19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20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4월 25일 (화)
박유민 세례자 요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1:11

📌 강론시작 09:38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4월 25일 (화)
김영우 스테파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8:51

📌 강론시작 19:10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4월 25일 (화)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오후 3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8:14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4월 25일 (화)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오후 3시
매일미사 오후 4시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 성체조배 0:01:50

📌 미사시작 1:01:51

📌 강론시작 1:11:01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진만 안젤로 신부

 

복음을 진정으로 믿으며 살고 있나요?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서의 ‘긴 결말’(16,9-20 참조)에 속하는 부분으로 2세기 무렵 덧붙여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과 승천 이야기를 보충하고 싶었던 이들이 다양한 전승 자료들을 수집하고 편집하여 빈 무덤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마르코 복음서에 이를 더한 결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도 목격 증인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완고하여 믿지 못하는 제자들(16,11.13.14 참조)을 세상의 복음화를 위한 도구로 쓰고자 하십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떠나가서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복음 선포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결과로 드러날 것입니다. 누군가는 복음을 믿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복음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믿는 이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이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겠다는 결의와, 그분과 함께 부활하리라는 희망으로 세례를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고 세례를 받는 이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와 반대로 믿지 않는 자는 멸망할 것입니다. 복음의 수용과 거부에 따른 결과는 극명한 차이, 곧 구원 아니면 멸망으로 이어집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복음을 전하고, 모든 이를 구원으로 인도하고자 하였습니다. 오늘 선포되는 복음을 듣고 있는 우리는 그 복음을 진정으로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지요?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폴 잭슨 플록의 작품이 다르게 보이는 이유

 

미국 화가로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로 알려진 폴 잭슨 플록(1912-1956)이 있습니다. 우연히 그의 작품 ‘No 5’라는 작품을 보게 되었습니다. 2006년 경매에서 이 작품은 한화로 약 1,800억에 낙찰되었다고 하더군요. 이를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아무렇게나 페인트를 뿌린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액션 페인팅 기법이라고 하지만 미술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1,800억이라는 낙찰가가 거품으로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한 평론가의 글을 통해서 새로운 점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무지한 사람은 아무렇게나 뿌려서 이 작품이 우연히 나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작가의 정연한 질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페인트 뿌리는 힘을 조절하고, 페인트의 양과 색채를 조절해서 만든 작가의 질서가 가득한 위대한 작품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잘 알지 못하기에 위대한 작품을 손장난에 의한 우연히 만들어진 작품으로 생각했던 저였던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폴 잭슨 플록과 비교할 수 없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떠올려 봅니다. 인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제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어떻게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도 하느님이 잘못되었다면서 너무 쉽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부족하고 나약하며 너무나도 무지한 우리가 하느님의 깊은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부족함 그 자체인 우리가 감히 완전하신 하느님을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모순일 수밖에 없습니다. 
 
평론가의 설명을 통해 폴 잭슨 플록의 작품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느님을 알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모든 활동이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라고 이르십니다. 그러면서 여러 표징을 약속하시지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모든 표징은 무엇 때문일까요? 단순히 표징 자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길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믿음을 통해 표징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보다 표징 자체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 표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서 주님을 부정하고, 주님께 원망의 말을 던집니다. 주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섣부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알도록 더 노력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입으로만 “믿습니다.”라고 외치는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와 묵상을 통해 주님을 먼저 알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주님을 알고 주님을 굳게 믿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당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결심하는 그 순간이다.

- 앤서니 라빈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표징은 “그의 말과 행동이 옳다”라는 확증

 

오늘은 복음사가 마르코의 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르코 복음사가는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표징이 뒤따르게 해주셨다고 말합니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표징이 있어서 선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교하니까 표징으로 확증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표징의 삶을 살려면 먼저 복음을 전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복음은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고 사랑하라는 것밖에 없습니다. 

마르틴 데 포레스는 페루 리마에서, 스페인 귀족과 파나마 출신의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의 검은 피부를 물려받은 그는 귀족인 아버지로부터 멸시받았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가정을 버렸기 때문에, 마르틴은 가난 속에서 컸으며 리마 사회의 하류층 생활을 했습니다. 

마르틴의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의 관대함과 하느님에 대한 신앙, 겸손, 그리고 가난한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의 봉사에 감명받았습니다. 그는 12세 때 머리 깎는 법과 지혈법을 배우고 의술도 익혀서 부상자를 돌보고 치료했습니다. 아침마다 산 라자로 성당에서 무릎을 꿇고 미사에 참여하면서 마르티노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대한 하느님의 뜻은 무엇일까? 누구의 몸 안에도 하느님을 본뜬 혼이 있으니까, 서로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그분 뜻이 아닐까? 만일 내가 사람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 주려고 노력한다면, 나는 진실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걸 거야!” 

15세가 되었을 때 마르티노는 리마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원에 자기 자신을 바치리라고 결심합니다. 자기가 태어난 것은 완전히 이것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사제도 노동 수사도 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수도원의 심부름꾼이 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기도했습니다. 

“주님은 그 자신을 나에게 내주셨다. 나도 나 자신을 주님께 바치리라. 주님! 지친 사람, 병든 사람, 불행한 사람을 제가 돕도록 해주세요. 주님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가를, 저를 도구로 쓰셔서 그들이 알게 해주십시오.”

평신도 보조원으로 수도원에 들어갔지만, 9년 후 수도 공동체는 그의 기도와 참회, 애덕과 겸손을 보아 그가 수도서원을 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는 이것이 자신에게 너무 큰 영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에 대한 불타는 사랑이 있었으므로 그들에게 온몸과 마음을 다 바쳐 봉사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마르티노가 병든 인디언을 자기 방에 데려온 것을 보고, 이것을 수도회의 한 수도자가 비난하고 불순종에 대하여 꾸짖었습니다. 그는 꾸지람을 다 받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순종이 자비보다 앞서는 것을 나는 알지 못합니다.”

또한 어느 날 자기 방에 아주 더러운 거지를 데리고 들어온 것에 대하여 비난받게 되었을 때, 마르티노는 “자비심이 깨끗함보다 더욱 훌륭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물론 마르티노가 수도회의 형제들을 존중하고 사랑했음에도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사랑의 행위 때문에 이러한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때 주님께서 다른 수도자들이 아닌 마르티노의 행동이 옳음을 기적으로 확증해 주셨습니다. 

마르티노가 의학적으로 병을 고치는 것뿐 아니라 그의 도를 통해서는 지극히 무서운 병도 낫게 했습니다. 마르티노가 부엌에서, 세탁실에서, 병원에서, 일상적인 일을 하는 데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그의 생활을 놀라운 기적과 선물로 채워 주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줄 빵이 얼마 없자 끊임없이 바구니에서 빵이 늘어나는 것과 같은 기적들입니다. 그리고 그를 공중에 들어 올리는 탈혼 상태, 또 그가 기도하는 방을 가득 채우는 빛, 두 장소에 동시에 나타나는 일, 순간적인 병의 완쾌, 동물들의 순종, 잠긴 문을 통과하는 것 등 수많은 은사를 하느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이러한 일을 본 동료 수도사들은 더는 그의 행동에 토를 달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그것보다 더 큰 감명을 주는 것은 그의 겸손이었습니다. 수도원이 빚을 지게 되자 그는 이렇게 청했습니다. 

“나는 가련한 혼혈아일 뿐입니다. 나를 파시오. 나는 수도원의 재산입니다. 나를 파시오.“

그의 사상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그리스도의 겸손을 통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불타는 사랑과 봉사”입니다. 이것만 행한다면 그 행위가 옳다는 표징은 주님께서 반드시 주실 것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가 마르코를 알렉산드리아로 보냈으며 거기서 주교가 되었습니다. 부활절 미사를 드리던 중 마르코는 이교도들의 습격을 받고 붙잡혔는데 이들은 주교인 마르코의 목에 밧줄을 걸어서 성인을 거리에서 끌고 다녔으며, 이튿날 같은 일을 되풀이했고, 성인은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낭자하여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교도들이 시신을 불태우려 하자 천둥과 번개가 쳤고, 사람들은 시신을 방치한 채 도망치기에 급급했는데 그 틈을 타 신자들이 성인의 시신을 수습하여 교회에 모셨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리아에 모셔졌던 성인의 유해는 829년 베네치아의 상인들에 의해 베네치아로 옮겨졌으며, 이를 기념하여 베네치아 사람들은 성인의 이름을 따 성 마르코 대성당을 짓고 그곳에 유해를 보존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먼저 복권을 사야 당첨도 시켜주시는 것입니다. 표징은 언제나 전한 복음의 확증으로 우리에게 옵니다. 마르코 성인도 마찬가지지만 수많은 성인들의 시복시성을 추진할 때 죽음 뒤에 일어난 표징을 근거자료로 삼습니다. 분명 그분이 전한 복음의 삶에 주님께서 기적으로 확증해 주실 것임을 교회가 믿고 있는 것입니다. 

표징이 없다고 자신 없어 하지 말고 먼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의무에 충실해야겠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그에 합당한 표징으로 우리가 전한 복음을 확증해 주실 것입니다. 부모가 심부를 할 아이에게 돈을 주는 것은 당연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정신차려 

 

“여러분과 함께 선택된 바빌론 교회와 나의 아들 마르코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훌륭한 집 가계도를 보면 그 가문에 큰 인물들이 함께 나옵니다. 성인들의 경우도 훌륭한 성인 곁에 성인들이 많이 나옵니다. 프란치스코만 해도 10여 명의 성인이 그의 둘레에 있습니다. 

오늘 마르코 복음사가를 보면 그를 둘러싼 분들이 화려합니다. 우선 오늘 독서에 나오듯이 마르코는 베드로 사도가 ‘나의 아들’이라고 하는 관계이고 오늘 베드로 서간을 보면 베드로 사도와 같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 사도가 천사의 인도로 쇠사슬을 끊고 감옥을 나와 마르코의 집으로 간 것이 인연이 되어 베드로의 복음 선포 여정에 함께한 것일 겁니다. 

사도행전 12장 12절을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베드로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면 마르코는 바오로, 바르나바와 함께 1차 전도 여행을 같이한 것으로도 나옵니다. 

이것을 보면 마르코는 베드로와 바오로 두 사도의 동반자가 되었고 그래서 복음 선포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첫 복음사가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고, 공동체를 어떻게 형성해야 하는지 배워야 합니다. 

우리도 이런 관계를 본받아 선한 영향력을 넘어 영적인 영향력을 주고받는 관계로, 공동체도 영적인 영향력을 서로 주고받는 공동체로 만드는 것입니다. 

본래 공동체란 더불어 사는 곳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살면 더 불어나는 법입니다. 좋은 것도 더 불어나고 나쁜 것도 더 불어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베드로 서간에서도 배워야 합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경각심을 가지라고 이렇게 가르칩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이것을 보면 나를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하는 것이 실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형제가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 적대자 악마입니다. 

우리 안에 육의 정신이 있으면 우리는 더러운 영이나 악령의 먹잇감이 되겠지요.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이런 비유를 드셨습니다. 

더러운 영이 어떤 집에서 나와 돌아다니다가 아직도 그 집이 비어있으면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 그 집은 더 나빠진다는 비유 말입니다. 

우리가 오늘 베드로 사도의 가르침대로 정신을 차리면, 다시 말해서 썩어빠진 정신을 버리고 제정신을 차리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악한 기운이나 정신이나 영들을 물리치고, 성령을 영접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 공동체는 성령께서 머무시는 성전이 될 겁니다. 

반대도 명확합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우리 공동체는 복마전이 될 것입니다. 진짜 악령들이 우리 안에 머무는 복마전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악령들처럼 되어 복마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성 생활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악령이나 받들자고 영성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정신 차려 성령을 모시는 우리 공동체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꽃과 꽃 사이에 부활의 아름다운 봄이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꽃들이 어울리며 복음의 꽃이 됩니다. 복음으로 살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기쁨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지금 여기를 예수님과 함께 새롭게 바르게 보는 것이 행복이고 기쁨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참된 기쁨입니다. 어떤 환경에도 어디에서나 복음은 우리와 함께합니다. 아무도 우리를 속박한 적인 없습니다. 우리의 자아가 우리를 묶어 왔던 것입니다. 묶여 있던 우리 자아가 하느님께로 빠져 나오는 것이 복음입니다. 누군가에게 복음이 되는 삶이 그리스도인들의 복음의 일상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낮추시는 존중과 모든 것을 나누시는 평화로 우리를 복음의 삶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복음의 기쁨이 우리마음을 가득 채웁니다. 사람의 복음은 사랑과 용서이며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복음의 삶입니다. 

사랑에 충실한 삶이 복음을 선포하는 삶임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배우고 읽고 묵상하게 하는 성 마르코 복음사가의 축일을 통하여 배움이라는 교육의 중요성을 절실히 다시 깨닫는 새로운 새아침입니다. 가장 좋은 기쁜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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