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는 당신 자애에 의지하며, 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새기고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2023년 2월 21일 (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2월 2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집회서 2,1-11)
너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켜라. - 오늘 복음
(마르코 9,30-37)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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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님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지 않으리라.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게서는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에서는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노라.
복음
마르코 9장 30-37절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30
갈릴래아를 가로질러 갔는데,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31
그분께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32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33
그들은 카파르나움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하고 물으셨다.
34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기 때문이다.
35
예수님께서는 자리에 앉으셔서 열두 제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36
그러고 나서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에 세우신 다음, 그를 껴안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37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2월 21일 (화)
윤종식 티모테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7:17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2월 21일 (화)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5:28
📌 강론시작 14:08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2월 21일 (화)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17
📌 강론시작 08:36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용진 요셉 신부
십자가는 우리가 주님의 길을 올바로 걷고 있다는 분명한 표징이다.
오늘 제1독서는 아름다운 집회서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얘야, 주님을 섬기러 나아갈 때”. 우리 가운데 누가 주님을 섬기려는 마음을 가지고자 할 때, 주님께서 우리가 바라는 것을 오십 배 백 배로 풍성하게 베풀어 주시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우리 삶에 평화와 안정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집회서의 말씀을 들어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너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켜라.” 여기서 ‘시련’은 우리에게 좋고,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표징이며,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키우고 가장 값진 은총을 받기 위한 조건이 됩니다. 그러면서 집회서는 계속해서 주님을 섬기는 사람은 고통스러운 일들을 참고 견뎌야 한다며, 금이 불로 단련되듯이 주님께 맞갖은 이들도 비천의 도가니에서 단련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시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것입니다. 집회서의 저자는 그때마다 “그분을 믿어라.”, “주님께 매달려 떨어지지 마라.” 하고 다독입니다. 이렇게 하면 “좋은 것들과 영원한 즐거움과 자비를”, 그리고 “기쁨을 곁들인 영원한 선물”을 받을 것이라고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 줍니다.
오늘 복음은 이와 관련하여 좀 더 명확한 가르침을 전합니다. 시련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이제 우리는 혼란이나 망설임을 되풀이하지 않으며 주님을 따르고 그분을 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중반부 이후에는 제자들이 누가 서로 높은지를 놓고 다투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자리에 앉으셔서 그들을 당신 곁으로 부르셨습니다. 당신 곁으로 가까이 오라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제자들이 당신 곁을 떠나 있다고 느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시련 가운데서도 당신 곁에 머물러 주기를 바라십니다.
주님을 섬기고 형제들을 섬기는 길은 신앙의 참기쁨을 얻는 길이지만 십자가의 길이고 시련의 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가 주님의 길을 올바로 걷고 있다는 분명한 표징입니다. 시련을 겪을 때에도 언제나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설렁탕 대신 뼈다귀해장국
언젠가 강의 시간이 남아서 근처 식당에 들어가 식사했는데, 그때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이 식당이 맛집으로 유명한 곳인지 식사 때도 아닌 데도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습니다. ‘잘 들어왔다.’라고 생각하며, 메뉴 중에서 ‘설렁탕’을 주문했습니다. 잠시 후에 음식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주문한 설렁탕이 아닌 뼈다귀해장국을 식탁 위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주문서를 확인해보니, 분명히 설렁탕입니다. 그래서 주문한 음식이 잘못 왔다고 종업원을 부르려 했습니다. 하지만 식당 홀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들을 보니 미안한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저로 인해 불편함을 겪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냥 뼈다귀해장국을 먹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내가 직원까지 이렇게 배려한 거야.’라면서 말입니다.
잠시 뒤, 화난 목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뼈다귀해장국을 시켰는데 왜 설렁탕을 가져다줬냐는 소리였습니다. 맞습니다. 음식 전달이 잘못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배려한다고 그냥 먹었지만(이미 두 숟가락 먹었습니다), 처음에 미리 직원에게 이야기했다면 손님을 화나게 할 일도 없었고 직원이 혼날 일도 없었겠지요.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었고, 불편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자기 생각이, 또 배려라고 생각했던 것도 결코 완벽할 수 없습니다. 종종 자신이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배려했는데 자기에게 이럴 수 있냐면서 화내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생각과 배려가 남을 곤란하게 하고, 기분 나쁘게 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주님께서 말씀하신 겸손의 삶이 시작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하늘나라의 신비에 대해 듣게 되었고, 또 그 나라의 영광이 얼마나 큰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의 관점에서 이해하려 했습니다. 세상에서의 첫째 자리의 영광처럼, 하늘나라에서도 첫째 자리의 영광은 떵떵거리면서 남 위에 군림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 논쟁하기까지 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이야기하십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9,35)
아오스딩 성인께서는 이를 나무에 비유하셨습니다. 나무가 하늘 높이 자라야 하기 위해서는 뿌리를 깊숙이 내려야 하는 것처럼, 겸손의 뿌리를 깊숙하게 내려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첫째 자리를 욕심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면서 겸손의 덕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지요.
부족해 보이는 어린이까지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주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겸손의 뿌리를 깊숙하게 내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나를 지키는 아름다운 지혜는 상대방 입장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다.
- 조우성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사람에게 관심 없는 사람은 하느님에게도 관심 없다.
어느 성당에 가건 조금은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신자들이 한둘씩은 있습니다. 제가 오산성당에 있었을 때 한 자매님이 그러한 분이셨습니다.
미사 중간에 항상 씩씩하게 들어와서는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자리가 자신의 자리라며 비키라고 하고 미사 분위기를 부산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특별히 담배 피우는 것을 싫어해서 사제가 담배 피우는 것을 보아도 바로 빼앗아서 발로 밟아버렸습니다. 그분은 버스를 탈 때도 도로 한복판으로 뛰어 내려가 달리는 버스를 세워 잡아타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교구에서도 유명한 분으로 통했습니다.
많은 신자는 그분을 보면 인상을 찌푸리고 심지어 소리까지 치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분을 보면 궁금해집니다.
‘왜 저렇게 되셨을까?’
지금은 고인이 되셔서 제가 그분에게 물어보고 알았는지, 아니면 그분을 잘 아는 분에게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분은 매우 똑똑한 분이었고 남편에게 심한 학대를 당하여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사실입니다.
남편이 담뱃불로 학대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니 그분이 가엾게 여겨지고 회복되시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제가 본당 사제로 온 이후에는 매우 차분해졌다는 소리를 들어서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 사람 왜 저래?’라고 끝내는 사람은 자신에게서 나오기 싫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왜 그러는지 알려고 해야 합니다. 알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사랑하게 됩니다. 판단만 하면서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은 자신이 옳다는 것을 그 사람을 통해서 증명하려는 것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린이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을 알려고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알려고 하는 사람이고 예수님을 알려고 하는 사람은 아버지까지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면 하느님께 관심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술품에 관심이 없으면서 예술가에게 관심이 있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제가 하는 묵상에 관심이 전혀 없으면서 저에게 관심이 있다고 하는 말도 저는 믿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 말씀에 관심이 없으면서 성체성사엔 관심이 있다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말씀에 관심이 없다면 성체에도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는 나 자신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를 교만이라고 합니다. ‘피아니스트의 전설’이란 영화에서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배에서 내리지 못합니다. 배에서 태어나 평생 배에서 살았는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사는 세상으로 내려가기가 두려운 것입니다.
사람은 이렇듯 자신이 아는 세계가 안전하다고 생각하여 벗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결국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속한 세상을 알아야만 하는데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음이 밝혀지는 게 두려워 사랑을 포기하게 됩니다. 결국엔 알고 싶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책이 저에게는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입니다. 당시 누구나 볼 수 있는 성물방 책방 코너에 꽂혀 있었지만, 그 책을 빼서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라고 전합니다.
그들은 묻는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묵상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깨달으면 내가 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알게 되면 효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라는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어린이를 먼저 받아들이라고 하십니다. 받아들인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알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그분이 만드신 작은 것들에 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먼저 알기 위해 질문을 던져봅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세상의 꼴찌, 천국의 첫째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이 말씀은 첫째가 되기 위해 작전상 꼴찌가 되라는 말씀일까요?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잠시 패자가 되라는 그런 맥락에서 말입니다.
그런 맥락이라면 주님의 가르침답지 않고 결코 그런 뜻이 아닐 겁니다.
그런 것이라면 이 세상에서의 첫째와 꼴찌 얘기지요.
그러나 제 생각에 주님 말씀의 뜻은 이 세상에서 첫째는 하느님 나라에서 꼴찌고, 사람들 가운데서 첫째는 하느님 앞에서 꼴찌라는 뜻일 겁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하느님 나라에서 첫째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꼴찌가 되라!
이 말씀이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 닿는 길은 언제나 섬기는 길입니다. 다시 한 번 무엇을 위해 살아야할지를 배우게 됩니다. 묶여 있던 것을 푸는 방법은 오히려 우리가 아래로 내려와 섬기는 것이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삶의 깊은 맛은 바로 섬기는 맛입니다. 섬기는 사람은 자아의 늪에 빠지지 않습니다. 섬기는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섬기는 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방치했던 우리 마음이 십자가로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사람을 피할 수 없듯이 우리는 십자가를 피할 순 없습니다. 십자가는 경고등이 되어 우리의 모진 자아를 꺾어 놓습니다. 나눔과 섬김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향해 있습니다.
섬기면 비로소 보이게 되는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삶은 섬기는 삶뿐입니다. 변두리까지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섬기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빛이 됩니다. 빛이 되는 오늘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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