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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2/24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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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소서,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의 구원자 되어 주소서.

주님, 저희가 시작한 참회의 생활을 인자로이 도와주시어 육신으로 닦는 이 재계를 성실한 마음으로 완수하게 하소서.

 

2023년 2월 24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2월 2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이사야서 58,1-9ㄴ)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 오늘 복음
    (마태오 9,14-15)
    신랑을 빼앗길 때에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2월 24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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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너희는 악이 아니라 선을 찾아라. 그래야 살리라. 그래야 주님이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복음
마태오 9장 14-15절

 

신랑을 빼앗길 때에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2월 24일 (금)
조영훈 스테파노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8:27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2월 24일 (금)
전두병 요아킴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9:45

📌 강론시작 18:31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2월 24일 (금)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 미사시작 1:02:27

📌 강론시작 1:10:55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용진 요셉 신부

 

단식과 자선 그리고 기도

 

오늘 독서와 복음은 ‘단식’에 대하여 생각하도록 우리를 안내합니다. 오늘 제1독서의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좋아하는 단식의 의미를 풀이해 줍니다. 겉보기에만 그럴 듯한 단식이 아니라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자신의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집 없이 떠도는 이들을 자기 집에 맞아들여 환대하고, 헐벗은 이에게 옷을 입혀 주는’ 기쁨의 단식을 하라고 말합니다(58,6-7 참조). 

오늘 복음에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째서 단식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옵니다. 단식은 많은 종교에서 공통된 신앙 실천 방식입니다. 이슬람교 신자들은 라마단 기간에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단식하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께서 무려 사십 일 동안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마태 4,1-11; 마르 1,12-13; 루카 4,1-13 참조).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과 똑같이 단식하라고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면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의무적으로 단식해야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의 손님들(예수님의 제자들)이 신랑(예수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성경은 단식에 대하여 자주 언급합니다. 단식은 회개에 이르는 참회의 방식입니다. 우리는 사순 시기에 할 수 있는 대로 단식하며,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단식하신 예수님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 먹지 않음으로써, 먹는 것을 포기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단식은 정신의 자유와 자신에 대한 통제와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얻도록 해 줍니다. 더 나아가 먹을 것이 없어서 굶고 있는 가난한 이들과 우리 자신을 동일하게 만드는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사순 시기에 먹는 것을 단념하고(단식), 단념한 것을 내주며(자선), 우리에게 필요한 빵, 우리가 받아먹어야 할 더 좋은 것을 하느님께 청할 수 있습니다(기도). 

무엇보다 우리는 단식함으로써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그분의 부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내주고 다시 완전히 충만하게 되돌려 받는 생명의 상급에 대하여 묵상하기에 사순 시기는 참 좋은 시간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의지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

 

네덜란드의 호로닝언 대학교의 폰터스 린더 교수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습니다. 학생들에게 몹시 어려운 문제를 주고서, A그룹에는 이 문제를 풀기 전에 무관심한 표정을 짓는 사람의 사진을, B그룹에는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에 관한 결과는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어떤 그룹의 점수가 더 좋았을까요? 
 
무관심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본 그룹은 점수가 낮았고 문제를 푸는 데 들인 시간도 매우 짧았습니다. 무관심한 모습의 사진처럼, 무성의하게 응한 것입니다. 그에 반해 열심히 하는 사람의 사진을 본 사람은 열심히 문제를 오랫동안 풀었고 점수도 훨씬 높았습니다.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의지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이었습니다. 만약 내 주변에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그 모습을 따를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의지를 세워 열정적으로 행동한다면 어떨까요? 주변의 무기력함이 가득했지만, 나를 통해 그 무기력함에서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자기 자녀가 지금보다 더 열정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분을 자주 만납니다. 꿈이 없는 것 같다고, 도대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보기만 하면 답답해서 미치겠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지금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앞선 실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누구보다도 자기가 먼저 열정적으로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열정적인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으면서, 상대만 열정적으로 변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하나의 꿈에 불과합니다. 
 
신앙인은 열정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열정적으로 일하시는 주님과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열정은 위선과는 다릅니다. 즉,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열정이 아닌, 주님을 드러내기 위한 열정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께서는 단식한다고 거창한 말로 떠들어 대거나 창백한 얼굴로 뽐내며 지나치게 소문내고, 거룩한 분의 눈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들기 위해 단식한다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하십니다. 이런 열정은 하느님께서 절대로 좋아하시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열정을 간직하면서 사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남에게 보이기 위한 열정, 자기를 드러내는 열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숨은 것도 보시는 주님이시기에 우리의 참된 열정을 보시고 높이 평가해주실 것입니다. 그때 이사야 예언자께서 하셨던 말씀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이사 58,8)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뿐이다.

-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단식할 줄 아는 사람만이 신랑을 차지한다

 

영화 ‘노트북’(2020)은 니콜라스 스파크가 자신의 조부모의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진 멜로드라마 영화입니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대, 미국 남부 지방의 시골 마을에서 시작됩니다. 주인공인 노아는 전쟁 참전 중에 있던 형제를 잃고 군인으로 복귀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서 그의 아버지와 함께 나무를 베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그녀와 마주치게 되는데, 이는 로즈라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부유한 가문에서 자란 예쁜 소녀이며, 대학을 졸업한 뒤 지금은 자신의 일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에게 끌리게 되어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로즈의 부모님은 노아와 로즈의 결혼을 반대합니다. 로즈는 노아를 사랑하지만 부모님의 의사에 따르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노아에게 이별을 알리고, 도시로 떠나 버립니다. 노아는 로즈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약속했음을 알지만, 그래도 로즈에게 매일 편지를 보내고 로즈에게 지어주기로 약속한 집을 짓습니다. 

그렇게 멋진 집을 지어 신문에 광고가 나게 되고 결혼을 준비하던 로즈는 이 사실을 알고 돌아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난한 노아와의 결혼은 망설여집니다. 이때 노아는 로즈에게 매일 편지를 썼고 그것을 어머니가 가로챘음을 알게 됩니다. 로즈는 매일 자신에게 쓴 노아의 편지를 읽으며 결국 노아와 결혼합니다. 

그런데 노아는 또 로즈를 빼앗깁니다. 로즈가 치매가 들어 자신들의 러브스토리를 잊게 된 것입니다. 노아는 지난날의 자신들의 이야기를 노트북에 적어 그녀에게 매일 읽어줍니다. 그리고 잠시 기억이 돌아올 때 매우 행복해합니다. 

이렇게 노아는 끊임없이 로즈를 무언가에게 빼앗기려 할 때 그녀를 되찾을 노력들을 하였습니다. 그 노력들의 결과가 마지막 순간 둘이 서로를 기억하며 함께 눈을 감는 축복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단식’에 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단식은 당신을 빼앗겼을 때 그것을 되찾아오려는 목적으로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누군가에게 빼앗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어디에 빼앗길까요? 성체를 영한다고 내 안에서 항상 살아계시는 것이 아니라 ‘못된 소작인의 비유’처럼 우리 안에서 그분을 빼앗고 죽이는 이들에게 납치를 당하게 방치될 수도 있습니다. 

바로 탐욕과 육욕과 교만이라는 적에게 빼앗깁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그분을 되찾아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이를 ‘단식’이라고 합니다. 

노아가 로즈를 위해 집을 짓고 수리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단식이고 이미 결혼한 로즈를 위해 매일 편지를 쓰는 일이 단식이며 치매라는 병에 빼앗긴 로즈를 위해 지난 날의 이야기를 읽어주는 일도 단식입니다. 

그러나 로즈가 돌아왔을 때는 단식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식의 목적은 잃어버린 상대를 되찾기 위함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제가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는 목소리를 들을 때 저는 단식하고 있었습니다. 일주일을 하려고 했는데 고작 사흘 째 되는 날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신랑을 되찾은 것입니다. 

그러면 계속 단식해야 했을까요? 바로 내려가서 밥을 먹었습니다. 잃어버린 신랑을 되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저의 세속-육신-마귀에게 예수님을 빼앗길 때는 단식합니다. 왜냐하면 단식하여 받는 고통이 그분을 잃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욕망은 끊고 사랑은 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오늘 이사야서가 얘기하는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단식’을 저는 이렇게 요약 정리해 봤습니다. 

악행을 끊고 선행을 하는 것,
욕망을 끊고 사랑을 하는 것. 

여기에 이번 사순절 저의 작은 결심, 단식과 관련한 저의 작은 결심을 얹어봤습니다. 

매 순간 욕망을 끊고,
매 순간 사랑을 선택하자.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신랑을 빼앗길 때에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예수님은 어디가시고 단식 논쟁만 남았습니다. 뉘우침과 치우침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계십니다. 마음을 잃어버린 단식은 볼썽사납습니다. 은총과 배신 사이에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단식만 있고 사랑이 없다면 잔치만 있고 기쁨이 없다면 또 다시 주님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사랑의 기쁨입니다. 예수님 위에 단식을 덧씌울 수는 없습니다. 단식과 잔치에 갇혀있길 바라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사순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기도도 단식도 예수님을 만나는 방법일 뿐입니다. 

마음이 죽으면 형식에 집착하는 우리들입니다. 막힘이 아니라 열림이 논쟁이 아니라 참된 우리 자신의 변화가 참된 단식입니다. 참된 단식은 마음의 단식처럼 요란하지 않습니다. 참된 단식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잔치와 단식 기쁨과 슬픔 사이에 목숨을 내거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남의 단식에 대해 왈가왈부(曰可曰否) 하지 않는 우리의 참된 단식이길 기도드립니다. 주님께로 가는 방향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있다면 우리들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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