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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1/18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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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온 세상이 당신 앞에 엎드려 당신을 노래하게 하소서. 지극히 높으신 분, 당신 이름을 노래하게 하소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니 저희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어 이 시대에 하느님의 평화를 주소서.

 

2023년 1월 18일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월 1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히브리서 7,1-3.15-17)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 오늘 복음
    (마르코 3,1-6)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1월 18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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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예수님은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백성 가운데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셨네.

 

 

복음
마르코 3,1-6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때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월 18일 (수)
김지수 루치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 0:22

📌 강론시작 : 6:54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1월 18일 (수)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집전

 

📌 미사시작 : 4:31

📌 강론시작 : 12:31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월 18일 (수)
장화기 바오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 0:24

📌 강론시작 : 10:19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계명을 따르는 과정

 

계명을 따르다 보면 정확하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하는 계명은 무엇을 해야 또 하지 말아야 거룩하게 지내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는, 열려 있는 가르침입니다. 

유다인들의 율법도 마찬가지다 보니 라삐들은 안식일에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여 무엇이 노동이고 아닌지를 구분합니다. 

물론 유다교에서 생명이 위독한 사람을 치유하는 것은 안식일에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위급하지 않은 지병인 경우는 다른 날에도 고칠 수 있기에 안식일에 할 수 없는 일에 속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고치신 이는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입니다. 복음이 정확하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분명히 이 사람은 오랫동안 병을 앓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안식일에 치유하시는 것은 규정에 어긋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이 질문에 어느 누구도, 바리사이들조차 대답하지 못합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고 목숨을 구하는 것은 할 수 있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규정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나무라십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문자 그대로를 따르는 것보다 넓은 의미입니다. 어쩌면 그 계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숙고하고 고민하는 것부터가 계명을 따르는 과정일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우리나라 엄마들의 뇌를 분석하는 흥미로운 실험

 

우리나라 엄마들의 뇌를 분석하는 흥미로운 실험이 방송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엄마들에게 특정 자극을 준 뒤에 뇌를 분석하는 연구였습니다. 
 
우선 “우리 아이가 90점을 맞았어요.”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엄마들의 뇌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잠시 뒤, “우리 아이는 70점을 맞고, 옆집 아이는 50점을 맞았어요.”라고 했을 때의 뇌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90점보다 낮은 점수가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즐거움과 보상을 담당하는 쾌락 중추가 활성화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실험 결과를 두고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바라보는 자기 개념을 가진 것이 아니라, 제삼자의 시선에 따라 기쁨과 즐거움이 결정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제삼자의 시선에 따라 기쁨과 즐거움이 결정된다는 사실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바라보지 못하고, 남과 비교하면서 남보다 더 나은 나만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행복을 찾는 사람은 계속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면서 감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는 비교하고 판단하고 단죄하면서 거부의 삶을 삽니다. 마음은 더더욱 완고하게 변하면서 어떤 말과 행동도 좋게 바라볼 수가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다가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보게 됩니다. 이 사람의 아픔을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보시지요. 손에 주어지는 고통은 둘째치고, 사람들의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고통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벌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사회였기에 더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죄인이라고 단정 지어버렸기 때문에, 그가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안식일 법을 어긴 예수님을 고발하면서 예수님을 제거하고자 하는 마음만 강했습니다. 
 
좋은 일을 하는 것보다 남을 해치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 목숨을 구하는 것보다 죽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어쩌면 우리의 모습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자신의 속 좁은 판단으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면서 주님의 자리를 없애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희망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일어나 옳은 일을 하려 할 때, 고집스러운 희망이 시작된다. 새벽은 올 것이다. 기다리고 보고 일하라. 포기하지 말라.

- 앤 라모트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터벅터벅 걷는 것보다 힘차게 걷는 것이 덜 힘들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지혜롭고 단순해지려면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오늘 이 말씀은 안식일 법을 어긴 주님께 시비 거는 사람들에게 안식일에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쾌하게 대답하신 말씀입니다만 이것은 비단 안식일에 무엇을 해야 하고 말아야 할지 말씀하시는 것뿐 아니라 언제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또한 주님을 사람들의 안식일 함정으로부터 빠져나오게 한 현명한 답일 뿐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리가 고민할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지혜롭게 판단하도록 주시는 답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언제나 해야 할 것은 사랑하는 것이고, 우리가 언제나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랑하지 않는 것, 곧 미워하지 않은 것이요 더 나아가 무관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면 인생이 복잡하지 않고, 그렇게 고민고민할 것도 없으며 잘못할 일도 없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지혜로워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나이를 먹을수록 단순해져야 한다는 말과 같고,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행복인지 그것을 늘 기준 삼으면 지혜로운 사람이고, 단순한 사람이 될 것임을 오늘 복음에서 배우는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손을 뻗어라.

 

손을 뻗어야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완고한 마음에 몹시 슬퍼하시고 우리의 오그라듦에 너무 아파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십니다. 누구도 손대지 않은 일을 주님께서 하십니다. 

움츠러들고 오그라든 손을 다시 성하게 하십니다. 손만 다시 성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그라들고 쪼그라든 우리의 마음까지 펴주십니다. 세상의 한가운데에서 살게하십니다. 더 이상 두려움 때문에 움츠려들지 않습니다. 더 이상 나의 십자가로 오그라들지 않습니다. 

손을 뻗어 말씀이 사람이 되신 주님을 만납니다. 오그라든 손 하나를 뻗었을 뿐이데 삶이 달라집니다. 놓아버릴 것을 이제 놓으니 이제 잡아야 할 주님의 손이 보입니다. 새로운 삶이 뜨겁습니다. 

구원은 오그라든 삶이 다시 기도하며 감사하는 삶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손을 뻗어 더 힘껏 주님의 손을 잡는 오늘입니다. 손을 뻗으니 손마디가 보입니다. 솟구쳐 오르는 뜨거움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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