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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1/14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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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높은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을 보았네. 천사들의 무리가 그분을 흠숭하며 함께 노래하네. 보라, 그분의 나라는 영원하리라.

주님, 주님 백성의 간절한 기도를 자애로이 들으시어 저희가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게 하소서.

 

2023년 1월 14일 (토)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월 1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주간 토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히브리서 4,12-16)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 오늘 복음
    (마르코 2,13-17)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1월 14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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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주님이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복음
마르코 2,13-17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그때에 

13 
예수님께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14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5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16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월 14일 (토)
김지수 루치오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1월 14일 (토)
김주신 멜키올 신부 집전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월 14일 (토)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유다인들은 율법을 지키며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계명과 율법을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문자로 기록해 주신 하느님의 뜻이라고 여겼고, 실제로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에 걸맞게 거룩함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생활이나 음식이나 모든 일에서 부정해지는 것을 피하려고 애썼습니다. 

 

특별히 복음서에 자주 언급되는 바리사이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이런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에 몰두하였던 이들입니다. 유다인들의 의도는 좋은 것이었지만 거기에서 부정적이거나 배타적인 여러 모습이 생겨났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부정한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는 것도 포함되는데 그 대표적인 이들이 죄인과 세리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십니다. 바리사이들은 의문을 가집니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이들의 생활 방식을 생각하면 이런 질문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바리사이들의 모습을 염두에 둔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죄인으로 여기는 이들을 부르러 왔다.’고 이해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바리사이들 또한 예수님의 구원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잘못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되어 스스로 의인과 죄인을 구분하는 그릇된 결과를 가져옵니다. 어느 누구도 하느님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는 존재

 

해외 성지순례를 가면, 종종 가이드가 이렇게 말합니다. 
 
“사진 찍을 시간을 충분히 드릴 테니, 제 설명 좀 들어주세요.” 
 
비싼 돈 내고 해외 성지순례 왔는데, 사진만 찍어서 가면 얼마나 아깝냐는 말도 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 
 
설명을 잘 들으면 분명히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억의 한계 때문에 3일만 지나도 좀처럼 기억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해외 성지순례 중에 보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잘 기억하지 못할 테니, 열심히 사진 찍으세요. 남는 건 사진뿐입니다.” 
 
설명도 중요하지만, 사진도 중요합니다. 특히 자신이 찍은 사진에는 마음에 각인될 수 있는 기억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는 존재라고 합니다. 추억이 없으면 지금을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력이 좋은 사람도 지나간 일 전부를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이때 그 기억을 도와주는 것이 ‘사진’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진으로 추억을 떠올리고, 지금을 더 잘 살게 해 줍니다.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역시 이 사진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과거에 그러했음을 떠올리면서 지금 희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도 그렇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무시하고 경멸했던 세리인 알패오의 아들 레위에게 “나를 따라라.”(마르 2,14)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집에 가셔서 그의 동료인 다른 세리들과 함께하며 먹고 마십니다. 이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 
 
이 장면을 여러분의 사진기로 찍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죄에 기울어져서 좌절하고 절망에 빠졌을 때, 이 사진을 바라본다면 어떨까요? “맞아. 주님께서는 나 같은 죄인도 사랑하시지.”라면서 힘을 다시 내지 않겠습니까? 성경 말씀은 새로운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예수님을 계속 떠올리게 하는 것입니다. 특히 주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예수님처럼 살게끔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내 마음의 사진기로 분명하게 찍어 놔야 합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 바로 잡아주는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변한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죄인이 되는 유일한 길은?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귀히 보시는 주님

 

"예수님께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유심히 보면 이상할 수도 있는 점이 오늘 주님의 행보에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호숫가로 나가셨는데 산책하러 가신 것은 아니겠지요? 군중이 몰려온 것을 보면 회당이 바리사이들의 주 무대인 것과 달리 호숫가는 주님이 즐겨 가르침을 주시던 장소인가 봅니다. 

회당이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던 공식적인 정통 모임 장소라면 호숫가는 우리의 서울역 광장처럼 사람들이 많이 오가던 곳인데, 주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서도 가르치셨지만 아무 때나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을 찾아가 가르치시던 비공식적이고 비정통의 모임 장소였을 겁니다. 

아무튼 호숫가에 계실 때 많은 사람이 주님께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 가운데서 제자를 부르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부르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왜 당신을 찾아온 사람들 중에서 그러니까 당신의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들 중에서 제자를 뽑지 않으시고 찾아오지 않은 사람 그러니까 별 관심이 없던 레위를 뽑으신 걸까요? 

그리고 레위는 당시 죄인으로 지탄을 받는 질이 좋지 않은 사람인데 주님께서는 왜 이 죄인을 당신 제자로 뽑으신 걸까요? 

이것을 저희 수도원 성소계발과 관련시키면 대단히 파격적인 거지요. 저희는 아무나 성소자로 받지 않기 위해 믿을만한 분의 추천을 받고 여러모로 검증한 뒤 여러 성소 위원들의 합의를 거쳐 받아들이는데 이것에 비하면 주님께서는 매우 즉흥적으로 당신 제자를 뽑으시고 아무나 당신 제자로 받아들이시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정말 아무나 받아들이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눈과 우리 기준으로 볼 때 아무나 받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주님과 우리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눈에 아무나인데 주님께는 아무나가 아닙니다. 레위가 우리 눈에는 아무나이고 죄인인데 주님 눈에는 귀한 집 자식이요 또 하느님의 자녀요 당신의 제자감입니다. 

사실 아무나를 아무나로 보지 않고 귀히 보시는 주님의 눈, 곧 사랑의 눈 때문에 저도 주님의 귀한 제자가 될 수 있었고 또 된 거지요. 

어쩌면 주님의 기준은 당신의 부르심을 귀히 여기고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 그것 하나일 것이고 그래서 오늘 레위를 제자로 받아들이시고 죄인들과 식사를 같이 하시는 주님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제자가 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는 그 유명하고 대단한 말씀을 하십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그러니까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다 찾아가시고 다 부르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런 주님께 큰 감사를 드리는 오늘이고 우리들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깨어나게 하는 부르심이 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가장 뜨거운 만남입니다. 그래서 부르심은 받아들임의 가장 강력한 사랑입니다. 찾을 수 없었던 소중함을 찾게 해주시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부르시며 찾던 분이 우리때문에 가장 기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죄인의 꿈과 잘못된 갈망을 바로잡아 주시며 우리의 마음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우리 죄인들과 같이 먹고 마시며 같이 사십니다. 이렇게 우리는 죄인과 의인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우리들에게 보여주십니다. 

죄인과 의인을 가르지 않으시며 죄인들 안에서 구원의 길을 시작하십니다. 심판하지 않으시는 사랑이 죄인들의 길 구원입니다. 길을 완성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를 잃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길의 시작은 사랑의 부르심이며 사랑의 만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 음식을 잡수십니다. 사람냄새 나는 사람의 구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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