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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1/09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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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세례를 받으시자 하늘이 열렸네. 성령이 비둘기처럼 그분 위에 머무르시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그리스도께 성령을 보내시어 하느님의 사랑하시는 아들로 선포하셨으니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난 저희도 언제나 하느님 마음에 드는 자녀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3년 1월 9일 (월) 주님 세례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월 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주님 세례 축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이사야서 42,1-4.6-7)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이다.

  • 오늘 복음
    (마태오복음 3,13-17)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1월 9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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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복음
마태오 3,13-17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그를 찾아가셨다. 

14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그분을 말렸다. 

15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16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7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월 9일 (월)
신기훈 그레고리오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1월 9일 (월)
조학문 바오로 신부 집전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월 9일 (월)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공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메시아로서 그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물로 베푼 세례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주실 세례와 비교됩니다. 세례는 회개를 의미합니다. 공관 복음서가 모두 이러한 의미의 세례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마태오 복음서도 특별히 의로움을 강조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이어 주는 주제는 의로움입니다. 


오늘 독서인 이사야서는 희망에 찬 표현들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공정을 세울 것이라는 내용이 반복됩니다.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대화는 상당히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예수님께 세례를 베푸는 것을 주저하는 세례자 요한과, 그것이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의로움은 마태오 복음서가 강조하는 특징적인 낱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르침을 듣는 군중에게도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뛰어넘도록 요구하시고(5,20 참조), 요한이 가르치던 의로운 길을 걷도록 요청하시며(21,32 참조), 하늘 나라 또한 의로움과 관련되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5,10 참조). 

 

의로움은 제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추구해야 할 지향점이면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통하여 모든 의로움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그분의 길은 이렇게 공적 활동의 시작에서부터 하느님의 의로움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도 여기에 화답하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마지막이 주는 힘

 

어느 연구소에서 실험 참가자들에게 다섯 종류의 초콜릿을 주고 얼마나 맛있는지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한 집단에는 “여기 다음 초콜릿이에요.”라고 말하며 초콜릿을 주었고, 실험 참가자들은 어떤 초콜릿이 마지막 초콜릿인지 모른 대 초콜릿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집단에는 먼저의 집단과 똑같이 말하면서 초콜릿을 주다가, 맨 마지막 초콜릿을 주면서 “여기 마지막 초콜릿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먹고 있는 초콜릿이 마지막 초콜릿인 것을 알게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어떤 초콜릿이 가장 맛있었는지를 평가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네 번째 초콜릿까지는 두 집단이 비슷하게 맛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다섯 번째 초콜릿에서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임을 알고 다섯 번째 초콜릿을 먹은 사람이 훨씬 더 맛있게 느낀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초콜릿을 알고 먹은 사람들은 이 실험을 더 재미있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이 주는 힘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마지막이다’라고 생각되면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재미있게 누려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이렇게 마지막은 우리 삶을 더 의식하게 만들고, 깨어있게 만듭니다. 그리고 특별한 날로 만들어줍니다. 
 
오늘을 삶의 마지막이라 생각하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똑같은 삶이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이 아닌, 마지막으로 보내는 지금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특별한 삶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모범을 예수님께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대충 사는 삶이 아닌 최선을 다하는 삶이었습니다. 자신의 편함과 안식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 구원을 위해 고통과 시련도 피하지 않는 사랑의 삶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세례 축일을 맞이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말처럼, 요한이 주님이신 예수님께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반대로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인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당시의 세례는 회개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신 예수님은 회개할 필요가 없지요. 그렇다면 왜 세례를 받으신 것일까요? 우리 모두 구원의 길로 가기 위한 모범을 당신이 먼저 보여주신 것입니다. 주님도 세례를 받는데, 피조물인 인간이 세례를 피해야 할까요? 
 
단 한 명도 제외하지 않으려는 예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라는 소리가 들린 것입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보며, 우리는 지금을 어떻게 사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더 많이 사랑하고, 더 함께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 성 예로니모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주님의 물귀신 작전

 

오늘 주님께서는 세례를 주고 있는 세례자 요한에게 오셔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시는 주님을 세례자 요한이 알아보고 그럴 수는 없다고, 자기가 오히려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세례를 줄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당연하고 저라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제가 본당에서 새 영세자에게 세례를 주고 있는데 느닷없이 주님께서 나타나 그 줄에 같이 서 계신다면 저는 기절초풍할 것이고 왜 이러시나 하고 그 뜻을 몰라 당황할 것입니다. 

이런 세례자 요한에게 주님께서는 당신이 세례받으시는 이유랄까 뜻을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심오한 뜻이 있겠으나,오늘 저에게는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 우리 같이 힘을 합치자는 말씀 같고, 그래서 이 말씀은 세례자 요한에게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 뜻대로 사는 의로움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두가 그 대열에 참여해야 하는데 세례자 요한도 우리도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세례자 요한에게 “우리”라고 하시며 당신 구원사업의 파트너로 초대하시는데, 이는 대단한 신분 격상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초대하시는데 이 또한 우리를 세례자 요한처럼 여기시는 대단한 신분 격상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능력으로만 구원하신다면 말씀 한마디로 구원하실 수 있으십니다. 

하느님은 말씀 한마디로 모든 것을 생겨나게 하셨고, 백인대장의 종을 말씀 한마디로 고쳐주실 정도로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셨고, 그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거룩한 뜻이기에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굳이 이 세상에 들어오시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시고 그리고 굳이 요르단강 물에도 들어가시어 우리와 똑같이 세례를 받으시는 겁니다. 

이는 마치 물귀신 작전 같기도 합니다. 같이 죽자는 물귀신 작전인데 그러나 나쁜 뜻의 물귀신 작전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거룩한 죽음을 같이 죽자는 영적인 물귀신 작전입니다. 

사실 세례의 의미가 이것 아닙니까? 

죄에 대해서 죽고, 세상에 대해서 죽고, 하느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죽으려고 들지 않으니 당신이 먼저 죽으시며 같이 죽자고 하시는데,오늘 주님의 세례는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이 거룩한 물귀신 작전에 같이 참여하겠습니까? 

제가 올해 들어 새로 강의를 준비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프란치스칸 영성 센터에서 <프란치스코의 권고>를  한 학기 강의하게 되었고 또 수녀원 연 피정 강의도 맡게 되어 그 강의을 준비해야 합니다. 

전에 같으면 매일 강론 올리며 특강 준비도 병행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솔직히 그럴 능력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득이 새 강론을 올리지 못하게 되었는데 그 대신 전의 강론을 올리는 것이 그나마 안 올리는 것보다 낫겠다 싶어 지난 강론을 올리기로 하였습니다. 양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세례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랑으로 씻어주고 씻어내는 실천입니다. 상대의 허물을 씻어 준 적이 없는 사람은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비우지 않고서는 채울 수 없듯이 세례의 방향은 하느님께로 가는 비움의 길입니다. 관계로 태어나고 관계로 살아가는 우리들 삶이기에 더더욱 관계의 세례가 중요합니다.

 

신앙의 역사 안에 세례성사가 있습니다. 모든 신앙은 세례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신 자리에는 세례가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세례가 있습니다. 씻어야 할 것이 있기에 사람입니다. 사람다운 세상은 서로를 용서하고 서로를 씻어주는 세례의 세상입니다. 우리가 나누어야 할 것이 세례임을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관계에서 만나게 됩니다.

 

세례는 소중함을 되찾는 하느님께서 주신 구원의 시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으로 올려다 놓는 세례를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오신 예수님께서 받으십니다. 사람의 길은 세례의 길이며 세례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참된 사랑으로 만나는 것이 세례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내려오시는 세례성사의 은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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