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시고,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삼으셨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외아드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새로운 빛을 비추시고 동정녀 몸에서 저희와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셨으니 저희도 그 은총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소서.
2023년 1월 7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월 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요한1서 .5,14-21)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 - 오늘 복음
(요한복음 2,1-11)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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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나셨네.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
복음
요한복음 2,1-11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셨다.
그때에
1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2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3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4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5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6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7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9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10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11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월 7일 토요일
이현진 바오로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1월 7일 토요일
김주신 멜키올 신부 집전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월 7일 토요일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요한 복음서는 사용하는 표현이나 신학에서 공관 복음서와 차이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낱말을 뽑자면 ‘표징’입니다. 다른 복음서는 ‘기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요한 복음서는 초자연적인 사건을 지시할 때 표징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기적이 사건을 일으키는 예수님의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면 표징은 사건을 통하여 드러나는 예수님의 신원을, 곧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이 사건이 표징이라는 점을 명시적으로 언급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라고 말합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사건은 첫 번째 표징이면서 예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요한 복음서는 모두 일곱 가지 표징을 전합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2장), 왕실 관리의 아들을 살리신 것(4장), 벳자타 못 가에서 병자를 고치신 것(5장), 오천 명을 먹이신 것(6장), 물 위를 걸으신 것(6장),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고치신 것(9장), 그리고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것(11장)입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표징의 마지막은 이처럼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밝혀 줍니다. 표징은 믿음을 위한 것입니다. 놀라운 사건이라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사건을 일으키는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알게 되고 그분을 믿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표징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뜻합니다. 정결례로 표현되는 구약의 율법을 넘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요구되는 시간입니다. 제자들이 완전하지는 못하였지만 믿음으로 모범을 보여 줍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긍정적인 생각만 있고, 부정적인 생각이 없으면 과연 행복할까요?
고통은 없고 기쁨만 존재하는 것이 과연 이상적인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인간의 DNA 안에는 부정적 감정이 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사시대에 가장 약한 존재인 인간이 멸종되지 않고 오히려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다고 하지요. 왜냐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어서 자그마한 소리에도 얼른 피하고, 멀리 사나운 짐승이 보이면 얼른 도망칠 수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나와 친구가 될 거야.”라는 생각으로 사나운 맹수에게 다가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도 실수를 줄이고 자신의 안정을 위한 부정적 생각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100% 부정적 생각만 있으면 당연히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의 연구 조사 결과 긍정적인 정서와 부정적인 정서의 비율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즉, 3:1. 정확히 말하면 긍정적인 정서 2.9: 부정적인 정서 1의 비율이었습니다. 이런 비율을 갖춘 사람이 직업 성취도, 대인관계 원만도, 상사의 긍정 평가도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부정적인 정서가 많아지면 신체에서부터 불면증, 두통 등이 나타납니다. 긍정적인 정서를 높여야 할 때인 것입니다. 부정적인 정서가 하나 생기면, 얼른 3개의 긍정적인 정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마련해주신 이 세상을 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를 묵상하면, 성모님께서 너무 막무가내가 아닌가 싶습니다. “포도주가 없구나.”(요한 2,3)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의 관여를 은근하게 청합니다. 그러나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라면서 거절하시지요. 하지만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 단순히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긍정적인 정서를 가지고 예수님께 청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부정적인 정서가 아닌, 긍정적인 정서가 예수님의 첫 기적을 가져오게 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3:1이라는 긍정적인 정서와 부정적인 정서의 비율이 아니라, 오히려 계속해서 부정적인 정서만 보였던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안 되는 이유만을 찾게 되면 주님의 섭리에서 점점 멀어집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행복의 길에 들어설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요한 사도가 말씀하신 이 믿음을 우리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1요한 5,14).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당신에게 평화를 주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청원기도의 금기와 정도
내일이면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공현 대축일을 앞두고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첫 기적을 일으키는 내용입니다. 왜 이 복음을 우리 교회는 공현 대축일 바로 전날 듣는 것일까요?
그것은 주님 공현이 세 가지를 기념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1. 그것은 주님 세례,
2. 동방박사들에게 나타내 보이심,
3. 그리고 카나 촌의 첫 기적이지요.
공현 대축일인 내일은 동방박사들에게 당신을 나타내 보이심을 볼 것이고, 그다음 주는 주님께서 세례받으심을 기념하는 세례 축일을 지낼 것이며, 전날인 오늘은 카나 촌의 첫 기적을 기념하는 것이 공현 전례의 짜임새입니다.
여기서 아버지 하느님께 순종하여 이 세상에 오신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는 어머니 마리아께 순종하여 기적을 일으키시는데 하느님의 말씀이신 분께서 마리아로 대표되는 인간의 말에 순종하여,인간의 요청을 받아들이시는 것이고 달리 말하면,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주님께서 이제 인간의 뜻에 순종하시는 겁니다.
이런 주님을 보면서 주님과 우리 사이에 누가 더 많이 순종하는지 생각게 됩니다.,이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누가 더 많이 순종하는지와 비슷할 겁니다.
얼핏 생각하면 자식이 부모에게 더 많이 순종하는 것 같지만,실제로는 부모가 더 많이 자식에게 순종합니다.
세상에서는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 힘없는 사람이 순종하지만 사랑의 세계에서는 사랑이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이 순종하고, 자식이 부모의 뜻을 더 받들기보다 사랑이 더 많은 부모가 자식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어차피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사랑은 많은 사람에게서 적은 사람에게 가며, 청원도 사랑이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의 청원을 들어주고, 순종도 사랑이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에게 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우리만 하느님께 순종한다고 볼멘소리하지 말 것이며, 그러나 어차피 청원할지라도 금기와 정도만은 지킬 것입니다.
금기와 정도?
예, 청원 기도를 바칠 때 기도를 가르쳐주신 주님의 말씀대로 나의 뜻을 들어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그리고 우리 안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요한이 서간에서 얘기하는 청원 기도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대해서 무슨 하나 마나 한 얘기냐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도 내 뜻에 맞는 것을 청하면 들어주니 말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럴지라도 우리는 이 당연한 이치를 자주 까먹고 하느님께 억지를 부리며 청원하는데, 이것은 마치 철부지 어린애가 엄마의 마음 약한 사랑을 악용하여 청하지 말아야 할 것 그러나 원하는 것을 달라고 떼를 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청원 기도의 정신이랄까 금기랄까 정도를 우리는 지켜야겠습니다.
1. 그것은 떼쓰지 않기,
2. 하느님 사랑을 악용하지 않기,
3. 하느님 사랑을 믿고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기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음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예수님을 만난 이후의 삶이란 밋밋한 물이 맛좋은 포도주로 변한 것같은 변화의 삶입니다. 맹신과 배신이 아니라 참된 사랑의 사람이 되는 사랑입니다. 하느님 사랑 안에서 늦은 시간이란 없습니다.
매순간이 가장 좋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랑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집중하지 않고서는 바뀔 수 없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음을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배웁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포도주가 있습니다. 목숨을 거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믿음과 표징은 사랑에 목숨을 거는 십자가입니다. 포도주와 십자가는 정녕 살아 있음이 무엇인지를 맛보게 합니다.
가장 좋은 포도주 가장 좋은 십자가입니다. 무엇이든지 필요하기에 일어난 성장과 변화의 선물입니다. 먼저 예수님께 우리 마음을 내놓는 은총의 날 되십시오.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어머니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실 수 있도록 맡겨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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