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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2022년 10월 19일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에페 3,2-12)
지금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약속의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2,39-48)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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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성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정성껏 섬기게 하소서.
복음
루카 12장 39-48절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41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42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43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5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46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48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상선 바오로 신부 강론
2022년 10월 19일 (수)
오상선 바오로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이길재 베드로 신부 강론
2022년 10월 19일 (수)
이길재 베드로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이유
늘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과 연결되는 오늘 비유 말씀은 특히 교회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충실한 집사와 불충실한 집사의 이미지가 뚜렷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관리할 집사를 하나 뽑아서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줄 임무를 부여하고 떠납니다. 만일 그 집사가 주인이 없는 상황에서도 맡은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한다면, 나중에는 주인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는 더 큰 임무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집사가 불충실할 수도 있습니다. 주인이 늦게 오리라는 생각에 종들을 함부로 대하고, 또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해 있다가 예상하지 못한 날에 주인이 돌아오게 되면, 그는 엄한 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직자든 수도자든 아니면 평신도든, 교회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맡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충실한 집사와 같은 모습을 경계해야 합니다. ‘집주인’께서 맡기신 힘과 권한을 마치 제 것인 양 착각하거나, 또는 그렇게 여기고 싶은 유혹이 자주 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우러러볼 만한 어떤 특별한 은사나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자신을 들어 높이기 위한 도구로 여기기보다,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 곧 공동체에 봉사하기 위한 도구로 여겨야 합니다.
힘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 많은 책임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 힘이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권한을 행사하는 이가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이유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곱절로 되돌려 드려야 한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봉사하는 겸손한 이들이야말로 교회의 참된 지도자들임을 명심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의지와 노예근성
오늘 주님께서는 집주인과 도둑의 관계를 비유로 들며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자 베드로 사도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하고 여쭙니다.
이 대화를 보면서 저는 자기들에게 말씀하시는데 왜 다른 사람을 들먹이는지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주님이 오실 것을 대비해야 하는 것에서 자기는 빠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것을 이어지는 주님의 비유와 연결하여 보면 제자들은 주님의 집사들인데, 그리고 집사들은 주님이 오실 때를 대비해 맡겨진 역할이랄까 책임을 충실히 하며 기다려야 하는데 그 책임과 역할을 맡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집사의 책임을 맡기시려고 하고, 제자들은 충실함이 요구되는 그 책임을 맡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제자들이 집사는 되지 않고 종으로만 있으려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도 집사는 되지 않고 종으로만 있으려는 것이 아닐까요?
요즘 우리 교회에 갈수록 집사들이 없습니다. 갈수록 일과 책임을 맡으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는 자기 일을 하지 주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느 종들처럼 집사들이 나눠주는 것을 받아먹기는 해도 나눠주는 역할과 책임은 하지 않으려는 것이고, 그래서 맡은 사람이 또 책임을 과중하게 맡는 일이 생깁니다.
어제 루카 축일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며 크게 걱정하시는데 주님으로부터 이런 걱정을 듣는 우리가 아닐지 돌아보는, 또 우리말에 노예 근성이라는 말이 있는데 집사 의지는 없고 노예 근성만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참 행복의 비밀 :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
허진호감독의 2007년도 영화 "행복"의 줄거리입니다. 서울에서 클럽을 운영하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겨온 영수(황정민). 운영하던 가게는 망하고 애인 수연(공효진)과도 헤어지고, 설상가상으로 심각한 간경변까지 앓게 됩니다. 영수는 도망치듯 시골 요양원 ‘희망의 집’으로 내려갑니다.
여기에서 8년째 요양원 ‘희망의 집’에서 살며 스텝으로 일하고 있는 은희(임수정)를 만납니다. 숨이 차면 죽을 수도 있는 중증 폐 질환 환자지만 은희는 밝고 낙천적입니다. 자신의 병에 개의치 않고 연애에도 적극적인 은희는, 첫날부터 자꾸만 신경 쓰이던 영수에게 먼저 다가갑니다. 죽음을 몹시도 두려워하는 영수는 아픈 것도 무서운 것도 없어 보이는 은희에게 의지하게 되고, 손을 잡고, 밤을 함께 보내면서 보통의 커플들처럼 그렇게 행복한 연애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요양원을 나와 함께 살기로 합니다.
1년 뒤 은희의 도움으로 건강을 되찾은 영수는 마냥 행복한 은희와는 달리 둘만의 생활이 점점 지루해집니다. 궁상맞은 시골 생활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병약한 은희 옆에 있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이때 영수 앞에 때마침 서울에서 수연이 찾아오고 서울 생활로 돌아오라고 합니다. 영수는 은희를 떠나 서울로 갑니다. 은희는 힘들지만 영수를 놓아줍니다.
영수는 서울에서 수연과 행복할 것 같았지만, 역시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또 술과 담배를 합니다. 그리고 다시 간이 안 좋아져 입원합니다. 그리고 은희가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병원을 찾은 영수는 은희의 죽음을 봅니다. 은희는 영수를 보고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렇게 영수는 진짜 행복은 은희와 있을 때였음을 깨닫고 한없는 눈물을 흘립니다.
왜 은희는 영수에게 수연보다 더 큰 행복을 줄 수 있었을까요? 죽음이 목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사랑에서 옵니다. 그런데 제대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내어줌입니다. 죽음이 없으면 갖는 사랑을 하고 죽음이 있으면 주는 사랑을 합니다. 죽음을 전제하면 모아들이는 삶이 아닌 내어주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것입니다. 모아들이는 늪이 되느냐, 내어놓는 옹달샘이 되느냐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사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달렸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항상 죽음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양식을 충실히 내어줄 수 있는 집사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이 죽음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찾아오실 수 있습니다. 곧 오늘 우리가 죽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죽음을 옆에 둔 사람만이 양식을 종들에게 내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을 옆에 두지 않는 사람은 먹고 마시고 종들을 때립니다. 그런 사람은 사랑받지 못하기에 행복하지도 못하고 나중엔 구원받지도 못합니다.
죽음이나 멸망에 관한 것은 두려움을 자아내기 때문에 우리가 좋아하는 주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무일도 끝기도에서 매번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만이 다음 날에도 이웃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옹달샘과 같은 삶을 살게 합니다.
사랑을 많이 받아야 행복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우리가 태어날 때 우리만 울었고 다른 모든 사람은 웃었듯이, 우리가 죽을 때 우리는 웃고 다른 모든 사람이 울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죽을 때 웃으려고, 곧 오늘 밤에 잠자면서 웃으려고 하는 삶이 종말을 사는 삶입니다.
죽음을 옆에 두지 않으면 참으로 내어줄 수 없고 그러면 사랑받을 수 없어서 행복할 수 없고 구원도 받지 못함을 잊지 맙시다. 항상 오늘이 마지막이라 여기고 살아갑시다. 그래야 행복하고 영원한 생명도 누리게 됩니다. 이렇게 하도록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죽어도 부활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내 삶이 내 메시지다.
인도의 민족운동 지도자이자, 현재 인도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에 대한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마어마한 인파를 뚫고 간디에게 다가가, “제가 집으로 가져갈 수 있게 심오한 생각이 담긴 메시지 좀 써주실 수 있으신가요?”라고 쓰인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간디는 종이 위에 이렇게 썼습니다.
“내 삶이 내 메시지다.”(My life is my message.)
맞습니다. 내 삶이 나의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에 따라 세상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까? 그리고 보내고 싶은 메시지를 위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당신 삶 전체를 사랑으로 채우시며 하느님께서 직접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역시 세상에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길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모범을 기억하려고도 하지 않고, 그 모범을 따르는 삶이 진정한 행복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의 기준만을 내세워서 외면하고 있습니다. 과연 주님의 뜻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내 삶을 통해 세상에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을 통해,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가 되어야 한다는 비유를 말씀해주십니다. 주님이 와서 셈 받을 때를 대비해서 늘 깨어 있어야 하고 언제나 충실하고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라는 잘못된 판단에서 불충실이 시작됩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당장 주님을 만나게 된다면 죄로 기울어진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 더 잘 보이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우리 현실에서 주님을 직접 볼 수도 없고 또 그 목소리도 직접 들을 수 없다면서 주님의 뜻을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의 뜻을 실천해야 할 때가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먼 훗날, 시간이 남아돌 때 실천해야 할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은 주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명예만 생각하고 자기 직분을 남용하는 것, 잘못된 판단 아래 자기의 고집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 주님께서 가장 강조했던 사랑보다 자기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런 모습이 올바르고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이런 모습이 바로 불충실한 종이라고 주님께서는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그 불충실한 종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를 많이 맞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나의 메시지를 만들어야 할까요?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어른을 대하듯 정중하게, 아이를 보듯 사랑스럽게, 최선을 다해 나 자신에게 친절할 것.
- 안드레아스 크누프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모든 나무와 풀들이 단풍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돌보아주시는 주님을 만나는 행복한 시간입니다. 행복의 시작은 우리가 일하고 있는 이 자리에서 널려있는 행복을 우리가 만나는 기쁨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이 행복을 잃은 우리들에게 참된 행복을 보여주십니다. 행복은 우리 일상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주님을 향해 열려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나눌 줄 알고 참으로 깨어있는 관계가 오늘을 더욱 설레게 합니다. 사람은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란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를 많이 한다 해도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실천하는 행복이 참된 행복입니다.
행복은 실천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가장 큰 실천은 주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깨어있음으로 바르게 하는 일입니다. 주님을 소중히 여기는 사랑이 더 없는 행복의 중심입니다. 주님께 우리의 일을 통해 우리의 자리에서 행복의 노래를 불러드립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뻐하는 행복한 날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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