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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것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노라.
2022년 10월 17일 (월)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에페 2,1-10)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2,13-21)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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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거룩한 순교자들의 신앙 고백으로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를 영광스럽게 하시니 순교로 불멸의 월계관을 받은 복된 이냐시오를 본받아 저희도 굳센 믿음으로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하소서.
복음
루카 12장 13-21절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그때에
13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웅 바오로 신부 강론
2022년 10월 17일 (월)
신웅 바오로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김주신 멜키올 신부 강론
2022년 10월 17일 (월)
김주신 멜키올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세상에 ‘돈’보다 더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가 있을까요?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돈 문제만큼은 확실히 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사실 오늘 복음 말씀도 가족 간에 벌어진 재산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어지는 돈의 마력을 우리 모두 경험합니다. 그저 돈 많이 버는 직업을, 돈 많이 주는 직장을 최고로 칩니다. 손해 보지 않는 방법이나 큰 이익을 거두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으로 칭송받습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는 일이 생기면 분하고 억울해서 잠을 못 이루기도 합니다.
루카 복음은 다른 어떤 복음서보다도 부와 재산에 대한 탐욕을 강하게 경고합니다. 예를 들어 마태오 복음은 산상 설교에서 행복에 대한 선언들만 쭉 나열하고 있다면(5,3-12 참조), 루카 복음은 부자들을 향한 불행 선언들도 함께 소개합니다(6,24-26 참조).
우리가 잘 아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이야기도 루카 복음에만 나옵니다(16,19-31 참조). 그리고 오늘 복음 말씀도 그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이어지는 비유에 등장하는 부유한 사람은 자기가 거두어들인 많은 소출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그것을 어떻게 쌓아 놓을지에 대해서만 고민합니다. 그저 모아 둘 생각만 하는 그의 고민은, 기존의 곳간을 허물고 더 큰 곳간을 짓겠다는 결심으로 끝나 버립니다.
혹시 우리에게도 비슷한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가진 재산을 어떻게 하면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보다는, 일단 모으고 보자는 마음으로 재산을 축적하는 데만 급급하여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통장에 찍힌 잔고에 흐뭇해하기보다, 그것을 어떻게 의미 있는 일에 사용해서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될 것인지를 더 고민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느님의 작품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자신과 에페소 신자들이 하느님의 작품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이 말에 시비를 건다면 하느님께서 창조하지 않으신 존재가 어디 있고, 그러므로 하느님의 작품이 아닌 존재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모든 존재가 다 하느님의 작품이지만, 다만 걸작인지 졸작인지 그것만 있을 것이고, 그리고 하느님 작품이 졸작일 리 없으니 졸작이 있다면 그것은 원래 걸작이 졸작이 된 것, 곧 우리의 죄로 망가진 작품일 것입니다.
그리고 앞선 바오로 사도의 말에 의하면 죄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총의 거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앞에서 육의 욕망에 이끌려 죄를 지었지만 하느님의 자비로 구원받았다는 뜻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걸작이란 하느님의 은총을 거부하지 않은 존재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존재이고, 졸작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은총을 거부함으로써 구원받지 못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거부하지 않고 받아야 합니다. 사랑을 줘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야 받는 것이고, 선물을 줘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야 받는 것이며, 구원을 줘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야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또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세상에 사랑이 어디 있고 공짜가 어디 있냐고 믿지 못하고 하느님의 선물인 은총을 거부하면 구원은 받지 못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믿으면 은총과 구원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사랑을 믿어 은총으로 구원받은 걸작들은 구원받은 사람답게 이제 하느님의 선업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거부한 졸작들은 선행을 할 사랑이 하나도 없어 아무런 선행을 할 수 없지만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아들인 걸작들은 충만해진 사랑으로 하느님의 선업을 이어가고 무상으로 선행을 거저 행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부자는 죄인일까요?
연애 6개월 차인 여대생에게 남자 친구 사진과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 사진을 보게 한 후 뇌의 활동성을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두 경우 모두 뇌의 다양한 영역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이는 주의를 집중하고 높은 관심을 보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번에는 결혼한 지 15년이 된 부인에게 남편의 사진을 보여준 후 뇌의 활성화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앞의 연구와는 달리 뇌의 활성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뇌의 반응은 우리가 의자나 책상과 같은 사물을 인식할 때와 유사했습니다.
익숙해지다 보니 아무런 감응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생겼을 때, 다시 뇌의 영역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즉, 인간이 인간답게 살 때는 익숙하다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때였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서로 인간답게 살 수 없게 됩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과연 어떨까요? 혹시 너무 익숙해져서 의자나 책상 같은 사물을 인식할 때의 뇌의 반응이 계속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반응에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 대한 사랑의 마음이 크게 일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철저하게 실천하면서 우리는 주님께 대한 사랑을 키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달라는 어떤 사람의 말에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해주십니다. 우선 부자는 죄인일까요? 아닙니다. 복음서에서 경고하는 부자는 탐욕스러운 부자, 돈에만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인생관의 소유자를 말합니다. 부자 자체를 죄인이라고 했던 적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돈이나 재물에 집착하지 않고 그보다 더 귀중한 높은 가치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정당하게 모은 재산이라도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데도 자기 재산에 모든 것을 맡긴다면 너무나도 어리석은 모습이라고 하시지요. 여기에 하느님께서 주신 재물을 낭비하는 모습이 드러납니다. 보통 기존의 곳간이 부족하면, 그 옆에 부족한 만큼 더 지으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존의 곳간을 헐고 크게 새로 지을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새로운 곳간이 아니라, 남는 곡식과 재물을 이웃에게 나눌 생각을 먼저 해야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랑의 실천을 통해 우리는 매 순간 특별한 감응을 얻게 됩니다. 삶 안에서 진정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우리에게 가장 나쁜 적은 우리 마음 안에 숨어 있다.
-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삶의 참모습을 만나는 기쁨의 시간입니다. 언젠가는 우리모두도 떠나야 할 사람들입니다. 가야할 길을 아는 것이 삶의 가장 큰 지혜입니다.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음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그러기에 아름답게 떠나는 법을 배우는 우리의 삶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삶에 대한 태도나 생각들이 바뀌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육신이 마음을 죽이는 삶에서 물질이 정신을 조종하는 삶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다시금 무엇을 내려놓으며 살고 있는 지를 반성합니다.
목숨의 주인이 우리가 아님을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목숨을 걸고 남들 위에 조금 더 올라서려는 이 서글픈 현실을 바라보시는 주님이십니다. 붙들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오늘이길 기도드립니다. 스스로 자기 착각에 갇혀 살지 않길 기도드립니다.
소유하는 재물이 우리의 인격을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재물과 지위 명예까지 다 내려놓고 떠나야 할 우리의 삶입니다. 보잘 것 없는 이 모든 것에 묶여있는 것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 생명의 하느님을 담을 수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이길 기도드립니다. 빈 손 빈 마음으로 떠나는 생명의 순례자들임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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