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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2022년 10월 15일 (토)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에페 1,15-23)
하느님께서는 만물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그분의 몸인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2,8-12)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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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느님, 성령을 통하여 복된 데레사를 뽑으시어 교회에 완덕의 새로운 길을 보여 주셨으니 저희가 언제나 그의 거룩한 가르침을 따라 참된 성덕의 열망으로 불타오르게 하소서.
복음
루카 12장 8-12절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9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10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11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12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웅 바오로 신부 강론
2022년 10월 15일 (토)
신웅 바오로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강론
2022년 10월 15일 (토)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누구를 더 두려워해야 하는가?
오늘 복음의 분위기를 보면, ‘사람들 앞에서’ 또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서’ 예수님을 당당하게 증언하거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해야 하는 상황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겪었던 박해 상황을 투영하는 단락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생사의 기로에서 순교가 아니면 배교를 선택해야 하였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이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또 다른 구절을 기억합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루카 9,26).
예수님께서는 현재의 생사 문제를 넘어서는 종말론적 시각을 지니도록 촉구하십니다. 제자들이 현세에서 예수님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세상 끝 날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대하실지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어제 복음은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와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대조하면서, 누구를 더 두려워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눈앞의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거나 그분을 부끄럽게 여기면, 종말에 있을 심판에 더 큰 공포와 두려움을 맞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를 모른다고 하시거나 부끄러워하시는 것만큼 두려운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박해 때문에 생사의 갈림길에 설 일도, 배교를 강요당하는 처지에 놓일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일상 가운데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드러내야 할 경우가 때때로 생깁니다. 혹시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를 부끄러워할 때가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한 상황에 놓일 때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지 스스로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부끄러워하면 그분께서도 우리를 부끄러워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알게 되기를
"그 기도는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또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는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신자들을 위해 어떤 기도를 어떻게 했는지 얘기하는 내용인데, 한마디로 줄이면 에페소 신자들이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하느님을 알게 되고, 신자들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알게 되고, 신자들이 받게 될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알게 되고, 하느님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렇게 비교하면 좋은 비교가 될 것입니다.
신자들이 국회의원이 되고, 신자들이 로또에 당첨되고, 신자들이 사법고시에 붙게 되는 것과 비교하는 것.
저는 저에게 이런 기도를 부탁하면 한 번도 그렇게 기도해드린 적이 없고, 제가 내용을 바꿔 주님이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라거나 주님이 보시기에 지금 그에게 가장 좋은 것과 필요한 것을 주시라고 빕니다.
다시 말해서 그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보시기에 그에게 좋은 것,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보시기에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 그것을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렇게는 기도합니다.
신자들이 건강하게 되고,
신자들이 취업하게 되고,
신자들이 합격하게 되고,
신자들이 자녀를 얻게 되기를.
사실 현세를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이런 기도는 해도 되고, 좋은 기도라고 할 수 있으며, 적어도 나쁜 기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기도가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 바오로 사도의 기도에서 배워야 할 것입니다.
진정, 우리의 기도는 나를 위한 것이건, 이웃을 위한 것이건,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그리고 그것이 현세 행복만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되고, 현세와 내세의 행복을 모두 아우르는 기도가 되어야 하는데, 오늘 바오로 사도의 기도가 바로 그 기도라고 할 수 있지요.
그렇습니다. 되는 것보다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니,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이 참 행복이고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느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느님께서 내 생명의 시작이요 마침이심을, 다시 말해서 나를 살게도 하시고 죽게도 하시는 분이심을, 나를 이 세상에 살게 하시고 저세상까지 이끄시는 분이심을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어떤 것보다 소중함을 깨우침 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깨진 유리창의 법칙
언젠가 아는 지인이 좋은 포도주를 선물해주셨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자그마치 30만 원이 넘는 고급 포도주였습니다. 그리고 신부들 모임에서 이 포도주를 내놓았습니다. 인터넷 검색 결과를 보여주면서 아주 좋은 포도주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 포도주의 맛을 본 신부들은 하나같이 훌륭한 맛이라고 칭찬하더군요.
만약 이 포도주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포도주잔이 아닌 종이컵에 따라 주었다면 어떠했을까요? 맛을 음미하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훌륭한 맛이라고 칭찬하는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비싸고 귀하게 여기면 그만큼 대접받습니다. 그러나 싸구려로 취급하면 다른 사람 역시 싸구려로 취급합니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귀한 물건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상술이라고 하지요.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생각납니다. 유리창이 깨진 차가 길가에 세워져 있으면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망가뜨리기가 쉽지만, 멀쩡한 차는 그대로 유지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사람 역시 그렇지 않을까요? 귀하게 대접해야 남들도 귀하게 생각합니다. 비하하고 함부로 대하면 다른 사람들 역시 그렇게 대할 것입니다. 주님 역시 그렇습니다. 주님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보고, 다른 이 역시 주님을 귀하게 여깁니다. 자신이 주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남들 역시 그 모습을 보고 주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성령을 거슬러 지은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준엄한 말씀을 하신 다음, 예수님께는 제자들이 장차 당하게 될 박해 속에서 이 유혹을 물리치고 진리의 말씀으로 항변하는 지혜와 용기를 성령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하십니다.
성령 모독죄는 예수님께서 전하는 하느님의 진리를 고의로 외면하는 죄를 말합니다. 진리는 권력과 폭력 앞에서 자칫 꺾이기 쉽습니다. 제자들은 곧 스승 예수님의 비참한 세속적 패배를 목격할 것이며, 그들 자신도 박해받으며 같은 운명에 처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전하신 하느님의 진리가 세상에 퍼지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허사입니다.
하느님의 진리를 고의로 외면하는 성령 모독죄가 바로 하느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삶입니다. 이 성령 모독죄는 다른 이에게도 전달됩니다. 하지만 성령의 이끄심에 충실하면 그 모습 역시 전달되어서 다른 이들도 성령의 이끄심에 충실하게 됩니다.
하느님을 귀하게 여기는 우리가 됩시다. 하느님 안에서 우리 역시 모두 귀하게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 아빌라의 대 데레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자신을 살피는 일이 수도생활의 시작입니다. 낡은 인식에 머물지 않는 것은 자기성찰과 하느님 은총으로 가능한 수도공동체의 힘입니다. 수도생활의 거울로 삼을 수 있는 분이 바로 오늘 우리가 기념하고 있는 예수의 성녀 데레사 수녀님입니다.
수녀님께서는 해야할 일을 묵묵히 실천하며 앞으로 나가셨습니다. 가장 요구되는 정신은 수도공동체의 정신입니다. 전도되고 왜곡된 잘못된 무질서를 바로잡으려 노력하셨습니다.
가장 좋으신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의 자세를 수녀님을 통해 다시 배웁니다. 우리의 눈을 하느님께로 다시 돌리는 것입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몸이 있고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바람직한 관계가 개혁과 혁신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은 일상생활에 대한 기쁨과 감사의 실천입니다. 영원하신 하느님을 향한 사랑에 조금도 망설임이 없는 사랑입니다.
가장 빛나고 극적인 선택은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는 회개입니다. 회개없는 순명이 없고 회개없는 개혁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수도생활이란 마음과 몸의 실천이 하느님께로 향하는 봉헌의 삶입니다. 복음삼덕인 청빈, 정결, 순명의 덕을 실천으로 옮기는 삶이 수도생활의 의미입니다.
수도생활의 모범이 되시는 예수의 성녀 데레사 수녀님을 통해 희망을 만납니다. 수도공동체의 변화와 발전 성장에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녀의 삶을 만나는 것은 수도생활의 제 자리를 찾는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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