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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10월 11일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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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이스라엘의 하느님, 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옵니다.

 

2022년 10월 11일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갈라 5장 1-6절)
    할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1장 37-41절)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10월 11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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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기도

 

주님, 주님의 넘치는 은총으로 언제나 저희와 함께하시어 저희가 끊임없이 좋은 일을 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복음
루카 11장 37-41절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그때에 

37 
예수님께서 다 말씀하시자, 어떤 바리사이가 자기 집에서 식사하자고 그분을 초대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시어 자리에 앉으셨다. 

38 
그런데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39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41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김준수 베드로 신부 강론

 

 

2022년 10월 11일 (화)
김준수 베드로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김영우 스테파노 신부 강론

 

 

2022년 10월 11일 (화)
김영우 스테파노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어떤 접시를 고를까요?

 

뷔페에 가서 접시를 집으려고 하는데, 여러분 앞에 단 두 개의 접시만 놓여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하나는 접시 안쪽은 깨끗한데 바깥쪽이 더럽고, 다른 하나는 바깥쪽은 깨끗한데 안쪽이 더럽습니다. 여러분은 둘 중에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음식을 담아야 하니 안쪽이 깨끗한 접시를 고르지 않겠습니까? 

사람도 겉보다 속이 깨끗한 사람이 진국입니다. 이를 잘 알면서도 우리는 내면을 가꾸기보다 남들 눈에 쉽게 띄는 겉모습에 더 신경을 쓰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겉과 속이 대비되는 바리사이들을 비판하십니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겉으로는 고상하고 청렴한 척해도, 속으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을 축적하며 끝없이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루카 복음에는, 같은 내용을 전하는 마태오 복음과 비교하였을 때 눈에 띄게 다른 구절이 있습니다. 마태오는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23,26)라는 예수님의 명령으로 내면의 정결함을 직접 주문합니다. 

반면에 루카는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11,41)라는 명령으로 이를 대체합니다. 갑자기 자선을 베풀라니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예수님께서 탐욕이 가득한 인간의 속내를 비판하셨다면, 이 비판은 그런 탐욕으로 축적해 놓은 재산을 그냥 움켜쥐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쌓아 올린 부로 자선을 베푸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정화하는 탁월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재산을 지나치게 탐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움켜쥐고만 있으면 잔 속의 얼룩은 더 심해지고 뿌옇게 됩니다. 가진 것을 좀 더 의미 있게 사용하여 뿌옇게 얼룩진 잔 속을 깨끗이 닦아 내도록 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주님의 도전

 

오늘 주님께서는 정결례 법을 거스름으로 자기를 집에 초대한 바리사이의 심기를 거스릅니다. 

우리 생각에, 초대를 받은 손님은 가능하면 집주인이 원하는 것을 거스르지 않고 따르는 것이 예의인데, 오늘 주님께서 그것을 따르지 않은 것은 예의가 없고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누굴 집에 초대한 것은 사랑을 보인 것인데 그 사랑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제게는 그런 주님의 행위가 의도적인 도전처럼 보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가 싫어할 줄 뻔히 아시면서 그렇게 하신 겁니다. 당연히 그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깨뜨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고정관념 또는 관습의 타파입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 그래서 행동하시는 데 거침이 없으신 분으로서의 행동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이 매이지 않음과 거침없으심을 기존 질서를 거부한 히피들의 저항 정도로 폄훼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행동은 그저 개인의 저항이 아니라 제가 볼 때 위대한 사랑 혁명 또는 사랑 운동입니다. 

본질을 생각하고, 본질로 돌아가자!

뭐 이런 위대한 혁명입니다. 

무엇을 하든 본질은 사랑이고, 사랑이라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지 낡은 관습과 고정관념에 매여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주님의 사랑 혁명을 정결례의 낡은 관념과 관습으로 가두려고 하면 그 정결례라는 관습과 관념의 부대는 터질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부대 안에는 사랑을 담아야 하고 사랑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 이렇게 일갈하십니다.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사실 우리 속에 사랑이 담겨있으면 사랑을 실천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결례 관습에 얽매여 시간과 정력을 허비하지 않고 사랑 실천에 매진할 것입니다. 

우리의 속에 사랑이 담겨있고 그래서 사랑으로 가득하면 우리의 손은 더러워도 사랑을 실천할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느라 손이 깨끗할 겨를이 없을 겁니다. 

사랑으로 아이의 코를 닦아주느라, 사랑으로 걸레를 빨고 걸레질하느라, 손은 더러워지지만, 오늘 말씀대로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입니다. 

겉은 깨끗하지만,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청소하려고 우리의 손은 더러워질 수밖에 없지만, 속은 사랑으로 깨끗하고 따듯한 우리가 되라고 주님께서는 오늘도 도전하십니다. 

그 도전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사랑 혁명에 동참하시겠습니까? 

새 술을 담는 새 부대가 되시겠습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정신이 깨끗해지면 육체도 깨끗해질까?

 

조우성 변호사의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에 실린 사례입니다. 각종 부품을 제조하고 가공하는 세일정밀의 정태섭 사장의 이야기입니다. 세일정밀은 최근 몇 달간 극심한 자금난으로 곤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정 사장은 고민 끝에 자식 같은 사업 부문 하나를 넘겨서라도 운영자금을 마련해 세일정밀을 살려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여러 차례 협상한 끝에 5억 원에 자동차 부품 제조 부문을 넘기기로 하는 사업양수도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정 사장은 이 일로 인해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고소인은 세일정밀의 주주인 배중렬 씨였습니다. 

배 씨의 논리는 이랬습니다. 자동차 부품 제조 부문은 세일정밀의 중요한 사업 부문 중 하나이므로 이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면 상법상 주주총회의 특별결의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 사장은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업 부문을 넘겨버렸으므로 상법을 위반한 것입니다. 그리고 대표이사가 주주들의 동의도 받지 않고 알토란 같은 사업 부문을 팔아버린 행위는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합니다. 

정 사장은 당황했습니다. 사업 부문을 넘길 때 계약서만 잘 쓰면 되는 줄 알았지, 주주총회를 열어야 하는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더욱이 매각대금 5억 원은 전액 회사 운영에 사용되었습니다. 자신이 비록 상법상의 절차를 어겼다고는 하지만 회사에 손해를 입히기는커녕 오히려 위기에 처한 회사를 구했는데 업무상 배임이라니! 정 사장은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늘 결국 재판받게 되었습니다. 

고소인 배 씨는 정 사장과 사회에서 알게 되어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로 세일정밀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5년 전에 2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세일정밀이 기대만큼 빨리 성장하지 못하자 마음이 바뀌어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정 사장에게 요구했던 것입니다. 법적으로는 정 사장이 배 씨에게 투자금을 반환할 의무가 없습니다. 투자에 따른 손실은 어디까지나 투자자 자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하지만 정 사장은 도의적으로 미안한 마음에 빚을 내서라도 배 씨에게 투자금을 돌려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의찮았습니다. 

배 씨는 사업양수도 대금 5억 원 중 일부를 자신의 투자금을 돌려주는 데 쓰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정 사장이 양수도 금액 전액을 회사를 살리는 데 사용하자 앙심을 품고 절차상 하자를 문제 삼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처럼 고소인의 의도는 불순했습니다. 

형사재판 제1차 공판 당일 조 변호사와 정 사장은 재판 시간인 11시보다 30분 앞서 법정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방청석에 앉아 먼저 진행되는 사건들을 지켜보았습니다. 한 사건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피고인은 23살 남자로, 유흥주점 아르바이트생인데 현재 구속 상태였습니다. 유흥주점에서 서빙하고 있었는데 손님들끼리 시비가 붙었습니다. 피고인은 싸움을 말리려다가 남자를 밀치게 되었는데 넘어진 손님이 이가 두 개 부러지고 찰과상을 입어 전치 6주 진단받았습니다. 

유흥주점 사장은 나 몰라라 발뺌했고 피고인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합의하지 못하는 모양이었습니다. 피고인은 2년 전에도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벌금 전과를 받은 적이 있어 이번에 합의를 하지 않으면 실형이 나올 상황이었습니다. 

판사가 피고인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쳐다보다가 국선변호사에게 물었습니다. “이 사건 합의 안 됩니까? 피해자가 요구하는 합의금이 얼마입니까?” “천만 원입니다.” “이때 한 어머니가 다리를 절뚝이며 판사 앞으로 걸어 나와 “판사님 제가 저 아이 엄마 되는 사람입니다. 남편이 오래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혼자 아이를 키웠습니다. 모아 놓은 돈이 전혀 없습니다. 저 애를 풀어만 주시면 저와 같이 열심히 일해서 어떻게든 합의금을 마련해보겠습니다.” 아주머니는 눈물만 흘렸고 판사는 미련이 남는 듯 국선변호사를 쳐다보았지만, 어쩔 수 없이 검사는 징역 1년을 구형했고 선고일은 2주 후로 전해졌습니다. 

그때 정 사장은 변호사의 손을 붙잡고 “변호사님, 제가 돈을 준비할 테니 저 친구에게 도움이 되도록 힘을 좀 써주십시오.” 재판기록에 나와 있는 정 사장의 이력을 보니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같은 처지에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변호사는 정 사장에서 합의금을 받아 국선변호사에게 주었고 피해자와 합의하였습니다. 2주 후 아르바이트생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한 달 후 정 사장의 공판 기일이 돌아왔습니다. 주신문과 반대신문이 끝나고 나면 재판장인 판사의 간단한 보충 심문이 진행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재판장의 보충신문은 무려 한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재판장은 고소인이 자금을 돌려달라고 계속 요구하다 뜻대로 되지 않자 정 사장을 업무상 배임죄로 고소하고 수사기관에 여러 차례 진정서를 제출해 정 사장을 곤경에 빠뜨린 부분을 집요하게 추궁했습니다. 재판 분위기가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했습니다. 정 사장은 무죄로 선고받았습니다. 

며칠 뒤 변호사는 아르바이트생을 변호했던 국선변호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조 변호사님, 변호하신 사건 무죄판결을 받으셨던데 축하드립니다. 정 사장님이 제 의뢰인 합의금을 대신 내준 일을 판사님께 말씀드렸었는데….”

그러고 보니 조 변호사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재판과정에서 판사가 정 사장을 바라보는 눈빛이 일반 피고인을 보는 것과는 약간 달라 보였습니다. 결국 정 사장의 선행이 돌고 돌아 정 사장 본인을 살린 셈입니다. 정 사장의 광폭 오지랖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본인이 도와준 아르바이트생을 자신의 운전기사로 채용했고 그의 어머니를 단골식당의 보조직원으로 채용되도록 알선해 주었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은 지금도 정 사장을 은인으로 생각하고 각별하게 모신다고 합니다. 
조우성 변호사는 말합니다. 

“주역 공부를 오래 하신 어느 분의 말씀입니다. 타고난 운명을 바꾸는 확실한 방법의 하나는 주위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밥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밥을 주고 외로운 사람에게는 말을 걸어주는 것이죠. 동양에서는 선을 쌓는다고 하고 적선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이런 행위를 통해 좋은 기운이 나의 막힌 운명을 풀어준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분 말씀을 무조건 믿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못할 뿐 세상 만물은 서로 얽혀서 돌아간다는 사실을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실감하고 있습니다. 복을 짓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 복을 자신이 받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언젠가 그 악이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통장에 몇 푼을 더 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의 마일리지를 쌓는 것입니다. 때론 마법처럼 그 선의 기운이 인생을 바꿀지로 모를 일입니다.”

몸이 깨끗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몸을 깨끗이 닦기만 하면 될까요? 그래봐야 속이 더럽혀지고 썩는다면 피부가 안 좋아져 결국 아무리 닦아도 더러운 몸이 됩니다. 반면 숙변을 제거하고 피를 맑게 하려고 노폐물을 빼내면 어떻게 될까요? 피부가 좋아져 온몸이 깨끗해집니다. 

저는 몸에 비누칠을 안 하고 샴푸도 쓰지 않고 스킨로션도 거의 바르지 않지만 더럽다는 말을 듣지는 않습니다. 먼저 속을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해서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루카 11,41)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서 손을 씻지 않으시고 식사하시는 것을 보며 속으로 비판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알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몸이 아닌 영혼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영혼의 노폐물은 ‘탐욕’입니다. 돈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모든 죄가 나온다고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탐욕이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탐욕을 빼내면 외적으로도 죄 없는 사람으로 판단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몸만 깨끗하게 닦는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숨바꼭질’(2013)입니다. 어떤 아이가 한 부잣집에 입양되어 옵니다. 그런데 그 집에는 얼굴이 흉측한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이 아이는 이 집의 아들자리를 꿰차고 싶습니다. 

어느 날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흉측한 모습의 형이 성추행 혐의자로 고발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입양된 아이는 형이 그랬다고 거짓 증언을 해 버립니다. 형은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양부모는 입양된 아이에게 전 재산을 물려줍니다.

드디어 고아였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 커다란 아파트의 주인이 됩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 얻은 그 큰 집에 사는 마음이 편할까요? 이 남자는 결벽증에 시달립니다. 자기 손을 하도 열심히 닦아서 피가 날 지경입니다. 그런데도 꿈에는 형이 나타나 자신을 괴롭힙니다. 이 약점을 알고 있는 한 사람이 마치 감옥에서 출소한 형이 그러는 것처럼 가장하여 그 집을 차지하려고 한다는 내용입니다.

마음의 때는 탐욕입니다. 형은 이미 죽어 없습니다. 그렇다면 더러워진 자신을 깨끗하게 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먼저 고해성사해야 합니다. 털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 안에 있는 탐욕을 없애기 위해 타인을 도와야 합니다. 그러면 강박 장애가 없어질 것입니다. 양심이 깨끗해졌다고 판결 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양심이 깨끗해졌다고 몸을 지나치게 씻을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분명 마음은 영적인 것이고 몸은 물질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인들은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께서 손을 씻는 문제에서 시작하여 탐욕과 사악을 먼저 없애라고 하신 것처럼, 영적으로 깨끗해진 사람이 육체도 깨끗해질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상상으로 레몬을 무는 일을 생각하면 입에 침이 고입니다. 분명 생각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지만 침과 같은 물질이 생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영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은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야채만 먹고도 피부가 좋아졌다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육체를 닦는 것은 깨끗함의 한계가 있습니다. 먼저 영적으로 깨끗해지면 어쩌면 피부병도 나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영과 육은 하나로 이어져 있고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먼저 영적으로 깨끗한 우리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그러면 몸도 깨끗해질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토마토는 과일일까요? 채소일까요?

 

토마토는 과일일까요? 채소일까요? 아마 많은 분이 토마토를 채소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들었고, 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음은 과일일까요? 채소일까요? 
 
“딸기, 수박, 참외, 바나나, 아보카도, 올리브.” 
 
정답을 말하면, 아보카도와 올리브는 과일로 보는 것이 맞고 다른 것은 채소라고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과일의 정의가 나무에서 나는 단맛이 포함된 식용 가능한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풀에서 수확하는 열매를 채소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이는 모두 농학적 관점입니다. 이에 반해 식물학적으로는 과즙이 풍부하고 단맛이 나는 식용으로 먹을 수 있는 식물의 열매를 과일로 분류합니다. 그래서 과채류라는 개념을 만들어 부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과일과 채소의 구분도 어렵습니다. 우리가 아는 진리라는 것 역시 틀린 것이 얼마나 많을까요? 숯과 다이아몬드가 있습니다. 무엇을 더 귀하게 여겨야 할까요? 당연히 다이아몬드입니다. 그러나 숯과 다이아몬드는 같은 탄소 동위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땅속 깊은 곳에서 온도와 압력의 차이를 통해서 나눠진 것뿐입니다. 
 
진리에 대해 함부로 생각하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사람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를 살릴 수 있으며,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반대로 생각했던 사람이 오히려 나를 배신해서 큰 어려움 속에 빠지기도 합니다. 늘 열린 마음, 그리고 겸손한 자세가 요구되는 세상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닫힌 완고한 마음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바리사이파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잘못된 것만 눈에 보이나 봅니다. 사사건건 예수님께 시비를 겁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았다면서 난리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더 깨끗하게 해야 할지를 말씀해주십니다. 
 
사람 마음속의 더러움을 무시하고 겉만 꾸는 것으로 만족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어리석음이 마치 그릇을 씻으면서 겉만 씻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지요. 그들의 마음속에는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만 사람들에게 깨끗한 척하고 있습니다. 과연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까요? 
 
바오로 사도 역시도 겉으로만 보이는 허례허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갈라 5,6) 
 
속을 깨끗하게 하는 방법은 자선을 베푸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실천만이 마음을 깨끗하게 해서 하느님의 선택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 조웰 오스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국화꽃 향기 맑은 아침입니다. 깨끗해야 할 우리의 마음을 잊고 살았습니다. 우리의 마음으로 돌아가 우리의 마음과 마주하는 기도의 시간입니다. 맑은 도움은 우리 모두를 깨끗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맑은 믿음이 곧 맑은 실천입니다. 

언제나 주는 기쁨이 받는 기쁨보다 더 큽니다. 주고 받는 것이 우리 삶의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참다운 사랑의 자선에는 이와 같이 조건이 없습니다. 이웃의 아픔이 예수님의 아픔이며 우리의 아픔입니다. 

진심어린 사랑의 실천만이 있을 뿐입니다. 진심어린 자선은 이 모든 것을 깨끗이 하는 힘이 있습니다. 참된 자선을 방해하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먼저 내려놓습니다. 언제나 문제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문제이며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마음을 살피는 법을 새롭게 배웁니다. 마음에도 신선한 자극이 필요합니다. 다시 마음을 넓히는 사랑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우리 마음과 우리 자신은 하나입니다. 복음은 마음을 나누고 마음을 바치는 사랑의 자선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마음이 살아나야 삶은 기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살리는 법은 자선의 실천이며 자선은 하느님과 이웃을 향하는 참된 기도입니다. 마음이 깨끗해지면 이 모든 것은 맑고 기쁜 고마운 은총이 될 것입니다. 진심어린 자선을 베푸는 간절한 기도의 오늘입니다. 사람은 자선과 마음을 나누며 사는 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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