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2022년 10월 22일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2년 10월 2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에페 4,7-16)
머리이신 그리스도 덕분에 온몸이 자라나게 됩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3,1-9)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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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성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정성껏 섬기게 하소서.
복음
루카 13장 1-9절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다.
1
그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3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4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5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6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7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8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승언 안드레아 신부 강론
2022년 10월 22일 (토)
오승언 안드레아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강론
2022년 10월 22일 (토)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우리에게 주어진 회개의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
오늘 복음은 이스라엘에서 벌어진 두 비극적인 사건을 소개합니다. 하나는 유다 총독이던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학살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열여덟 사람이 희생된 사건입니다.
당대의 유다인들은 어떤 재앙이 발생하였을 때, 그 원인을 희생자들의 잘못에서 찾는 ‘인과응보’적 사고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위의 두 사건을 보고서도 자연스럽게 희생자들이 저지른 죄악과의 연관성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에서 오히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경고로 이야기의 초점을 옮기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이어지는 무화과나무 이야기는 회개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해마다 열매를 맺는 무화과나무에 무려 삼 년이나 열매가 없었다는 것은, 무화과나무로 상징되는 하느님 백성이 회개의 열매 맺기를 계속해서 거부하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삼 년, 곧 세 번씩이나 기회를 주었던 주인은 이제 포도 재배인을 불러서 그 무화과나무를 잘라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재배인은 주인을 만류하며 한 해 동안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는 정성과 수고를 조금만 더 해 보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누리는 다양한 성사의 은총은 회개의 열매를 맺도록 예수님께서 거저 주신 좋은 거름들입니다. 우리는 분명 은혜로운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은혜로운 시기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예 기간이 ‘한 해’라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회개의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이 은혜로운 시기에 우리는 정말로 회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아버지 하느님의 인내심을 시험하며 여전히 그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았으면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성숙과 성장
어제 공동체의 일치를 얘기한 바오로 사도는 오늘 공동체의 성장에 대해 이어 얘기하는데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에게 각기 다른 은총을 주신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바오로 사도는 공동체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식으로 설명하고, 그러므로 공동체의 성장도 몸을 이루는 각 지체의 성장으로 설명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일반 공동체와 분명히 다르고, 달라야 합니다. 그러기에 공동체의 일치도 일반 공동체와 달라야 하고, 공동체의 성장도 다른 공동체와 달라야 합니다.
다른 공동체는 예를 들어,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그래서 몸집이 불어나는 것이 공동체의 성장이 되지만 우리 교회 공동체는 신자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으로 그 성장을 다 얘기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숫자가 늘어나는 것도 공동체 성장의 한 부분이지만 각 신자가 신앙에서 성숙해지는 것이 진정한 성장입니다.
이는 몸의 성장이 팔다리 숫자가 두 개에서 다섯 개로 늘어나고, 위가 하나에서 소의 위처럼 네 개로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체가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인 것처럼 그리스도 몸의 성장도 각 지체가 어른스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주신 그리스도의 뜻대로 각 직책자가 자기 역할을 잘하게 되는 것이 성장입니다.
이때 공동체와 개인의 성숙한 관계는 공동체 성장의 필수적입니다. 성숙한 공동체의 공동체는 개인의 성장과 성숙을 도와주고, 성숙한 개인은 자기의 성숙과 성장이 자기실현이 목적이 아니라 공동체의 성장이 목적이고 그래서 공동체를 위해 자기를 내어놓습니다.
그렇다면 미성숙한 공동체는 그 반대겠지요. 공동체는 개인의 성장에 대해 별 관심이 없고 키우지 않고, 개인도 공동체의 성장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실현에만 힘씁니다.
예를 들면 교회가 한 신부를 신학이나 철학을 공부하게 했더니 그것으로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쓰지 않고, 그저 자기 명예나 수입의 수단으로 쓰고, 그래서 교회는 신부들의 전문적 양성에 소홀하거나 소극적인 그런 것이지요.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어서 이렇게 성장에 대해 얘기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닐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힘도 없고, 그래서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기밖에 모르고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신앙의 어른은 자신과 공동체를 따로 떼어 생각지 않고 모두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하는 데 있어서 일치를 이룹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가 공동의 목표가 되고, 모두 이 경지에 이르도록 서로 돕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란 어린아이처럼 사람들의 속임수나 간교한 계략에서 나온 가르침의 온갖 풍랑에 흔들리고 이리저리 밀려다니지 않고,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 그리스도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잘 알고 선포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닌지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꽃이 어떻게 움직이는 벌레를 잡아 먹을 수 있을까요?
동남아시아에 주로 분포하는 ‘네펜데스’라는 아름다운 꽃이 있습니다. 이 꽃은 조롱박처럼 생긴 특이한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꽃과 완전히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주로 곤충을 잡아먹는 식충식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꽃이 움직일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다른 꽃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움직이지 못하는 꽃이 어떻게 움직이는 벌레를 잡아 먹을 수 있을까요?
꽃 입구에는 꿀 비슷한 액체가 묻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달콤한 냄새가 나기에 많은 벌레가 스스로 몰려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꿀 비슷한 액체를 먹는 순간, 여기에 들어있는 마취 성분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꽃 안쪽으로 미끄러지게 됩니다.
꽃은 이때 꽃 문을 닫고 독한 소화액을 내뿜어 곤충을 녹여서 소화한다고 하네요. 또 꽃 안에는 촘촘한 가시가 돋아있어 한 번 빠지면 절대로 빠져나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꽃의 달콤한 유혹이 우리 인간에게 다가오는 많은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유혹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 유혹은 왜 이렇게 달콤한지 모르겠습니다. 행복할 것 같고, 많은 이득을 얻을 것 같고, 남들로부터 부러움을 받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보다는 순간의 만족에 그치고 말지요. 오히려 죄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해서 더 힘든 시간을 겪게 됩니다.
사람들이 총독 빌라도가 성전에서 제물을 바치고 있는 갈릴래아 사람을 학살해서 제단에 그들의 피가 낭자했던 끔찍한 사건을 예수님께 말합니다. 그런데 끔찍한 변을 당한 갈릴래아 사람이 안 됐다는 동정보다도 그들의 사람들은 죄 때문에 이런 불행을 당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이 죄의 값으로 받는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같은 죄를 지은 같은 동네 다른 갈릴래아 사람들이 무사했던 점을 들어서, 그리고 실로암 탑 공사로 죽은 사람 역시 도시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사람보다 악해서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십니다. 그러면서 강조하시는 것은 회개였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정의의 하느님께서 언젠가는 징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따라서 남의 죄를 탓하기보다는 자기 죄에 대한 참회의 기회로 삼고 회개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어서 전해주시는 쓸모없는 무화과나무처럼, 우리에게도 회개의 시간적 여유는 있습니다. 그러나 서둘러 회개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많은 유혹을 물리치고 진정으로 주님께 향하는 회개의 삶을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 않으면 마지막 순간에 크게 후회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어제의 비 때문에 오늘까지 젖어있지 말고, 내일의 비 때문에 오늘부터 우산을 펴지 마라.
- 이수경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건강한 나무는 건강한 열매를 향해 자라납니다. 열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 여정이 신앙의 값진 여정입니다. 열매를 맺었던 옛날의 흔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올해 열매를 맺는 우리들의 삶이 중요합니다. 진짜 열매를 원하시는 열매의 주님이십니다. 가장 좋은 것을 내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열매를 맺어야 할 때를 알고 열매를 맺는 것이 주님께 드릴 우리 삶의 봉헌입니다. 슬픔의 열매 기쁨의 열매 모두를 봉헌합니다. 봉헌을 통하여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를 깨닫게 됩니다.
약속한 봉헌에 너무나 허술한 우리의 삶을 반성합니다. 봉헌하는 척하는 우리를 기다려주시는 주님이십니다. 다시 하나씩 다시 시작하는 삶입니다. 기다려주시는 주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처음이고 마지막인 마음을 봉헌하는 열매의 시간입니다. 마음의 봉헌이 하늘을 물들이는 사랑임을 믿습니다.
참된 열매는 서로를 어지럽히지 않으며 참된 기쁨으로 우리모두를 충만하게 합니다. 열매는 봉헌이며 나무는 우리 삶의 소중한 여정입니다. 소중한 이 모든 여정을 봉헌합니다. 그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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