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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9월 29일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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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2022년 9월 29일 (목)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다니엘 예언자는 밤의 환시 속에서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연로하신 분 앞으로 인도되어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를 받는 광경을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되리라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9월 29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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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본기도

 

자비로우신 하느님, 천사와 인간의 임무를 오묘히 나누어 맡기셨으니 하늘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천사들이 이 땅에서 저희 삶을 보살피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요한 1장 47-51절

 

너희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때에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이영중 미카엘 신부 강론

 

 

2022년 9월 29일 (목)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이영중 미카엘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심승우 마르티노 신부 강론

 

 

2022년 9월 29일 (목)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심승우 마르티노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보고 듣고 배우기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은 천사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사두가이들)과 인정하는 이들(바리사이들, 에세네파)로 나뉘었는데,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을 제자로 부르신 자리에서 천사의 존재와 역할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세 대천사 축일에 오늘 복음을 봉독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나타나엘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자신을 보았다고 하시자 곧바로 그분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 고백합니다. 

당시 라삐들은 후기 유다이즘에서 선악과나무와 동일시되는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자주 성경과 율법을 연구하였는데, 나타나엘은 그동안 간절히 진리를 찾고 구원을 열망해 온 자신의 내적 투쟁을 예수님께서 꿰뚫어 보셨기에 온전히 승복하여 그분을 메시아라고 고백한 듯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라나선 나타나엘에게 앞으로 “더 큰 일”, 곧 제1독서에서 다니엘 예언자가 선포한 “사람의 아들”에 관한 계시의 실현을 몸소 보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성조 야곱이 꿈에서 보았던 대로 천상과 지상이 이어진 세상(창세 28,10-17 참조), 곧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통하여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느님과 인간의 통교가 온전히 완성되는 세상을 직접 보는 영광을 누리게 되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의 작은 믿음은 그분 곁에 머무르며 보고 듣고 배우는 가운데 점점 더 큰 믿음과 확신으로 성장해 갔습니다. 주님의 제자인 우리도 그분께 눈과 마음을 두고 그분 곁에 충실히 머무를 수 있도록, 오늘은 특별히 대천사들에게 전구를 청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내가, 우리가.

 

우리 교회는 천사들의 존재를 믿을 교리로 얘기하고, 오늘은 천사들 가운데서 대천사들의 축일을 지냅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옛날에는 천사 신심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는데 요즘 와서 악마와 더불어 천사의 존재조차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존재를 부정하는 것보다 더 나쁜 곧 얘기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천사 문제는 얘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관심하게 되어 버린 겁니다. 

생각해 보면 하느님 존재마저 거부되고 무관심한 요즘이니 하느님의 천사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렇습니다. 이 시대는 세상 너머의 세상 곧 영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철저하게 이 세상에만 머물고 이 세상 문제에만 매달립니다. 

하느님이 아니 계신 세상이 세속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 천사들이 싸워야 할 것은 악마들이 아니라 하느님과 영의 세계를 무시하는 세속주의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천사들이 악령들과 싸울 것이 아니라 악령들과 공동전선을 펼쳐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세속주의가 이렇게 천사와 악마 모두 부정하니 실제로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 교황님이 몇 년 전 <악마는 존재한다>는 책을 내셨지요. 거기서 “사탄은 하느님을 거슬러 예수 그리스도 안의 하느님 나라를 증오하면서 세상에서 활동한다.”라는 말씀을 교황님이 하셨는데 증오보다 더 하느님 나라를 파괴하는 것이 무시이니, 오늘날의 더 큰 악마는 세속주의입니다. 

관건은 이 싸움을 대천사 미카엘에게만 맡겨둘 것인가? 이것입니다. 아니지요. 내 안의 세속주의는 내가 싸워야 하고, 우리 안의 세속주의는 우리가 싸워야 합니다. 

내가! 미카엘 대천사가 되고, 우리가! 미카엘 대천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왜 천사는 모든 사람에게 보이지 않을까?

 

민수기 22장에 재미있으면서도 아리송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압 임금은 이스라엘 군대와 싸우는 게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예언자 발라암을 불러와 이스라엘 군대를 저주하려 합니다. 하지만 발라암은 하느님께서 가기를 원치 않으시자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하느님께서 원하시니 나귀를 타고 떠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이 바뀌셔서 발라암을 죽이려 하십니다. 천사가 칼을 들고 나귀가 오는 앞길에서 기다립니다. 그런데 나귀는 천사를 봅니다. 자신과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길에서 벗어납니다. 그러자 발라암은 말을 안 듣는 나귀를 때립니다. 천사가 더 위협해오자 나귀는 벽으로 붙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나귀를 더 심하게 때립니다. 이젠 막다른 골목에 다다릅니다. 피할 길이 없자 나귀는 주저앉습니다. 나귀가 미쳤나보다고 생각하고 나귀를 죽도록 때립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나귀의 입을 열어주십니다. 나귀는 자기가 칼을 든 천사를 보고 피하려고 한 것인데도 왜 죄 없는 자신을 때리냐며 따집니다. 나귀가 하는 말을 듣자 발라암은 그제야 눈이 열려 칼을 들고 자신 앞에 서 있는 천사를 봅니다. 

천사는 말합니다. 

“너는 어찌하여 너의 나귀를 이렇게 세 번씩이나 때렸느냐? 네가 내 앞에서 나쁜 길을 걷기에, 내가 막으려고 나왔다. 나귀가 나를 보고 세 번이나 내 앞에서 비켜났으니 망정이지, 내 앞에서 비켜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나귀는 살려 주고 너는 이미 죽였을 것이다.”(민수 22,32-33)

발라암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천사를 볼 수 없는 수준까지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나귀가 그를 천사를 볼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입니다. 나귀와 대화를 나누고 나서 천사가 보였다는 말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자신이 어느 세상에 머무는지 보여준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는 군대에서 귀신을 본다는 청년에게 귀신과 대화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귀신과 대화한다는 말은 자신이 귀신의 세상에 속해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나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들과 대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천사를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항상 신기했습니다. 당시 성당 성물방에 ‘하.사.시.’가 꽂혀 있었지만, 제가 아는 한 그 책을 뽑아 읽은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 왜 저만 그 책에 관심을 가졌을까요? 저는 책을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천사는 파견되어 파견한 사람과 누군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주님의 종입니다. 저에게는 그 책을 쓴 마리아 발토르타가 천사입니다. 그 천사를 통해 저는 신학교에 들어와 한 번이라도 그리스도를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 이유가 나옵니다. 나타나엘을 보시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
예수님은 그에게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는 천사들을 볼 것을 약속하십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거짓말을 제일 싫어한다는 말을 굳게 믿고 거짓말을 안 하려 했습니다. 신학교에서 착한 거짓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라고 했을 때 저만 들었습니다. 진실한 말은 나귀의 언어였던 것입니다. 천국에 속해있어야 천국의 존재를 볼 수 있습니다. 말은 자신이 속한 세상을 알려줍니다. 천국은 거짓이 없는 세상입니다. 왜냐하면 거짓의 아버지는 사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향해 수많은 천사를 내려보내십니다. 그런데 천사를 보는 사람은 극히 일부입니다. 그 이유는 내가 천상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 언어란 ‘진실’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다시 예수님을 뵐 수 있기 위해 무엇을 해야 했을까요? 자기 죄를 고백해야 했을 것입니다. 특별히 성모님께 고백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감싸는 무화과 잎들을 떼어낼 때 불칼을 든 천사를 통과하여 생명 나무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성이 높아지지 않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우리 안에 거짓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은 저급한 세상에 머물면서 기도로 자신을 높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발은 밧줄로 바위에 꽁꽁 묶어놓고 하늘을 날려는 것과 같습니다. 

왜 거짓말하면 천사가 보이지 않을까요? 천사는 천국의 존재인데, 천국에서는 거짓말이란 언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먼저 내 안에서 거짓이 사라지지 않으면 나를 하늘로 이끌어줄 천사를 만날 수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의 천사를 볼 수 있을까요?

 

남들과 비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남들 정도의 돈만 있으면, 남들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가지게 되면, 남들 정도의 가정의 평화만 누릴 수 있다면…. 그런데 그렇게 비교하는 세상의 것들은 결국 자기 것이 아닌 남의 것이 아닐까요? 즉, 남의 것으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진짜 행복은 남과 비교하고 불만을 품는 데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나의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위해 스스로 변화해나갈 때 행복을 발견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이런 행복이 또 다른 행복을 불러들인다는 것입니다. 
 
남의 것으로 행복해지려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의 것들, 세속적인 것들이 결국은 남의 것이었음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은 이 세상에 남아 다른 이에게 전달될 뿐입니다. 
 
나의 것은 죽음으로 그냥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은 사라지고, 대신 사랑의 실천,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삶을 주님께서 모두 기억하시기에 하늘에서도 남게 됩니다. 이렇게 하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진짜 나의 것입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대천사는 중대한 사건을 전하는 이들이지요.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 같으랴?’라는 뜻으로, 요한 묵시록에 나오듯 우리의 원수와 싸우도록 파견되어 우리가 악을 멀리해야 함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람, 영웅, 힘’이라는 뜻의 가브리엘은 동정 마리아에게 파견되어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전했으며,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뜻의 라파엘은 토비아의 눈을 고쳐 주어서 하느님의 치유를 전해주었습니다. 
 
대천사의 이런 역할은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한없는 사랑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뜻에 더 철저히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의 것을 구할 수 있도록, 사랑을 주시는 하느님 사랑에 집중하면 할수록 하늘에 나의 것을 너 많이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짓 없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나타나엘을 향해서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요.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의 천사를 볼 수 있을까요? 
 
세상에 나의 것을 만들려고 욕심과 이기심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나의 것을 만들려고 철저하게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똑같은 꽃이라도 감탄하면 한층 예뻐 보인다. 똑같은 사람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더 좋게 보인다. 생각에 따라 세상 풍경이 달라진다. 간단하면서도 신비한 일이다.

- 정연복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천사는 분명 존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천사를 창조하시고 천사에게 필요한 은총을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은 세상입니다. 하늘의 영광과 지극한 행복을 전하는 대천사들이 가장 놓으신 하느님을 일깨워줍니다. 

하느님의 계획과 하느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실천하는 대천사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우리를 보호하는 대천사들입니다.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우리를 보호하고 협조하는 대천사들의 사명입니다. 

구원을 향한 유일한 하느님의 가치는 사랑입니다.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을 통하여 영광과 품위를 성찰하게 됩니다. 대천사는 예수님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하여 성장 그리고 수난과 죽음 부활의 모든 여정에 함께하며 예수님을 섬깁니다. 

우리의 선한 지향과 기도를 하느님께 전달하여 줍니다. 이 모든 일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찬미와 감사를 되새겨보는 믿음의 대천사 축일입니다. 사랑의 의무는 섬김과 감사의 실천으로 드러납니다. 

오늘도 대천사들과 함께 사랑의 기쁜 날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느님의 가장 좋으신 계획을 믿고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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