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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10월 2일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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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2년 10월 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27주일 -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권능 안에 있어, 당신 뜻을 거스를 자 없나이다. 당신이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을 만드셨으니, 당신은 만물의 주님이시옵니다.

 

2022년 10월 2일 (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하바 1장 2-3절, 2장 2-4절)

  • 제2독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2티모 1장 6-8절, 13-14절)

  • 오늘 복음
    너희가 믿음이 있으면! (루카 17장 5-10절)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10월 2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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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공로와 소망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양심의 가책을 받은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감히 청하지 못하는 은혜도 내려 주소서.

 

 

복음
루카 17장 5-10절

 

너희가 믿음이 있으면!

 

그때에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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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현광섭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2022년 10월 2일 (일)
현광섭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2년 10월 2일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종과 주인에 관한 비유를 조금 각색해 보면 이렇습니다. 종은 아침 일찍부터 주인의 밭으로 나가 일하거나, 들로 가서 주인이 아끼는 양들을 치며 온종일 그의 재산을 돌보고 관리하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집에 와서도 쉴 틈이 없습니다. 서둘러 음식을 마련하여 주인을 식탁으로 모신 뒤 허리에 띠를 매고 주인이 식사하는 동안 시중을 들고 나서야 하루의 긴 일과가 마무리됩니다. 종은 그제야 비로소 편히 먹고 쉴 수 있습니다.

이 비유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절대 착각하지 말아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하느님께서 맡기신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또 잘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루 품삯으로 계약을 맺은 일꾼이 아니라, 주인이신 하느님께 온전히 속한 종으로서 그 일들을 수행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밭을 갈고 양을 치고 시중드는 일을 한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거나 마치 큰 빚을 진 것처럼 종을 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껏 해 온 일에 대해서 거들먹거리며 그에 걸맞은 대우와 보상을 요구한다면, 이는 우리의 처지를 망각한 것이 되고 맙니다. 임무를 마친 종이 주인에게 할 수 있는 바른 대답은 이러합니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비유가 맞는 말씀이기는 해도, 조금 서운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종을 함부로 부리는 주인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비유는 종과 주인의 관계를 잊지 말라는 경각심 차원의 말씀일 뿐, 예수님께서는 그 주인이 사실은 매우 관대하게 자기 종들을 대하는 분이심을 함께 가르쳐 주십니다. 

혼인 잔치에 간 주인이 자신을 기다리던 종들을 보고서 어떻게 그들을 대하는지를 전하는 루카 복음의 또 다른 비유도 함께 기억합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12,37).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고통 극복의 열쇠 : “나는 누구인가?”

 

전에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욕을 하는 아이들이 욕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법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욕을 하는 대가로 많은 돈을 주다가 점점 돈을 줄여가니까 아이들이 그 적은 돈을 받으며 욕을 하지는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면서 그 일에 보상을 붙이면 보상이 작아짐에 따라 그 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삶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우리에겐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이 고통을 넘어설 보상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힘차게 살아갈 힘을 주어야 한다면 무엇을 주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갓피플’이란 채널에 한창수 목사가 ‘고난을 절대 해석하지 마세요’란 제목으로 자기 삶에 비추어 고난 극복법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한창수 목사의 어머니는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소년을 출산한 직후 치료 불가 상태의 암을 얻었습니다. 어머니는 오랜 투병 끝에 모르핀 중독으로 인한 쇼크사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돈을 벌러 간다는 명목으로 삼 남매를 두고 사라졌습니다. 형은 공부를 핑계로, 누나는 시집을 핑계로 도망갔습니다.

소년이 사는 동네는 조폭들의 본거지인 대구 향촌동이었습니다. 버림받고 가난했던 소년이 가졌던 세상에 대한 분노는 그를 뒷골목으로 끌어들이기에 충분했습니다. 소년이 조폭의 세계로 발을 들이는 것이 당연한 절차처럼 여겨지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에 의해 교회에 출석하게 됩니다. 교회에 나오면 필통을 준다는 것에 혹해서 교회에 나갔습니다. 친구의 어머니는 아들의 친구면 똑같이 아들이라며 창수를 받아주었습니다. 그들로부터 따듯한 밥을 얻어먹고 틈틈이 용돈도 받았습니다. 

소년은 난생처음 받아보는 따뜻한 관심과 사랑에 어리둥절했습니다. 위험한 동네에서 온 소년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친구 어머니는 소년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어느 날 한 권사님이 마태오 복음 6장을 읽어주었습니다. 6장 30절을 읽을 때였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라는 부분이 갑작스레 소년의 심장을 파고들었습니다. 버림받은 줄로만 알았던 소년은 자신의 인생을 돌보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벅차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소년에게 있던 어둠이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물론 소년은 여전히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교실에서 자며 신문 배달, 붕어빵 장사, 방범대원 일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렇지만 소년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이상하리만치 행복했습니다. 비참한 환경이나 처절한 생활은 결코 소년에게 있는 빛을 없애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열정으로 뜨거워진 고등학생의 소년은 친구들과 길거리 찬양하며 뜨거운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소년의 친구들은 새벽에 일어나 소년의 신문 배달을 도와주었고, 친구들의 어머니는 소년의 도시락을 틈틈이 챙겨주시며 소년의 어머니가 되어주셨습니다. 그 친구 중 한 명은 후에 소년의 아내가 되었고, 친구들 대부분은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소년 역시 목사가 되어 뜨겁게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의 고난은 내가 해석하고 보상을 준다고 극복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닙니다. 오히려 타락하고 중독됩니다. 

먼저 우리가 왜 고통스러워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혼자서는 내가 누구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내가 누구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 안다면 모든 고통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면 내가 누구를 위해 사는지 알면 됩니다. 내가 무언가를 하는 목적은 바로 내가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고 그 이유는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기 위함입니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2007)에서 보면 윌 스미스는 지구상에 퍼진 치명적 바이러스로 좀비들 속에서 자신 혼자 남게 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줄 유일한 존재는 개 한 마리입니다. 이 개는 이미 죽은 가족과 함께 키우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연결해주는 유일한 끈입니다. 하지만 좀비들에게 개까지 죽게 되자 삶의 의욕을 잃습니다. 

그러다 다른 생존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는 생존자들을 지키기 위해 다시 싸웁니다. 결국 고통을 이겨내게 만드는 힘은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하는 공동체입니다. 그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그 공동체에 속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힘은 내고 속하고자 하는 공동체가 주는 정체성에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믿음에 대해 청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믿음이 전혀 없다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 17,6)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믿음이란 ‘내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아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듯이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이것을 믿으면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그만한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리고 겸손한 종에 관한 비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종은 온종일 일하고 주인의 저녁상까지 차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말하라 하십니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

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면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도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하신 주님께 감사만 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분이 아니면 우리는 이 세상 고통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는 일. 이것이 우리가 믿음을 키우는 방법입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의 “저 사람들도 사는데 너는 왜 못 사니?”라는 말씀을 들으시고 조금이라도 감사의 마음이 생겨 나쁜 생각을 버리게 된 것과 같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을 주시는 주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좋은 분일 수밖에 없음을 믿게 됩니다. 

미국 L.A. 올리픽 때 금메달을 딴 한 중국 선수가 있습니다. 이때부터 중국 다이빙이 전 세계에서 가장 기량이 높은 수준으로 장기 집권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기자들이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어떻게 그런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선수는 어머니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선수가 처음에는 100미터 육상선수였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항상 이 선수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육상을 매우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자주 넘어졌고 자주 풀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때마다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나는 네가 1등을 해서 좋은 게 아니다. 네가 달리는 것만 봐도 좋다. 네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서 뛰는 것을 보면 엄마는 너무 기뻐. 1등 하는 것보다 그게 훨씬 더 아름다운 일이야.”

늘 이런 이야기를 해 주는 엄마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 되었습니다. 다이빙대에 설 때마다 그냥 그렇게 서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엄마가 떠오르고 그러면 힘이 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에게 속하기 위해 이 선수는 모든 고통을 감내하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당에서 봉사하는 보상은 무엇일까요? 바로 그 공동체에 속해있는 것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 공동체는 자신이 누구라는 정체성을 줄 수 있는 믿음의 공동체여야 합니다. 그러면 그 공동체가 천국이 됩니다. 

사람이 소속감에 집착하는 이유는 “나는 누구인가?”를 물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고통스러운 질문에 해답을 줄 수 있는 대상은 공동체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해답을 주는 공동체를 위해 목숨도 바칩니다. 그만큼 고통스러운 질문이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만 해결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그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 무슨 고통이든 감내합니다. 

몸의 세포가 몸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의 보상은 무엇일까요? 바로 위면 위, 피부면 피부, 뇌면 뇌 일부분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곳에 속하지 않으면 암세포이든가 때가 됩니다. 죽는다는 뜻입니다. 정체성을 줄 수 있는 믿음의 공동체 자체가 바로 누군가가 모든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드는 보상입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의 수준만큼 고통을 극복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은 내가 속하려는 공동체에 있습니다. 그 공동체가 주는 정체성에 관한 믿음. 이것이 내가 어디까지 고통을 이겨내고 감사하며 살 수 있는가를 결정합니다. 우리 공동체는 과연 이 세상 모든 고통을 이겨낼 믿음을 주고 있나요? 그러면 그 공동체는 이미 천국일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당연히 해야 할 일일 뿐.

 

어느 자매님께서 성당 교우분으로부터 “** 자매와 사이가 좋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평소에 그렇게 친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쁜 관계도 아니었지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니, 지난번에 모임이 있었는데 안 좋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인지를 물었다고 합니다. 
 
자매님께서는 이 말씀을 듣고서 계속 불편한 마음이었습니다. 특별한 만남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자신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셨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며칠 뒤에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서로 서먹했지만, 이대로는 계속 불편할 것 같아서 상대편 자매님께 자신이 어떤 실수를 했는지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상대편 자매님은 깜짝 놀라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대화하면서 오해를 풀 수 있었습니다. 
 
불편한 마음은 빨리 해소해야 합니다. 그래야 불편한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을 끌어도 풀리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다면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빨리 해소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주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주님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상태에서도 편하고 기쁜 관계가 되도록 불편한 마음은 얼른 풀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주인과 종의 관계는 매우 엄격했습니다. 우리 같으면 열심히 일하고 돌아온 종에게 “수고했다. 어서 식탁에 앉아 밥부터 먹어라.”라고 말할 것 같은데,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라고 명령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당시의 자연스러운 주인과 종의 관계입니다. 그래도 사랑 그 자체이신 주님이신데, 왜 이런 말씀을 비유로 매정하게 말씀하셨을까요? 
 
온종일 일했다고 해도, 종에게 일의 끝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역시 주인이신 주님의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일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왜 보답해주지 않으시냐는 식으로 불평합니다. 주님과 불편한 관계를 계속 만듭니다.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을 우리의 공로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것이 아닙니다. 이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무슨 선행을 했다고 해서 하느님께 그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이 역시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제1독서의 하바꾹 예언서가 말하는 성실함이었고, 성실한 사람이 의인으로 주님으로부터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일을 대단한 일을 했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종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일 뿐이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타인과 당신의 삶을 비교하지 마라. 해와 달은 비교할 수 없다. 그들은 자기 시간에 빛을 비춘다.

- 호다 코트비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믿음의 나날들을 우리는 살아갑니다. 믿음으로 한 고개를 넘습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생명입니다. 믿음은 생명의 올바른 방향성입니다. 믿음은 가장 좋으신 하느님의 현존입니다. 

믿음은 하느님을 향하고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향합니다. 생활에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라고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기초적인 질서이며 뿌리입니다. 

믿음을 되찾는 여정이 바로 회개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하느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믿음이 맺는 삶의 열매입니다. 새로운 삶을 열어놓는 믿음의 관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믿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열어주십니다. 

믿음의 부활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믿음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우리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예수님께서 올바른 믿음을 보여주십니다. 

가장 좋으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묵묵히 걸어가는 믿음입니다. 다시 제가 져야 할 십자가도 믿음이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간절한 기도도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우리의 일상은 하느님과 하나가 됩니다. 믿음이 우리를 성장시키는 가장 큰 은총임을 믿습니다. 

하느님께 이 모든 것을 의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믿음을 더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믿음의 길이 가장 좋은 생명의 길임을 믿고 실천합니다. 믿음의 실천은 겸손입니다. 삶의 자세와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는 믿음입니다. 은총가득한 주일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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